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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1 할렐루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113:2 지금부터 영원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113:3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113:4 주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다.
113:5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어디에 있으랴? 높은 곳에 계시지만
113:6 스스로 낮추셔서,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시고,
113:7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113:8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백성의 귀한 이들과 함께 앉게 하시고,
113:9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조차도 한 집에서 떳떳하게 살게 하시며,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즐거워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할렐루야.
◈ 주해
시편의 주제는 찬양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믿는 자의 낙심과 억울함, 간구와 소원, 주님을 향한 갈망 등 다양하다.
1) 시편의 시작은 복 있는 사람,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시작되며, 후반부가 되면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선포가 점점 많이 사용된다.
2) 믿는 자는 호소도 하고, 질문도 하고, 탄식과 간구도 하며, 주님을 갈망한다. 그렇게 주님 앞에서 주님을 알아갈수록 그는 점점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 시 109편은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로 시작했고, 111편, 112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했다.
1) 그리고 시 113편은 시작과 마침이 모두 “할렐루야”다.
2) 할렐루야는 할랄의 찬양을 드리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할랄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기쁨과 감사를 이기지 못하는 자가 마음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높이는 찬양이다.
3) 그리고 할렐루야는 자신을 향한 선포이기도 하지만,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 할랄로 주님을 높여 자랑하자는 제안이자 명령이다. 하나님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찬양받기 합당하신 분이라는 고백이다.
3. 113편은 할렐루야를 선포한 후, 여호와의 종들에게 찬양할 것을 명령한다.
[새번역] 시 113:1 할렐루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1) 신자가 하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종들”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아들의 핏값으로 죄의 노예된 우리를 값 주고 사셨다. 이것이 구속이다.
- 죄의 노예된 자를 하나님이 사심으로 하나님의 노예(종)이 된 것이다.
3)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심판받을 우리를 아들의 피로 사셨을 뿐 아니라,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까지 주신 것이다. 이 은혜를 아는 자는 더욱 자신이 주의 종임을 알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4. “종”은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여 언약 안에 거하는 언약백성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1) 예배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한다.
2) 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의 현존”를 말한다.
-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성전에 두시는 것은, 그가 성전에 현존하시는 것을 뜻한다(왕상 9:3).
5. 여호와의 종들은 언제 어디서 찬양해야 하는가?
1) 시인은 시간적으로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간적으로는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선포한다.
시 113:2 지금부터 영원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113:3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6. 지금부터 영원까지라는 것은, “지금이 찬양할 때”라는 것이다.
1) 영원은 미래의 개념도 있지만, 항상 현재로 존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내일, 다음에...가 아니라, 지금이다.
3) 지금은 기쁠 때와 슬플 때, 소망의 때와 낙심의 때, 건강할 때와 병들 때, 강할 때와 약할 때, 낮일 때와 밤이 모두 포함된다.
7.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는 시간을 포함하는 공간이다.
1) 내가 어디에 있던지, 어떤 처지에 있던지 주님은 찬양받기 합당하다는 것이다.
2) 이렇게 찬양했던 대표적인 예배자는 다윗이다.
3) 다윗은 형통하고 승리하고 높여질 때 자신이 영광을 차지하지 않고 주님을 찬양했다.
- 형통과 높여질 때 자신이 그 영광을 차지하는 자는 반드시 교만해 진다. 그러므로 이 복과 승리가 주님으로부터 왔음을 알고 찬양함은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필수다.
- 하나님이 주신 승리와 영광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드리는 찬양을 할랄의 찬양이라고 한다.
4) 그리고 사울에게 억울하게 쫓겨 굴에 숨었을 때,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하면서 목숨을 부지하여 아둘람 굴에 숨었을 때,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할 때 “주의 인자하심”을 찬양했다.
- 고난, 억울함, 삶이 무너지는 형편에도 믿음으로 주님의 성품과 영광(인자와 신실)을 찬양하는 것을 야다의 찬양이라고 한다.
8. 하나님은 그분의 존재, 성품, 사랑, 영광 그 자체로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다.
1) 그리고 예배자가 찬양할 제목은 그분이 행하신 일, 그분의 구원과 인도하심이다.
시 113:4 주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다.
2) 모든 나라보다 높다는 것은 모든 나라의 통치자, 그 영광이 하늘보다 높다는 것은 하늘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통치자이시다.
9. 시인은 모든 나라의 통치자며, 심지어 하늘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돌보시는 분임을 찬양한다.
시 113:5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어디에 있으랴? 높은 곳에 계시지만
113:6 스스로 낮추셔서,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시고,
1) 높은 보좌에서 사랑으로 내려다 보시고 사랑으로 통치만 해도 찬양받기 합당하시다.
2)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사 높은 보좌에서 내려오셔서 피조세계와 자기 백성들을 살펴주신다.
10. 성탄절과 사순절 즉 그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복종은 자기를 낮추셔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한 대표적인 통치 행위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까지 함께하시며 돌보시는 분이 되셨다.
11. 예수님은 성육신과 십자가 고난으로 낮아지셨기 때문에 우리를 체휼하심으로 돕는 분이 되셨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2.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한 부분을 7-9절에 기술한다.
시 113:7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113:8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백성의 귀한 이들과 함께 앉게 하시고,
113:9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조차도 한 집에서 떳떳하게 살게 하시며,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즐거워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할렐루야.
1) 성육신,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와 모든 것을 함께 경험하신 주님이기에 가난한자, 궁핍한 자를 능히 도우신다.
2)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고대 시대에 가시 방석에 앉은 것 같이 불안했다.
- 그러나 하나님이 그녀를 돌보사 떳떳하게 살게 하신다. 많은 아이를 낳고, 그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13. 약하고, 비천한 자를 돌보심은 간혹 있는 일, 특별한 사람이 경험하는 은혜가 아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1) 내가 육체를 따라 지혜롭지 못하고, 능력이 많지 못하고, 문벌이 좋지 못한가? 세상에서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자요, 없는 자인가?
2) 그렇다면 주님의 부르심을 보아야 한다. 주님은 그런 나를 부르시고 택하시기를 즐겨하신다.
14. 이런 나를 택하신 이유는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다.
1)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나를 강하게 하고 지혜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2)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3)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이라는 찬양은 원래 장애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으로 만들어졌다. 약한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그는 충분히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예배자다.
15. 찬양은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다. 즉 찬양은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고, 주님이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자랑하는 것이다. 즉 주님을 찬양하게 하려고 약하고 미련하고 없는 나를 부르신 것이다.
엡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영광의 찬송 자체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다.
◈ 나의 묵상
다윗의 예배가 나의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이 되기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주인이 되셨다. 그분의 나의 목자가 되신다. 그러나 이 땅의 삶에는 예상하지 못한 굴곡이 많다. 게다가 나 조차도 예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 땅의 굴곡만을 생각하고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나의 굴곡이다.
고난과 슬픔의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겠다고만 했지, 내 마음 안에 고난과 슬픔이 채워질 때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영혼의 어두운 밤, 주님을 느낄 수 없고, 주님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사라질 때가 있음을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결론과 나의 결론은 동일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둠에 거하던, 내가 예상하지 못하던 높음의 자리에 있던, 하나님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시다. 이 마음과 이 믿음을 견인하시는 성령님을 찬양한다. 다만, 다윗의 찬양 앞에 나의 믿음이 드러난다. 그가 굴속과 유대 광야에서 드린 찬양은 나와 질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다윗, 하나님의 존재, 그분을 이름으로 아는 다윗이 부럽다.
그렇지만 주님은 사람을 비교하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나의 존재 그 자체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의 믿음과 의심, 나의 사랑과 배반, 나의 찬양과 교만이 공존함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지금 주님을 찬양한다. 내가 찬양할 자격이 없다고 여길 때, 주님은 내가 있는 낮은 곳까지 함께하신다. 심지어 죄와 저주와 사망의 자리까지 낮추시어 나와 함께하여 주신다. 그리고 “내가 돕겠다”고 하시는 은혜의 주님이시다.
그 은혜가 나로 하여금 주님을 찬양하게 한다. 그 은혜의 지배로 인하여 생명을 얻는다. 다만 주님이 스스로 낮추심을 내가 배워 겸손하기를 원한다. 겸손하여 그 은혜와 그 통치와 그 사랑을 더 깊이 참여하기를 원한다. 성탄절에 스스로 낮추사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체휼하시며 도우시는 주님과 함께함이 복이다.
◈ 묵상 기도
주님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찬양 받으시기 합당하십니다. 할랄의 찬양만이 아니라 야다의 찬양으로 다윗처럼 주님을 예배하길 원합니다. 저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없사오니, 주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의 지배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가난하고 미련하고 약한 나를 택하사 주님을 찬양하게 하신 그 뜻대로 서게 하여 주십시오. 이미 베푸신 은혜를 깨닫고 찬양하게 하시며, 영원한 사랑을 알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성육신을 넘어 십자가에까지 낮추시고 내 마음에 거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인자와 신실함을 더욱 알게 하시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임을 알게 하옵소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땅 위에,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그 사랑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아들로 오신 임마누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