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폐(agapē)와 에로스 [ ρως ]의 사랑
◾아가폐(agapē) : 그리스도가 말한 사랑의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무조건·일방적인 절대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같은 그리스어인 '에로스'가 대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른바 자기 본위의 사랑을 의미하는 데 비하여, 대상 그 자체를 사랑하는 타인 본위의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나타내는 말로서, 신약성서의 《마태오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 《고린토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amor(사랑), caritas(자애) 등의 단어이다. 또한 3∼4세기경 그리스도교도들이 형제적인 결합과 사랑을 표하며 가난한 자, 특히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여인을 대접하기 위하여 각 가정에서 베풀던 만찬(晩餐:愛餐)의 뜻도 있다.
◾아가폐(agapē) : 신약 성경에서 '사랑'을 가리키는 말 중에 대표적인 단어. 죄 아래 있는 인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그중에서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롬5:8)과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써 하나님께 응답하는 사랑(롬8:28; 고전8:3; 살후3:5) 및 그 사랑을 본받아 인간에게 행하는 성도의 사랑(요13:34; 롬13:8; 골3:14)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으로 일컬어진다(요일4:8). 즉,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이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믿음으로 영접한 자에게 그 사랑을 소유하는 기쁨을 주시고, 그 사랑을 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이 나타내 보인 그 사랑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사랑이요(롬8:31-39), 우선적으로 남의 필요와 관심사를 채워주는 진실되고 선한 의지이며(고전10:33), 하나 됨을 이루는 유일한 비결로서 그것만으로도 영원한 관계를 지속시켜 준다(요13:35; 17:21-23; 엡3:17-18). → '사랑'을 보라.
◾아가폐(agapē) : 초대 교부들이 즐겨 사용했던 표현으로,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과 희생을 기념하는 떡(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 의식과 가난한 사람들이 초대되는 친교의 식사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자 사랑의 식사(Agape meal)라는 뜻으로 '애찬'(愛餐) 또는 '아가페'라 칭하였다. → '애찬', [교회 일상 용어] '아가페'를 보라.
◾에로스 [ ρως ] : 고대 그리스의 사랑의 신(로마의 쿠피도Cupīdō, 아모르Amor). 헬레니즘 시대에 <영혼>의 뜻을 지니는 프쉬케(ps
chē) 관념과 결합되어 후에 에로스는 아름다운 청년, 프쉬케는 그의 사랑을 구하여 괴로워하는 젊은 여성으로서 인격화되며,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의 『사랑과 마음』(Amor kai Psȳchē)으로 대표되는 동화적인 소재로 되었다.
에로스는 보통명사로서도 '사랑'을 의미하며, 아가페(agapē)의 맞짝개념으로서 사용된다. 에로스가 충동적인 성애의 쾌락을 나타내는 데 반해, 아가페는 유대-기독교적인 사랑, 즉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의 신에 대한 사랑, 인간 상호간의 형제애를 의미한다. 특히 사도 바울, 야고보, 요한 등에 의해 기독교에서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중요시되어 에로스적인 성애는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다른 한편, 헤시오도스가 에로스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결부시킴과 동시에 우주의 혼돈을 질서화하는 원리 · 카오스로부터 생겨난 원초적인 힘으로 간주했던 것에서 에로스는 <삶>을 나타내는 개념이 되어 타나토스 즉 <죽음>의 개념과 대립한다.
사상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두 쌍의 맞짝개념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의 충동 이론과 결부된 과정이 중요하다. 프로이트는 우선 「성욕론에 관한 세 논구」(1905)에서 에로스의 성애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생물의 2대 본능으로 간주되는 개체유지를 위한 <자아 내지 자기보존 욕동>(Ich-oder Selbsterhaltungstrieb)과, 종족보존을 위한 <성 욕동>(Sexualtrieb)을 내세웠다. 이러한 '굶주림과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도식에서는 자아가 성욕에 대한 방위에 필요한 에너지의 본질적인 부분을 자기보존 욕동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후 자기의 이론에 의심을 품은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의 피안」(1920)에서 초기에 내세운 두 개의 욕동이 에로스라는 <삶의 욕동>(Lebenstrieb)에 포섭되는 것이라고 하여 새롭게 내세워진 <죽음의 욕동>(Todestrieb)과 대립시킨다. 이것은 말하자면 '사랑과 불화'라는 엠페도클레스적인 도식인데, 그의 후기 이론에서는 에로스가 단지 성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생명 일반이 지니는 성장 · 통일 · 발전 등을 나타내며, 프로이트 자신은 구두로만 사용한 타나토스라는 말은 죽음뿐만 아니라 파괴 · 통일 이전의 무기적(無機的) 상태로의 회복도 의미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고방식은 <정념> 일반을 비반성적 의식으로 간주하는 사르트르에 의해서는 부정된다 하더라도, "감정, 쾌, 욕망, 사랑, 에로스를 (······) 살인 바의 <존재>의 차이화"[Ⅵ 324]로 생각하는 후기 메를로-퐁티적인 시점(視點)에서 다시 파악될 가능성은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