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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s can, of course, understand the Japanese better than they can the Chinese on this score but this understanding nevertheless goes only a little way. We have many taboos on erotic pleasure which the Japanese do not have. It is an area about which they are not moralistic and we are. Sex, like any other ‘human feeling,’ they regard as thoroughly good in its minor place in life. There is nothing evil about ‘human feelings’ and therefore no need to be moralistic about sex pleasures. They still comment upon the fact that Americans and British consider pornographic some of their cherished books of pictures and see the Yoshiwara—the district of geisha girls and prostitutes—in such a lurid light. The Japanese, even during early years of Western contact, were very sensitive about this foreign criticism and passed laws to bring their practices more nearly into conformity with Western standards. But no legal regulations have been able to bridge the cultural differences.
미국인들은 물론 이러한 평가에 대해 중국인을 이해하는 것보다 일본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해는 크게 나아가지는 못한다. 우리는 성적 쾌락에 금기가 많지만 일본인은 그렇지 않다. 일본인에게 성에 관해서는 도덕적인 영역이 아니지만 미국인에게는 도덕적 영역이다. 성(性 sex)은 다른 ‘인간 감정’과 마찬가지로 삶의 하위 영역(하찮은 자리)에서 전적으로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감정’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성적 즐거움에 대해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 미국인과 영국인은 외설적인 책을 고이 간직해야 할 사진첩으로 여기며 기녀들과 창녀들의 거리인 요시와라를 이렇게 야한 빛으로 본다고 지금도 비평을 하고 있다. 일본인들을 서구인을 접촉한 초기에 조차 이러한 외국인의 비평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서구 기준에 따르도록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법적 규제는 문화적 차이를 연결할 수는 없었다.
Educated Japanese are thoroughly aware that English and Americans see immorality and obscenity where they do not, but they are not as conscious of the chasm(간격, 틈) between our conventional attitudes and their tenet(견해) that ‘human feelings’ should not intrude upon serious affairs of life. It is, however, a major source of our difficulty in understanding Japanese attitudes about love and erotic pleasure. They fence off one province which belongs to the wife from another which belongs to erotic pleasure. Both provinces are equally open and aboveboard. The two are not divided from each other as in American life by the fact that one is what a man admits to the public and the other is surreptitious. They are separate because one is in the circle of a man’s major obligations and the other in the circle of minor relaxation. This way of mapping out ‘proper place’ to each area makes the two as separate for the ideal father of a family as it does for the man about town. The Japanese set up no ideal, as we do in the United States, which pictures love and marriage as one and the same thing. We approve of love just in proportion as it is the basis of one’s choice of a spouse. ‘Being in love’ is our most approved reason for marriage.
교육받은 일본인은 영국과 미국인이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장소를 비도덕적이며 외설적으로 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인간 감정’은 삶의 중요한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견해와 우리의 관습적 태도 사이의 간격을 자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과 성애적인 즐거움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주요 원인이다. 일본인들은 부인이 속한 부문과 성애적인 즐거움이 속한 부문을 분리했다. 두 부문 모두 공평하게 허용되며, 떳떳하다. 두 부문은 미국인의 생활에서처럼 남성에게 공적으로 허용된 것과 은밀한 것으로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전자는 남성의 주요한 의무 영역이며, 후자는 하위의 기분전환 영역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그 둘을)분리한다. 각자의 영역으로 ‘적절한 지위’를 배치하는 이러한 방식은 가정의 이상적인 아버지와 마을에 종사하는 남자로 분리되는 두 개의 지위를 만든다. 일본인들은 미국에서 우리가 하듯 결혼과 사랑을 하나이며 같은 일로 그리는 이상을 세우지 않는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근거에 비례해서 사랑을 증명한다.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우리가 결혼에 동의하는 최고의 이유이다.
After marriage a husband’s physical attraction to another woman is humiliating to his wife because he bestows elsewhere something that rightly belongs to her. The Japanese judge differently. In the choice of a spouse the young man should bow to his parent’s choice and marry blind. He must observe great formality in his relations with his wife. Even in the give and take of family life their children do not see an erotically affectionate gesture pass between them. ‘The real aim of marriage is regarded in this country,’ as a contemporary Japanese says in one of their magazines, ‘as the procreation of children and thereby to assure the continuity of the family life. Any purpose other than this must simply serve to pervert the true meaning of it.’
결혼 후 다른 여성에 대한 남편의 물리적 이끌림은 부인에게 모욕감을 주는데, 그녀에게 정당하게 속해 있는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남편이 주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판단은 다르다. 배우자의 선택에 있어 청년은 부모의 선택에 승복해야 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을 한다. 청년은 부인과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형식을 준수해야만 한다. 가정생활의 주고받음 속에서조차 그들의 자식들은 그들 사이에 생기는 성적으로 이끌리는 몸짓을 볼 수 없다. ‘이 나라에서 결혼의 진짜 목적은,’ 당대 일본인이 한 잡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출산이며 그것에 의해 가정생활의 연속이 보장된다. 이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도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그르치는데 공헌할 뿐이다.’
But this does not mean that a man remains virtuous by limiting himself to such a life. If he can afford it he keeps a mistress. In strong contrast to China he does not add to his family this woman who has caught his fancy. If he did that, it would confuse the two areas of life which should be kept separate.
그러나 이것은 한 남자가 이러한 삶에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도덕적으로 남아 있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여유가 있다면 정부를 둔다. 중국과는 완전 대조적으로 그는 자신의 취향을 사로잡은 이 여인을 자신의 가족으로 들일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분리시켜야만 할 생활의 두 영역을 혼동한 것이다.
The girl may be a geisha, highly trained in music and dance and massage and the arts of entertainment, or she may be a prostitute. In any case he signs a contract with the house where she is employed and this contract protects the girl from abandonment and ensures her a financial return. He sets her up in an establishment of her own. Only in highly exceptional cases when the girl has a child whom the man wishes to bring up with his own children does he bring her into his home, and then she is designated as one of the servants, not as a concubine. The child calls the legal wife ‘mother,’ and ties between the real mother and her child are not acknowledged. The whole Oriental arrangement of polygamy, which is so pronounced a traditional pattern in China, is thus quite un-Japanese. The Japanese keep family obligations and ‘human feelings’ even spatially apart. 그 여자는 음악과 춤 그리고 안마와 연예 기술을 고도로 훈련한 게이샤일 수 있다. 아니면 창녀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그녀가 고용된 집과 계약을 해야 하고 이러한 계약은 그녀가 버려지는 것을 방지하고 그녀의 재정적 수입을 보장한다. 그는 그녀 자신의 점포를 세울 수 있다.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남자가 자신의 아이로 키우기를 원하는 애를 여자가 임신했을 때, 그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러면 그녀는 한 명의 하인이 될 뿐 첩은 아니다. 그녀의 아이는 법적 부인을 ‘어머니’라 부르고 진짜 엄마와 아이 사이의 인연은 인정되지 않는다. 일부다처제의 전체적인 동양적 배치는 중국에서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뚜렷한데 따라서 일본에 와서 완전히 달라진다.(완전히 비 일본적이다.) 일본인은 가족 의무와 ‘인간의 감정’을 준수하는데 심지어 공간의 분리까지 준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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