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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란 무엇인가 ① ‘연기’와 ‘연’은 구분돼야 |
“연기는 괴로움의 발생구조, 소멸구조”
이번 주부터는 초기불교 교학의 주제인 온.처.계.근.제.연(蘊.處.界.根.諦.緣)의 여섯 가지 가운데 마지막 주제인 연기의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연기(緣起)라는 술어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연기는 빠띳짜사뭅빠다(paticca-samuppa-da)를 중국에서 緣(paticca)-起(samuppa-da)로 직역한 것이다. 여기서 paticca(연)는 prati(~를 대하여)+√i(to go)의 동명사로 문자적으로는 (무엇을) 의지하여라는 뜻이다. samuppa-da(기)는 sam(함께)+ud(위로)+√pad(to go)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함께 위로 간다는 문자적인 뜻에서 일어남 , 발생, 근원을 뜻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緣起로 정착되었고 영어로는 dependent origination으로 정착되고 있다. 한글로는 조건(paticca) 발생(samuppa-da)으로 직역되는데, 그래서 필자는 연기를 ‘조건발생’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면 조건 지워져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연기인가? 예를 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조건으로 하여 아들이 생겨나는데 그러면 이러한 상호관계도 연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초기불전에 의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초기불전에서는 12연기로 정리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만을 연기라 부른다. 그 외의 제법의 상호관계나 상호의존은 연기라 부르지 않고 연(緣, paccaya)이라는 술어로 명명한다.
고.집.멸.도 사성제와 일치
이외 상호관계 상호의존은 ‘연’
초기경에서 12연기는 모두 예외 없이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가, …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老死)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憂悲苦惱)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S12:1 등)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즉 무명, 행부터 생, 노사까지의 12가지 구성요소나 이것이 더 축약되어 나타나는 11지 연기, 10지, 9지 … 2지 연기만을 연기라고 부르고 있다.
연기는 이처럼 무명부터 노사까지의 12연기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것이다. 이 이외의 ‘제법의 상호관계’는 초기불교에서는 절대로 연기라 부르지 않는다. 제법의 상호관계는 아비담마에서 ‘상호의존(緣, paccaya)’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연기(조건발생)’와 ‘연(상호의존)’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불교에서는 연기를 상호의존(연)으로 넓혀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연기하면 화엄에서 말하는 중중무진연기 혹은 법계연기를 떠올린다.
거듭 강조하지만 초기불교에서 연기는 12연기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유전문)와 소멸구조(환멸문)만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괴로움(고)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집)와 괴로움의 소멸구조(멸)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으로 정리되는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제법의 상호관계나 법계연기 등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설하는 24연 즉 24가지 상호의존(24緣)과,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서 설하는 6인-4연-5과와, 유식에서 설하는 10인-4연-5과라는 제법의 상호포섭관계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먼저 연기(조건발생)와 연(상호의존)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각묵스님 /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불교신문 2633호/ 6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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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하시는 말씀이 1. 흔히 '아버지와 엄마에게서 아들이 나온다'.'종이는 나무를 연한다' 하는 것은 '연기'라 하지 않고 '연' 이라 한다. 2. 12연기는 '연'이 아니라 '연기' 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라시는데 저는 어느정도 동감합니다. 다만 '연' 이란 용어대신 '인연' 이라 했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연기와 인연은 다르지요. 그런데 각묵스님의 상좌부 12연기설은 '연기'가 아니라 '연'이 적당할 것 같은데 스님 말씀대로 상좌부 12연기설이 '연기'를 말하고는 있는지 살펴보고자 아래 불교신문에서 발체했습니다. (출처 http://www.ibulgyo.com/archive2007/201007/201007031278151487.asp)
...아비달마에서는 ①무명-②행 즉 무명과 의도적 행위와, ⑧애-⑨취-⑩유 즉 갈애와 취착과 존재를 두 가지 인(因) 즉 괴로움의 원인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③식-④명색-⑤육입-⑥촉-⑦수 즉 알음알이(식)와 정신물질(명색)과 여섯 감각장소(육입)와 감각접촉과 느낌과, ⑪생-⑫노사 즉 태어남과 늙음.죽음을 두 가지 과(果) 즉 괴로움이라는 결과로 이해한다....생략
... 주석서가 아닌 초기경에서 이미 “아난다여, 만일 알음알이(식)가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 정신.물질이 모태(명색)에서 발전하겠는가?”(D15 §21)라고 나타난다. 그래서 주석서들은 12연기의 ③식을 한결같게 재생연결식 즉 한생의 최초의 알음알이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⑪생은 한 생에 최초로 태어나는 것 이외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①무명-②행은 전생을, ③식-④명색-⑤육입-⑥촉-⑦수와 ⑧애-⑨취-⑩유는 금생을, ⑪생-⑫노사는 내생을 나타낸다. 이것이 12연기를 이해하는 기본 출발점이다... 생략
자세한 것은 링크를 누르시고요. 이 인용을 보면 어떠한 존재가 3세에 걸쳐 윤회한다는 것인데 식이 모태(명색)에 들어 육입(감각기관)을 연해 촉수애취유 해서 태어나서죽는다 (생물학적)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게 있습니다. 각묵스님이 위에서 연기는 [ 예를 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조건으로 하여 아들이 생겨나는데 그러면 이러한 상호관계도 연기라고 부를 수 있는가? ] 라며 이런건 연기가 아니라는데 이 글귀는 각묵스님 명색(모태)-육입(감각기관)과 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각묵스님은 언어분석에 괴로움 발생과 소멸을 줄창 외치면서 한국불교 비난 하고자 이 글을 쓴 것 같은데
각묵스님은 '연기''연'의 구분을 통해 오히려 상좌부 12연기가 '연' 이라고 스스로 잘못된 것임을 더 증명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연기와 인연(연)은 구분하면서 자신이 주장하는 12연기가 인연(연)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존재와 법을 구별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 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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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35경>을 보면..
세속의 수법이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고 일어나느니라.
또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니,..
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과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을 [연기의 공식]이라고 학인들이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부처님은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여기까지는 연기법 설명에 대해 이의가 없지요..^^ 그런데..
각묵스님은 연기과 연으로 구분해 연기법은 고의 생성과 소멸로 국한하고, 연이란 일반적인 영역으로 확대하는 해석을 가하고 있는데.. 그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보다는 12지 연기로 대표되는 지(支)연기법을 연기법의 한 형태로 보는 게 적당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부모가 있으면 자식이 있습니다. 연기법이지요.
그러나 석가세존께서는 그런 것을 연기법의 예로 설하지 않으셨지요.
왜내면 제자들이 먼저 고에서 벗어나길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각묵스님은 연기(법)와 인연(존재)을 연기와 연이라 한 것 같네요.
그리고 연기와 연을 조건발생과 상호의존으로 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연기,조건발생,상호의존,상의성'이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말들인데 '상호의존'을 픽업하는 것도
말귀를 따라 부모와 아이가 상호관계라 그리 생각하신 것 같은데 좀 그렇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문제 삼는 것은 연기와 연의 어원 문제보다
각묵스님이 문제삼는 '연' 이 오히려 상좌12연기 해석이라는 점인데
오히려 스스로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것 같습니다.
각묵스님은 존재와 법의 차이를 잘 모르시는 것같습니다.
연기(법)와 인연(존재)를 연기와 연이라 구분하면 연기(법)은 인연(존재)를 떠나 따로 존재하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각묵스님은 어떤 실체를 상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면 조건 지워져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연기인가? 저는 이말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연기아닌 무엇인가 있다는 것인가요 각묵스님은 존재와 법의 차이를 모르는것 같다은 노랑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제법의 상호관계에 대한 경의 내용이 어디에 있던가요???
게다가 아비담마에서는 제법을 존재, 내지 물질 정도로 설명하는 것으로 아는데,
물질 상호관계에 대한 경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무슨 연기와 연을 똑부러지게 구분해 보시겠다고 그러시는지...
1. 법계연기 [法界緣起]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 ·무진연기(無盡緣起)라고도 한다. 화엄철학(華嚴哲學)의 중심사상이다. 만물이 서로 인연이 되고 있으며 상호 의존하고 있다고 하여, 전우주의 조화와 통일을 설한다.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 생사와 열반(涅槃) 등이 서로 대립되는 현상이 아니라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것이며, 한 사물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대로 전우주[一卽一切, 一切卽一]라는 뜻에서 이러한 세계를 연화장세계(蓮花藏世界)라고 한다.
1.1 법계연기는 중생과 부처, 생사와 열반으로 설명하는 것에서 보듯,
상호 의존을 강조하지 고가 생기고 고가 소멸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요.
이렇게 苦가 중심이 아닌 것을 각묵스님은 연기법과 구별하여 연이라고 이름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초기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苦를 멸하려는 가르침인데 반해..
대승불교는 고의 소멸을 벗어나 있다는 겁니다.
고로 대승불교는 초기불교 정신을 벗어나 있다고 하고픈 겁니다.
각묵스님이 대승불교를 본래의 초기불교에서 구분하려고 하는 그 마음은 항상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 연이라는 것을 어디에 근거해서 그런 해석을 하는지가 근거를 좀 확실히 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경에는 각묵스님이 말하는 의미의 연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것 같지가 않아서요.
경에서는 연기만을 말씀하셨고,
각묵스님은 경이 아닌 아비담마에 근거해서 연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죠.
사실 법계연기 무진연기, 화엄철학 은 대승불교에서 발전된 사상이겠지만,
십이연기가 세간이 집기되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과 법계연기를 따로 보시는 것도 좀 문제라 싶어요.
세간을 여실히 보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고통을 잊자고 주문 하듯이 공부하는 것이 불교는 아니지 않습니까?
존재의 실상이랄까, 세간의 실상이랄까, 아뭏든
진리를 알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타종교의 이야기가
거기보다는 여기에 더 해당되는 듯 하네요.
무슨, 고통 따로 실상 따로 그렇게 취급하신답니까?
(언제부터인가.. 저는 남의 대리인 역활을 하게 되었군요..^^)
각묵스님의 뜻은.. 그것이 남방 상좌부불교의 뜻인지?.. 수행자는 모름지기 한 우물을 파야 하는데..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苦를 멸하는 것에 온통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12연기법을 설하신 이유도 고를 바로 보고 고를 멸하는 과정 속에 설하신 것이요..
중도 역시 8정도로.. 고를 멸하는 것과 연결을 시켜야만 하는 것이지..
실데없이 유무중도 같은 데 신경을 쓰지 말자는 겁니다. -> 각묵스님이 진짜 그런 주장을 펼치는 건지?.. 잘 모르겠으나 초심이 보기엔 그렇습니다..^^
그리보면 [법계연기]는 제법의 관계(=연)를 설명하는 것으로..
[12연기법]처럼 苦가 생성되고 고가 소멸하는 법과는 차이가 있지요.
고로 12연기법만 연기라 하고, 법계연기처럼 苦가 중시되지 않는 일반적인 연기법은 연기법이 아닌 연이든 무엇이든 12연기법과 구별하자는 겁니다. 곧 12연기법과 같은 고가 생성되고 고가 소멸하는 구조 설명만 연기법이라고 하자는 겁니다.
저는 그런 각묵스님의 의견은 충분히 가치 잇는 것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렇다 하여 일반적인 연기법을 12연기법과 같은 각支연기법만을 의미하는 뜻으로 축소해야만 하는가?.. 입니다.
此有故彼有。此起故彼起,
此無故彼無。此滅故彼滅
로 정리되는 [연기법]을 부처님께서는 실용적으로 [12지 연기법]으로 설명하셨다 하여도..
12연기법은 연기법의 부분임을 금방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덧붙여 법계(무진)연기를 연이라 하는 것은 초기 경전에 나올리 없지요.
왜냐면 화엄경은 대승경전인데, 그 내용이 초기 경전에 나오겠습니까?..^^
법계연기는 물론이고 상호의존이라는 것도 사실 초기 경전에서 못 본 것 같아요...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존재라 할 수 있는 것들의 상호의존이 아닌, 명색과 식이 서로 갈대처럼 의지한다, 라는 것 뿐이구요....
연기법과 연을 구분하시는 그 내용은 그래서
본인의 구분일 뿐이라 싶은 것이지요.
12연기에서 상의성은 명색과 식만이 상의성이고 나머지는 차연성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