징계보다 더 넘치는 하나님의 자비
시편 103:8~14
찬송가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오늘 다윗의 송축시 속에 나오는 이 구절은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은혜,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풍부한 인자하심에 대한 찬양이 나와 있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죄악에 대하여서는 반드시 징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그리고 그의 징계는 엄정하고 성실합니다. 그냥 대강 넘기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시편 119:75 말씀에서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과 징계는 감정적으로 행하시는 법도 없고 그 행한 일에 따르는 합당한 심판입니다. 그리고 그냥 봐주는 법이 없으신 것은 그가 성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을 외모로 보아서 넘어가지도 않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가 몹시 사랑하여 한없는 영광과 은혜를 베풀었고 몹시 친하여 자기의 마음을 숨김없이 나누며 은밀한 교제를 깊이 나누었다 해도 범죄한 일을 봐주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라고 해서 무조건 봐주지도 않으며, 왕이라고 해서 봐주지도 않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깊은 친교와 사랑을 나누었던 자라도 눈 한번 질끈 감아주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의 다른 왕들은 그의 권력을 가지고 악을 행하고 권세를 부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앉은 자는 비록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엄정한 율법을 지켜야 하고, 그가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법도의 수종자가 되어야 하기에, 만약 하나님의 법도를 어길 때 하나님은 엄정한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몹시도 사랑하였던 다윗이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빙자하여 악을 행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섭도록 징계하셨습니다. 그의 자식을 죽였습니다. 다윗이 눈물로 금식하며 칠일을 매달렸어도 죽였습니다. 죄악은 용서해주셨지만 그가 범한 죄에 대한 징계는 혹독하였으니, 그 집안에 피가 끊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부끄러운 일을 겪도록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는 심히 부끄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중년을 넘어서서 안정되어야 할 시기에 그는 자기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서 비참하게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고, 그를 신뢰하며 존경하며 따르던 백성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그를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는 많은 시간을 질병의 고통 때문에 신음하며 병상에 누워서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의 시편 중에 상당한 분량은 탄원시인데, 그 기도의 시들은 대개 원수들의 공격과 음해와 조롱 그리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 지어진 시들입니다. 그러한 시련은 하나님께서 연단을 위한 목적으로 주신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일환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엄정함을 깊이 깊이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가볍게 봐넘기시는 분이 아니며, 죄에는 반드시 쓰라린 하나님의 징계의 거친 손길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평생에 일체의 죄를 두려워하며 죄는 모양이라도 싫어하며 멀리하는 성결한 삶을 살기를 몸부림쳐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은 그 고난 중에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엄정하신 공의의 심판보다 더 크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는 경책하시지만 자주 경책하지는 않으시며, 노하기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더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계속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은 언제나 실수가 많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악함의 본성은 다 타고나는 것이기에 어리다고 해서 악한 모습, 이기적인 모습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은 따끔한 책망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실수와 잘못과 죄에 대하여 한없이 책망하며 그 실수와 잘못을 계속하여 지적하는 것은 자녀들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균형있고 건강하게 마음이 자라나는 것을 막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는 책망을 하고 잘못을 지적하되 그들의 죄를 계속하여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인 우리들의 연약함과 타고난 체질들을 다 알고 계시기에 우리가 지은 죄와 실수들을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자주 경책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들을 쉽게 잊어버리십니다.
또한 우리가 행한 죄는 크고 중대하고 악의적인 기질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그 죄를 따라 다 갚지는 않으십니다. 다윗이 범한 죄는 악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고의적이고 교만하고 배신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고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았던 사람이기에 그만큼 그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마땅히 더욱더 무섭고 아무런 자비와 긍휼도 없는 잔인한 심판이 주어짐이 당연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에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각성케 하시는 은혜로 인하여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깨달음이 오는 순간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로 당연히 죽어야 하고 무서운 심판을 받아 마땅하고 지옥의 밑바닥, 뜨거운 불구덩이에 들어가야 마땅함을 깨닫습니다. 다윗도 딱딱하게 굳었던 그의 심령이 각성되는 되는 순간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했는지 알게 되었고, 자기는 마땅히 죽을 자요 용서받지 못할 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한 대로 갚지 아니하셨습니다. 당장 죽어야 할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그의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은 자처럼 용납해주셨습니다.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그렇게 완전히 사해주시고 지워주셨습니다.
비록 그의 죄악에 대한 엄중한 징계는 허락하셨으나 그가 행한 죄악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긍휼히 여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고 징계 중에 있는 그를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체질을 아셨고 인생의 날이 풀과 같이 속히 시들고 먼지처럼 허무한 것이 인생임과 그 영화도 들의 꽃과 같음을 알고서 불쌍히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혹독한 징계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이러한 용서해주시는 은혜와 긍휼히 여겨주시는 은혜가 더욱 크심을 아는 자는 징계 중에 더욱 넘치는 하나님의 자비과 긍휼에 대한 감격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18편 말씀에서도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시편 118:18~20)
그렇습니다. 이렇게 징계를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과 자비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하는 자가 진정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한 때 깊이 넘어졌더라도 다시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세월이 갈수록 죄의 무서움을 알고, 하나님의 징계의 엄정함을 깊이 인식하며 죄를 두려워하는 자가 됩시다. 그의 징계를 당할 때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그의 징계가 아무리 혹독해도 우리가 범한 죄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벼움을 알고 더욱 하나님께 충성하며 순종하며 늘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하여 장차 의인들만이 들어가는 여호와의 문에 들어가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이 크고 풍성하신 사랑과 긍휼을 인하여 영원히 그를 찬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