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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중부 베트남
여행일 : ‘19. 12. 17(화)-21(토)
세부 일정 : 다낭(1)→마블 마운틴→호이안→다낭(1)→후에→다낭(1)→바나산 국립공원→다낭 시내투어
다낭의 명소 투어
특징 : ① 베트남(Vietnam) : 인도차이나반도의 동부에 남북으로 가늘고 긴 S자 모양을 띠고 있는 베트남(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수도를 하노이(Hanoi)에 두고 있다. 국토 면적은 33만2천378㎢지만 이 가운데 75%는 산악지대다. 1960~1970년대에 발발했던 미국과의 전쟁 및 캄보디아와의 전쟁으로 갖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6~8%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다. 전체인구 9천434만 명의 90%에 이르는 베트남족은 북부 하노이와 중부의 후에, 다낭 지역, 그리고 남부의 호찌민에 고루 분포돼 있다. 하니족을 비롯한 나머지 54개 소수민족은 대부분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다채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참고로 베트남의 국명인 비엣남(Việt Nam 越南)은 베트남 북부에서 중국 남부에 이르렀던 기원전 2세기의 고대 국가 남비엣에서 유래하였다. 비엣(Việt, 越)은 백월(Bách Việt, 百越)족을 뜻하는 말이다. 비엣남이란 낱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 베트남의 시인 ‘응우옌 빈 키엠’의 시 삼짱찐(Sấm Trạng Trình, 讖狀程)이다.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공식적인 국명이 되었다. 비엣남이 맞는 명칭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식 발음인 ‘베트남’을 국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② 다낭(Da Nang) :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최대 상업 및 항구도시이자 베트남의 다섯 개의 직할시 중 하나이고, 베트남에서 호찌민시, 하노이, 하이퐁 다음으로 네 번째 큰 도시이다. 면적은 1,285.53 km², 인구는 약 752,493명(2014년)이다. 도시의 기원은 192년 말레이계인 참족 거주자가 세운 참파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다낭은 참족의 중요 거점으로 번영을 누렸다. 도시의 옛 이름인 ‘Da Nak’도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의 참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858년 프랑스에 점령당했던 때에는 ‘투란(Tourane)’이라고 불리었으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5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했다. 1963년 베트남전쟁이 발발하면서 다낭은 남베트남 군과 미군의 주요한 공군 기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참고로 다낭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과 저렴한 물가에다 이색적인 볼거리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본여행 보이콧으로 한층 더 각광을 받고 있단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 한국인들일 것이라는 가이드의 귀띔이 있었다면 대충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 눈을 뜨자마자 ‘미케 비치(Mykhe beech)’를 찾았다. 다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니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아니 2005년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6대 해변’ 중 하나로 손꼽았다는데 어찌 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데 말이다;
▼ 해변은 이름에 걸맞게 잘 꾸며져 있었다. 이곳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1960~70년대부터 시설이 만들어진 셈이다. 거기다 요즘은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니 저 정도는 꾸며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 해변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기에 다가가 보니 ‘펩시(pepsi)’의 로고(logo) 등으로 도배되어 있다. 펩시콜라에서 광고판 대용으로 설치해 놓은 모양이다. 아니면 ‘미키비치’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스폰서라도 되는 모양이고 말이다.
▼ 길이가 10㎞에 이른다는 해안은 마치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곱디고운 모래로 덮여있었다. 그 고운모래에 푸른 바다를 더한 풍경이 좋아 웨딩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높단다. 그게 또 하나의 볼거리라는데 시간이 이른 게 안타깝다 하겠다.
▼ 해변은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거기다 고운 모래사장이 한데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저 해변은 그 길이가 무려 10㎞에 이른다고 한다. 다낭 북쪽 선짜 반도에서 시작해 남쪽 호이안 방향까지 이어진단다. 참! 사시사철 패러세일링이나 바나나보트, 수상오토바이 같은 다양한 해양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는데 이른 아침이어선지 바다는 텅 비어 있었다.
▼ 고개를 돌려보면 고층의 호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우리가 묵고 있는 ’막시밀란 호텔‘도 저 가운데 하나이다. 저 건물들 맞은편에는 맛집과 바가 즐비하다. 내가 아는 지인도 저곳에 해산물 식당을 열고 있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체재기간 내내 머물렀던 ’막시밀란 호텔 다낭(Maximilian Danang Beach Hotel)‘이다. 이 호텔의 가장 큰 장점은 올해(2019년)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모든 집기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침대 시트와 타월, 가운 등은 물론이고 샤워기나 변기도 내가 처음으로 사용하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세계 6대 해변’으로 꼽히는 ‘미케비치’를 바로 앞에다 두었다는 것이다. 오션뷰가 자랑일 텐데 아쉽게도 우리에게 배정된 방에서는 옆 호텔의 벽만 보였다. 하나 더 꼽으라면 5성급 호텔(4성급 규모와 서비스라고 귀띔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에 걸맞는 편의시설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WiFi도 펑펑 잘 터졌고, 냉장고 속에는 식수 외에도 캔맥주와 콜라까지 들어있었다. 여행사에서 제공한 것이라지만 기분은 엄청 좋았다. 2층에서 먹는 아침 식사도 훌륭한 편이었다. 베트남식과 아시아식, 유럽식의 식단을 고루 갖추고 있어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외국인들 속에 파묻혀 지낸 세월이 오래인 난 물론 유럽식, 집사람은 골고루 섞는다. 특히 그녀는 쌀국수가 입맛에 맞다며 매일 아침 빼놓지 않고 챙겼다.
▼ 시가지는 베트남의 여느 도시와 다름없었다. 출퇴근시간이 아닌데도 도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오토바이의 물결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한편으로 거리는 혼자 돌아다녀도 문제가 없어보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의 상인들 말고도 한국어 한두 마디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베트남은 치안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지 않은가. 다만 베트남 화폐인 ‘동(VND)’은 필수다. 베트남 화폐 외에는 받지 않는 상점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난 베트남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을 만나기도 했다. 목이 말라 들어선 식당에서 달러뿐이 없다는 나에게 무료로 캔맥주를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달러라도 받으라고 해봤지만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 다낭에서의 첫 방문지는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다낭대성당’이다. 다낭지역을 관할하는 주교가 상주하는 이 성당은 각종 SNS에서 ‘핑크성당’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명소이다. ‘핑크’란 성당의 외벽을 밝은 핑크빛으로 칠해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분홍 색상으로 뒤덮인 중세풍의 건물이 사람들의 마음을 홀렸나보다. 다낭을 찾는 여행객들이 빼놓지 않고 꼭 들른다니 말이다. 현지인들이라고 해서 다를 리가 없다.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단다.
▼ 성당은 프랑스 식민통치 시기인 1923년에 지어졌다. 사제(司祭)인 ‘발레(Vallet)’의 작품으로 치솟는 선과 크라운 아치의 고딕 양식으로 설계됐다. 참고로 프랑스는 가톨릭신자들이 박해를 받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고 승리했다. 1884년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속한 식민지가 되었고, 가톨릭도 이 시기부터 전국적으로 퍼져나간다. 현재는 베트남 국민의 7.35%가 가톨릭을 믿고 있단다.
▼ 현지인들 사이에는 ‘꽁가 성당(Chinh Toa Con Ga)’으로 불린다고 한다. ‘꽁가(Con Ga)’는 수탉을 의미하는데 꼼꼼히 살펴보면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 올라앉은 회색 수탉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풍향계의 노릇을 하느라 일 년 내내 쉬지도 못하는 불쌍한 닭이란다.
▼ 문이 닫혀있던 탓에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서구 교회를 모티브로 한 성서의 사건을 그린 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이 볼만하다고 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한쪽 귀퉁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이 들어서 있었다. 뭔가 내력이 있는 듯했으나 안내판이 베트남어로만 적혀있어 조그만 실마리도 얻을 수 없었다.
▼ 성직자로 여겨지는 동상 둘이 세워져 있었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호성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둘이나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 다음은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까오다이 사원(Cao Dai Temple)’이다. ‘까오다이교’는 1926년 ‘응오 민 찌에우(Ngo Minh Chieu)’에 의해 창시된 민간종교로서 ‘호아하오(Hoa Hao)교’와 함께 베트남의 양대 신흥종교이다. 세계 5대 주요 종교(기독교·이슬람교·불교·유교·도교)의 신앙을 절충, 장점들을 집약해서 만들어졌는데 현재 300만 명 정도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단다. 참고로 1920년대는 항불 투쟁이 본격화된 시기로서 무장 투쟁보다 계몽을 통한 민족주의 운동이 발생했다. 까오다이교 이외에도 토속적 신앙이 강하게 깃든 ‘호아하오’교도 이때 생겨났다.
▼ ‘까오다이(Cao Dai)’란 ‘높은 곳’으로 신이 지배하는 천상의 영역, 곧 천국을 의미한다. 또한 까오다이교의 유일신 이름인 ‘까오 다이 띠엔 옹 다이 보 탓 마 하 탓(Cao Đài Tiên Ông Đại Bồ Tát Ma Ha Tát)’의 약칭이기도 하다. 사원의 모습을 보면 두 개의 높은 탑이 사원 좌우로 높게 솟아 있는데 나름의 명분이 있다. 왼쪽 탑은 최초의 여성 추기경인 ‘람 후옹’을, 오른쪽 탑은 최초의 남성 교주인 ‘레 반 쩡’을 상징한다. 예배당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고 남자는 오른편, 여자는 왼편에 있는 아홉 계단을 걸어야 한다. 아홉 계단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의미한단다. 하루에 모두 4차례 기도시간이 열리는데, 직접 기도에 참가할 수도 있고 2층에 올라가 구경만 할 수도 있단다. 본부는 호치민 시 북서쪽에 있는 떠이닌(Tây Ninh)에 있다.
▼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의 눈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천안(天眼)’이라는데 커다란 눈이 신비로운 빛을 내뿜고 있는 형상이다. 유일신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모든 행실을 조심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그려진 푸른 공의 위에 예수와 마호메트, 부처, 공자 등이 함께 있는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는데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법당의 중앙 쪽으로 다가가다 사제로 보이는 여자로부터 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일행 모두가 뒤에서 웅성거리다 법당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참고로 까오다이교의 교리는 도교와 유교적 요소가 혼합된 대승불교에서 기인한단다. 따라서 최종 목적은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 이외에 타 종교에서 주장하는 호혜와 애정 등도 종교 교리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란다.
▼ 다음은 아오자이 체험이란다. 간략한 설명을 듣고 난 후, 치수에 맞는 베트남 전통의상으로 바꿔 입고 사진촬영을 하면 끝나는 일정이다. 소품도 물론 준비되어 있다. 참! 전통의상을 파는 것도 같았으나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베트남은 태국에 못지않은 ‘마사지’의 나라다. 그러니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기본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코스를 업그레이드시켰는가 하면, 마지막 날에는 자투리 시간을 아예 마사지로 소일했다. 가이드가 운영하는 곳이라는데 솜씨는 보통이었으나 한국말을 대충 알아들어서 심심찮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이번 여행에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의 ‘박항서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인들이 갖고 있는 그에 대한 신드롬을 엿본 여행이었지 싶다.
▼ 동남아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쇼핑’이라 하겠다. 이번에도 노니와 잡화, 마른과일·커피 매장을 들르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일정은 아니지만 상황버섯이나 라텍스, 히노끼 등 불필요한 매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하겠다. 아니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몰라도 꽤나 많은 종류의 물품을 구매까지 했다.
▼ 다낭에도 ‘한강(Han river)’이 있다. 그것도 서울처럼 시내를 가로 지른다. 그렇다면 서울처럼 이곳도 야경(夜景)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유람선 투어가 있을까? 대답은 물론 ‘Yes’다. 하지만 이번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선택 관광에 포함되어 있었던 게 다행이랄까?
▼ 어느 여행지나 야경은 곱다. 특히 뱃머리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곱지 않은 곳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이곳 다낭을 부다페스트나 프라하, 파리, 상하이 같은 야경의 명소와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야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 유람선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용다리(龍橋)’이다. 다리 전체를 용의 형상으로 디자인한 다리로 다낭의 ‘랜드 마크’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다리는 밤에 정점을 찍는다. 다리에 장착된 약 15,000개의 LED가 빨주노초파남보 등 무지개 색으로 번갈아가면서 빛의 향연을 연출하는 것이다. 주말에는 용머리에서 불과 물을 내뿜는 이벤트까지 한다는데 날짜를 맞추지 못한 게 아쉽다.
▼ 용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다낭의 랜드마크였다는 ‘Song Han 다리’도 볼만하다 .이 다리에도 LED가 장착되어 있어, 밤에는 점등이 되는데 용다리와는 항상 다른 색으로 점등된다고 한다.
▼ 다낭여행의 필수코스라는 선짜(Son Tra) 반도의 ‘린응사(영흥사)’는 저녁에 찾았다. 영흥사의 하이라이트는 60미터가 넘는 해수관음상이다. 태풍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세웠다는데 베트남에서 가장 큰 해수관음상이란다. 이 관음상은 어떤 각도로 보더라도 풍경과 잘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저녁이라서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은은한 불빛으로 치장된 불상은 나름대로 풍치가 있었다.
▼ 저녁이라서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한계가 있었으나 엄청나게 많은 분재들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 다양한 모양새의 불상들도 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 밤바다도 볼만했다. 이곳 영흥사에서 바라보는 해안선은 다낭의 어떤 곳보다 아름답고 유명하다고 했다. 그런 바다에 휘황찬란한 불빛까지 더해지니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저 바다는 월남전 종전 시 보트피폴 14,000여 명이 수몰된 슬픔의 바다이기도 하단다.
▼ 아래 사진은 다른 분의 것을 빌려온 영흥사의 전경이다.
▼ 다낭의 또 다른 볼거리는 ‘챠밍 쇼’이다. 다낭의 과거와 현재를 테마로 한 판타지 쇼로 베트남 전통무용의 매력을 한껏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른 한편으론 다낭의 색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체험일 수도 있다.
▼ 베트남 전통문화와 참파 시대 압살라춤, 아오자이쇼, 전통 결혼식 등 악사들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계속해서 펼쳐지는데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었다. 공연의 구성이 바뀔 때마다 무대의 양 옆에 있는 스크린에서 영어, 중국어와 함께 한글 자막이 뜨는 것이가.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다. 극의 내용까지 알고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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