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스승과 제자의 만남
조선 중기 선조 때
동래 범어사에 명학이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명학스님은 논밭을 비롯한
절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소임을 맡고 있었다
명학스님은 욕심이 많아
절의 재산과 신도들이 낸 시주돈 등을
개인적으로 축재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으므로
대중들은 그를 동지(同知)라 불렀다 한다
동지(同知)란 그 당시에
재산이 좀 많은 스님에게
좋은 뜻으로 불러주는 호칭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명학스님이 지금의 화정(花亭),
당시 임란 때
조선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던 소산(蘇山)앞을 지나다가
조그마한 집에 서기(瑞氣)가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명학스님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그 집을 들어서니
그 집의 젊은 부인이 잘 생긴 남자아이를 출산하고 있었다
명학스님은 수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랫동안 절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많은 개인의 재산을 모았으므로
사찰 내에서는 힘있는 스님으로 통하여
남들이 무시 못하는 존재였으므로
수하에는 많은 상좌들이 있었지만
스님은 이 아기가 보통 아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상좌로 삼기 위해 산모에게 말을 건넨다
이 아이는 불가(佛家)에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니
잘 길러 주시면 십년 후에 소승이 데려가서
훌륭한 스님으로 만들겠다고
그리하면 이 아기는 물론
이 집안에도 크게 복을 받을 것이라고 . . .
가난했던 그 집 내외는
평소 존경하던 범어사 스님이 돈까지 주면서
근엄하게 부탁하므로 순순히 승낙했단다
그 후 10년이 지나 명학스님은
그 아이를 범어사로 데려와 상좌로 삼은 후
법명을 영원(靈源)이라고 짓고 공부를 시켰다
영원상좌는 근기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였으므로
명학스님은 큰 선지식이 될 거라는 기대로
다른 상좌들 보다 더 정성을 들여 공부를 가르쳤다
하루는 명학스님이
영원상좌에게 나무를 해오라고 보냈더니
산으로 갔던 영원스님이 빈 지게로 돌아오자
명학스님은 하루 종일 무엇 하며 놀다가
무슨 염치로 빈 지게로 돌아왔느냐고 꾸중을 하게 된다
꾸중을 들은 영원스님이 대답한다
“스님. 놀다가 온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자르려고 가지를 베었더니
그 나뭇가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무섭기도 하고
또 그 나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니
도저히 나무를 벨 수가 없었습니다”
상좌의 말에 명학스님은 너무나 화가 나서 꾸짖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해괴망측한 거짓말을 하느냐며
그런 요망한 거짓말을 하면
절 안의 다른 스님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니
다시는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대웅전 부처님께 맹세하고 빌으라고 한다
그리고 만약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당장 이 곳에서 떠나라고 호통을 쳤다
평소 영원 스님은 스승인 명학스님이 수행은 하지 않고
재물의 축재에만 노력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 그러한 대답을 하였던 터라
그 길로 걸망 하나만 짊어진 체
바르게 수행하리라 마음먹고는 범어사를 떠나고 만다
전국의 유명사찰을 전전하며 공부를 하던 영원스님은
몇 년 후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수도를 하게 되고
그로부터 삼 년 되던 해에
범어사 명학스님이 병으로 죽게 된다
같은 날 영원스님께서 고요히 선정에 있자니까
금강산 남현봉 밑에서
범어사 명학동지를 잡아들였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 무슨 소리인가 살펴보니
시왕봉 아래서 염라대왕이
자기 스승인 범어사 명학스님을 잡아다가 문초를 하고 있었다
생에 동안 스님이란 사람이 수행은 하지 않고
재물을 축재하고 절의 재산을 사적인 용도로 쓰고
또 여색까지 탐한 것을 하나 하나 열거하며
명학스님을 염라대왕이 그 죄를 추궁하고 있었지만
명학스님은 어리석게도
끝까지 죄지은 일이 없다고 우기고 있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업경대를 가져오게 하여
이생에서 지은 명학스님의 죄를 생생하게 보여주니
드디어 명학스님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나 염라대왕은 그에게 구렁이의 몸을 입히고
구렁이의 몸을 입고 평생 반성을 하고 업장을 녹여
다음 생에는 구렁이의 몸을 벗고
다시 그와 같은 죄를 짓지 말라며
커다란 구렁이로 만들어 금강산 업경대 아래 금사굴에 가둔다
영원스님은 본인의 스승이 평생 수행을 하지 않고
재물만 탐내더니
기어이 이러한 과보를 받는 것에 눈물을 흘리고
매일 금사굴 앞에 가서
스승의 영혼을 깨치기 위해 진언을 외워 준다
하루는 금사굴에 구렁이가 보이지 않아
선정에 들어가 살펴보니
명학스님은 아직도 구렁이의 몸으로도
탐욕을 버리지 못해
생전에 자기가 관리했던 범어사 곳간 창고에 가서
도사리고 앉아 있었다
영원스님은 그 길로 범어사로 내려와 보니
명학스님의 수많은 상좌를 비롯하여 스님과 신도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서 49재를 준비하느라 야단인 것을 보게 된다
다른 상좌 분들은 영원스님을 보자
스승께 거짓말을 하여 쫓겨난 후
살아생전에 한 번도 오지 않더니
재물이 탐이나 이제사 찾아 왔다고 빈정 댄다
그러나 영원스님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큰 솥에 팥죽을 쑤어 커다란 무쇠그릇에 담아들고서
고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여러 곡식과 재물 사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구렁이에게 다가 간다
영원스님은 구렁이에게 정중하게 절을 한 후
“스님, 살아생전에 좋아하시던 팥죽을 가져 왔으니 드십시오” 한다
무쇠 그릇을 구렁이 앞에 내밀어 팥죽을 다 먹게 한 후
“스님, 살아생전에 지은 과보로 구렁이의 몸을 받았으니
이제 구렁이의 옷을 벗고 해탈하시옵소서”하며
천천히 밖으로 나오니
구렁이도 꿈틀거리며 영원스님을 따라 천천히 기어나온다
영원스님은 구렁이를 데리고 산문 밖으로 나가면서
계속해서 독경을 한다
구렁이가 시냇가에 이르자
영원스님은 걸음을 멈춘체 독경을 계속하자
구렁이는 냇가의 바위에다가 한참 동안 머리를 처박고 있더니
마침내 길게 뻗어서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죽어버린다
영원스님은 스승의 영혼을 인도하여
금강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가는 도중에 명학스님의 영혼은
짐승들이 교미하는 곳마다 들어가려 하여
영원스님은 그때마다 호통치며 말리고 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어느 날 날이 어두워 강원도 산골의 자그마한 마을에 이르러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날 밤 명학동지의 영혼은 그 부부의 방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영원스님은 주인 내외에게
오늘부터 열 달 후에 당신들 내외가 아들을 낳을 것인 즉
그 아이는 불가에 깊은 인연이 있으니
잘 길러 주시면 십년 후에 내가 데려가서
훌륭한 스님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그리한다면
그 아이나 이 집안에도 복이 한량없을 것이라 한다
원래 불심이 깊었던 젊은 내외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자
영원스님은 나중을 기약하고 떠나게 된다
열 달 후 영원스님의 말대로
그 집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고
그로부터 십년 후 영원스님은
다시 이 집을 찾아와서 아이를 데리고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영원스님은 이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여
공부를 가르치고 불도를 닦게 하였지만
이 아이는 과거 영원스님이
명학동지의 제자로 있을 때처럼
총명하지도 않고 근기도 약해
십 여 년이 지나 청년이 되도록 득도하지 못한다
십 여 년이 된 어느 날
영원스님은 상좌를 절의 뒷방에 들어가게 한 후
방문을 잠그고 문창호지에 바늘로 구멍을 뚫어 놓고는 말한다
“이 문구멍으로 큰 황소가 너를 죽이러 들어올 것이니
온 정신을 집중하여 이 문구멍을 지켜봐야 한다
만약 한 순간이라도 놓쳐 황소가 들어오면 너는 죽을 것이나
오직 이 곳만 지켜보다가 황소가 들어오면 나를 부르거나“
그날부터 상좌는 영원스님의 말을 믿고
오직 일심으로 하루 종일 그 문구멍만 뚫어지게 들여다 본다
상좌가 문구멍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기를 여러 해
영원스님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아서일까
어느날 상좌가 그 문구멍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그 작은 문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스님, 스님. 황소가 나타났습니다”하고 고함을 치는 순간
그 상좌는 크게 대오(大悟)하게 된다
상좌가 깨치고 보니 현재의 스승인 영원스님이
전생에 반대로 자기의 상좌였음을 알게 되었고
영원스님과 명학스님의 후신인
그 젊은 스님은 함께 그 절에서 수행을 하였는데
그 후 금강산에 있는 그 절의 이름을
영원스님의 법명을 따서 영원암이라 하고
전생에 명학동지로서 영원스님의 스승이었던 젊은 스님은
뒷방에 기거하였으므로 후원 조실이라 불리게 되었다
첫댓글 지은바가 소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담아다가 활용할게요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