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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에서 본 공공성
최 태 연 교수
백석대 기독교철학
0. 들어가는 말
어원적 고찰해 볼 때, 서양철학에서 ‘공공성’(publicness)이란 추상적인 개념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온 용어는 아니다. 공공성이 무엇인가를 일상 언어를 통해 이해하기 위해 원천이 될 만한 단어를 찾아보면 다음 세 단어를 만나게 된다.
첫째, 그리스어의 ‘politeia’(πολιτεία)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제목으로 유명해 진 이 단어는 원래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의 구성원의 자격을 의미했다. 라틴어에는 비슷한 의미로‘civitas’라는 말이 있다. 유명한 리델과 스코트의 사전에도 “시민 또는 시민권의 조건이나 권리”라는 풀이가 나온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단어를 더 확장하여 ‘도시국가가 운영되는 제도와 법’으로 이해했다. 즉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형태와 체계를 의미한다.
두 번째로 라틴어 ‘res publica’는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철학자 키케로가 그의 책 De re publica 에서 그리스어 ‘politeia’를 ‘res publica’로 번역한 후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직역하면 ‘공공의 일’인데, 더 확장된 의미로 ‘공공재산’(public property), ‘국가’(state), ‘공화국’(the commonwealth), ‘행정기구’(administration), ‘공권력’(power)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단어는 개인적 차원의 모든 ‘사사로운 일’을 뜻하는 ‘res privata’에 대립되는 개념이며 이 단어로부터 영어의 ‘공화국’(the republic)이나 ‘공중’(the public) 개념이 파생되었다.
세 번째 용어는 라틴어 ‘civitas’(복수형: civitates)로서 로마가 팽창하면서 로마에 편입된 다른 종족이 조공을 바치거나 로마법을 수용한 경우에 그들에게 수여된 시민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의미했다. 이 단어로부터 영어의 ‘시민권’(civic rights), ‘시민’(citizen)이란 단어가 파생되었고 더 나가서 국가’(state)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문명’(civilization)이란 단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로마가 야만족이라고 불렀던 이민족을 정복하고 세운 도시와 거주민을 부르는데 사용되었다.
어원적으로 볼 때, 공공성이란 개념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국가조직과 그 안에 거주하며 함께 살아가는 시민의 영역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발생했다. 서양철학사에서 다루어진 공공성의 문제도 국가가 어떻게 구성되고 시민이 어떤 권한을 가지는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시민의 규정에서 자유민으로서 정치적 권리와 함께 얼마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가의 경제적 자유의 차원도 항상 문제가 되었다. 공공성은 각 시대와 사상가에 따라 다르게 사고되고 규정되어 왔다. 대체로 공공성을 규정하는 근거는 한 시대나 사회의 구성원의 정치ㆍ경제적 요구와 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에 대해 어떤 이상을 가지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때로는 종교가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했을 때도 있었다. 공공성을 규정하고 형성하는데 4세기의 로마제국과 1000년 동안의 중세시대,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 시대나 17세기 신대륙의 개척기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사회적 이상과 동기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발제문에서는 서양철학사를 통해 나타났던 공공성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주장을 역사적으로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공공성에 대한 서양철학 전반의 흐름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러한 유형론적 분석은 다양성의 희석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체계적 파악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서양철학사에 나타난 공공성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이고 유형론적 접근을 통해 서양철학에서 공공성 논의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다음은 서양철학사에서 공공성의 구성원리에 대한 5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1. 도덕적 엘리트주의: 플라톤
2. 목적론적 국가주의: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3. 사회계약주의: 홉스, 루소, 로크
4. 자유주의: 벤담, 밀
5. 사회비판주의: 하버마스
1. 도덕적 엘리트주의: 플라톤
플라톤은 그의 중기 대화편『국가』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공공성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는 ‘올바름’(dikaiosynē)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스리는 자들과 다스림을 받는 자들 간의 ‘의견의 일치’(homodoxia)”에 따라서는 안 되며 서로 혼(psyche)의 성향(physis)이 다른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역할에 참견하지 말고 저마다 ‘제 일을 함’(to hautou prattein)으로써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세 부류는 이성을 따르는 통치자들과 용기를 따르는 군인들과 격정을 따르는 농부나 상인들을 말한다. 이 중 통치자들만이 엄격한 양육(trophē)과 교육(paideia)을 통해 선발되며 지혜와 절제의 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이 국가의 통치를 맡고 국가의 공공성을 대변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인과 농부나 상인은 각자의 성향에만 따르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담당하지만 사회 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책임질 수 는 없다. 플라톤은 이러한 훌륭한 통치자가 한 사람일 때는 군주제도 허용되며 여럿일 때는 ‘최선자 정체’(aristokratia)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성향의 차이에 따른 사회적 역할의 구분을 남녀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그래서 이성적 성향이 강한 여성에게는 남성과 똑같은 문학과 체육을 교육해야 하며 뛰어난 남성들과 함께 국가를 통치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 이 여성들은 통치자에 속하는 남성들과 결혼하는데, 그 이유는 부모와 동일하게 우수하고 절제력 있는 자녀를 많이 출산하기 위해서이다. 반면에 욕망과 격정에 지배되는 여성들은 동일한 성향을 가진 남성들과 결혼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 사실을 알고 반발하지 않도록 통치자들은 비밀리에 유사한 성향의 남녀가 결혼하도록 배후에서 조절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든 일은 통치자들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행해져야만 하네.” 따라서 플라톤이 구상하는 훌륭한 사회의 공공성은 철저하게 통치자 집단에 의해서만 유지되며 관리된다. 그는 통치자 집단이 무지와 나약함, 욕망과 격정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사회의 공공성을 가장 잘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 목적론적 국가주의 :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2.1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분야에 걸친 그의 방대한 저작 가운데『니코마코스 윤리학』과『정치학』을 통해 목적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국가관과 정의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성립한다. 그러나 국가의 목적은 인간의 공동체성을 이용하여 덕(aretē)을 실현하는 것이며 정치적 삶(bios politikos)의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의 철학적이고 관조적 삶(bios theoretikos)에서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행복은 국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데, 국가 안에서 다시 개인적인 철학적 추구를 할 때, ‘완벽한 행복’(teleia eudaimonia)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은 ‘공동체적 동물’(zoon koinonikon)으로서 “자연에 의해 공동체를 지향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벌이나 개미와 마찬가지로 고립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집단을 구성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집단가운데 가장 최초의 형태가 ‘가족’(oikia)이다. 가족에서 시작하여 촌락을 거쳐 도시국가인 폴리스에서 정치적 덕(aretē)이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노예노동을 전제로 하는 가족은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홀로 자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덕의 함양과 실천이라는 도덕적 기능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결핍이 가족을 더 큰 공동체로 통합시키는 계기가 된다. 촌락공동체는 가족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가족의 지평을 넓혀 주지만, 역시 스스로만으로는 모든 인간의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켜줄 수 없다. 결국 인간의 삶의 목적인 행복의 완전한 충족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에서만 가능해 진다. 국가만이 자기충족적(autarcheia)이고 그 안에서만 시민은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정치학』7권에서 관조적 삶을 통해서 최고의 행복추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정치적 삶은 덕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관조가 따르지 않을 때,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다가 경쟁과 독재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최상의 정치적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의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관조이고 철학적 삶의 모범을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설하고 있다.
2.2 헤겔(1770-1832)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국가관은 헤겔에 의해서 이론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은 철저한 변증법적 사고를 통해 역사를 이끌어 가는 절대정신이 근대시민국가(예를 들어 프로이센)를 통해 완전히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의 『법철학 강의』는 국가가 개인의 양심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관습과 인륜에 토대를 둔 전통사회,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부르조아 시민사회, 그리고 종교와 예술을 모두 지양하여(aufheben) 종합하는 최종적인 형태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 가지 속성의 목록을 만드는 것에 의해서는 국가의 본질을 평가할 수 있는 어떠한 발전도 이룰 수 없다. 국가란 유기적 조직체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의 본성이라면 그의 속성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그의 목적론적인 국가관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개인의 행복이 국가를 통해서만 실현되도록 만들었다. 그에게 국가(die Staat)는 개인의 주관적 자유가 완성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인에 그 근거를 둘 수없는 이유는 개인의 본능적 욕구와 이해관계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항상 특수성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보편적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의 국가론의 중요한 점은 그가 근대 시민사회를 궁극적인 국가형성의 필연적인 단계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당시 독일의 상업조합(길드)과 다양한 신분집단, 시민활동은 개인들의 이해관계에 근거한 계약에 의해 성립되고 운영되지만, 개인의 경제생활을 보장해 주고 근대 시민으로서의 개인을 국가에 매개해 준다는 점에서 필수 불가결이다. 이 점에서 헤겔은 프랑스혁명이 보여준 사회조직과 제도의 획일적인 파괴와 갱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민사회가 이성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국민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실현하려면 국가와 헌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헤겔의 국가론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어 그가 죽은 후,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청년헤겔파)의 세 방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3. 사회계약주의 : 홉스, 루소
3.1 홉스(1588-1679)
17세기의 독특한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철저한 유물론과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절대왕정을 옹호하려 했던 사상가이다. 그는 근대과학의 성과가 보장해 주는 과학적 유물론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을 철저하게 신체기관을 통한 자기보전의 매카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서로 자기보존을 위해 “만인이 만인에 대해”투쟁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연상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필요한 정치체제는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이 아니라, 개인들의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계약에 의해 세워진 절대주권자(a sovereign)이다. 절대 주권을 가진 주권자만이 반사회적인 개인들이나 집단의 자의적인 행동도 규제함으로써 개인들을 보호하는 체제였다. 홉스의 계몽주의적 이기주의에 근거한 절대주권의 옹호는 그 이후의 사회계약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3.2 루소(1712-1778)
18세기 계몽주의가 낳은 독자적인 사상가인 루소는 홉스와는 정반대로 자연상태의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에 반해 그의 문명에 대한 생각은 이중적으로 나타난다. 당시 그가 경험한 프랑스의 화려한 귀족사회와 도시의 빈곤층 대중과의 격차는 인간이 문명에 의해 타락한다는 반문명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그는 원시적 자연상태와 봉건주의 사회의 중간에 이상적인 소박한 사회를 설정했고 이 사회는 그의 고향인 제네바 같은 작은 자치도시의 시민사회를 의미했다. 그는 이러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서 ‘사회계약’(social contract)과 ‘일반의사’(volonté générale)의 개념을 제시했다.
루소가 말하는‘사회계약’은 개인이 도덕적이고 집단적인 인격체로서 시민공동체에 들어 올 때 성립한다. 개인은 이 계약적인 결사(assosiation)를 자의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루소의 사회계약은 자유주의와 전혀 다르며 훗날 프랑스 혁명의 쟈코뱅주의의 독재를 준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참여해야 하는 이러한 계약공동체는 자유, 평등, 사유재산권 같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만 시민적 자유를 획득한다. 시민 공동체의 의사는 거기에 참여한 모든 시민의 의지를 대변하므로 루소는 그것을‘일반의사’(volonté générale)라고 불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약 국가가 그 구성원들의 결합에 그 생명이 달려있는 하나의 도덕적 인격체이고 또 국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국가 자체의 보존에 대한 관심이라면, 국가는 전체에 가장 크게 이익이 되도록 각 부분을 가동시키고 배치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보편적이고 강제적인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루소의 일반의사론은 계약공동체가 시민 개인을 속박하고 강제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개인의 신성한 자유를 동시에 주장하는 모순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제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결여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3.3 로크(1623-1704)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존 로크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발전시켜 가장 영국적인 사회계약론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로크는 자연상태에서는 인간이 선의와 평화 속에서 살았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사유재산의 필요가 없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역사 속에 나타난 시민사회는 그 구성원의 동의에 의해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사유재산권도 합의에 의해 성립된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즉 사유재산권도 개인들이“하나의 공화국으로 들어감에 있어서 혹은 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개개인간에 존재하는 혹은 필요로 하는 모든 계약”이라는 것이다. 이 계약 아래서 모든 개인은 자기의 재산을 잘 보호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자기의 권한을 시민공동체에 양도하며 그 권한을 양도받은 시민공동체는 개인의 소유권을 지켜줄 책임을 갖게 된다. 로크는 다수가 입헌국가의 권력을 움직여서 개인의 소유권이나 기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여지를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로크에게는 정부나 국가는 이차적이며 시민사회의 계약에 의한 다수의 권력이 더 일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민공동체가 권력을 정부에게 위임함으로써 정부는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시민공동체의 권력의 우위성은 그것이 천부적인 자연법과 도덕질서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로크는 보았다. 즉 로크는 자연법사상과 경험주의적 사회계약론의 결합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4. 자유주의 : 벤담, 밀
4.1 벤담(1748-1832)
19세기의 유럽에서 입헌정부의 보호 아래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나라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산업화를 이룩한 영국뿐이었다. 이러한 여건을 바탕으로 성립된 정치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는 ‘선’(good)하다는 신념을 대중에게 일반화시켰다. 벤담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도덕과 입법에 관한 원리』를 출간하면서 귀족의 손으로부터 자유로운 의회에 의해서만 사회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는 모든 시민을 똑같은 한 사람으로 계산해야 하며 모든 사회정책의 옳고 그름을 측정하는 기준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감각적인 고통과 쾌락의 강도와 지속성, 양, 확실성, 일어날 시간의 간격을 측정하여 개인적 행복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벤담의 자유주의에 따르면 정부가 제정하는 법률의 가치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에 미치는 그 영향에 의해 정당성이 평가되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인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 의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의 합리적 개정을 위한 운동을 벌였고 19세기 영국의회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했다.
4.2 밀(1806-1873)
벤담의 지지자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적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밀은 벤담의 자유주의에 윤리적 성격을 첨가시켰다. “만족한 바보 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낳다”는 그의 격언은 도덕적 자유주의의 특징을 잘 표현해 준다. 즉 벤담의 자유주의가 이기주의에 토대를 둔다면, 밀의 자유주의는 자유와 책임 등의 가치를 행복의 기본적인 속성으로 규정한다. 밀을 통해서 자유주의는 도덕적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단지 효율적이기 때문에 추구해야 할 가치나 규범이 아니며 그 자체로 지켜야할 근본적 가치이다. 따라서 밀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 토론의 자유,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자유 등을 자유주의 철학으로 구체화했다. 그의『자유론』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나의 자유가 소중함을, 그리고 다수의 횡포에 의해 자유가 무시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밀의 규범적 자유주의는 20세기의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롤즈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5. 사회비판주의 : 하버마스(1929- )
2차대전과 나치즘의 충격을 통해 사회현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하버마스는 그의 멘토였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전통을 이어 정치, 경제, 군사적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적 사회이론에서 그의 철학을 시작한다. 그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20세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회 모두에게서 나타났던 이성의 도구화로부터 원래의 비판적 기능을 되살리는가의 문제였다. 특히 그는 부르조아 법치국가의 공론이 본래의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관료국가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공론이 양면성을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공론 영역은 한편으로는 합리적 이념이라는 규범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공론의 이러한 양면성에서 출발하여 사회해방의 대안으로써 ‘의사소통행위이론’(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를 제시한다. 그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사회구성원의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상호이해를 추구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주장이 (1) 객관적으로 타당한 진리인가, (2) 세계 현실에 대해 정당한가, (3) 주관적 진실성이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의 기준은 현실사회의 실제 의사소통을 판단하는 규범적 기준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이런 도식적 틀에 의한 합리적 기준은 실제적인 의사소통에 잠재해 있는 욕구와 권력의 다양성 때문에 현실 사회의 문제해결에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비판받고 있다.
6. 나가는 말
지금까지 서양철학사에 나타난 공공성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서양 정치사상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서양정치사상에는 여기서 검토한 5가지 유형 이외에도 공화주의(키케로, 해링턴, 몽테스키외), 마키아벨리즘(마키아벨리), 사회주의(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파시즘(무솔리니, 히틀러), 공동체주의(왈쩌, 샌들, 테일러) 등이 있다. 이 논의를 전개하면서 느꼈던 점은 공공성의 문제가 해당되는 범위가 광범위하고 다양한 철학마다 서로 다른 내용을 제시하고 있기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공공성의 문제는 결국 정치제도와 시민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출처 : 공공신학(Public Theology)세미나 4
철학에서 본 공공성의 문제
-일시 _ 2008. 4. 26(월) 오전 10시~12시
-장소 _ 여전도회관 8층 회의실
-주최 _ 기독교윤리실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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