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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울드레서 (SoulDresser) 원문보기 글쓴이: 바닐라닐라
- 졸업 후 일제 식민 통치 아래 말살되어 가는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 민족 문화 전통을 단절시키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민족 문화의 결정체인 미술품이 인멸되지 않게
한 곳에 모아 보호하여야 한다는 각오로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개설하여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고,
1938년 일제의 강력한 물자 통제령에도 불구하고
북단장 내에 보화각(葆華閣)을 건축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을 설립한다.
- 1940년엔 보성고보를 인수,
광복후 1945-1946년까지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 문화재보존위원회 제1분과위원에 선출되기도 하였으나(1954)
항상 공직에 나가는 것을 피하였고,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운영의 핵심을 담당하면서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고고미술'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로
현재의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 되시겠다.
(사진: 간송미술관)
2. 사후..
그런데 당시 이 집안의 사위였던 이용준이 매월당집 등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몰래 빼돌려 안동의 자택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김태준을 통해 전형필 선생에게 훈민정음 해례본만 만원에 판매하였다.
최초 판매가로 천원을 제시하였으나
원래 문화재의 가치를 정확히 치르는 것으로 유명했던 전형필은
금액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여 거간 노릇을 한 김태준에게 천원을,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격으로 만원을 치렀다.
4. 바보같은남자
훈민정음 해례본을 팔려고 하던 사람이
1000원 (당시 '큰기와집' 한 채 값)에 팔겠다고 했는데
전형필선생님은 1000원의 10배인 10000원에 사겠다고 하고
거기에 수고비까지 주면서
그 책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 정도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하셨다고 하긔 ㅠㅠㅠ
첫댓글 와 너무 대단하심... 이런 분들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 ㅠㅠ 감사합니다 ㅠ
진짜 감사한분이시네ㅠㅠㅠ
이분이 수집하신 보물들 ddp에서 했을때 봤는데 정말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