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젯밤에는 30여 명의 장년, 청년, 청소년들이 함께 명덕역 찬양을 하였습니다.
인간들의 온갖 욕심으로 흔들리는 세상이지만,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게 하시고,
오고 가는 사람들 역시 기쁨으로 화답하게 하시니 감사가 넘쳤습니다.
저희를 구원하여 새 생명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성탄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의를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주님 입혀주시는 정결한 보혈의 옷을 입습니다.
기쁨의 말씀의 잔치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본문 주해)
1~2절 :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된 배경을 역사적인 사실로 설명한다.
아구스도 황제가 내린 칙령에 따라 온 나라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행한 첫 번째 호적 등록 사건이라는 것이다.
3~7절 : 황제의 칙령에 따라 요셉도 호적 등록하기 위해 자기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일어난 일임을 700년 전의 미가 선지자가 에언하였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여자는 호적 대상도 아닌데 임신 중의 마리아를 데리고 그 먼 길을 간 것은 요셉이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와서 해산할 때가 다 되었지만, 방을 구할 수 없었다. 겨우 짐승의 우리에서 해산하고 아기를 구유(짐승의 먹이통)에 누이게 된다.
8~12절 :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 지역에서 목자들이 들에서 밤을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을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자 목자들이 크게 두려워한다.
그때 천사가 전해 준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소식이었다.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11절, 쉬운성경)
그런데 천사가 목자들에게 표적(증거)을 말하는데, 바로 ‘구유에 놓인 아기’라는 사실이다.
사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는 아기도 없겠거니와, 더구나 구유에 놓일 일도 없을 터이니 특별한 표적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이 구유에 오신 것이 표적이 되는 것은 단지 목자들이 알아보도록 하기 위한 표적만이 아니라, 짐승의 먹이통에 오셔서 짐승 같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낮아지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13~14절 : 갑자기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라고 한다.
예수님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심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주러 오신 그 주님의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또 ‘땅의 평화’인데 이는 모든 자의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만 평화인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에게는 평화가 아니라, 심판의 소식이기 때문이다.
(나의 묵상)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14절)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을 천군 천사들이 찬양한 내용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줄여서 보통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표현하며 성탄절을 축하한다.
그런데 이는 그저 하늘과 땅의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 일은 예수께서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니,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광과는 전혀 다른 내용인 것이다.
창세전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인간들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죽으러 오신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늘 자기 자신이 잘 되는 것만을 영광이라고, 자동으로 생각하는 죄악 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진리이니, 이는 성령이 임할 때만 깨우칠 수 있는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서 사람들 자신의 이익이나 높아짐은 하나님의 영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땅의 평화도 그러하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처참한 인간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문을 열어 주셨다. 즉 참된 평화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평화’는 인간들의 손에 손잡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또 세상 모든 인간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의 평화인 것이다.
창세전 택함 받은 주님의 모든 백성들이 누리는 평화인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다.
그래서 주님 보내신 성령이 임한 자들로서, 자신이 비참한 죄인임을 알고, 주님의 보혈만을 의지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문제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붙들게 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아들의 나라를 누리게 하심으로 그 마음에 평화를 이루시는 것이다.
2024년 성탄절을 맞이한다.
어제 저녁에 교회에서 성탄축하 발표회를 하고, 명덕역 준비된 공간에서 성탄 축하 찬양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난로를 전했다.
어제 가장 많은 교인들이 참여하였다. 20여 명의 청년들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여서 모두 30명 정도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라 그런지 동영상도 찍고 잠시 잠시 머물며 함께 찬양하기도 하니 참 기쁘고 즐거웠다.
그러나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의 참뜻을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그저 평화롭게 잘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 죽음으로 소망없는 죄인들에게는 진정한 평화를 주는 것이 땅의 평화인 것이다.
우리들의 행함으로 기뻐했던 들뜬 마음을 뒤로 하고, 성탄절의 참뜻을 다시 한번 묵상한다.
주님께 더 깊이 감사하는 아침이다.
(묵상 기도)
주님,
짐승의 먹이통에 누이시니
짐승과 같은 저는 주님을 먹으며 삽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태어나신 날에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죽으심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짐승과도 같은 저에게는 새 생명을 받아 누리는 평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쁜 성탄절이 됩니다.
성탄절의 이 복 된 의미를 증거 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