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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묵상글 ( 연중 제9주간 화요일, -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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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오늘 주님께서는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나누어 말씀하시는데
저의 프란치스칸적이고 신앙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황제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곧 말이 안 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말도 안 된다고 너무 쉽게 일축해서는 안 되고,
뭔가 다른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봐야겠지요.
제 생각에 그것은 진짜 황제의 것이 아니라
황제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래서 자기 것 돌려 달라고 하니 돌려주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지만 우리 신앙인에게는 한가지 뿐입니다.
모든 것은 다 그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지만 이 세상 사는 동안엔
공동선을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고 그것은 성실히 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종교인들의 과세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개신교 목사들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을 근거로 내지 않지만
우리 가톨릭은 오늘 주님 말씀에 따라 1994년부터 세금을 내고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궁금합니다.
프란치스코는 권고 11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면서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사람은 복됩니다.”
그러니까 프란치스코는 여기서 유형무형의 선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무소유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에서 프란치스코는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도 실은 그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서 주셔서 잠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더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이제 더 필요한 사람의 것이 돼야 하기에
프란치스코는 더 필요한 사람 곧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주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길을 가다가 점심이 되어 남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 먹었습니다.
남의 포도밭이 아니라 하느님 포도밭이라고 생각했기에 거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밭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인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았고,
동행하던 마세오 형제는 도망쳐 맞지 않았지요.
그는 그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익살을 떨며 길을 갑니다.
‘마세오 형제는 잘 먹었네. 프란치스코 형제는 잘 얻어맞았네.’
저는 또 이 얘기를 근거로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할 때
행진자들에게 과일이나 채소들을 서리해 오라고 하고,
아무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상당수 참여자가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제가 나서서 하면 몇 분이 따라 하는 정도지만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프란치스칸 정신을 각인케 하기 위함이지요.
아무튼, 우리는 재물뿐 아니라 재능까지, 주인이신 하느님께 다 돌려드리고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우리가 되기로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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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한 15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노부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부부의 모습이 너무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만나자마자 “신부님! 저희 죽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연은 전화금융사기 사기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보이스피싱이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를 잘 모르는 연세 많은 노부부는 경찰청이라는 상대방의 말을 굳게 믿고 그가 말해주는 통장에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옮긴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칠순이어서 자녀들이 큰 잔치를 해주었고, 용돈이라면서 준 돈이었는데 자녀들 볼 면목이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런 돈을 사기당했다면서, 세상에 살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눈물만 흘리시는 노부부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찾아오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살고 싶어서임을 알기에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결론은 억울해도 그 돈 없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달 할아버지 앞으로 연금이 나오고 있었고, 두 발 편하게 뻗고 잘 수 있는 좋은 집도 있습니다. 또 부모를 끔찍이 생각하는 효심 깊은 자녀들이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도 있습니다. 있는 것을 따지고 보니 잃어버린 것이 억울하고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살 수 있는 이유가 많았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는 행복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더 나쁜 상황만을 찾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고, 행복할 자격도 없다면서 스스로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 넣습니다.
과거 순교자들, 또 많은 성인·성녀들은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습니다.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만 계신다면 다른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기쁨 속에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했을까요? 주님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세금 문제를 물어봅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로마 황제의 편이냐면서 민족의 반역자라고 외칠 것이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황제의 말을 거역하는 황제의 반역자냐고 따질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하느님의 것을 돌려 드리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주님 하나로도 만족할 수 있는 굳은 믿음입니다. 그래야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 것만을 바라보면 살 수 있습니다. 커다란 만족 안에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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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겠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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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책략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고자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말려들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하면, ‘은화’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어 황제의 것이니 황제에게 돌려주고,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돌려드리라는 뜻이 됩니다. 곧 돈은 황제에게 돌려주되, 자신은 하느님께 돌려드리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황제가 자신의 초상을 요구하니,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돌려주어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초상을 요구하시니,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사실, 동전에는 흐리멍텅한 육체적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전은 자신이 누구의 초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인간에게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누구의 초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압니다. 곧 하느님의 초상을 지니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기에, 진정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의 은화’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의 황제에게 팔아넘겨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니 팔려 넘겨지지 않는 일인 것입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소유,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우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황제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하느님께는 여러분 자신을 돌려드려라.
그러면 우리 안에 진리가 다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진리’가 자라나야 할 일입니다. ‘진리가 자라게 하는 일’, 그것은 ‘진리를 밝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밝히는 일, 그것은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리에 속한 이들’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미 진리에 속해 있기에 진리를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는 까닭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이 진리에 속하도록 빛을 밝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그 어떤 힘이나 권력으로부터 결코 제한될 수 없는 사명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은 새겨진 이의 것이 아니라 가진 이에게 잠시 맡겨지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새겨진 그분의 것입니다. 돈에 인간이 새겨져 있어 인간에게 돌아가듯, 우리에게는 그분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 그분께 돌아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그분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그분의 생명이 흐르며, 그분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분의 빛이 빛나며, 그분의 진리가 새겨져 있고, 그 어떤 힘이나 권력으로도 제한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분의 모상이 새겨져 있고, 우리는 영원토록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이 하느님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이 아닌지’를 묻기에 앞서, ‘자신이 누구의 것인지’, ‘자신을 누구에게 돌려드려야 할지’를 먼저 물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당신의 생명이 흐릅니다.
그러기에, 진정 당신의 것입니다.
하오니, 언제나 당신께 돌아가게 하소서.
당신 빛으로 인도하소서.
제 안에 새겨진 당신 진리의 말씀 따라 살게 하소서.
그 어떤 힘에도 휘둘림 당하지 않는
당신 생명이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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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국가경영에 있어서 세금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권력자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더 많은 사업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금을 내야 하는 많은 국민은 어떻게 하면 적게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사실 어느 사회에서나 세금 문제는 골칫거리입니다. 경제민주화를 밤낮으로 외친다고 서민 경제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보편복지를 외쳐도 실질적으로 재원 마련 대책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은 정치적 연합주의라 칭하는 포플리즘이 문제입니다.
식민지 체제의 유다에서 세금 문제는 야훼 하느님만을 유일한 왕으로 인정하는 그들의 신앙과 결부되어 더욱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세금은 곧 로마의 법에 복종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법을 좇아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납세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유혈 진압되고 말았고 그 후 억지로 세금을 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처지나 주장은 아주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납세를 로마의 노예를 드러내는 혐오스런 짓이며 유일하신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야훼 하느님께 불충하는 짓으로 여겼으나 현실적으로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에 마지못해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반면에 로마에 의지하고 있는 헤로데 당원들은 당연히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납부하여 로마의 평화와 안정을 누려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실로 납세는 민중 정서와 로마 권력이라는 양날을 지닌 날카로운 칼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일본과 맞서는 독립군이 있었고 일본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친일파가 있었습니다. 독립군에게 있어서 공출을 당하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니, 그에 응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친일파는 자기의 잇속만을 챙기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민족을 배반하였습니다. 일제의 권력에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 거부해야 합니까? 아직도 친일파 후손들이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은 아첨을 하면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12,14)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는 어느 쪽을 선택하여도 예수님은 다치게 되어있는 물음이었습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민족주의자들인 군중을 실망케 하고 분노하게 할 것이며 , “내지 말라” 고 말한다면 로마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처벌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데라니온 한 닢을 가져오라 하여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시고, 반대자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1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돌려주라는 말은 빚을 갚거나 배상금을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국가라는 공동선을 위해 세금을 납부하라는 말씀입니다.
황제가 만든 은화는 그에게 돌려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니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황제에게는 돈만 주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니,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빚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자기 속을 숨긴 채 올가미를 씌우려 했지만 속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황제도 결국 하느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충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우리의 생애에서 물질의 세금보다도 하느님께 드려야 할 세금을 제대로 바치고 있는가? 돌아보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희생의 봉헌,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돌려드림으로써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서로 다른 탈랜트를 받았습니다. 그 모두를 그분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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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86년 2월 저는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1986년 1월에 입대했기 때문입니다. 졸업장은 동창 신학생이 집으로 가져다주었습니다. 미국은 대학 졸업이 5월에 많이 있습니다. 학기의 시작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으로 대학졸업 축하연설을 검색하면 저명인사들의 축하연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스티브 잡스의 연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연설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잃지 말고,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항상 배움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추구하며, 규범과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격려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말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최초로 16강에 진출했던 한국 팀의 감독 히딩크가 한 말과 비슷합니다. 히딩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I'm still hungry!" 그리고 한국 팀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남겼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신앙도 그 시작은 ‘갈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갈망입니다. 나병환자도, 소경도, 하혈하던 여인도, 중풍병자도, 이방인의 여인도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은 물론 영혼까지 치유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또 다른 졸업 축하 연설을 보았습니다. 졸업생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들려준 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Joy와 Sad는 같은 3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Love와 Hate는 같은 4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Truth와 False는 같은 5단어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Friend와 Enemy는 같은 6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Forgive와 Condemn은 같은 7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Positive와 Negative는 같은 8단어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미래는 선택에 달려있단다.”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일 수 있지만, 내가 가기에 그곳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문명은, 희망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선택한 선구자들의 희생과 열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의 선택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2000년 교회의 역사는 예수님의 선택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따라라. 나는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어디론가 가야 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께 나갈 때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받은 은총과 그분의 앎을 더욱 키워가면서 시작됩니다. 긍정의 눈으로, 잘못한 이를 기꺼이 용서하며, 친구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할 때 시작됩니다. 미워하기보다 사랑할 때 우리의 슬픔은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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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정도의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왜 동전을 가지고 설명하셨을까? 하는 부분이고, 동전이 ‘황제의 것’이라 했는데, 그러면 ‘하느님의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혹시 부자 청년이 주님께 찾아왔던 사건 기억나십니까? 그 청년이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릴 적부터 모두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너에게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가진 것을 팔아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셨지요. 기억나시죠?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는 의미를 우리는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 돈이 얼마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지옥에 갑니까? 가난한 사람은 천국에 갑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하느님 것을 하느님께 어떻게 돌려 드리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늘의 사건을 해결하시려고 동전을 사용하셨음은 아주 기막힌 비유였습니다. 왜냐하면 동전은 그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돈은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합니다. 다툼과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사랑과 치유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돈이 많아도 불행할 수 있고 돈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느냐 그렇지 않으냐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림이란 무엇일까요?
그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욕심을 날려버립니다.
그 둘째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마음이고, 행실입니다.
동전을 보면 사람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듯이 우리의 좋은 마음과 행실을 더욱더 자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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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맞은 날
구운 달걀이 생겼습니다.
신선한 주스 한잔과 구운 달걀 하나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주스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제 냉장고 있던 구운 달걀 하나를 꺼냈습니다.
냉장고 안에 있었던 터라 너무 차가웠습니다.
우선 껍질을 까고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30초만…. 30초만
껍질을 깐 구운 달걀을 통째로 30초 돌렸습니다.
30초가 지나고 달걀이 담긴 접시를 꺼내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달걀에 포크를 대는 순간…. 펑…. 온몸에 달걀노른자가 튀었습니다.
달걀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구운 달걀은 다른 달걀보다 더 쫀득하기에 30초를 터지지 않고 견뎌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포크를 대는 순간 터진 것입니다. 터질 줄 몰랐습니다. ‘반을 갈라서 돌릴걸’이라고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그렇게 터진 달걀을 뒤로하고 다시 씻었습니다.
기억하세요.
터지면 늦습니다. 터지기 전에 멈춰주세요. 달걀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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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하닮의 여정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 버리나이다.”(시편90,10)
"주여, 당신은 대대로
우리의 안식처가 되시었나이다."(시편90,1)
근래 보기드문 아름다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어머니의 달, 5월 성모성월은 물론이고 아드님의 달, 6월 예수성심성월중 어제의 날씨도 참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 수도원을 사랑하여 결성된 모임인 예수성심자매회 자매들의 달이기도 하네요. 또 이번주 금요일은 요즘 계속된 대축일을 마감짓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대축일이자 사제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날씨가 참 예뻐요!”
어제 수도원을 방문하여 성사를 보던 수녀님의 표현이 흡사 하느님이 예쁘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저절로 시편 성구를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하늘에 초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산과 들이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손수하신 일을 알려주도다.”(시편19.2)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눈들면 한눈 가득 들어오는 하늘입니다. 누가 저보고 취미가 뭐냐고 묻는 다면, 저는 지체없이 “하늘보며 하느님 사랑을 관상하는 것”이라 대답하겠습니다. 시편의 고백은 제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 밖에 없습니다.”(시편16,2)
6월은 예수성심성월입니다. 6월 들어 고백성사를 본 분들에게 보속의 ‘처방전 말씀’으로는 한결같이 다음 시편말씀을 써드리고 어린이를 안고 있는 그림에 “사랑해요”라는 말마디가 새겨진 붉은 스탬프를 찍어 드렸습니다.
“저의 힘이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18,2)
문화영성대학원에서 전례를 강의하는 원장수사의 강의 소재가 참 재미있고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궁금해서 물어 봤더니 한번은 “개두포, 장백의, 띠, 중백의, 영대”였고, 다음에는 “주교관, 반지, 지팡이, 가슴 십자가”였고, 어제 물었더니 “전례 색깔”이라 했고 이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색깔의 신비도 무궁하군요! 모든 색깔의 깊이에는 신비의 하느님이 계시겠군요. 색깔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네요.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싶네요. 좌우간 수고많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강의 소재들 또한 하느님 사랑, 교회 사랑의 표현이 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마련이요,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으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이 하느님을 체험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6월 예수성심성월, 예수님 성심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굿뉴스 인터넷을 여는 순간 한눈에 들어오는 성구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22,37)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하느님 사랑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하는 맛으로, 기쁨으로, 재미로 산다면 저절로 찬미와 감사요 기쁨과 평화요 행복일 것입니다.오늘 복음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큰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참 난해한 질문입니다만 예수님은 천상지혜로 참 자유롭게 통과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말마디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정말 이런 예수 스승님의 진가(眞價)를,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입증하는 다음 문답입니다. 예수님의 천상지혜로 빛나는 통쾌한 장면입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양자택일의 문제요, 어떻게 대답하든 이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바치라 하면 민족반역자로, 또 바치지 말라하면 국사범으로 몰릴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예수님의 역공의 질문으로 답변합니다. 이어 황제의 초상이 있는 데나리온을 달라하여 받은후 답변이 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립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모든 것을 말했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제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합니다. 하느님 중심만 확고하다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유롭게 결정할 일입니다. 황제는 물론 세상 모두가 하느님께 속해있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느님 앞에 모두는 상대적 가치만 지닐뿐입니다. 그러니 세금을 낸다해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이렇게 말할 수는 없고 각자 판단할 수 뿐이 없습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바둑용어가 생각납니다. 명분에 집착하다 큰 것을 잃는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병자호란시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인조의 어리석음도 주전파들의 주장에 휩쓸린 탓입니다. 후에 주화파의 최명길의 지혜와 용기덕분에 살아난 인조요 조선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하느님 중심의 ‘하닮의 여정’에 충실할 때 올바른 분별의 지혜요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다음 옛 어른의 지혜에 따른 삶이라면 그대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세상을 지키는 존재는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소중히 일상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다.”<다산>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속이지 않으며, 실패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다.”<채근담>
오늘로서 제1독서 베드로 후서는 끝납니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 귀한 위로와 격려의 가르침이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길다 싶지만 그대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없고 흠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서 나설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2베드3,15ㄱ.17-18참조)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께 대한 앎을 날로 키워주시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잘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제와 영원히 주님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4,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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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7)
나의 것은
너 아닌
나에게
너의 것은
나 아닌
너에게
하느님의 것은
나도 아니요
너도 아니요
오로지 하느님께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니
나는
나도 아니요
너도 아니요
오로지 하느님께
너는
너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니
너는
너도 아니요
나도 아니요
오로지 하느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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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 12,14)
국가 권력을 위한 기도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합니다. 그러나 현세의 일에서는 기꺼이 그대에게 봉사합니다. 우리는 그대를 황제요 통치자로 인정할 뿐 아니라, 그대에게 통치권과 더불어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그대가 우리의 기도와 모든 솔직한 진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해를 입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마지막에는 자기 행실에 따라 거룩한 심판의 벌을 겪게될 것이라고 의심 없이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책무에 대하여 셈해야 하는 법입니다(로마 14,12 참조).
-순교자 유스티누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7 사람은 위대하다
주님의 성령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지혜 1,7)
우리의 신적 깊이와 접촉하는 데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더 많이 소유할 수도 있고, 덜 소유할 수도 있다. 하느님을 다른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하느님을 훨씬 더 닮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이 될수록 우리는 더 영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을 발전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은 하나의 과정, 곧 성장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씨앗이 자라서 생명이 되고, 생명의 숨이 스며드는 영적인 “토양’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이러한 생명의 숨을 받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안에서 자라도록 허락하는가? 엑카르트는 토양, 씨앗 그리고 뿌리와 같은 주제를 몇몇 자리에서 전개한다.
하느님은 (우리 속에다) 자신의 형상과 모상을 뿌리셨습니다. … 그분은 좋은 씨앗, 모든 지혜와 모든 지식과 모든 덕과 모든 선의 뿌리, 곧 신적 본성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신적 본성의 씨앗은 하느님의 아들,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180)
✝️ 화요일 성령(성시간)의 날✝️
주 예수님, 저희 가정에 오소서! 모든 가정에 당신의 빛이 필요합니다. 부모 역시 자녀들을 교육하려면 당신의 빛이 필요합니다. 형제 자매들이 순간마다 신앙과 사랑으로 살아가려면 당신의 빛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당신께 열어두려면 당신의 빛이 필요합니다. 모든 부모의 마음에 당신을 향한 갈망을 가득 채워주시어 그 갈망이 자녀들의 마음에 흘러넘치게 하소서!
예수님, 얼마나 많은 가정이 어둠 속에 살아가는지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많은 가정이 혼돈과 불안에 싸여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화해하려는 마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악한 어둠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많은 생명이 낙태되고, 또 태어났다 하더라도 오직 사랑만이 비추어 줄 수 있는 빛이 부족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침묵 가운데 당신의 가정이나 당신이 알고 있는 가정을 떠올리며 모든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254)
-성시간, 슬라브코 바르바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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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12,17)
세상을 살아가면서 대부분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두 가지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과 세금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세금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세금과 관련해서 가장 잘 알려진 표현은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12,17)라는 예수님의 표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세금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유대인들은 성막을 지을 때 최초로 세금을 냈습니다. (탈30,11~16) 사무엘이 왕을 내세우는 것을 반대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1사8,14~18)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누어진 이유도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종교세를 매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열왕12,4)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소득의 28%를 세금을 바쳤기에,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내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12,14)라고 묻게 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물었던 의도는 예수님의 답변을 꼬투리 잡아 올가미를 씌우려는 불순한 의도이자 속셈이었지만, 당대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자연스러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는 그만큼 무거운 세금에 대한 불만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일본의 식민지 통치 시대를 거쳤기에 로마의 식민지 유다의 미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금 납부 여부는 로마 식민지 법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법을 따르느냐는 문제와 결부된 사안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일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납세를 거부했지만, 로마에 빌붙어 살아가는 헤로데 당원들은 당연히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야 로마의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다, 는 입장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세금 납부 여부는 양날의 칼처럼 미묘한 실제적인 문제였기에 예수님 또한 이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으며, 이제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질문의 어느 쪽을 선택하여도 예수님은 빼도 박도 못한 난처한 상황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난처한 상황은 한 마디로 진퇴양난의 기로였던 것입니다. 즉, ‘세금을 내라’고 하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군중을 실망케 하고 분노하게 할 것이며 , ‘내지 말라’고 말한다면 로마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처벌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15,12)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한 후에 기지를 발휘하여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순간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고서 의기양양한 그들은 이렇게 지시한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한 대로 동전 한 닢을 가져오자,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습니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12,16)하고 대답하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12,17)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돌려주라, 돌려드려라, 는 말은 결국 땅에 발붙여 사는 동안 화폐를 발행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하늘나라 시민은 하느님께 속한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또 다른 차원이라고 봅니다.
마태오 복음 17장에 보면, “당신네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17,24)하고 묻자, 베드로 사도는 엉겁결에 물론 스승님께서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심을 알고 있었지만,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싶었기에, “내십니다.”(17,25)하고 답변하였습니다. 이를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고 나서,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하거든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17, 27)하고 말씀하심을 통해 베드로를 위로하고,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을 실제로 실행하십니다. 더 큰 일,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은 의연함과 언제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진리를 살아가는 삶의 자세로 당당하게 세상 집권자들 앞에 살아야 합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황제의 편’이지만, 진리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소유이며 하느님께 속한 자녀입니다.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우리네 삶이 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른 분별력을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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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최정훈 바오로 신부님.
오늘 독서는 세상 마지막 날이 될 “하느님의 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날은 주님을 거스른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지만, 주님을 믿고 바라며 기다린 이들에게는 구원과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마지막 날은 혼돈 속의 멸망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새롭게 창조되는 구원입니다(이사 65,17 참조).
마지막 날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으로 지상 생활 여정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죽음이 지닌 상실의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죽음이 마치 온 생명을 찢고 파괴하여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죽음을 지상 생활의 완성이며 영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운명이며, 모든 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죽음이라는 과제는 사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양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신앙인은 죽음을 절망과 두려움의 순간이 아닌 삶의 완성으로, 또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실현되는 구원의 순간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앙이 깊었습니다.
부모들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마지막 날을 세심하게 준비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날마다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응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부족한 부분은 주님의 너그러운 자비에 맡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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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연중 제9주간 화요일. 김명겸 요한 신부님.
이스라엘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 국가로서 세금을 내는 것이기에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 백성이라고 생각해서
하느님만 섬겨야지
다른 임금은 섬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한다고 하면
종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모순되는 상황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모순의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상황을 만족시키는 답을 주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문제는 이제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벗어납니다.
내 것으로 소유하지 말고
내 것이 아닌 것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이 황제이든 하느님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서
이런 모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부당하게 무엇인가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요구를 넘어
힘으로 그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 요구를 거절할 힘이 우리 안에 별로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요하는 힘을 저지할 힘이 우리 안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게 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지만 할 수 없이 들어주는 것입니다.
정당함을 이야기하면서 싸울 수도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서
돌려주는 마음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더 가능합니다.
부당하게 빼앗기는 상황에서
힘 없이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하느님께 더 의지할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힘 없이 주어야 하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돌려줌에서 오는 자유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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