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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17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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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rcle of Human Feelings
An Ethical Code like Japan’s, which requires such extreme repayment of
obligations and such drastic renunciations, might consistently have
branded personal desire as an evil to be rooted out from the human
breast. This is the classical Buddhist doctrine and it is therefore
doubly surprising that the Japanese code is so hospitable to the
pleasures of the five senses. In spite of the fact that Japan is one of
the great Buddhist nations of the world, her ethics at this point
contrast sharply with the teachings of Gautama Buddha and of the holy
books of Buddhism. The Japanese do not condemn self-gratification.
인간감정의 세계
극단적인 의무의 되갚음과 극적인 포기를 요구하는 일본식 도덕률은 끊임없이 개인적 욕망을 인간의 마음에서 뿌리뽑아야 할 악으로 낙인 찍어 왔을 것 같다. 이것은 전통 불교 교리이다. 그래서 일본인의 도덕률이 오감의 쾌락에 우호적이라는 것이 곱절로 놀랍다. 일본이 세계에서 주요 불교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점에서 일본의 도덕이 고타마 붓다와 불교경전의 가르침과 정확히 대조된다. 일본인들은 자위를 비난하지 않는다.
They
are not Puritans. They consider physical pleasures good and worthy of
cultivation. They are sought and valued. Nevertheless, they have to be
kept in their place. They must not intrude upon the serious affairs of
life.
그들은 청교도가 아니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은 좋은 것이고 고양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쾌락을 추구하고 중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심각한 인생사에 침범해서는 안된다.
Such a code keeps life at a particularly high tension. A Hindu finds it
far easier to see these consequences of Japanese acceptance of the
pleasures of the senses than an American does. Americans do not believe
that pleasures have to be learned; a man may refuse to indulge in
sensual pleasures, but he is resisting a known temptation. Pleasures,
however, are learned much as duties are. In many cultures the pleasures
themselves are not taught and it therefore becomes particularly easy for
people to devote themselves to self-sacrificing duty.
그러한 도덕률은 삶을 특히 높은 긴장상태로 유지하게 만든다. 한 힌두교도는 감각의 쾌락을 일본인들이 인정하는 결과를 미국인들이 그러한 것 보다 훨씬 더 쉽게 볼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인들인 쾌락을 배워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한 사람은 육체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그는 알려진 유혹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쾌락은 의무 만큼이나 배우는 것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쾌락 자체를 가르치지 않아서 자기 희생적인 의무에 헌신하는 것을 특히 쉽게 만든다.
Even physical
attraction between men and women has sometimes been minimized till it
hardly threatens the smooth course of family life, which in such
countries is based on quite other considerations. The Japanese make life
hard for themselves by cultivating physical pleasures and then setting
up a code in which these pleasures are the very things which must not be
indulged as a serious way of life. They cultivate the pleasures of the
flesh like fine arts, and then, when they are fully savored, they
sacrifice them to duty.
때로는 남녀 사이의 육체적 매력이 가정생활의 원활한 과정을 거의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 축소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러한 국가들에서 아주 다른 조건에 기반하고 있다.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고양하고 나서 이러한 쾌락이 인생의 심각한 방식으로서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도덕률로 정함으로써 스스로 삶을 힘들게 만든다. 그들은 육체의 쾌락을 예술처럼 양성하고나서, 실컷 즐겼을 때 그것들을 의무에 희생시킨다.
One of the best loved minor pleasures of the body in Japan is the hot
bath. For the poorest rice farmer and the meanest servant, just as much
as for the rich aristocrat, the daily soak in superlatively heated water
is a part of the routine of every late afternoon. The commonest tub is a
wooden barrel with a charcoal fire under it to keep the water heated to
110 degrees Fahrenheit and over.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몸에 대한 작은 쾌락은 뜨거운 목욕이다. 가장 가난한 쌀농사꾼과 가장 비천한 하인도 부유한 귀족과 마찬가지로, 최고로 데워진 물에 매일 몸을 담그는 것은 늦은 오후의 일과의 일부분이다. 가장 흔한 욕조는 숯불 위에 올린 나무통으로 온수를 화씨 110도 이상 유지시킨다.
People wash and rinse themselves all
over before they get into the tub and then give themselves over to their
enjoyment of the warmth and relaxation of soaking. They sit in the bath
with their knees drawn up in fetal position, the water up to their
chins. They value the daily bath for cleanliness’ sake as Americans do,
but they add to this value a fine art of passive indulgence which is
hard to duplicate in the bathing habits of the rest of the world. The
older one is, they say, the more it grows on one.
사람들은 몸 전체를 씻고 닦은 후 욕조에 들어간다. 그 다음 물에 잠겨 따뜻함과 이완의 즐거움에 몰두한다. 그들은 욕조에서 태아의 자세로 무릎을 끌어와 앉아 있고, 물은 턱까지 차 있다. 그들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청결을 위한 매일의 목욕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들은 수동적인 몰입의 예술의 가치를 더한다. 그것은 세계의 다른 사람들의 목욕 습관에서 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래될 수록 더 낫다고 한다.
There are all sorts of ways of minimizing the cost and trouble of
providing these baths, but baths they must have. In the cities and towns
there are great public baths like swimming pools where one may go and
soak and visit with one’s chance neighbor in the water. In the farm
villages several women will take turns preparing the bath in the
yard—it is no part of Japanese modesty to avoid the public gaze while
bathing—and their families will use it in turn.
이러한 목욕을 제공하는데 드는 비용과 어려움을 줄이는 갖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목욕은 해야만하는 것이다. 도시와 마을에는 수영장만한 거대한 공중목욕장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 가서 몸을 담그로, 물 속에서 우연히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농촌에서 몇몇 여자들은 교대로 야외에 욕조를 준비할 것이다. 목욕하는 동안 남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일본의 정숙함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차례로 이용할 것이다.
Always any family even
in fine homes go into the family tub in strict succession: the guest,
the grandfather, the father, the eldest son and so on down to the lowest
servant of the family. They come out lobster-red, and the family gathers
together to enjoy the most relaxed hour of the day before the evening
meal.
좋은 집에 사는 가족조차도 언제나 엄격한 순번으로 가족 욕조에 들어간다. 손님, 할아버지, 아버지, 장자 등등 가족 중 최하의 하인까지 내려간다. 그들은 바닷가재처럼 빨갛게 되어서 나온다. 그리고 가족은 한데 모여서 저녁식사 전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을 즐긴다.
Just as the hot bath is so keenly appreciated a pleasure, so ‘hardening
oneself’ traditionally included the most excessive routine of cold
douches. This routine is often called ‘winter exercises’ or ‘the cold
austerity’ and is still done, but not in the old traditional form. That
called for going out before dawn to sit under waterfalls of cold
mountain streams. Even pouring freezing water over oneself on winter
nights in their unheated Japanese houses is no slight austerity and
Percival Lowell describes the custom as it existed in the
eighteen-nineties.
뜨거운 목욕이 쾌락으로 강렬하게 인정된 것처럼, '고행/자기수련'은 전통적으로 가장 과도한 과정인 냉수욕을 포함했다. 이 과정은 흔히 '겨울 훈련' 또는 '동계 고행'이라고 불리며, 여전히 행해지지만 옛날 전통 방식은 아니다. 그것은 새벽 전에 나가서 차가운 계곡물 폭포 아래 앉아 있기를 요구했다. 난방이 안되는 일본식 가옥에서 겨울밤에 얼음물을 끼얹는 것 조차 작은 고행이 아니고 퍼시벌 로웰은 그 관습은 1890년대 존재했던 것처럼 설명한다.
Men who aspired to special powers of curing or
prophecy—but who did not then become priests—practiced the
cold-austerity before they went to bed and rose again at two A.M. to do
it again at the hour when ‘the gods were bathing.’ They repeated when
they rose in the morning and again at midday and at nightfall.[1] The
before-dawn austerity was particularly popular with people who were
merely in earnest about learning to play a musical instrument or to
prepare for some other secular career.
치료와 예언의 특수능력을 갈망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승려가 되진 않았지만, 동계 고행을 수련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그리고 다시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신들이 목욕하는 시간에 다시 수련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낮에, 그리고 해질녘에 반복했다. 새벽전의 고행은 단지 악기 연주를 배우거나 기타 다른 세속적 경력을 준비하는데 열심인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To harden oneself, one may expose
oneself to any cold and it is regarded as particularly virtuous for
children practicing calligraphy to finish their practice periods with
their fingers numbed and chilblained. Modern elementary schools are
unheated and a great virtue is made of this for it hardens the children
for later difficulties of life. Westerners have been more impressed with
the constant colds and snotty noses which the custom certainly does
nothing to prevent.
자기수련을 위해, 어떤 추위에도 노출시키고 그것은 서예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특히 미덕으로 간주되어 손가락이 마비되거나 동상이 걸린 채 학습이 끝나버렸다. 근대 초등학교는 난방이 안되고 훗날 인생의 어려움을 견디도록 아이들을 단련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큰 미덕이 만들어진다. 서구인들은 관습이 절대 막아주지 않는 떨어지지 않는 감기와 콧물 범벅된 코에 더 인상깊었다.
Sleeping is another favored indulgence. It is one of the most
accomplished arts of the Japanese. They sleep with complete relaxation,
in any position, and under circumstances we regard as sheer
impossibilities. This has surprised many Western students of the
Japanese. Americans make insomnia almost a synonym for psychic
tenseness, and according to our standards there are high tensions in the
Japanese character. But they make child’s play of good sleeping. They go
to bed early, too, and it is hard to find another Oriental nation that
does that.
잠 또한 즐겨하는 탐닉이다. 잠은 일본인이 성취한 최고의 예술 중 하나다. 그들은 완전히 편안하게 잠을 잔다. 어떤 자세로도, 그리고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환경에서도. 이것은 일본을 공부하는 많은 서구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인들은 불면증을 정신적 긴장상태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일본인들의 성격은 높은 긴장상태에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숙면을 아이들 놀이처럼 쉽게 한다. 그들은 일찍 잠자리들거니와, 그렇게 하는 다른 동양 국가를 찾기는 어렵다.
The villagers, all asleep shortly after nightfall, are not
following our maxim of storing up energy for the morrow for they do not
have that kind of calculus. One Westerner, who knew them well, wrote:
‘When one goes to Japan one must cease to believe that it is a bounden
duty to prepare for work tomorrow by sleep and rest tonight. One is to
consider sleep apart from questions of recuperation, rest and
recreation.’ It should stand, just as a proposal to work should, too,
‘on its own legs, having no reference to any known fact of life or
death.’[2]
마을사람들은 모두 해가 지자마자 잠이 들지만, 내일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라는 우리의 격언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계산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잘 아는 한 서구인은 이렇게 썼다. "일본에 가면, 오늘밤 잠을 자고 쉬어서 내일 일할 준비를 하는 것이 의무라는 것을 그만 믿어야한다. 잠이 회복, 휴식, 기분전환과는 별개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 역시 일해야 하는 제안처럼 생사에 대해 알려진 사실과 아무런 관련없이, 스스로 해내야 한다.??
Americans are used to rating sleeping as something one does
to keep up one’s strength and the first thought of most of us when we
wake up in the morning is to calculate how many hours we slept that
night. The length of our slumbers tells us how much energy and
efficiency we will have that day. The Japanese sleep for other reasons.
They like sleeping and when the coast is clear they gladly go to sleep.
미국인들은 잠을 체력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우리대부분이 아침에 깨어나서 처음드는 생각은 그날 밤 몇시간이나 잤는지 계산하는 것이다. 잠의 길이는 그 날 우리가 얼마나 많은 활력과 능률을 가질 수 있는 지를 말해준다. 일본인은 다른 이유들 때문에 잠을 잔다. 그들은 잠을 좋아하고 기회가 있으면(위험이 없으면) 기꺼이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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