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장,
혜인은 마음이 괴로워진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 나가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다.
그러나 엄연히 가정이 있는 남의 남편이다.
만나야 서로 할 말도 없고 서로의 가슴에 상처만 남길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긴 한숨을 내 쉰다.
아들에게서 자신이 수술을 한 것을 들었을 것이다.
마음 아파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허나 가정이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혜인은 내일 약속이 있는 황경호박사를 생각한다.
한 번쯤은 초대를 해서 식사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번 진료를 받을 때 약속을 잡아 두었던 것이다.
내일이 주말이다.
오전에만 병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시간이 많다는 황박사의 말대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혜인은 고급스러운 한정식 집에 예약을 해 두었다.
젊은 사람들도 아니고 양식집이나 레스토랑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비싸기는 해도 그 정도의 대접을 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생각을 한다.
참으로 자상하고 세밀하게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신 황박사를 생각하면 그 이상의 것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한 아들 은철이를 아끼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며 많은 것에 혜택을 주고 계시는 은사님이시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최대한의 대접을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
오늘 약속이 있으세요?“
주말 아침이 되자 은성이가 묻는다.
“그래, 저녁에 황박사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왜?”
“아, 그러시구나!
아무런 스케줄이 없으시면 제가 데이트 신청을 하려고 했거든요.“
”아구, 그만 두세요.
나랑 데이트 하려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어서 애인이나 만들 생각이나 해!“
“엄마가 내 애인 아닌가요?”
은성이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을 한다.
“싫습니다.
나도 멋진 애인을 만들고 싶거든요.“
“후후후............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가 황박사님을 꼬시는 것 아닌가 몰라?“
“뭐?
호호호............그래 볼까?“
두 모녀의 웃음소리는 아파트가 좁다하고 울려 퍼진다.
“황박사님도 혼자 살아가고 계시다는데 두 분이서 서로 사귀면 좋겠네요.”
“뭐?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엄마!
이제 엄마도 행복해져야 할 것이 아닌가요?
엄마는 아직 아름답고 예쁜데 재혼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은성이는 진지하게 말을 한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엄마는 절대로 재혼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 아빠 이외에는 더 이상의 남자는 없다.“
혜인은 강한 부정을 한다.
“엄마!
아빠가 엄마를 배신했는데 아직도 아빠를 잊지 못하고 계신 것인가요?“
”은성아!
엄마는 아빠가 배신을 했다고 해도 미워할 수가 없다.
아빠는 내 아이들의 아빠이고 엄마의 첫사랑이다.
아빠가 엄마를 배신했다고 해서 엄마마저 아빠를 배신할 수는 없다.“
“엄마!
그런다고 누가 열녀문을 세워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이혼과 재혼이 아무런 흠도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엄마가 희생을 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갈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성이는 진심으로 엄마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아직 엄마는 젊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엄마다.
황경호박사님 정도의 사람이라면 엄마가 행복해지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은성이다.
엄마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황경호박사님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엄마를 대해 오셨다는 것을 은성이는 몇 번을 느끼고 있었다.
“은성아!
엄마는 너와 은철이만 있으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나 보다는 이제 너희들이 짝을 만났으면 좋겠다.
엄마도 이제는 다른 여자들처럼 사위도 보고 며느리도 보고 손자와 손녀들을 보는 재미로 살아가고 싶다.“
”엄마!
엄마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할머니를 일찍 만들어 드리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은성이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어 나간다.
마음으로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재혼을 바라고 있지만 막상 엄마가 재혼을 하시겠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은성이는 때때로 엄마의 쓸쓸함을 본다.
무언가 허전해 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온다.
자신이 대신 해 줄 수 없는 그런 외로움을 본다.
자식은 남편을 대신 할 수가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은성이는 황경호박사를 많이 생각해 보았다.
황경호박사라면 엄마하고도 잘 어울릴 것만 같다.
엄마의 마음이 황박사님에게 기울기만 한다면 반대할 마음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엄마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힘이 되어드리고 싶은 은성이의 마음이다.
“엄마!
예쁘게 하고 나가세요.“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 혜인을 보며 말을 한다.
“알았다.
오늘 엄마도 멋진 데이트를 하고 올게!“
“네!
좋은 시간이 되세요.
저 먼저 나갑니다.“
은성이는 엄마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
주말이라고 해도 학원이 쉬는 날이 아니다.
이 상태로 나간다면 학원을 더 늘려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은성이는 모든 것에 깊은 생각을 한다.
학원 운영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학원운영에 대해서도 터득한 것이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이 강사진들이다.
강사진에 의해서 수강생들이 숫자가 바뀌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은성이는 최대한 실력이 강한 강사진들로 구성을 한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강생들이다.
실기와 이론에 강한 강사진들의 수강료가 만만치 않지만 모든 것을 최고로 선택하고 있는 은성이다.
은성이가 프랑스 유학파라는 사실 또한 수강생들이 밀려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은성이는 강사진들을 존중해주고 최고의 대우를 해 준다.
그러기에 강사진들의 변동이 거의 없다.
은성이는 주말이 되어도 사실 시간을 거의 낼 수가 없다.
그러나 엄마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시간을 뺀다.
오늘 은성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학원으로 간다.
저녁이 되어도 엄마 혼자서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업을 한다고 해도 엄마는 늘 이른 귀가를 하신다.
되도록 밖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집에 들어와 이것저것을 하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엄마다.
그런 엄마를 위해서 은성이 또한 밖에서 시간을 거의 보내지 않고 있다.
주말이면 모든 것을 엄마의 스케줄에 맞춘다.
은성이는 아직 이성과의 데이트를 해 보지 않고 살아간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믿을 수 없다는 은성이의 생각이다.
아빠의 배신을 보면서 은성이는 남자들을 믿지 않기로 한다.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엄마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아이를 만들어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은성이는 아빠가 밉다.
참으로 좋아하고 사랑했던 아빠다.
아빠의 그늘아래 참으로 행복하다고 믿었던 은성이는 그런 아빠가 용서가 되지 않고 그로인해서 모든 남자들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은성이는 주말이라고 해도 엄마 생각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일에 몰두한다.
학원을 운영하는 일이 이제는 많이 숙달이 되고 요령도 터득을 했지만 잠시도 방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은성이가 그렇게 학원에 매달려 있는 시간 혜인은 시간을 보면서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늦지 않게 도착을 하려면 나서야 하는 시간이다.
황박사님보다 먼저 도착을 해서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한다.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변두리다.
혜인이는 도착을 해서 시간을 본다.
늦지 않은 시간이다.
주차요원에게 차키를 건네주고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다.
조혜인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해 놓은 곳이다.
“손님이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벌써요?”
혜인은 황경호박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되어 빠른 걸음으로 예약한 룸으로 간다.
노크를 하고 살며시 문을 연다.
황경호박사는 몸을 일으켜 혜인을 맞이한다.
“황박사님께서 먼저 오셨네요.”
“숙녀 분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제가 초대를 한 것인데 제가 결례를 했나 봅니다.”
“조사장!
우리 그런 인사치례를 하지 맙시다.
누가 먼저와 있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닐까요?“
”네!
알겠습니다.“
혜인은 자리에 앉는다.
미리 주문을 해 놓은 메뉴다.
그날의 특별한 메뉴를 예약을 해 놓은 혜인이다.
“조사장!
이런 곳에서 보니 더욱 아름답습니다.“
”별 말씀을요.
이제는 다 늙어가는 여인네의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조사장의 모습이 참으로 정겹습니다.“
”황박사님!
박사님께서도 중년의 중후함과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십니다.“
“허허허.............
그렇게 봐 주시니 참으로 고맙고 기쁩니다.“
황경호박사는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다.
조혜인이라는 여인의 눈에 잘 보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어떻게 하던 이 여인의 눈에 멋지고 근사한 사람으로 비쳐지길 바라는 황경호박사는 지금의 이 자리에 나오기 위해서 며칠 전부터 많은 신경을 써서 가꾸고 나온 자리다.
마치 첫 선을 보는 그런 심정이다.
식사가 나오자 이것저것 주변의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음식 맛을 음미해 가며 식사를 한다.
음식이 입안에 감칠맛이 돌며 매우 뛰어난 식감을 주고 있다.
“이 집의 음식이 아주 특별한 맛이 있네요.”
“네!
음식이 맛이 있기로 소문이 난 집입니다.
이 집에 처음 와 보신 것인가요?“
”네!
처음 와 보는 집입니다.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할까요?“
”그러시군요.
박사님께서는 이런 곳보다는 의학을 연구하시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시고 그런 쪽으로 시간을 보내시다 보면 오실 수 있는 시간도 없겠죠?“
”꼭 그렇다기보다는 폭넓은 대인관계가 부족하다는 말이 되겠지요.“
황경호박사는 겸손을 보인다.
의학계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혜인은 알고 있다.
“그보다 더 넓은 대인관계를 갖기 힘든 것이 아닌가요?
익히 명성이 상당히 알려진 황박사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혜인은 살포시 웃음을 짓는다.
“소문처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의학계에서만 알아준다고나 할까요?“
황경호 역시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혜인을 바라본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늙어서의 재혼문제는.....남자는 결혼관계가 좋고.....여자는 연인관계로 지내는 게....오히려 좋지않을까.....개인적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