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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대 안토니우스 Antonius (251 ~ 356)】「 수도자의 아버지', 수도원 운동의 개척자 」
돼지와 종으로 묘사되는 수도자의 아버지,. 최초의 은수자.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오 아빠스(Saint Anthony of Abate)기념일 =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모든 수도승의 원조’, ‘사막의 성인’, ‘수도생활 역사의 시조’로 불리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이집트 출신으로 20세 때에 부모님을 여의고 복음적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고향을 떠나 사막 생활을 하여 '사막의 교부'라고도 불린다. 사막에서의 은둔 생활 중에 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영성 생활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제자들에게 ".항상 그리스도를 호흡하라.”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항상 그리스도를 호흡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강조한 이 말은 ‘세상’의 가치를 거슬러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치열하게 복음을 살았던 성인의 가르침을 대변한다.
금욕 생활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으로 무장했던 성인은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유혹과 싸우며 평생 주님만을 따랐다. 이런 영적 여정은 물질·세속주의 유혹이 넘치고 신앙이 흔들리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을 맞아 그의 삶과 영성을 살펴본다.
성 안토니오에 대해 알수 있는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295 혹은 300~373)가 쓴 「안토니우스의 생애」 때문이다.
성인의 일대기와 금욕생활에 대한 이상적 모델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책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수도생활에 대한 최초의 문헌으로, 교회에 수도생활을 알리고 그 이상을 확산·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책이 나오자 사람들은 안토니오 성인을 모범으로 삼고 그를 따라 살고자 사막으로 갔다. “안토니오와 더불어 수도생활 역사가 시작된다”는 말은 성인이 책에 기록된 최초의 수도자이기 때문에 나왔다.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집필한 아타나시우스 대주교는 성인을 사막에서 싸운 ‘하느님의 사람’(vir Dei)으로 묘사했다.
책 후반부에서 그는 성인이 “저서들 때문이나 학문의 지혜나 어떤 기술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타고난 영적 신심 덕분에 유명해진 것”이라고 전했다.
부르심에서부터 시작해 성인의 일생은 ‘말씀’에 기초한다.
자기 보화가 하늘에 있음을 확신해 주님을 따랐고, 늘 성경을 신뢰하며 거기서 영감을 받아 악령과 싸울 힘을 얻었다.
성경에서 삶의 양식을 배웠으며, 영들의 식별 기술을 깨우쳤다. 제자들에게도 성경의 계명들을 마음으로 배우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유혹을 극복했다.
기도는 하느님 말씀에 젖어 드는 것이었고,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그의 참된 금욕 수행은 지속적인 기도, 성경에 대한 경청이었다. 아타나시우스 대주교는 “안토니오의 기억이 성경책을 대신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철저하게 홀로 머물며 실천한 은수생활에 대해 성인은 “물고기가 물기 없는 곳에 오래 머무르면 죽는 것처럼, 수도승이 암자 밖에서 지체하거나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머무르면 하느님 안에서의 깊은 평화를 빼앗긴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교부들이 고독과 침묵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것을 영성생활의 근본으로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막에서 그가 추구했던 고독은 사람들로부터의 도피도, 고립도 아닌 하느님 얼굴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수덕생활은 죽을 때까지 매일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날마다 일어나면서 저녁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저녁에 잘 때면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자”면서 “우리 목숨은 확실하지 않고 주님의 안배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는 동안 두 번에 걸친 알렉산드리아 방문은 수도생활과 교회와의 관계 발전 면에서 중요한 함의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평생 은수생활을 했지만, 교회 요청이 있을 때 기꺼이 세상 바깥으로 나왔던 모습은 ‘수도생활이 교회 제도와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하나의 삶’이라는 방향을 보여준다.
사람에게서 ‘덕’을 체득하는 데에 열심했던 성인의 됨됨이는 ‘모든 것은 다 스승’이라는 교훈을 얻게 하고, 심지어 나쁜 것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음을 생각게 한다.
「사막의 안토니우스」(분도출판사/2015)를 번역한 허성석 신부(로무알도·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는 “안토니오 성인의 삶은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라 복음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됐다.
현대의 신앙인들에도 중요한 뜻을 지닌다”며 “수도승 생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수도승 생활 운동뿐만 아니라 금욕 생활에 대한 전문 용어론과 금욕적인 수도생활 운동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의 부유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릴 때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은둔지를 떠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아리우스 이단의 축출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으며 자신의 전 생애를 은수 생활과 수도 생활에 바쳤다. 그의 행적은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성 아타니시오가 「안토니오의 전기」를 썼다.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수도 생활의 창시자로 공경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으로 은수자들을 한데 모아서 다소 산만한 형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들에 대하여 어떤 권위를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고독하고 한적한 독수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251년 이집트 중부 코마나(Comana)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우스는 20세 되던 해에 부모가 사망하였는데, 하루는 부자 청년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우선 자기에게 남겨진 유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남부 이집트의 고향 근처 산을 찾아다니면서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독수 생활을 시작하고, 기도와 연구 및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을 했다. 그러다가 그는 맹렬한 영적, 육적인 유혹으로 한 동안 고생하였으나 끝내 이를 극복한 뒤에 그 주위에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한다.
312년에 그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빈 무덤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고 15년 동안 노동과 기도 그리고 성서 읽기에 전념하며 엄격한 독수 생활을 했다. 그 후 나일 강 끝에 자리한 피스피르(Pispir) 산에 들어갔다가 텅 비어 있는 성채를 발견하고, 입구를 막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약 20년 동안 또다시 독수생활을 했다.
이 때 그의 뛰어난 성덕과 수많은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듣고 여러 가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성 안토니우스를 찾아와서 충고를 청하고 또 어떻게 사는지 살피러 왔다.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은수자들의 집단이 여러 곳에 생겨났는데, 그 중 니트리아(Nitria)와 스케티스(Scetis)가 유명하다. 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각자 움막에서 살면서 주일이나 축일에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영적 스승인 성 안토니우스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성 안토니우스는 독수자로서 더욱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홍해 근처에 있는 콜짐(Kolzim)이라는 높은 산으로 들어가 은둔소를 정하고 기도와 수덕 생활에 열중하였다. 성 안토니우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옹호해 달라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의 청을 받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일 외에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만일 전승이 옳다고 한다면 그는 356년 10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성 안토니우스는 생전이나 사후나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에 대한 공경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종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성 안토니우스는 '사막의 교부', '모든 수도자들의 원조', '은수자들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의 휘장으로 묘사되는 그림은 돼지와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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