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전래와 구산선문(九山禪門)
우리나라 최초의 선문·조계종 원류
현재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종파는 선종인 대한불교 조계종이다.
도의(道義, 道儀)의 가지산문(迦智山門, 821년)에서부터
긍양(兢讓)의 희양산문(曦陽山門, 935년)에 이르기까지
115년 동안 세워진 9개의 선문인 ‘구산선문(九山禪門)’은,
한국에서 선종이 확립되기 시작한 신라 말 고려 초기에,
이 땅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선문이자, 조계종(曹溪宗)의 원류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구산선문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제10권으로,
“선종(宣宗) 원년(1084년) 정월에, 보제사 승려 정쌍(貞雙) 등이
구산문에서 참학하는 승려들에게도 진사과의 예에 따라
3년에 한 번씩 선시(選試)를 치를 수 있도록 요청하자,
그것을 허락하고 시행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후 여러 문헌에 달마구산문(達磨九山門)·구산선려(九山禪侶)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특히 《선문조사예참의문(禪門祖師禮懺儀文)》에서는 구산선문의 명칭과 장소,
그 개산조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구산선문의 개조와 보조국사 지눌(1158년~1210년)을
예참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눌이 예참의 대상인 것으로 보아서
《선문조사예참의문》은 고려 후기의 저술인 듯 싶다.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고려 후기 불교계에서는
구산선문을 한국선의 원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흔히 신라시대에 다섯의 교종 즉 오교(五敎)와
선법(禪法)에 9개 산문의 선맥 즉 구산선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료에 의하면 오교가 신라시대에 성립되었다는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고 구산선문도 신라 때가 아닌 고려시대에 완성됐다.
고려시대에는
화엄종, 자은종, 남산종, 조계종, 천태종, 시흥종, 신인종, 총지종, 중도종, 도문종, 등의
많은 종파가 있었다.
이 중 뚜렷한 활동상을 보인 것은 오교가 아나라
사교(四敎)인 조계종, 화엄종, 자은종, 천태종이다.
조계종은 신라 말에 남종선이 전래되어
가지산 실상산 동리산 성주산 사굴산 사자산 봉림산 등
7파가 차례로 산문(山門)을 연 데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고려 후기에 작성된 선문조사예참문에 그 구산문의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하여 구산문은 신라말 고려초의 선종계를 망라하는 대표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산문에 대하여 그 명칭과 개산사 그리고 개산조 등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가지산(迦智山) : 보림사<전남 장흥>, 도의(道義, 헌덕-흥덕왕대). 법손체징(804 - 880)이
보림사를 창건하고 도의의 종풍을 떨쳐 가지산파를 이룸.
(2) 실상산(實相山) : 실상사<전북 남원>, 홍척(洪陟), 흥덕왕 원년(826)에 귀국한 후
실상사에서 선법을 일으켜 실상산파 이룸.
(3) 동리산(桐裡山) : 태안사<전남 곡성>, 혜철(惠哲, 慧徹, 791 - 861). 문성왕 원년(839)에
귀국한 후 태안사에서 선지를 펴 동리산파 이룸.
(4) 봉림산(鳳林山) : 봉림사<경남 창원>, 현욱(787 - 868, 희강왕 2년, 837 귀국),
제자 진경심휘(854 - 923)가 봉림사를 세워 봉림산파 이룸.
(5) 사자산(獅子山) : 사자산사<강원도 영월>, 도윤(道允, 800-868, 문성왕 9년, 847 귀국).
제자 징효절충(831 - 895)이 헌강왕(875 - 886) 때 사자산사 세워 사자산파 이룸.
(6) 성주산(聖住山) : 성주사<충남 보령>, 무염(無染, 800 - 888)
(7) 사굴산(闍崛山) : 굴산사<강원도 강릉>, 범일(梵日, 810 - 894). 문성왕 9년(847) 귀국하여
굴산사를 세우고 사굴산파 이룸.
(8) 수미산(須彌山) : 광조사<황해 해주>, 이엄(利嚴, 870 - 936). 효공왕 15년(911) 귀국하여
태조 15년(932) 광조사에서 도화를 떨친다.
(9) 희양산(曦陽山) : 봉암사<경북 문경>, 도헌(道憲), 봉암사 창건,
법손 경양(競讓, 878 - 956)이 봉암사를 중건하고 희양산문 이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