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찾습니다
안영식
딸내 집에 가서 우리 손녀 다윤이 앨범을 보니 뱃속 초음파 태아 사진부터 갓 태어나서 바구니에 담겨있는 사진, 100일 사진, 첫돌사진, 어린이집에서 찍은 사진 등 수많은 사진이 다윤이 커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참, 예쁘다 어린 천사다
다윤이 사진을 보다가 문득 내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어린 시절의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초등학교 다닐 때도 단체로 몇 번인가 찍은 기억은 있으나 사진값을 내지 못해서 사진이 없다
그래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친구네 집에 가면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놓은 친구들의 사진이었다
특히 고추를 드러내놓고 찍은 백일 사진이나 첫돌기념 사진이 있는 집에 가면 정말 부러웠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 나는 거의 학교에 못 가서 초등학교 졸업사진도 없다
사진 찍는날 집에서 일하느라고 학교에 가지 못해서 아예 내 얼굴은 졸업 사진에서 빠졌다
사진이 없으니 앨범도 당연히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최초 사진은 열 아홉 살시절 4H 활동을 할 때 찍은 흑백사진이 나의 최연소 사진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사진 몇 장 남기지 못했다
아내를 만나서 약혼 사진과 결혼식 사진 몇장 그게 내 사진의 전부다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도 아빠와 사진을 몇 장 찍어놓지 못했다
물론 그 시절에는 사진기가 비싸서 구매하기도 어려웠지만
일부러 사진관에 사진 찍으러 가기도 그리 쉽지 않았다
관광지에 가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사진을 찍어서 우편으로 부쳐주는 직업 사진사도 있었는데 사진값도 만만치 않았고 또 의심이 많은 나는 정말 사진을 부쳐줄까? 사진사를 믿지 못하여 사진을 찍지 못했다
우리 둘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꽤 많은 돈을 주고 큰 마음 먹고 카메라를 처음 사들여 아이들 시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텔레비젼이나 냉장고보다 비싼 우리 집 재산 순위 1위 여지 싶다 카메라를 사 오던 날 가슴도 설랬고 부자가 된 듯 뿌듯한 마음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외출을 하거나 집을 비우고 시골이라도 가면 장롱 깊이 숨겨두고 갔다 와서는 제일 먼저 확인 하는 것이 사진기였다
돌이켜 보니 사진보다 정확한 기록은 없다
까맣게 잊고 있던 30년 전 일도 사진을 보면 그날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난다
우리 아들 어린 시절에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했는데
내 열아홉 시절 사진과 우리 아들 열아홉 무렵 사진을 비교해 보니 나를 많이 닮았다
다윤이 사진 속에 어린 딸내미가 들어있다
참 촣은 세상이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 속에 카메라 기능이 있어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금방 확인도 하고 편집도 하고 또 멀리 있는 가족 친지에게 전송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 시절 나는 어떤 모양을 하고 어떤 옷을 입고 있었을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와 같이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이 보고싶다
주인을 잃어버리고 주인도 못 알아보는 영혼 없는 사진이 되어있다가, 반기며 서로를 기억하는 그런 사진을 간직한 친구가 "네 사진 나에게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시절 통리 미인폭포 앞, 반야골 성지바위, 소백산 희방사, 소풍가서 단체로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난다
지금의 눈으로 내 어린 시절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사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유명인사가 되었더라면 어린 시절 나와 사진을 같이 찍은 친구들이 연락해 올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딸내미가 또 다윤이 사진을 찍는다
다윤이는 손가락을 V자로 펴서 얼굴에 갖다 대고 방긋 웃는다
연예인 사진보다 더 예쁜 사진이 찍혔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