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 후원으로 2년 만에 새 성당 완공, 축복식 거행
| ▲ 8월 26일 방글라데시 바냐초르의 새 성당 앞에서 송차선(맨 뒷줄 가운데) 신부와 꼬몰 칸(송 신부 오른쪽) 신부, 본당 청년들이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신부님, 우리 성당이 다시 지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3년 전 어느 날. 방글라데시 바냐초르 성당 앞에서 꼬몰 칸 보좌 신부에게 청년들이 말했다. 성당은 2001년 일어난 폭탄 사건으로 곳곳이 허물어졌지만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교회에서 새 성당을 짓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자들은 보수도 제대로 안 된 성당에서 10년 넘게 지냈다.
“신부님은 한국에서 공부했잖아요. 한국은 잘 사는 나라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청년이 물었다. 칸 신부는 사제품을 받기 전 서울 가톨릭대 신학대에서 6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다. 그때 칸 신부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그래. 내가 여기에 3년 정도 있으면, 새 성당 지을 수 있을 거야.”
3년 뒤. 바냐초르엔 정말로 새 성당이 생겼다.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성전이 지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해결사는 칸 신부가 한국에서 유학할 때 신학교 교수 신부였던 송차선(서울대교구 석관동본당 주임) 신부다. 칸 신부의 사정을 알게 된 송 신부는 새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기금을 후원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가회동본당 주임이었던 송 신부는 곧바로 후원회를 조직해 건축 기금을 봉헌할 회원들을 모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자들에게 방글라데시 교회의 열악한 상황을 알렸다. 그렇게 2년 8개월 만에 새 성당 건축에 필요한 3억 원을 모아 방글라데시로 보냈다.
2014년 10월 첫 삽을 뜬 바냐초르본당 새 성전 공사는 2년 만인 올해 8월 24일 마무리됐다. 그리고 8월 26일 새 성전 봉헌식이 거행됐다. 방글라데시 쿨나교구장 제임스 로멘 보이라기 주교와 보리샬교구장 로렌스 슈브로도 하울라달 주교,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 중인 꼬몰 칸 신부가 참석했다. 한국에서 송차선 신부와 후원 회원들도 함께해 기쁨을 나눴다.
봉헌식 날. 바냐초르본당 신자들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약 660㎡(200평)의 성전이 신자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축복식을 지켜보는 송 신부의 머릿속으로 60년 전 한국 교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1950년대 초 당시 가회동본당 보좌 신부였던 백민관 신부님은 지금의 칸 신부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성당을 지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미군 부대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죠. 그때 미국 가톨릭 교회 신자들 후원으로 성당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
미국에서 한국, 한국에서 방글라데시로 ‘나눔’이 이어진 셈이다. 바냐초르 새 성당에는 한국 은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바냐초르 신자들은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또 그들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글·사진=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스승 송차선 신부에게 도움 청한 칸 신부
“성당을 지은 건 제가 아녜요.”
칸 신부는 몇 번이나 이 말을 반복했다. 바냐초르에 새 성당이 생긴 것은 본인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갑작스러운 한국 유학
10년 전 유학 준비를 하던 칸 신부는 한국이 아닌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줄 알고 있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가 가득했다. 왜 자신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야 하는지, 하느님 뜻을 전혀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냐초르 성당 축복식을 앞두고 칸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하느님이 왜 저를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으로 보냈는지 말이에요. 하느님께서는 저를 통해서 성전을 지으려고 12년을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칸 신부가 바냐초르에 부임한 것이 2013년. 폭탄 사건이 있었던 것이 2001년의 일이다. 보좌 신부로 부임한 첫 본당. 무너진 성당 앞에서 청년들과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사제품을 받기 전 6년 동안 한국에서 보낸 시간.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이 준비하신 일이었다.
“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지으신 집”
칸 신부는 “주님의 집은 주님이 지으신다”고 강조했다. 하느님의 집을 사람이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칸 신부는 현재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유학 비용은 전액 한국 교회에서 지원한다. 한국 교회는 아시아 선교의 일환으로 가난한 지역의 성직자들을 후원하고 있다. 김유리 기자
칸 신부 도움 호소에 선뜻 응한 송차선 신부
“칸 신부, 내가 해줄게.”
3년 전. 가회동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새 성당을 짓고 있던 송차선 신부는 제자 신부의 메일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머리를 굴려 계산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가회동성당 지으면서 후원회 모집
당시 본당은 새 성당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건축에 필요한 돈만 100억 원에 달했다. 건축 기금을 모을 일이 까마득한 상황에서 방글라데시를 도와준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였다.
하지만 멀리 방글라데시에서 사목하고 있는 제자 신부가 보낸 메일에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현지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송 신부는 새 성당 건축에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다. “3억 원이면 지을 수 있다”는 답이 왔다.
“가회동성당을 지으면서 본당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지금의 가회동성당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교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방글라데시 교회로 나눌 때인 겁니다.”
건축 기금을 모금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본당 신자들에게 방글라데시 교회를 돕자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려왔다. 당장 우리 성당도 짓기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도와주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송 신부는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방식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처분’이지만 나에게도 소중하고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것은 ‘나눔’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내어주었듯이 나의 몸처럼 소중한 것을 나누는 게 바로 성체성사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역사,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바냐초르의 새 성당을 위해 건축 기금을 모으면서 크고 작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송 신부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일은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역사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방글라데시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방글라데시에서 다른 곳으로 하느님의 역사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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