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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8월16일 화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수도회] 하느님을 차지하기 위한 영적인 다이어트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에제 28,1-10
† 복음 마태 19,23-30
◈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며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물론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바늘구멍이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매우 작은 문을 의미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큰 성문 곁에는 밤에만 출입하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매우 작아서 사람 하나도 간신히 통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작은
문을 당시 사람들은 바늘귀라고도 부르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 말씀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그만큼 어렵고,
유혹이 많이 따른다는 의미이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유혹은, 권력과 재물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에 사회 여러 곳마다
부패가 생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재물만 가지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지 않습니까?
물론 재물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은 세상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세상일에 관심이 많으면 그만큼 하느님의 필요성을 잊어버릴
위험이 많게 되지요. 그렇다고 오늘 예수님 말씀은, 부자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탈렌트나 재산을 이웃을 위해 어떻게 선용하는가
하는 점이지요. 바로 이 점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합니다.
2016년 8월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제1독서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8,1-10
복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3-30
새벽님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수원신학교에서의 개강피정을 마치고
잘 돌아왔습니다. 모교라고도 할 수 있는 신학교의 후배들에게
피정지도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과거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유 있는 시간도 보내다보니 휴가 온 느낌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제
다시 성지로 돌아왔으니 또 바쁘게 지내야겠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갖고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 사람은 세 가지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일과 사랑과 그리고 상상력입니다. 이 세 가지를 얻으면
인생의 보람을 찾을 수 있고, 잃게 되면 쓰라린 질곡의 시간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당연히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쓴 분은 상상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먼저 일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와 안정감과 성취감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랍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면서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이 책을 쓴 분은 제일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서구 사회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스트레스와 소외감 때문이라고 하지만,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던 상상력이 쇠약해진 결과라고 합니다. 상상력은 꿈꿀 수
있는 힘으로, 다시 말해서 희망을 품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과 사랑보다도 희망을 전해주는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희망이 있어야 일도 또 사랑도
행하면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희망을
포기하고 절망을 선택합니다. 왜 그럴까요? 일이라고 표현하는 이
세상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돈과 명예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이것을 얻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과
좌절감이 너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희망을 내려놓습니다.
‘해도 안 된다’는 절망이 가득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희망을
완전하게 잃어버리게 하는 말씀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말을 제자들이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뺏는 말씀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하느님의 힘으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가치에 중요성을 두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두고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들어가기 어려운 하느님 나라. 그러나 하느님이 계시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세상의 가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금을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합니다.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스피노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이라면 가능합니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없다?
많은 분들이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잘 외워지지 않듯이 머리가 핑핑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공부에는 따로 정해진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지리도 공부를
싫어했다고 하면 맞을까요? 그래서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지금 열심히 공부합니다. 다음
학기부터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든요. 또한 성지에서도 매주 특강을
해야 하거든요. 이 강의와 특강 모두,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러다보니 지금 계속해서 즐겁게 책을 보고 공부를 합니다.
이렇게 하고 싶어서 공부를 하니까 이제까지 살면서 체득한 경험까지
더해져서 이해가 더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잘 외워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부가 재미있고 집중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즘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80퍼센트를 넘는다고
합니다. 이 학생들이 모두 공부에 뜻을 세워서 대학교에 진학한
것일까요? 어쩌면 학벌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으면
뒤쳐질까 봐, 취직하기 위해서 진학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과연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어제 제 출신성당 사제 모임이 있었습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하느님을 차지하기 위한 영적인 다이어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햐 8월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마태 19,23-30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마태 19,23)
하느님을 차지하기 위한 영적인 다이어트
오늘 복음의 대목의 본 의미는 부자가 구원받기 어렵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든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하느님의 손길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승과정에서 추종을 거부한 부자 이야기에 이어 이 대목을
배치하면서 ‘부자’란 말을 가필한 결과 더 좁은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던 부자 청년이 떠나간 뒤에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부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어렵다’
고 하신 것을 보면 재물이 구원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 손에 달려 있고, 하느님께서는 온갖 장애를
넘어 무슨 일이든 가능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간절한 사랑과 끊임없는 은총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손길을 거부하는
걸림돌을 만든다면 구원에 이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부의 근원인 하느님을 차지한 사람이 진정한 부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차지하려면 나 자신이 하느님께서 머무실 거처요
성전이 되어야겠지요. 하느님의 거처가 되려면 내 안의 것들을 비우고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치 재물이 구원에 걸림돌이 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재물에 애착을 두고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내 안에 하느님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재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대신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이 주인인양 섬기며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과 권력,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일, 외모를 꾸미는 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허영,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습성, 자신을 깎아내리는
버릇 등이 바로 구원을 가로막는 걸림돌인 셈입니다.
관계 안에서 보면 움켜쥐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이 하느님을 차지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빈자리를 만들고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빈자리에 세상 재물과 이기심과 탐욕, 미움과
분노, 열등감과 편견, 부정적 시각과 절망의 씨를 뿌리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존하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존재임을
망각하고 자신과 세상을 우상으로 섬길 때,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티로의 군주가 들었던 다음과 같은 죽음 선고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그러므로
너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죽음을
맞이하리라.”(28,5-6.10)
오늘도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 주신 모든
것을 이웃과 기꺼이 나눔으로써 바늘귀를 통과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순간을 이어가길 기도합니다. 모든 것을 비워내는 영혼의
다이어트를 통해 주님을 따르는 복된 삶을 포기해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마태 19,30)
우리는 가끔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을
심심찮게 보고 듣습니다.
사실 보잘것 없는 사람이 첫째가 되는 경우는
함께 경축할 일이지요.
올림픽에서 무명의 설움을 딛고 금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고 맘껏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반대 경우를 보기도 하는데 그땐 참 씁쓸하지요.
믿었었는데 그렇게 성원을 보낸 팬이었는데
고작 그런 사람이었다니 배신감도 들고 허탈감도 듭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지금 잘 나가고 있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과 봉사도 잘 하고 있고
다른 이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선망을 받고있다하더라도
한순간에 우리는 나락에 떨어질 수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쨌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일 따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잘 나갈 때 우리는 더욱 겸손해야 하고
항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지금은 비록 죄 중에 있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못살고 있다하더라도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언제든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믿음도 가져야 합니다.
꼴찌가 마냥 꼴찌가 아니고 첫째가 마냥 첫째가 아닙니다.
수영황제 천하의 팰프스도 양궁신궁 대한민국도
언젠가는 자리를 내어주고 무대의 전면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디에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첫째도 아니고 꼴찌도 아니겠지요.
나도 첫째가 될 수도 있고 꼴찌도 될 수 있슴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구하는 날 되십시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 24)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 24)
욕심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입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그만큼 하느님의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일깨워주십니다.
복음안에서 멈추는 법을 나누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욕심의 부자가 아니라
나눔의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버릴 수 없는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빠져나갈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서로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셨기에 우리를 살릴 수 있으셨습니다.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가야 할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진심어린 성찰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생명이었습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든 것은
가난한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가난함이 우리를 진심어린 회개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가난함이 우리의 약함까지도 사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2016년 8월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 19,23-30
예수님께서는 오늘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재물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재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지 않고,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재물, 우리의 권세,
우리의 업적이 아닙니다.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지 않는 사람은 재물이 많아도,
재물이 없어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내면을 잘 가꾸는 사람은 재물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국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잘
가꾸는 한 젊은이의 진솔한 마음이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예비신학생이지만 사제가 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지난 7월에 있었던 피정은 묵상에 대해 배우고, 주님의 은총을 듬뿍
받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출 휴가 중, 8월4일,
5일 개인적인 일이 있어 명동에 갔다가 성소국에 들려보려고 전화해
보았더니 성소국 신부님, 수녀님께서 세계청년대회(?)가셨다는 직원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잘 다녀오셨는지요??^^
저는 근무지였던 가평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대구
5군수지원사령부로 전출 왔습니다. 신부님들도 교구장님의 명에
의거 전출을 다니실 텐데, 저도 나라의 명에 의거 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부대에서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추억을 가지고 새로운 부대로
떠나렵니다. 설렘과 도전의 정신으로 새로운 부대에서도 충실하게
살겠습니다. 새로운 부대에 오자마자 국가적 전쟁대비 연습훈련도
있고, 미군부대로 파견을 가게 되어서 이번 8월 일반예신 모임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지원자라면 예신모임 참석이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데 내년에는 불참하는 일이 없도록 신변정리
잘하겠습니다.
대구로 전입 온지 5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가평 수기사에 근무 시에는
숙소 바로 옆에 군 성당(맹호 성당)이 있어서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성당에 갔었습니다. 새로운 부대와 인근주변에는 군/민간 성당이
없고 공소만 있습니다. 병사들과 주일 미사 참례하려면 부대버스를
타고 30분정도 가서 타 부대 성당에 가서 미사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
이번 주에는 그리고 앞으로도 수요일 공소 미사 참여와 주일
부대미사참여는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매일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게
매우 속상하지만, 성체조배를 할 수 있는 공소라도 가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8장5절)라는 말씀처럼 제가 새로운 부대에서 고생하는
병사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 조국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 부탁드립니다. 신부님, 수녀님,
일반예신 담임 부제님, 일반예신 7조 조담임 학사님 무더운 여름에
건강 조심하십시오. 가을에 찾아뵙겠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내면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외모, 재산,
능력, 재능을 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하느님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우리의 내면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합니다. 잠시 일상의
삶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나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면을 잘 가꾸는 사람은 하느님나라에 가까이 있기
마련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혼이 돈에 매어졌으면 천당 못가죠.
2016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혼이 돈에 매어졌으면 천당 못가죠.
부자는 안 죽고 가난한 사람만 죽는 세상은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돈이 있건 없건 때 되면 어쩔 수 없이 죽는 것 너무 당연한 진리지요.
정신(精神)혼(魂)영(靈) 정신이나 혼이 나간 몸(體)은 주검 즉 시체지요.
몸을 이동하려면 돈을 써야 되고 혼이 이동할 땐 돈 안 씁니다. 공짜.
몸이 부산가려면 돈이 필요 하고 마음은 부산 갔다 와도 돈 NO.공짜.
해서 혼이 돈에 매어졌으면 천당 못가죠. 이걸 끊어버려야 날아오르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오 19,23~24)”
돈 안 드는 걸 공짜라고 하지요. 그래서 양잿물도 공짜라면 먹는 인간들.
양잿물 먹지말고 공짜로 천당가요. 혼 묶은 돈줄끊기 죽기전만 유효해요.
- 서울 대 교구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청주] 부자는 죄인인가?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8월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 19,23-30
부자는 죄인인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19,23)는 말씀을 들은 한 부자가 “하느님,
낙타를 아주아주 작게 만들어 주시든지, 바늘 귀를 아주아주 크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저의 재산 반을 당신께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답니다. 그렇다면 그가 재산을
바친다고 해서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수가 있을까요? 재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소유한 것을 포기하되 무엇을 버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버렸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의 인간적인
유익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렸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상을 백배로 받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버린다면
결코 진정한 열매는 맺을 수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상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그분의 이름 때문에”(루카18,29. 마태19,29) 바쳤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입니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4년 전
올림픽대회 때 상을 위해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을 한 베드맨턴
경기는 결국 실격을 당하였습니다. 러시아 육상선수들은 약물복용으로
인해 경기에 참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근본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때문에 전체를 얻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때문에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얻을 수 있는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사실 부자가 가진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재물에 눈이
가려 보아야 할 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물은
인간을 노예화 하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상’만을 생각하면 부정을 해서라도
일등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신, 의미, 알맹이, 즉 내용을 보면 그
생각을 한 순간 이미 경기에서 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부자는 죄인인가요? 사실
재물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잘 써야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쪼록 많이 벌되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들을 하나하나 늘려가기 바랍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버려도 버려도 또 버릴 것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은 누구이겠습니까?
“돈이 많다고 우쭐대다가는 쓰러지지만 착하게 살면 나뭇잎처럼
피어난다”(잠언11,28).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지 않으면 결국은
하느님 나라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을 누리려 한
사람은 그것을 잃게 됩니다. 부디 모든 것을 얻는 기쁨을 차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30,8-9).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세상의 물질에 매여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헛소리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의 모두는 주님의 것입니다. 저의 모두를 당신의 뜻대로 써주십시오.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삶의 변화를 이루게 해 주십시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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