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동계(參同契) 석두희천(石頭希遷)
원오스님 우리말로 노래하다
竺土大仙心 축토대선심 東西密相付 동서밀상부
人根有利鈍 인근유리둔 道無南北祖 도무남북조
천축국의 부처님에 마음법이 전해지니
서쪽에서 동쪽에서 비밀리에 전해졌다
사람들의 근기에는 우열또한 있지만은
부처님의 가르침엔 남과북이 다름없다
靈源明皎潔 영원명교결 枝派暗流注 지파암류주
執事元是迷 집사원시미 契理亦非悟 계리역비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맑고밝아 분명한데
서로종파 가지별로 서로서로 갈리었어
어떤것에 집착하면 그게바로 미혹이요
겨우겨우 아는것도 깨달음은 이아니다
門門一切境 문문일체경 回互不回互 회호불회호
回而更相涉 회이갱상섭 不爾依位住 불이의위주
문파마다 내세우는 여러가지 경계들이
서로간에 얽히기도 엇갈리기 하였는데
얽히이면 더욱더욱 그관계가 깊어지고
멀리하면 따로따로 제자리에 지내진다
色本殊質象 색본수질상 聲元異樂苦 성원이악고
暗合上中言 압합상중언 明明淸濁句 명명청탁구
오감느낌 사물성품 그모양이 달라지고
이름또한 즐거움과 괴로움이 다르나니
상근기와 중근기는 앞에한말 부합하여
좋고나쁨 말맛틀림 말을밝게 보이리라
四大性自復 사대성자복 如子得其母 여자득기모
火熱風動搖 화열풍동요 水濕地堅固 수습지견고
사대들의 그성품이 스로스로 회복되면
자식들이 그어미를 얻은것과 똑같으리
뜨거우면 불의열기 바람으로 일으키고
차가운물 땅을적셔 단단하게 만들도다
眼色耳音聲 안색이음성 鼻香舌鹹醋 비향설함초
依然一一法 의연일일법 依根葉分布 의근엽분포
本末須歸宗 본말수귀종 尊卑用其語 존비용기어
눈으로는 색깔보고 귀로소리 들으면은
코로오는 향기맡고 혀로오는 맛을보니
그것모두 하나하나 공능법이 있었으니
뿌리들과 잎세처럼 제자리에 분포한데
뿌리나무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귀함천함 따로따로 자기말을 쓰는구나
當明中有暗 당명중유암 勿以暗相遇 물이암상우
當暗中有明 당암중유명 勿以明相睹 물이명상도
밝은그것 가운데에 어두움이 있는거니
어둠으로 그밝음을 보아서는 아니된다
어둠그속 그밝음이 또한함께 있는거니
밝음으로 어둠보지 말아야만 하는거다
明暗各相對 명암각상대 比如前後步 비여전후보
萬物自有功 만물자유공 當言用及處 당언용급처
밝음더움 서로서로 상대하여 서는것은
비유로써 말을하면 앞뒤걸음 같은거고
온갖사물 저마다의 공능성품 있었으니
마땅히도 그작용이 미치는곳 말을하라
事存函蓋合 사존함개합 理應劍鋒挂 이응검봉괘
承言須會宗 승언수회종 勿自立規矩 물자립규구
일은때로 뚜껑덮힌 상자처럼 모호하나
도리이치 마땅히도 칼끝처럼 날카롭다
말들을때 반드시도 바른뜻을 알아야지
함부로이 추측하고 짐작하지 말지어다
觸目不會道 촉목불회도 運足焉知路 운족언지로
進步非近遠 진보비근원 迷隔山河固 미격산하고
謹白參玄人 근백참현인 光陰莫虛度 광음막허도
눈뜨고도 바른길을 보이지를 못한다면
걸음걷는 그다리가 어떻한길 알겠는가
진보멀리 가는것에 달려있지 않은건데
미혹하면 산강처럼 넘기힘든 장애된다
부처님에 가르침을 배워아는 수행자여
귀한세월 헛되이게 흘러가게 말지니라
◈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
당대(唐代)의 선승으로 속성이 진씨(陳氏)였다.
단주(端州) 고안(高安)(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시(肇慶市) 사람으로
석두종(石頭宗)을 개창했다.
유년시절에 이미 출가에 뜻을 두었고,
마을 사람들이 복을 빌면서 동물을 죽여 희생제를 올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천(先天) 원년(712), 육조혜능이 고향 신주(新州)로 돌아와
국은사(國恩寺)를 다시 세웠는데,
이때 희천은 육조 문하로 출가를 결심하고 나이 열네 살에 사미가 되었다.
그러나 혜능은 다음 해에 입적했다.
개원(開元) 16년(723)에는 나부산(羅浮山)에서
구족계를 받고 계율을 공부했다.
승조(僧肇)가 쓴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을 읽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도리를 깨친 후에는
여릉(廬陵)에 있는 청량산(淸凉山)에서 육조혜능의 제자
청원행사(靑原行思)에게 청문하여 선법을 전수받았다.
그의 법기를 알아본 행사가 ‘뿔 가진 짐승이 여럿이라도,
수사슴 한 마리면 족하다(衆角雖多, 一麟足矣).’고 하며 그를 칭찬했다.
천보(天寶) 초년(742)에 남악 형산(衡山)에 있는
남대사(南臺寺) 동쪽 큰 바위 위에 초막을 짓고 지냈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이 그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름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남악회양(南岳懷讓)의 법을 이어
남강(南康)에서 불법을 전하던 마조도일(馬祖道一)과
단양의 석두희천을 ‘세이대사(世二大師)’로 불렀다.
만년에 약산유엄(藥山惟儼)에게 법을 부촉하고
정원(貞元) 2년(790) 12월 25일에 입멸하니
세수 91세, 승랍으로는 63세였다.
사후 덕종(德宗)이 무제대사(無際大師)란 호를 내렸다.
천황도오(天皇道悟), 조주태전(潮州太顚), 약산유엄(藥山惟儼)
같은 이름난 제자를 두었고,
희천의 재전제자들은
조동종(曹洞宗), 법안종(法眼宗), 운문종(雲門宗)을 열었다.
저작으로는 《삼동계參同契》와 《초암가草庵歌》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신해혁명이 일어났을 때
석두희천이 입적한 형산의 남대사가 혁명군의 방화로 불타버렸는데,
이때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반출한 석두화상의 진신(眞身)이
지금은 일본의 조동종(曹洞宗) 본산
소우지지(총지사:總持寺)에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초기에는 관광객들이 참관할 수 있게 했으나
지금은 수장고에 보관해두고 참관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라라 믹~~~~!!!!!!!
***불타처럼 살아가면 붓다라고 말하리라!()()()***
***원오선원 명상쉼터에서 납승 원오 합장***
오직 진리만을 구현하시는 원오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