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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7일(금)
* 시작 기도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주님...
아버지와 아들은 창세전부터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전부터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창세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도 동일하게 복종하신 것은 그 복종의 결과로 아들에게 영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영광이 그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복음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철저히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고 그 복종을 받으신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받은 아들은 또한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고 육신을 입고 오셔서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그 생명을 주십니다.
나는 그 생명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이 죄인 중에 괴수인 나에게도 그 생명을 주셔서 종말을 현재로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여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주의 은혜의 빛이 넘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21:1-8
제목 :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나의 묵상
곡과 마곡에서 사탄이 멸하고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
그와 동시에 사망과 음부가 불못에 던져진다.
그러나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심판을 면한다.
그 후에 다시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본다(1절).
그런데 처음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셨던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바다도 없어졌다.
요한이 다시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 같았다(2절).
그 때 요한은 보좌로부터 나는 큰 음성을 듣는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며 또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실 것이다(3절).
그래서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애곡도 없고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은 것은 처음에 있는 것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4절).
그 때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므로 기록하여라(5절).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다.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줄 것이다(6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7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점술가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인데 이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다(8절).
요한계시록은 거의 대부분 환상이나 상징적인 언어로 쓰였다.
따라서 이런 말씀은 결단코 기자 자신의 임의대로 쓴 것이 아니라 철저히 구약성경의 예언서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계시록의 말씀을 자기 임의대로, 또는 영해(靈解)로만 푸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종말에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환상도 역시 구약성경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1절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사야 65장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을 성취한다.
(사 65:16-20)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이와 같이 요한이 본 환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 1:1절의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으셨던 하늘과 땅으로의 회귀가 아님을 천명하시는 것이다.
특히 ‘바다’는 지구상의 모든 물이 모인 그 바다를 의미하기보다 붉은 용의 하수인인 짐승이 거처하는 곳이며 그곳에서 나온 짐승의 거주지가 바로 바다로서 악의 근원 또는 반신적(反神的)인 세력이다.
이것은 곧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원래 태초에 창조했던 옛 창조로의 회귀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창조로서 이를 새 창조라고 한다.
좀전에 보았던 이사야서 65장에서 이사야선지자는 새 창조를 예언하면서 옛 창조에서 복을 구하는 자를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 것이며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다.
없어지고 말 땅에서 맹세하지 말 것이며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할 것이다.
이생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 그는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하지 않은 자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실제이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은 종말시에 하나님을 통해서 새롭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 곧 공동체를 의미하며 이사야 52장을 성취한다.
(사 52:1-2)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종말에 하나님의 신부로 높여진다.
신부로 단장한 것은 역시 구약성경 에스겔서의 말씀에 근거한다.
(겔 16:9-13)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은 결코 에덴동산으로의 복귀가 아니다.
에덴동산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늘과 땅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처음 창조시에 있었던 에덴동산까지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우리는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으면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으로 복귀가 아니다.
다만 새 하늘과 새 땅, 곧 창세전의 세계요 만물 위의 세계로 들어가 그동안 맛보고 누리던 그 하나님의 나라를 나의 집으로 삼고 완전히 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새 창조가 임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신부가 된다.
그리고 새 창조의 세계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위치하는 성전이다.
하나님의 장막에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 있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신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연합이 그 핵심이다.
하나님의 장막은 더 이상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완전한 연합을 의미한다.
(계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사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루신 이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은 건물에 있지 않고 새 언약의 성취에 있다.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나아가 너희가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 영원한 연합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고통은 하나님과의 연합 안에서만 완전히 사라진다.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다시는 죽음이나 슬픔이나 애통이나 눈물이나 아픔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
새 창조의 세계는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구원 받으면 에덴동산으로 회귀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며 결코 옛 에덴동산으로 회귀가 아닌 것은 태초에 지었던 모든 피조세계는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과 상관없는 전혀 새로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새 창조인 것이다.
이제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신다.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
만물 안, 해 아래에서는 새 것이 없다.
그것이 비록 새 것이라 해도 이전 일을 다시 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성경에서 새롭다는 말은 오직 만물 위, 창세전, 하늘에 속한 개념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창조를 뜻한다.
이것은 영원하고 신실하시며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편에 서는 것, 그것은 오직 은혜로 되는 하늘의 사건으로서 곧 새 창조이다(고후 5:17절).
하늘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는 계시의 완성을 선언하는 확증의 말씀이다.
요한이 본 환상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이미 정해지고 집행되는 하나님의 뜻이다.
말씀하시는 이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근원이시며 역사의 종결자이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만물들에 대해 처음과 끝을 부여하신다.
역사가 완성된 그 날, 생명수 샘물이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값없이 주는 생명수 샘물, 그것은 목마른 자,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을 갈망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이사야서 55장은 이 말씀을 성취한다.
(사 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생명수 샘물은 값없이 거저 주는 샘물이다.
다만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목말라 하는 자, 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목말라 하는 자, 영원을 사모하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이것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며 영원한 언약이다.
영원한 언약은 만물에 속하지 않는 만물 위에 속한 이들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생명의 언약이며, 아들 안의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그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생명을 얻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를 마신다.
그가 받은 기업은 영생이며,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는 아들 곧 자녀가 된다.
마지막으로 성취된 영원한 언약은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다.
(삼하 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는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를 초월한다.
결코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에 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인 시간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종말의 시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이 설정해놓은 목표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종말적 현재가 실재가 된다.
종말적 현재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종말의 일이 이미 성취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종말의 때, 이전 것은 다 지나간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존재이며 이전 것은 다 지나간다.
그러므로 성도는 종말에 성취될 자신의 존재와 삶의 근거를 현재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에게 종말론적 실존은 미리 앞당겨 실현된다.
그의 삶은 없어지고 사라지는 운명에 놓인 세상을 초월하며 죽음에서 다시 산 자처럼 사는 자가 된다.
따라서 사도 요한의 고백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고백이 된다.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복음을 통하여 영생을 맛보며 누린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 무엇에 대한 목마름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하나의 야곱의 우물임이 틀림없다.
이제 나는 이런 땅에 속한 야곱의 우물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영생으로 인도하는 생수를 찾는다.
그리고 이를 우리 주님께서 주실 것임을 믿는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의 한 마디, 그것에 목말라 하면서 그것을 찾아 헤매던 자였음을 고백한다.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이들의 현실이다.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위로가 잠시 잠깐 위로는 되고 힘이 될지 모르지만 영원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해 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시적인 위로나 감각적인 격려를 주기 원하시지 않는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것을 주기 원하신다.
그것은 태초에 지으신 하늘과 땅이 결국 없어지고 바다도 사라지고 말 것임을 천명하시면서 영원한 것을 바라며 소망할 것을 원하신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다.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연합할 때 그 영원한 생명은 나의 일상이 된다.
무엇보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장사되며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주님의 부활하심과 함께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것이 진짜 우리 주님과의 연합이며 새 생명의 삶인 것이다.
어제와 그저께 이틀 동안 먼 거리를 다녀와서 많이 피곤하다.
육신으로는 피곤할지라도 영은 기쁨이 넘치는 여행이었다.
베트남 최북부에 있는 랑선이라는 곳이며 그곳은 정말 깡촌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집은 부자로 사는 집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이들이다.
그들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와서 그런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럼에도 그들이 예배당에서 성탄절 축하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도 이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구나, 였다.
그리고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이는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이 땅의 삶 곧 육신의 삶은 한시적이지만 그 육신의 죽음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그 만물 위를 소망하며 그 나라에서 누릴 주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오늘도 바라며 사는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영혼 주 찬양하며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함은 능하신 이가 큰 일 행하시니 그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그 주님으로 인하여 내 영혼이 찬양합니다.
그 이름이 거룩하시고 그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나이다.
권세 있는 자를 내리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주님...
오늘도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말씀하시나이다.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노라.
주님의 약속은 신실하십니다.
그 인자와 신실 곧 헤세드와 에머스가 나를 살리시오니 나의 삶의 두 축이 되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인자와 성실로 인생의 수레를 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