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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의 殘
新聞이나 텔레비전을 보다가‘이번의 기근은 몇 년도의 기근이 있은 후 30년 만에 있는 최대의 기근입니다’라는 발표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 세상에 무서운 재앙(災殃)이 임할 때도 한꺼번에,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 쌓여 있다가 어느 수준을 넘게 되면, 그 동안 모였던 것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가 수시로 때리고, 야단을 친다면, 아이들은 도무지 불안해서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웬만큼 잘못해도 꾹 참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무래도 그냥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될 때, 하루 날을 잡았다가 심하게 야단을 치거나, 매를 댑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죄를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다스리십니다. 실제로 인간들이 짓는 죄나 행동을 보면, 하나님은 매일 진노하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자비(自悲)하심으로 인간들의 그 못된 짓을 꾹 참고 그냥 보고만 계십니다.
그러다가 그 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섰을 때, 하나님은 그 동안 참았던 진노(震怒)를 한꺼번에 쏟아 부으십니다. 그 때, 이 세상에는 몇 십 년 만에 가장 큰 지진이나, 기근이나, 홍수가 일어나든지, 아니면 대규모 전쟁(戰爭)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노예로 붙들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 당시 중동 지방에서 일어날 대규모 전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전쟁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일으키는 전쟁입니다. 전쟁의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지, 과연 세계대전이라고 할 만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전쟁의 중심에 유다 나라가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군사력이 강한 바벨론이 주위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는 침략 전쟁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그 동안 죄를 지은 모든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은 바벨론도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심판받는 나라는 역시 유다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부터 먼저 심판하시고, 최종적으로는 그 악(惡)한 자들도 심판하셔서 이 세상의 모든 악(惡)한 자들이 다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Ⅰ.하나님의 진노의 잔
46:15-17절)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하되”
여기서 하나님의‘진노의 잔’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불충성한 신하에게 왕이 내리는 한약(韓藥)이 있는데, 그것은 사약(死藥)입니다. 물론 신하 나름대로는 충성한다고 했지만, 왕이 그 신하를 불신하게 되어 사약(死藥)을 내리며, 그는 왕궁이 있는 쪽을 향해 큰 절을 하고, 사약(死藥)을 마시고, 죽어야만 합니다.
아마 이와 비슷한 것이 중동의 고대 왕국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왕이 신하들 중에 누군가가 의심이 될 때, 그를 표시 나지 않게 제거하려면, 미리 다른 부하들에게 알려서 자기가 잔(殘)을 가득 부어 주는 자를 체포하라고 지시한 후, 그 잔(殘)을 그 신하에게 줄 때, 이것이 진노의 잔(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진노의 잔’이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어느 정도 모든 것이 밝혀질 때까지는 왕은 침묵을 지키고, 잠잠히 있는 것입니다. 즉 왕이 잔을 줄 때까지는 아무도 누가 죄인인지, 범인인지, 알지 못합니다.
둘째, 신하가 이 잔을 마시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면 매우 독한 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이 주는 술은 거절할 수 없고,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다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술을 다 마시고, 취해서 비틀거릴 때, 왕은 이 신하를 끌고 나가게 해서 곧바로 칼로 쳐 죽여 버립니다.
그러면 신하는 감히 반발하거나, 대항할 시간이나, 정신적인 여유도 없이 곧바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간들이 웬만큼 죄를 짓거나, 악(惡)하게 행동해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침묵을 지키며, 내버려 두십니다. 그래서 악(惡)한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심판이 곧바로 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대담하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다가 죄가 어느 이상 차게 되면, 하나님은 그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다 모아서 한꺼번에 그의 머리 위에 쏟아 붓게 되는데, 그 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졸지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몇 십 년 만에 그 동안 없었던 한발(旱魃)이나, 기근(飢饉)이 오기도 하고, 대지진(大地震)이나, 대 전쟁(大戰爭)이 일어나서 여러 나라가 전쟁의 바람에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서는 몇 백 년에 걸쳐서 일어나야 할 전쟁이 벌써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주기(週忌)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으며, 인간의 죄도 더욱 더 악(惡)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시게 하시는 진노(震怒)의 잔(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가장 먼저 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나라가 어디냐? 는 것입니다. 보통 가장 먼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실 나라는 가장 악(惡)한 나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유다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18절)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
또
29절)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당시 유다나 예루살렘이 다른 나라나 민족에 비해 그렇게 악(惡)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선(善)하고 의로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상의 다른 나라나, 민족들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고,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수준에서 비교하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도덕적 수준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곧 멸망하는 표시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법(法)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범죄 행위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내가 법(法)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의(義)롭고 고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큰일 날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먼저 심판하시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알곡과 쭉정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알곡은 마음속에 신앙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육신이 약(弱)하여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알곡들은 미리 많은 환난과 시험을 주셔서 철저하게 순결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사는 동안에도 많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통해 철저하제 회개하고, 교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이 알곡이 됩니다. 하나님이 알곡은 나중에 이런 불 시험을 하지 않도록 미리 피난시켜 놓으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알곡이 될 성도들을 미리 많이 연단하셔서 철저하게 겸손하게 하십니다. 일단 이런 사람들은 자기 안에 교만이나, 죄를 결코 견딜 수 없고, 숨어서 죄짓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같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쭉정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똑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두셔서 마음껏 자기 정욕을 채우게 하시다가 나중에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실 때, 제일 먼저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유다 백성들 중에서 먼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겸손해진 알곡은 놀랍게도 먼저 바벨론에 포로 되어 끌려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미리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교만한 자들은 결국 이 진노의 잔을 가장 먼저 마셔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사람의 눈으로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불행으로 생각되던 것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인 줄 알았던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걸려드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하기를
마3:12절)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인이라는 성령의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 용서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다른 자랑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만 믿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하나님은 철저하게 그 사람을 낮추셔서 하나님의 알곡이 되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의‘옥상’에 올라간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이 옥상에 데리고 올라가신 후, 떨어뜨리셔서 납작하게 된 그 사람이 알곡이 됩니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랑, 야망 같은 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대충대충 믿은 자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이 잔을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십니다.
17절)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왜 하나님은 이 진노의 잔을 예레미야를 중개인(仲介人)으로 해서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시는 것일까? 사실 어떤 나라가 진노의 잔을 마신다 해서 예레미야가 그 잔을 들고 그 나라의 왕에게 찾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예레미야는 몇 나라를 가지도 못해 칼에 맞아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마 예레미야가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여러 나라들을 대신해서 잔을 마시는 흉내를 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소꿉장난을 하면, 컵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물을 붓는 것처럼 흉내를 내고 입으로 소리를 후루룩 내면서 마시는 것처럼 하며 놉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다른 나라들을 대신해서 진노의 잔을 마시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 다음에 이것을 선포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즉‘어느 어느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실 대상이 되었는데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 진노의 잔을 마셨다’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선지자를 통해 진노의 잔을 전하게 하시는 이유는 당시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의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회개하고, 이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출애굽기에서 처음 모세가 바로에게 재앙을 선포 했을 때,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모세의 말을 우습게 알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기적이 계속됨에 따라서 애굽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그중에서는 모세의 말을 듣고, 미리 피함으로 재앙을 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재앙이 우박이었는데, 모세가‘내일 이맘 때 우박이 내릴 것’이라고 했을 때, 애굽인들 중에는‘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어떻게 사람이 우박이 내릴 줄 알아? 하면서 들판에 가축이나, 사람을 그대로 둔 사람이 있는가하면,‘모세의 말은 틀림이 없어. 분명히 우박이 내릴 거야’라며 가축이나, 사람들을 불러들여서 재앙을 피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피난처가 있음을 알리시려고 선지자로 하여금 이 진노의 잔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은 대단한 악역(惡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속에는 반드시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악독한 마음과 세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피하면, 살 길이 생깁니다.
그리고 일단 중동지역에 있는 나라들 중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19-26절)또 애굽의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모든 백성과 모든 섞여 사는 민족들과 우수 땅의 모든 왕과 블레셋 사람의 땅 모든 왕과 아스글론과 가사와 에그론과 아스돗의 나머지 사람들과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두로의 모든 왕과 시돈의 모든 왕과 바다 건너쪽 섬의 왕들과 드단과 데마와 부스와 살쩍을깎은 모든 자와 아라비아의 모든 왕과 광야에서 섞여 사는 민족들의 모든 왕과 시므리의 모든 왕과 엘람의 모든 왕과 메대의 모든 왕과 북쪽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니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 하는 나라들에 이 당시 대부분의 나라들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세계 문명은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연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대부분의 지역들이 전쟁 피해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수백 년 만에 있는 전쟁의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은 전 세계 나라에 대해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죄가 쌓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 동안 참았던 모든 진노를 다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지은 모든 죄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모두 다 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하나님의 심판의 양은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과연 언제 터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터질 수 있고, 내일도 터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인데, 그 성전의 기능이 죽어 버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터지는 것입니다. 여기 26절을 보면,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신다.’고 했는데, 그는 바벨론 왕을 말합니다. 바벨론 왕은 온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 후에 마지막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Ⅱ.공의의 하나님
27절)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내가 너희 가운데 보내는 칼 앞에서 마시며 취하여 토하고 엎드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진노의 잔을 마신 나라들에게‘마시며, 취하여, 토하고, 엎드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걷다가 푹 쓰러지고 난 후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여기서 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까?
첫째, 하나님이 반어법(反語法)을 사용하셔서‘결국 너희는 칼에 죽을 것이니 정신 차리지 말고 있다가 멸망하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서 어차피 멸망당해 죽을 것이므로 망하는 이유 같은 것을 알 필요도 없고, 정신 차리지 말고 있다가 때가 되면, 망해 버리라는 저주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람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겨울밤에 술에 취해 가다가 쓰러져 자 버리면, 그대로 죽지만, 누군가가 깨우든지 해서 정신을 차리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확실히 본문 말씀은 반어법(反語法)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깨달으라고 말씀하셔도 본인이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내가 더 이상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면서도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닥쳐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피할 수 있을까?
28절)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누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일단 죄를 지은 사람은 이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 사약(死藥)을 마시지 않으려고 하면, 작대기로 입을 벌려서라도 입에 부어넣는 것처럼, 강제로 이 잔을 마시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든 죄를 토(吐)해내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만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모두 다 토(吐)하는 것은 이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고통스럽게 회개하면서 진노의 잔을 다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악(惡)한 습관을 버리는 데 주저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죄를 짓고 난 후에는 다 잊어버리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가 지은 죄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다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한 거짓말이나, 돈을 떼먹고 갚지 않은 것이나, 욕한 것이나, 모든 것이 그대로 쌓여 있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그 때 사람들은 너무나 부끄러워서 자기 위에 바위나 산(山)이 무너지기를 바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검찰청에 소환되는 것입니다. 검찰청 입구에 서면, 수많은 기자들의 카메라가 켜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신문에는 대문짝만하게 자기 얼굴이 나와서 전국에 도배가 됩니다. 그 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고, 차라리 산(山)이 자기 위에 무너져서 죽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리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 난후에 하나님이 침묵(沈默)을 하시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가 곧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울고불고하고 토(吐)하는 시간입니다. 어떤 때는 머리털을 뽑으면서 기도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기 뺨을 때리면서 기도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벽에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회개 할 때,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그 쌓여 있던 죄를 모두 다 지위 주시고‘죄 없음’이라고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고난을 보고, 공의(公義)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29절)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성도들을 먼저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만큼 공정(公正)하게 세상을 심판하심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을 속이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했다고 해도 세상의 악(惡)한 자들보다는 훨씬 더 거룩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철저한 심판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심판이 얼마나 두려울지를 보여 주십니다. 요즘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여 자기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혹(誘惑)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이 비교의 대상을 거룩한 성도들 중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로 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씻음을 받은 성도들도 더욱 거룩해지기 위해 철저하게 더 연단을 받아야 한다면, 회개하지 않는 자는 얼마나 더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되겠습니까?
Ⅲ.거짓 목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몇 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1)포도 밟는 자의 외치는 소리입니다.
30-31절)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며 그의 초장을 향하여 크게 부르시며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하여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시리라. 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뭇 민족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내어 주셨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포도를 밟는 자들이 상당히 떠든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떠들면서 포도를 밟을까? 옛날에는 포도주를 만들 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포도를 밟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포도를 밟으면, 다른 사람들이 포도를 계속 가져가 부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포도가 떨어졌다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포도가 다 없어질 때까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포도를 갖다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포도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고, 사람의 죄를 말하기도 합니다. 즉 한 사람도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인간의 죄를 따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합니다.
31절)...여호와께서 뭇 민족과 다투시며”라고 했는데, 여기서 다투는 것이 죄를 고소(告訴)하시는 것입니다. 즉 마지막 죄가 다 밝혀질 때까지 하나님은 입을 다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나서 곧 대풍이 불게 됩니다.
32-33절)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그 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고 시신을 가두어 주는 자도 없고 매장하여 주는 자도 없으리니 그들은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곧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시체로 덮이고, 사람을 염도 하지 않고, 매장(埋葬)도 하지 않고,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세계적인 대전(大戰)이 되는 것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나, 제 2차 세계대전, 또 한국전이나, 월남전 모두 하나님이 일으키신 대풍(大風)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다음 34절과 38절까지는 또 다른 하나의 비유가 나오는데, 엉터리 목자 비유와 굴에서 나온 사자의 이야기입니다.
34절)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 떼의 인도자들아 잿더미에서 뒹굴라 이는 너희가 도살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 될 것이라”
38절)그가 젊은 사자 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 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 하시니라”
왜 목자들은 통곡하게 됩니까? 사자가 굴속에 있는지도 모르고, 양들을 놓고, 위험한 곳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것은 전쟁의 위기로부터 백성들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나라는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왕이나 대통령에게 줍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모르는 모든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위험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 주어야만 진짜 목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배만 채울 줄 알았지, 실제로는 소경 목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험한 곳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소경 목자가 세워지게 되는 것일까? 곧 백성들의 교만(驕慢)과 죄(罪)입니다. 국민들의 죄가 많으면, 많을수록 악(惡)한 지도자가 세워져서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전체를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위험한 것이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怒)입니다. 우리가 그 진노의 심판을 피하려면, 가장 먼저 자기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내 모든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창피당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양심을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올바른 말씀이 있는 교회(敎會)입니다.
그 안에서 야망도 욕심도 죽이고, 우리의 남은 삶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루하루 살아갈 때, 이 무서운 재앙(災殃)은 우리를 피해갈 것입니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평소에 자기 욕심을 포기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급한 사고를 당했을 때, 미리 보험에 가입했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미리미리 욕심을 죽이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보험(保險)에 가입하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위기 때, 하나님의 보상(報償)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