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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갤러리는 "장 뒤뷔페"展을 오는 10월 29일(금)부터 11월 22일(월)까지 본점 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20세기가 낳은 놀라운 예술가 장 뒤뷔페(1901~1985)의 우를루프 연작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뒤뷔페는 '엥포르멜'이라 불리는 프랑스 미술의 선구자로 기존의 예술전통을 거부하고 다양한 예술실험과 독창적 스타일을 통해 당시 서구 미술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중 우를루프 연작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교육받은 미술 실력이 아닌 인간 본능에 충실하며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와 즐거움을 추구했던 뒤뷔페의 대표적 작업입니다. 일상의 인물, 오브제들을 주제로 하였지만 그 형태를 알 수 없을 만큼 추상화된 표면에 검정 테두리와 푸른색과 붉은 색으로 형태를 채워넣은 우를루프 작업들은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무한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우를루프 연작을 통해 20세기 위대한 예술가 장 뒤뷔페의 순수한 예술혼과 무한한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 전시내용
신세계갤러리는 개점 80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장 뒤뷔페"展을 오는 10월 29일(금)부터 11월 22일(월)까지 본점 신세계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장 뒤뷔페는 프랑스 미술교과서에 등장 1순위를 차지할 만큼 피카소와 더불어 프랑스가 가장 자랑하는 작가이자,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프랑스 포도주 도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장 뒤뷔페는 10대에 야간 미술학교와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잠시 미술교육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포도주 도매상으로 가업을 잇다가 41세라는 늦은 나이에 화가로 데뷔한다. 시작은 늦었지만 85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끊임없는 혁신과 실험을 단행하였고 유럽과 미국의 현대미술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뒤뷔페는 2차 대전 이후 기존의 미술의 관습과 고정된 미의식에 맞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비판과 각성의 목소리를 내었고, 이러한 성향은 어린아이나 정신병자의 그림처럼 교육받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 가치를 추구하는 미술(아르 브뤼 Art Brut)로 표출되었다. 이번 전시는 장 뒤뷔페의 작업 중 '우를루프(L'Hourloupe)'양식으로 구분되는 작품 2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를루프란, 불어로 으르렁거리는 늑대 소리를 의미하지만 작품과 특별한 연관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길들여지지 않은 그대로의 야생성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검은 테두리 안에 흰색, 푸른색, 붉은색의 형태와 색으로 채워진 우를루프 양식은 뒤뷔페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볼펜으로 무심히 그렸던 낙서에서 시작되었으며, 장 뒤뷔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연작으로 미술계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를루프의 주제는 일반적인 인물이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 풍경들이지만 이런 오브제들은 그 형태를 알 수 없을 만큼 비정형화/추상화되어, 서로 세포처럼 조립되고 증식되면서 우를루프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예술은 눈이 아니라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했던 뒤뷔페의 말처럼 우를루프 연작에서는 무엇을 재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드로잉에서 출발하여 회화, 입체조각 그리고 공공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형태로 어떤 규정도 구속도 없이 뒤뷔페만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휘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장 뒤뷔페는 일상의 오브제, 인간, 장소와 같은 경험이 어떻게 생성되고 축적되는지 재발견하게 해주며 우리가 어렵고 난해하게만 생각했던 예술을 보다 친근하고 즐겁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도한다. 삶과 연결된 예술, 소수가 아닌 대중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지향했던 장 뒤뷔페의 우를루프 세계에 대한 이번 전시가 관람객을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는 즐거운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리라 기대한다. 본 전시는 본점 신세계갤러리 전시 이후 부산 센텀시티 신세계갤러리와 광주 신세계갤러리로 순회한다.
■ 전시서문
원시적 감각으로 도시를 느끼다
이 주 은 (성신여대 교수, 미술사학자)
장 뒤뷔페는 토론과 글쓰기를 즐겼고 방대한 원고를 남긴, 미술작품으로 평가 받기 이전에 이미 문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순수한'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그는 스스로 생각을 비워내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물론 아주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작업에 몰입하고 있을 때에는 관념적이기보다는 천진난만한 원시인 같은 상태가 되려고 애썼다. 뒤뷔페가 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42년경에 미술계에서 '순수'하다는 것의 의미는,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미술이 삶의 흔적으로부터 떨어져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뒤뷔페는 미술이 철저히 생존과 얽혀야 한다고 믿었다. 진정 순수한 미술이란 문화적 시선에 의해 방해를 받거나 세련된 재주를 거치지 않은 채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시인들이 동굴 벽을 긁어 그림을 그린 것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듯, 미술이란 인간이 남긴 분비물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특징지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분출하고 싶은 일종의 배설작용으로 미술을 파악한 것이다. 프랑스의 아브르(Havre) 지방에서 포도주 도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뒤뷔페는 젊은 시절 두 번이나 화가의 길을 생각해 보지만, 확고한 예술관이 서지 않아 갈등 만 거듭하게 된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그를 구속하여 진정한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이유였다. 미술을 완전히 잊기로 마음먹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 와인 사업에 몰두하다가, 41세라는 느지막한 나이에 다시 본격적으로 미술에 뛰어 들었다. 뒤뷔페는 그 시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심지어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고 나서야, 완전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미술작업과 더불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거칠고 투박하며 야만적인 예술을 총망라한 '아르 브뤼(art brut)'의 개념이다. 그는 예술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작품을 연구하면서, 예술은 어떤 가르침이나 선입견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은 아름답게 묘사되는 일이 드물다. 아름다움은 조화와 매끄러움이 아닌 불완전함에 있다는 자신의 미적 관점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예술은 섬세한 기교가 아닌 재료자체가 내는 감수성, 즉 마티에르 효과에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며, 재료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상상을 고정시켰다. 미술에 대한 뒤뷔페의 입장은 사실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명에 대한 허무주의에서 유래한 원초적 세계로의 눈돌림은 일찌감치 19세기 후반에 고갱에게서 두드러지며, 20세기 초반에 이르면 원시적 유토피아를 모색하던 야수파의 마티스라든가, 원시성을 통해 보다 진솔한 인간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독일표현주의 작가들로 이어지는데, 표현방식은 달라도 예술적 입장에 있어서는 이들이 뒤뷔페의 선구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뒤뷔페 스스로도 자신의 작업이 다른 개념의 미술과 전혀 병치될 수 없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1940-50년대에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추상이라든가 모던아트의 개념까지도 섭렵하겠다는 의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추상미술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은 늘 추상적인 것이다." 뒤뷔페의 작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은 <파리 서커스>라는 작품에서부터다. 1960년대의 파리는 어두운 전쟁의 그림자가 걷히고 점차 활기를 띠었으며, 그런 배경 속에서 그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색채와 움직임, 그리고 오밀조밀한 형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티에르에서 영감을 얻은 단색조의 엄숙한 분위기를 띤 과거의 작업은 밝고 경쾌한 농담조의 그림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특성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우글거리는 군중을 즐겼고, 개별 낱말의 의미를 포착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음을 도시를 이루는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엉키고 맞물려 풀릴 줄 모르는 거리의 교통과 어지러운 불빛을 마구 뿜어대는 상점의 쇼윈도에 현혹되었다. 1962년부터 뒤뷔페는 드디어 대규모 연작 <우를루프 L'Hourloupe>에 착수한다. 우를루프는 뒤뷔페가 만든 용어로, loup가 불어로 으르렁거리는 늑대의 소리를 뜻하기는 하지만, 작품과 관련하여 특별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이 용어는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성을 그대로 분출시킨다는 아르 브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작품은 검고 두꺼운 테두리가 있으며 흰색과 푸른색, 붉은색의 형태들로 이루어졌는데, 뒤뷔페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볼펜으로 무심히 그린 낙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낙서를 오려서 검은 바탕에 붙이고, 그렇게 제작된 작품은 '우를루프'라는 제목의 작은 책에 삽화로 남았다. 여기에서 뒤뷔페는 하늘도 없고 땅도 없는, 장소가 될 수 없는 밀폐된 공간 속에 늘어선 인간과 사물들을 보여준다. 채워진 공간과 빈 공간, 존재하는 사람과 존재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실체와 그림자를 이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이항들이 분리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이 서로 얽혀지도록 만들어 놓는다. 이는 세상을 둘로 나누어 해석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깨려는 시도처럼 여겨진다. 마치 증식 중인 세포들처럼, 형상들은 중심 이미지도 없이 끝없이 복제되며 방향성도 없이 무한으로 확산되어 간다. 우를루프의 세계 안에 있는 모든 형상은 대량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처럼 서로 닮았으며, 닮은 모두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립식 장난감처럼 서로 끼워 맞추어지듯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뒤뷔페는 1962년부터 1974년까지 이 연작에 매달리는 12년 동안 점차 예술작업을 대량생산 체제로 바꾸었으며, 과슈, 비닐 물감, 채색 폴리스티렌, 채색 레진 등 다양한 기법과 매체를 활용하게 되었다. 연결된 형상들은 핵심은 없지만, 모두 골고루 공통의 에너지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서로 엇비슷하여 아무런 특징적인 기억도 남기지 못한다. 이는 몰개성한 인생들을 말하는 듯하며, 그런 인생들을 둘러싼 다채로우면서도 비슷비슷한 경험들의 축적을 보여주는 기호가 바로 우를루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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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야 이사람 인기 많네 전시한지 얼마 안됐는데 또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