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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김경애(울산 서부동) 일반부 의장상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 날 나는 전날부터 열이 나고 어지러운 것이 몸이 좋지 않았다. 평소에도 늘 시름시름 잔병을 달고 지내던 나는 일 년에 두 번 밖에 없는 소중한 날 소풍가는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얘야, 웬만하면 소풍을 가겠지만 오늘은 안 되겠다. 그냥 엄마랑 맛있는 것 먹고 쉬자.“ 엄마의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셨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의 말씀을 따를 수가 없었다.
굳이 어린 마음에 고집을 부렸더니, 아버지께서 그냥 엄마랑 같이 갔다 오라고 하셨다.
“그래, 네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니 어디 한번 가는데 까지 가보자 죽도록 살던지.” 엄마는 갑자기 도시락을 준비 하시고 간식으로 먹을 계란을 삶고 준비를 마치시고는 곱게 한복을 차려 입으시고는 내 손을 잡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엄마는 19세에 결혼을 하셨으니 꽃다운 나이셨다. 오래도 걱정이 되시는 듯 떠나는 소풍 길을 무거워 하셨다. 학교에선 학년마다 줄을 세우고 목적지 적석사관 사찰로 소풍길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설레고 흥분이 되던지 그 날 매일 학교에서 나눠주던 옥수수 빵을 받아서 너나 할 것 없이 장난삼아 운동장 앞 저수지로 던지기 시작했다. 저수지는 순식간 노오란 빵 꽃이 피어났다. 엄마는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간인데도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뒤를 따라 오셨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소풍이 시작될 무렵부터 살살 아프기 시작한 배가 바로 설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파왔다. 엄마는 바로 나를 들쳐 업으셨다. 친구들은 기뻐서, 들떠서 소리를 지르고 감당하지 못할 즐거움을 소리로 표현 하는데 그건 나의 일이 아니었다. 힘이 없었다. 엄마는 아이들을 따라 맨 뒤에 서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시면서 힘겨워 하셨다. 그러나 발 아래 선홍빛 진달래가 뭉게뭉게 흐드러지게 피어 온 산을 물들이고 있어 아름다웠다. 햇빛은 쨍쨍하고 아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러는 사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목적지 적석사에 도착을 했다.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이 현실로 나를 맞았다. 생각했던 것 보다 규모가 너무 작아서 놀라웠다. 암자 같았다. 그런데 절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곱게 그려 넣은 단청이 구름 위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처럼 그 색이 아름답고 신비했다. 힘든 발걸음에 지치신 엄마도 한숨을 지으시고는 앉으셨다. 처마 밑 풍경이 산들산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내는 소리가 아파서 괴로웠던 어린 마음에도 음악소리처럼 들렸다.
처음엔 곱게 그려진 단청색이 그림책 속에서만 보아왔던 색이라서 순간 현실과 구별이 되지 않는 것처럼 몽롱했다. 그림책 속 설화의 배경 그림 그대로 인 듯 했다.
나는 작은 손으로 살짝 침을 묻혀 문질러 보았다. 엄마는 누가 보기라도 하는 듯 내 손을 살며시 끌어내리셨다. 엄마의 등을 빌려 고집을 피워 올라온 초등 2학년의 봄은 찬란했다. 계절 꽃의 향연과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향내와 여운을 남기는 신비한 단청의 몽롱함으로 신세계를 경험 하는 듯 했다. 소풍은 잠시 잠깐이 되었다. 오는 길의 고단함은 순간이 되었고,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는 기쁜 즐거운 시간과 아이들 모두의 기쁨이 되는 장기자랑 시간과 선생님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으로 흘러갔다.
나는 예쁜 엄마와 멋쟁이 담임선생님과 영원히 기념될 사진을 찍었다. 그 날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과 흐드러지게 온 세상을 물들인 진달래꽃과 선명했던 작은 암자의 단청 모습이 내 가슴 속에 머물고, 지금은 가고 없는 그리운 엄마가, 다정하셨던 선생님이 몹시 그립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정토사의 아름다운 단청들이 어린 시절 선명하게 와 닿았던 그 느낌 그대로 겹쳐서 느껴진다. 단청은 고향의 풍경마냥 포근하게 내 마음 속을 물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