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 ○ 程子曰 孔門弟子善問 直窮到底 如此章者 非子貢 不能問 非聖人 不能答也 愚謂 以人情而言 則兵食足而後 吾之信 可以孚於民 以民德而言 則信本人之所固有 非兵食所得而先也 是以 爲政者 當身率其民 而以死守之 不以危急而可棄也 정자가 말하길, “공문 제자들이 묻기를 잘하여 곧장 끝까지 이르렀지만, 이 장과 같은 것은 자공이 아니면 물을 수 없고, 성인이 아니라면 대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정으로 말하자면, 군대와 양식이 풍족해진 이후에 나의 신뢰가 백성들에게서 미더워질 수 있지만, 백성의 덕으로 말하자면, 신뢰란 본래 사람들이 본래 갖고 있는 바이므로, 군대와 양식이 우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위정자들은 마땅히 제 몸으로 그 백성들을 이끌고 죽음으로써 신뢰를 지켜야 하고, 위급하다고 하여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慶源輔氏曰 非於理有所見 而必欲究其精微之蘊者 不能如此問 非據理之極 而於膠轕肯綮之際 如燭照數計 無纖毫之疑者 不能如此答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치에 알아본 바가 있으면서 반드시 그 정미한 내용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와 같이 질문할 수가 없고, 이치의 지극함에 근거하여, 얽히고 설킨 힘줄과 뼈가 얽혀서 복잡하고 중요한 부분의 즈음에 마치 촛불로 비추고는 셈하고 따지듯이 하여 추호의 의심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와 같이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此只因足食足兵而後民信 本是兩項事 子貢却做三項事認了 信字便是在人心 不容變底 주자가 말하길, “이것은 그저 양식이 풍족하고 군대가 풍족함으로 인한 이후에 백성이 신뢰한다는 것인데, 이는 본래 두 가지 일이었으나, 자공은 도리어 세 가지 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信자는 곧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에 변화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制田里 薄賦斂 使民有常産 而不失其時 則倉廩實而足食矣 比什伍時簡敎 使民有勇而知方 則戎備飭而足兵矣 有是二者 則民以信事上而無欺詐離叛之心 所謂民信之也 問兵之可去 何也 曰 食足而民信 則民親其上死其長 如子弟衛父兄 手足捍頭目 可制梃以撻堅利矣 必不得已而去 則兵或可無也 問食之可去 何也 曰 以序言之 則食爲先 以理言之 則信爲重 蓋死生常理 人所必不免者 若民無信 則失所以爲民者 而無以立乎天地間 是以必有以使民寧無食以死 而不失其尊君親上之心 則其政之所以得民心而善民俗者 可得而言矣 田里(밭과 마을)제도를 제정하고, 賦斂(조세)를 가볍게 하며, 백성으로 하여금 일상의 생업을 갖도록 하면서, 그 때를 잃지 않도록 한다면, 창고는 가득 차고 양식은 풍족할 것이다. 군대조직를 갖추고 때 맞추어 가르쳐서, 백성으로 하여금 용기를 갖도록 하면서 방도를 알게 한다면, 병장기가 갖추어지면서 군대도 충족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있다면, 백성은 믿음으로써 윗사람을 섬기면서, 속이고 떠나가며 배반하려는 마음은 없게 될 것이니, 이른바 백성이 그를 믿어준다는 것이다. 누군가 묻기를, “군대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양식이 풍족하고 백성이 믿어주면, 백성은 그 윗사람을 친애하고 그 어른을 위하여 죽을 것인데, 마치 자제가 부형을 지키듯이 하고 손발이 머리와 눈을 가로막듯이 하여, 몽둥이를 만들어서 견고하고 날카로운 병장기를 가진 군대를 때리도록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반드시 부득이하여 제거한다면 군대는 혹시 없어도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묻기를, “양식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순서로 말하자면 양식이 우선이지만, 이치로 말하자면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대체로 죽고 사는 것은 일상의 이치라서 사람이라면 결코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백성에게 믿음이 없다면, 백성이 되는 까닭을 잃는 것이고, 천지간에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반드시 백성으로 하여금 차라리 양식이 없어 죽을지언정 그 임금을 높이고 윗사람을 친애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어야만, 그 정사가 민심을 얻어서 백성의 풍속을 선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生則有死 人之常理 至於無信 則欺詐傾奪 無復人理 是重於死也 夫食與兵 固爲急務 然信爲之本 無信則 雖有粟而誰與食 雖有兵而誰與用哉 남헌장씨가 말하길, “살아있는 것이면 죽음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일상적인 이치다. 믿음이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속이고 넘어지고 빼앗으니, 더 이상 사람의 이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죽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이다. 무릇 양식과 군대는 본래 시급히 해야 할 일이지만, 믿음이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다. 신의가 없다면, 비록 쌀이 있더라도 누구와 더불어 먹을 것이며, 비록 군대가 있더라도 누구와 더불어 사용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夫子初答爲政之先後也 再問復告義理之輕重也 所謂民信 至此而後 民有以全其信也 非謂至是而後方施信於民也 然則敎民以信 其可一日緩乎 면재황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처음에는 정치를 하는 선후를 대답하셨는데, 재차 물음에는 의리의 경중을 다시 알려주셨던 것이다. 이른바 백성이 믿어준다는 것은 여기에 이른 이후에 백성이 그 믿음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여기에 이른 이후에 비로소 백성에게 믿음을 베푼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써 백성을 가르치는 것을 어찌 하루라도 늦출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五常之信 猶五行之土 民無信不立 猶物無土不生 爲政固以兵食爲先 而兵食亦以信而立 子貢兩發必不得已之問 直窮到底 以見信之尤重於死 而不可頃刻無也 각헌채씨가 말하길, “五常 중의 信은 오행 중의 흙과 같고, 백성에게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것은 만물에게 흙이 없다면 태어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정치를 함에 있어 본래 군대와 양식을 급선무로 삼지만, 군대와 양식 또한 믿음으로써 서는 것이다. 자공이 ‘반드시 부득이하여’라는 질문을 두 번 한 것은 곧장 끝까지 궁구해간 것이니, 이로써 신의가 죽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경각이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去食去兵 是處變之道 如忽然水旱之餘 食有不繼 猝然寇難之來 防禦不及 然後可去 若爲政常法 如何可使兵食不足 三者俱全 處事之常 二者可去 處事之變 蓋兵食外物 容有時而可無 信是本心之德 故無時而可去 쌍봉요씨가 말하길, “양식을 제거하고 군대를 없애는 것은 변화에 대처하는 방도다. 예컨대 갑자기 홍수와 가뭄이 든 나머지 양식을 잇지 못함이 있고, 갑자가 외적의 난이 닥쳐옴에 방어가 이르지 못한 연후에 없앨 수 있는 것과 같다. 만약 정치를 하는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어찌하여 군대와 양식이 부족하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이 세 가지가 모두 온전한 것이 일에 대처하는 정상이요, 두 가지를 없앨 수 있는 것은 일에 대처하는 임기응변이다. 대체로 군대와 양식은 외물이니, 없어도 되는 때가 있음이 용납되지만, 신의는 본심의 덕이기 때문에, 없애도 되는 때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古者藏兵於農 兵非不足也 三年耕有一年之積 九年耕有三年之積 食非不足也 孔子謂足食足兵 豈亦後世富强之術歟 齊氏曰 考井田之法 周人常以其地容三百五十萬四千夫 養七十五萬卒 夫以無事而耕者言 卒以農隙敎而備有事者言 夫無事則並隷於司徒 有事則隷於司馬也 大率是以五夫養一卒 足食則所以足兵也 民信之矣 信其有養有敎 使我勇且知方 而眞可以敵王所愾也(愾苦槪反 怒也 敵王所愾四字出左傳) 雖曰三者 其實只是一事 天下未有食足而兵不足 食足兵足而民不信者也 子貢再問而孔子曰去兵 非去兵也 食足而民信 則民固皆兵也 子貢三問而孔子曰去食 苟孚於民 則雖緩急之極 而亦終不忍以飢寒去也 然則亦非去食也 甚言其不可以無恩交義結之素耳 누군가 묻기를, “옛날에 농민들 사이에 병사를 숨겨두었다고 하니, 병사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3년 경작하면 1년치 쌓아둠이 있고, 3년 경작하면 3년치 쌓아둠이 있으니, 양식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양식이 풍족하고 병사도 넉넉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어찌 후세의 부국강병의 술책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제씨가 말하길, “정전법을 상고해보니, 주나라 사람들은 항상 그 땅으로 350만 4,000명의 농부를 수용하여 75만명의 병졸을 길렀다. 농부는 일이 없으면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 말한 것이고, 병졸은 농한기에 가르쳐서 유사시를 대비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이다. 농부는 일이 없으면 司徒에게 아울러 예속되고, 일이 있으면 司馬에게 예속되었다. 대략 농부 5명이 병졸 1사람을 부양하였던 것이다. 양식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 바로 병사를 넉넉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백성들이 믿어준다는 것은 자기에게 길러줌이 있고 가르침도 있어서 자신을 용감하면서도 방도를 알도록 만들어준다고 믿어서, 진짜로 ‘왕께서 노하시는 바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이다는 발음이 고개반이고, 노한다는 뜻이다. 敵王所愾 이 4글자는 좌전에서 나왔다]. 비록 3가지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저 하나의 일이니, 천하에 양식이 풍족하고도 병사가 부족하거나, 양식이 풍족하고 병사가 넉넉한데도 백성이 믿어주지 않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공이 재차 묻자 공자께서 군대를 없앤다고 말씀하셨지만, 군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양식이 풍족하고 백성이 믿어준다면 백성은 본래 모두가 병사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공이 세 번째 묻자 공자께서 양식을 없앤다고 말씀하셨지만, 만약 백성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면, 비록 완급의 지극한 지경에 이르러도 또한 끝내 굶주림과 추위 때문에 차마 없애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한 양식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은혜로 사귀고 의로움으로 맺는 素養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심하게 말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集註於信字先謂敎化行 而民信於我不離叛也 是處常而不失信 末謂以死守之 不以危急而可棄也 是處變而不失信 운봉호씨가 말하길, “집주는 信자에 대하여, 앞에서는 교화가 행해지면 백성이 믿어주어 나에게서 떠나거나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정상적인 것에 대처하여 신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 끝에서는 죽음으로써 신의를 지키되 위급하다 하여 저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변화된 상황에 대처하여 신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