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목요일 맑음
어제 밤 8시에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온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그냥 길을 달리고 있다. 산도 보이고 민가도 가끔 보이지만 특이해 보이지 않는다. 약간 언덕을 올라가듯이 계속 올라간다. 오전 7시 30분에 드디어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밤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산크리스토발은 해발 2120m에 위치해 있어서 고원기후가 피부에 신선하게 느껴진다. 투명감이 있는 공기 탓인지 시가지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인구 7만 명이 넘는 곳,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도시이지만 그 역사는 깊다. 이미 식민지 시대인 1528년 스페인인 마라리에고스에 의해서 이주가 시작되어 콜로니얼식의 시가지가 정비되었다. 그리고 1893년 툭스틀라구티에레스로 이전하기까지 이곳이 치아파스 주의 주도였다. 물론 지금도 아름다운 교회나 아치가 시내 곳곳에 남아있다. 멕시코의 콜로니얼식 아름다운 도시산크리스토발,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다른데 있다. 주변에는 옛 생활 그대로 영위하는 인디오 마을이 많으며, 산크리스토발은 그들이 교역을 하는 곳이 되고 있다. 시내에서는 선명한 민속의상을 입은 인디오들이 오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어서 콜로니얼 속에서도 토속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산크리스토발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여행의 주목적을 민예품 수집에 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지방 인디오들이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민예품들은 멕시코에서도 손꼽힌다. 선명한 원색을 사용한 복잡한 모티브의 직물이나 자수, 이 땅의 향토예술에 매혹되어 몇 주간, 혹은 몇 개월씩 이곳에 머무는 유럽의 젊은 예술가들도 있다고 한다. 또 과테말라 국경이 가깝기도 하여 과테말라의 민예품도 입수하기 쉽다. 구원기후인 산크리스토발은 아침, 저녁으로 썰렁하다. 우리의 1차 목표는 수미데로 계곡을 방문하는 것이고 내일은 과테말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일단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숙소를 찾기로 했다. 한 젊은 커플이 운영한다는 카사무를 찾기로 했다. 5de mayo 187번지라는 주소를 들고 아내와 부지런히 찾았다. 쉬울 것 같았는데 좀 헤매다가 겨우 찾았다. 굳게 닫힌 대문 옆에 명함 한 장이 붙어 있는데 한글이 보인다. ‘벨을 3번 눌러 주세요.’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만나서 함께 여행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젊은 커플이 운영하는 숙소다. 먼 이국땅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니 반가웠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기본적인 라면, 된장, 고추장도 구입 할 수 있다. 주변 여행 예약이나 과테말라로 가는 차편도 주선해 준다. 자동차로 세계 일주를 하던 부부가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로 해서 머물렀단다. 히피와 원주민, 그리고 여행자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곳,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커피 향 가득한 카페들이 가득해서 이곳이 맘에 들었단다. 카사무는 ‘번창하고 풍요로운 집’이라는 뜻이란다. 우리는 1층에 있는 더블룸을 250페소에 묵기로 했다.
우리는 수미데로 계곡 투어를 부탁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바로 태우러 온단다. 250페소에 예약, 간단히 세면을 하고 계곡투어를 준비했다. 투어는 9시에 출발이다. 비상식량 누룽지를 끓여먹고, 과테말라 입국 방법을 듣고 과테말라의 파나하첼 까지 300페소에 예약을 했다. 칸쿤에서 쿠바 들어가는 요령도 설명해 주었다.(안티구아까지는 400 페소) 9시에 벨이 울리고 우리는 투어미니버스에 탑승했다. 투어버스는 현대에서 만든 스타렉스다. 새차다. 시내를 돌며 손님을 가득 태우고 출발했다. 차는 계속해서 내려 달려간다. 산크리스토발이 고지대에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먼저 도착한 곳은 치아파주의 Corzo라는 마을이다. 골목에 차를 세우더니 이곳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을 준단다. 마을의 중심인 소깔로에는 축제를 열었던 광장이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조형물과 시계탑이 중심을 잡고 있는 공원인데 주변에는 식당과 시장이 둘러서 있다. 시계탑의 시계는 고장 나서 멈추어 있지만 탑은 아주 예쁘다. 이곳에는 1월에 축제가 있다. 파라치코의 춤이라는 것이 유명한데 여자들은 검은색 드레스에 크게 수놓은 꽃장식이 화려하다. 거기에 진한 화장을 한다. 남자들은 망토에 검은 헐렁한 바지에 장식을 달고 머리에 솜털 모자를 쓰고 가면도 쓴다. 시장을 돌며 옥수수떡도 사 먹고 땅콩강정도 사먹었다. 오렌지와 물을 샀다. 축제에 쓰는 가면이 걸려있는 건물도 보인다. 시내버스도 투박하다. 벤츠에서 나온 버스인데 못생긴 강아지 불테리어를 닮았다. 앞모양이 장갑차 같다. 작은 마을 이지만 예쁘고 알차보인다. 시간이 되어 투어버스 있는 곳으로 갔다. 버스 기사는 우리가 1등이란다. 통통하고 곱슬머리에 곱슬 수염이 있는 검게 그을은 얼굴이 멕시코인 답다. 우리는 배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10여명 한 배에 탄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오르니 맘이 설렌다. 강바람이 시원했지만 햇볕은 따갑다. 배는 강을 달리기 시작한다. 아치 형태의 다리 밑을 지나가면서 점점 주변의 산들이 높아진다. 수미데로 계곡은 수력발전을 위해서 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명소다. 높이 800m의 수직계곡에 길이 25km로 악어, 검은 새(독수리), 이구아나, 펠리컨 등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고 멋진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2003년부터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되었단다. 가마우지 떼들이 달리는 배와 함께 경주를 한다. 오른쪽 산언저리에는 선인장들이 나무를 대신해서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데 멋지다. 독수리 모양을 한 검은 새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암벽 가까이에 배를 세웠다. 크기는 닭 만한데 떼를 이루고 바위 언덕위에 모여 있다.
다시 달려간다. 양 옆에 바위 벼랑이 나타난다. U자 계곡 모양이다.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에서 배타고 구경하던 협곡과 느낌이 비슷하다. 높이가 800m 정도란다. 고대인들, 아즈텍인들이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할 때 자살했던 곳이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227m로 자살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이곳은 거의 4배에 가까우니 떨어지면 죽는구나. 죽는데 한참 걸릴 것 같다. 상상을 하는데 배는 계곡 가까이에서 서행을 한다. 악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모형 같다. 잠시 후 기어서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신기하다. 물에 빠지면 악어 밥이 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건너편 강기슭에도 악어가 있다. 배를 운전하는 가이드는 악어를 잘도 찾는다. 나무위의 원숭이, 이구아나도 찾아서 가리켜준다. 지겨울 정도로 또 달려가니 동굴에 검은 마리아상이 있는 곳이다. 사다리도 있다. 동굴 속에 모여든 나무 조각들을 비롯한 쓰레기들이 꼭 미술품 같다. 통일성을 보여준다. 다음 방문한 곳이 떨어지는 실 폭포로 인해 만들어진 이끼다. 꼭 거인 아주머니의 초록색 드레스 모양이다. 물방울이 바람에 날려 커텐이 날아가는 것 같다. 달리며 즐기는 가운데 끝점에 도착했다. 댐이다. 댐을 만드느라 고생하거나 희생된 사람들을 기념하는 동상이 보이고 CFE라는 알파벳이 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배가 한 척 우리 배에 붙는다. 과자와 음료수를 파는 배다. 이제 돌아가는 일이 남았다. 정말 멋진 계곡이다. 돌아갈 때는 좀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시원한 바람과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이 좋다. 손님들이 많이 없나보다. 빈 배들이 많이 보인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다시 우리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 스타렉스는 계속 올라간다. 산크리스토발이 참 특이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깔로에서 내렸다. 이제는 시내 투어다. 이곳은 흰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소깔로 중심에도 흰색 조형물이 있고 옆에 있는 정부청사도 흰색이고 대성당도 흰색에 노란 색과 붉은 색이 칠해져있다. 거리에는 차량도 다니고 옛날 집에 지붕이 기와로 인상적이다. 보행자 거리가 소깔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4방향으로 만들어져 있어 걷기 좋다. 가이드북에 시내 탐색을 겸한 콜로니얼 교회 순례라는 제목이 소개되어 있다. 멕시코 여행에서 교회건물에 지겨움이 있는 사람도 포기하지 말라고 적혀있다. 우선 도시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콜로니얼 시대의 교회를 살펴보는 것이 좋단다.
먼저 소깔로에 붙어있는 대성당이다. 1538년에 대성당으로 승격한 바로크 건축의 대사원 안에는 인디오 화가로 유명한 안드레스 데 마사리에고스의 작품이 있어 주목을 끈다. 1528년 스페인 정복자 마사리에고스에 의해 산크리스토발이 건설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화가는 누구이고 정복자는 또 누구인가 이름이 같구나. 헷갈린다.
그 다음 찾은 곳이 과달루페 사원이다. 동쪽 끝에 있는 교회다. 긴 보행자 도로를 걸어간다. 층계를 예쁘게 색칠해 놓았다. 흰색과 파란 색을 규칙적으로 칠해서 오르고 싶도록 해 놓았다. 올라가서 보니 교회보다는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산크리스토발 시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와 더욱 좋다. 고층 빌딩이 없는 평평한 마을에 붉은색 기와지붕이 인상적이다. 언덕 계단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앉아있다. 교회에서 사진을 찍고 보행자 도로로 내려온다. 대구, 부산 선생님이 머문다는 호스텔 카멜로스도 이 거리에 있다.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내는 걸어도 지겹지 않고 재미있다. 색깔도, 사람들도, 간판도 모두 구수한 커피향이 나는 것 같다.
이제는 서쪽에 있는 교회를, 산크리스토발 교회를 찾아간다. 먼저 만난 곳은 카르멘 사원이다. 산크리스토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그리 보통의 교회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지금까지 보아온 교회와는 어딘가 분위기가 다르다. 이 교회는 멕시코 보다는 과테말라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란다. 수도원 냄새가 난다. 1652년에 증축된 입구 아치의 곡선 등은 멕시코의 교회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내부 정원에는 이름 모를 동상도 있다. 산크리스토발 교회를 찾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것 같다. 흰색과 붉은색을 규칙적으로 칠해 놓은 계단을 올라간다. 중간에는 꼬마들이 돌을 던지며 장난치고 놀고 있다. 좀 빈민가 같은 분위기다. 교회 정상에 오르니 시원하지만 썰렁한 분위기다. 차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도로가 나선형으로 이어져 있다. 교회문은 굳게 닫혀 있다. 교회에 올라서 보니 시내가 잘 보이고 산크리스토발이 고원 지대에서도 분지 형임을 알 수 있다. 교회를 등지고 서서 오른편 남쪽 부근에는 파란 색 칠을 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다시 내려와 소깔로를 향했다.
거리에는 아스팔트도 아니고 블록도 아닌 포석이 깔려있다. 원주민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화려한 옷감을 잔뜩 안고 있는 모습이 많다. 이제는 시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장은 북쪽 방향에 있다. 시장은 큰 건물 안에 있는 상설 시장과 그 옆에 좁은 골목에 비좁게 들어서 있는 민예품 가게들로 이어져 있다. 식품과 일용품 시장으로 구분되는데, 채소, 과일이 많고 양도 풍성하다. 상설시장 이름은 Jose Castillo Tielemans 다. 다른 도시의 시장과 다를 것이 없지만 산크리스토발에서는 상설 시장 주위에 인근 마을에서 온 인디언들의 노점 시장이 펼쳐져 있다. 주로 민속 공예품들이다. 우리 눈에는 망고를 비롯한 과일과 고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가 더 싱그럽게 보인다. 망고와 빵을 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초도 보이고 허브 종류도 잔뜩 쌓여있다. 좁은 시장 골목을 다니는 것도 재미있다. 마늘, 감자가 제일 많아 보인다. 이 시장은 산토 도밍고 교회와 붙어 있다. 규모로 보면 산크리스토발에서 가장 큰 교회로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결과 커져서 이상한 구조가 되었단다. 교회 외부 정면의 모습이 멋진 부조로 섬세하고 우아해 보인다. 내부는 소박하다.
기념품 가게를 둘러본다. 인디오들의 색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재미있다. 동물 모양이 많고 섬세한 것이 인상적이다. 트럭을 개조한 투어버스 지나간다. 산크리스토발에서 제일 생동감이 넘치는 지역이다. 해가 진다. 날이 어두워지고 불이 하나 둘 들어온다. 거리에 옷감을 파는 원주민 아주머니들은 돌아갈 시간이 아닌가 보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있다. 꼬마들이 귀엽다.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 소깔로에서 대구 선생님을 만났다. 그녀가 묵고 있는 숙소 호스텔 카멜로스에 함께 갔다. 거기서 부산 선생님도 만났다. 모녀가 함께 여행 중이다. 아내는 여기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잘 나와서 좋아했다. 간식을 먹으며 서로의 여행담을 나누다가 늦은 밤에 숙소로 돌아왔다. 옥상 샤워장은 수건을 걸 데도 없고 좀 지저분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샤워를 했다. 내일 아침 6시 30분에 과테말라 파나헤첼로 이동하기로 했다. 저녁에 침대에 누우니 춥다. 옷을 잔뜩 껴입고 누웠다. 숙소에 손님이 별로 없나보다. 조용하다. 손님이 많아야 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