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114: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114: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 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114: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114: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 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114: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114: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114: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 주해
1. 시편 113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지금부터 영원까지,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찬양할 것을 선포하면서 할렐루야로 마쳤다.
1) 시인은 높은 보좌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어 천지를 살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2) 또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세워 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2. 시 113편부터 118편까지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1) 하늘 보좌에서 스스로 낮추사 행하신 최고 최대의 은혜는 출애굽 구원, 즉 십자가의 구원이다. 그러므로 출애굽 구원은 이스라엘이 대대로 찬양할 제목이다.
3. 신명기는 광야 40년을 보낸 후, 모세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과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언약적 복을 누리기 위하여 기억해야 할 것을 마지막으로 정리하여 전한 설교다.
1) 모세는 광야 40년을 되돌아보고, 가나안 정복과 그곳에서의 풍성한 언약적 삶을 위하여 반드시 출애굽을 기억하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7: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신 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신 24: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신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2) 출애굽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 말씀을 순종함으로 언약 안에 거하는 복,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 등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누리게 하는 문과 같다.
4. 그런데 참된 예배자는 출애굽 구원을 기억할 뿐 아니라, 그 은혜를 찬양한다.
[새번역] 시 114: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114: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1) 출애굽 구원은 크게 2가지의 은혜를 입은 날이다.
2) 먼저는 애굽의 노예, 바로의 종에서 해방되는 죄사함의 은혜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고 모든 정죄에서 해방되었다.
3) 출애굽 때 받은 더 큰 은혜는 “유다가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4) 신약에서도 십자가 구원을 받은 자는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다. 이는 이미 출애굽 구원 때에 예시된 것이다.
5. “유다는 그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는 고백은 놀라운 통찰이다.
1) 다수의 백성들은 성막(성전)이 하나님의 성소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 하나님의 성소에 함부로 들어가면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2) 그러니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소가 되고, 하나님이 자신들 안에 임재 하신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장소보다 이스라엘을 성소 삼아 그 가운데 거하셨고, 이스라엘을 그의 영토를 삼아 그들을 통치하셨다.
6. 신약에서는 “믿는 자와 그들이 모인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명확히 증거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기보다는 “예배당에 거하신다”는 개념이 더 강하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1)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하는 장소에 임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예배당이 아니라 예배자다. 예배하는 자들이 있는 그 곳이 성전이며 하나님의 집이다.
2)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 내가 하나님의 성소요 영토가 되었으며, 교회가 하나님의 성소와 영토가 되었다.
7. 하나님의 성소요 영토임을 아는 자는 내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안다.
1) 요한 일서는 이것을 알게 하려고 기록하였다고 기록 목적을 밝힌다.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2) 내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아는 자는,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로 살아가는 자며, 내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산다.
8. 시인은 출애굽 구원이 너무나 놀라운 구원의 사건이기에 바다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고 도망하고 요단도 뒤로 물러갔으며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며 언덕들은 어린 양처럼 뛰었다고 한다.
1) 홍해가 갈라지고(출 14:21 이하) 요단강이 멈춘 것은(수 3:14 이하) 하나님의 큰 구원 앞에 압도된 것이라고 한다.
2) 시내산이 흔들린 것도(출 19:16 이하) 하나님의 큰 구원에 놀라 뛰었다고 한다.
9.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알리고, 함께 찬양하고자 함이다.
1)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것은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구원이요 은혜다.
2) 이것은 작은 은혜, 작은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크고 광대한 은혜를 입은 구원임을 알고 찬양하자는 것이다.
3) 안타까운 것은 바다, 강, 산들과 언덕들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알고 놀라고 뛰는데, 언약 백성은 이 은혜와 큰 구원을 알지 못하여 각기 제 길로 간다는 것이다.
4) 언약 백성이야 말로 바다와 강, 산들과 언덕처럼 주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 뛰며 찬양함이 마땅하다.
10. 5-6절에서 시인은 수 세기 전에 일어난 출애굽 구원을 현재형으로 질문한다(원문).
1) 즉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현재냐고 묻는 것이다.
2) 출애굽 구원이 현재적일 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도 현재적인 사건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의 영토가 되는 것도 현재적인 사건이 된다.
11. 시편의 시인들은 땅과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일 것을 명령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114: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1) 믿는 자가 산책하거나, 출근을 하다가 “온 땅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지어다”라는 선포가 나온다면 그의 마음과 믿음은 어떤 상태인가?
2)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의 은혜로 감사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주님을 찬양한다.
3) 그 은혜와 감사가 더욱 커지면 다른 성도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큰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4) 그 은혜와 감사가 더더욱 커지면, 온 땅과 하늘과 산과 새와 나무들조차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5)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가 나를 넘어 교회와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고, 이것을 넘어 모든 피조 세계에 충만함을 보기 때문이다.
12. 시인은 출애굽의 하나님이 자연세계까지 통치하여 언약 백성을 먹이시는 주권자임을 선포하며 마친다.
시 114: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1) 하나님은 창조주의 권능으로 광야에서 반석을 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다(출 17:5 이하; 민 20:8 이하).
◈ 나의 묵상
구약에서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요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라는 시인의 고백이 참으로 놀랍다. 참된 예배자들은 구약에서부터 여호와의 성소와 영토를 장소를 넘어 자신임을 알았다. 그러나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여호와의 성소요 영토임을 알지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았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 마음의 보좌에 모셔 들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내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너무나 명확하게 선포한다. 나는 이 복음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내 안에 내주하시는 주님, 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망각한다. 내 안에 분명하게 살아계시는 주님, 내 몸을 성전 삼으신 주님을 잊어버리고, 예배 시간에 주님이 함께하는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 물론 예배 시간에 임하신다. 그러나 예배 시간에 임하시는 주님 이상으로 생생한 것은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임재가 없다고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답답하다. 그런데 내가 그렇다. 내 안에 사시는 주님, 생명 있음을 잘 알지 못해도 주님은 내 안에 거하신다. 그러나 내 안에 생명 있음을 알지 못하는 성전으로 살아가는 시간동안 나는 얼마나 답답한 성전인가? 주님은 항상 내 안에 거하시는데, 성전된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로 인하여 내가 주인 노릇하며, 오판을 하고, 몸을 주님 뜻대로 관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몸과 영혼에 진리를 선포한다. 이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내 마음에는 부활의 주님이 거하시고 통치하신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 그 주님이 내 영혼을 통치하심으로 악한 자들이 만지지 못한다. 주님의 영토를 사단이 마음대로 빼앗지 못한다. 주님이 통치하시니 내 영혼은 안전하다.
죄인된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 사랑과 여전히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나를 성전삼으시는 그 은혜를 찬양한다. 천번 만번 떠나야할 성전임에도 불구하고 인자와 긍휼로 여전히 내 안에 거하시며,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나를 여전히 성소와 영토로 삼으신 주님의 그 은혜와 긍휼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바라보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출애굽의 구원을 찬양합니다. 다만 항상 십자가 구속의 은총과 사랑, 옛사람의 죽음과 육신의 죽음이 현재로 고백하며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항상 제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주님이 통치하는 영토임을 아는 지각과 믿음을 주십시오. 예배당을 떠나면 망각하는 자, 성령님께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여 주십시오. 온 땅들이 두려워 떨며 찬양하기 합당하신 주님의 그 사랑과 영광을 저 또한 보며 선포하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되, 겸손한 마음을 품게 하소서. 그리고 저의 연약함과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주의 은혜, 전적인 은혜,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붙들어 인도하여 주십시오. 성탄절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주님, 겸손의 주님의 마음을 부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으니, 국내외 선교지와 사역자들에게 주의 겸손과 생명과 영광으로 임하여 주옵소서. 한밤의 기도회와 토요일 있는 하늘숲 선교원의 졸업식과 선교원 사역의 마무리 가운데 성령님이 함께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