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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문화의 기원
요하문명
우하량유적 박물관
서양에는 제사상을 차려놓고 기일(忌日)을 지키는 제사문화가 없다.
한중일韓中日 3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제사문화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제사상을 차려서 정성껏 모시는 나라는 거의 없다.
현대사회가 서구화 되다보니 제사가 형식이다, 미신이다 하는데 그렇다면 정작 서양에는 제사문화가 없는 것일까?
서양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대문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유대인의 묘지에서는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들이 발견된다. 또한 유대의 히브리어로 '기도하다'라는 뜻의 단어는 '아타르'라고 한다. 그 뜻은 '제물을 바치다'라는 뜻이다.
즉 기도를 비롯한 신앙문화는 제물을 올리는 제사문화에서 유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믿는 신과 자신의 조상신에게 제물을 받치고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그런 제사문화가 동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 제사문화의 원형이 바로 인류문화의 뿌리인 '제천문화'이다. 춤과 노래, 그림, 스포츠 이런 문화들이 제천문화에서 비롯되었고 대형 건축문화 역시 대형제단을 만들면서 발전했다고 한다.
최근 인류 4대문명권의 모태문명으로 홍산문화가 알려지고 있다. 바로 우리 한국인의 조상들이 이룩한 문화이며 약 5천5백년 전에 우화량 유적에서는 우주의 최고신인 상제님께 제사 지내던 원형제단과 민족신, 조상신께 제사지내던 신전, 그리고 당시 지배계층의 무덤 등이 거대한 규모로 발굴 되었다.
인류문화의 뿌리문화가 바로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던 제천문화인 것이다.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있는『단군세기(檀君世記)』 6세 달문(達門, BCE2083~2048)단군 편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유불선의 뿌리가 되는 원형문화를 신교(神敎)라고 한다. 신교의 핵심을 제천문화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제천문화에서 유불선과 같은 신앙문화가 비롯된 것이다. 우리 민족은 바로 인류의 제천, 제사문화의 본 고향이다.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 이 땅에 들어오기 전, 이미 불교의 원형이 있었다는 사실도 여러 곳에서 밝혀졌다.
[화엄경]에서 “해중(海中)에 금강산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이 그 산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불교의 종주국이 바다 건너 금강산에 있는 나라’ 라는 말이다.
[삼국유사] [아도기라] 등 여러 서적에 전불(前佛)시대 절터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석가모니가 탄생하기 3000여 년 전에 이미 한국에 불교의 원형이 있었다는 말이다.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인간과 신명이 소통하였고, 수행을 통해 인간을 완성시키는 가르침을 역사상 처음 열었던 것이다. 제사는 유교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행해왔던 신교 문화의 예식인 것이다.
한민족의 시원 역사의 핵심은 제천문화다. 하나님을 받드는 문화다. 이문화의 일반적 정의는 하늘 땅, 천지부모와 인간이 하나되는 의식이다. 제천문화는 동서양의 종교와 하나님 문화의 원형, 원조가 한민족의 제천행사다.
제천문화의 유적지가 마리산에 있다. 고대 한민족은 1년에 두 번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3월 16일 대영절은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 삼신상제님을 맞이하는 천제를 올린 민족 대축제의 날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 잃어 버렸다. 문화의 근원이 말살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封禪書)에서 ‘관중(管仲)이 말하기를 고대(古代)에 태산(泰山)과 양보산(梁父山)에서 하늘에 제사지낸 왕은 72명이었다. 제왕이 창업을 하고 상제님께 신고식을 올리는 것이 인생 일대에 영광스러운 순간이라고 했다. 소위 봉선제(封禪祭)이다.
우리 역사 기록에는 1897년 고종 임금이 동서양 12제국이 중국을 아편으로 병들게 하고 미국등 유럽의 강국들과 일본까지 가세하여 조선을 무너뜨릴 때 최후의 절규로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고종은 황궁우와 원구단을 복원하여 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했다.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왕에서 천자(天子)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문무를 겸한 역사의 기상을 상징하는 연호다. 옥쇄에 용을 새겨 쓰기 시작했다.
6,000여년 전, 천제를 올린 제천단의 원형이 한세기 전에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979년 동산취 천단과 1983년 우하량 총묘단(塚廟壇), 무덤(塚)과 사원(廟)과 제단(壇)이 나왔다. 요령성 건평현 우하량에서 인류 초기의 제천문화 유적이 발굴되었다.
총묘단塚廟壇이 중앙에 정사격형 무덤이 있고 원형제단이 있는데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보여준다. 우주사상을 근본으로 해서 하나님 문화의 원형제단이 발굴되었다.
또한 불교의 대웅전(大雄殿)의 기원도 환국(桓國)을 계승한 환웅의 배달 시대부터 비롯된다.
환웅천황시대에 한민족은 가장 큰 나무를 지정하여 신단수(神壇樹)로 봉하고 이를 웅상(雄常)이라 하여 환웅을 경배하였다.
후에 환웅전(桓雄殿)을 지어 환인, 환웅, 단군 삼위성조를 모셨다.
환웅전은 대인전(大人殿), 대웅전(大雄殿)으로도 불렸다.
그러다가 환웅전의 명칭은 삼성전(三聖殿)으로 바뀌었고, 나중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환웅전에 모셨던 환웅상이 석가모니 불상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배달국의 건국일인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서 천제를 올렸다. 그런데 지금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개천절로 왜곡이 되었다.
해마다 대영절이 되면 강화도 마리산에 가서 제물을 바쳐 경배하고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 올라가 천제를 올렸다.(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이것이 왜곡되고 뿌리 문화가 단절되어 전혀 모르는 것이다.
4,300년 전에 초대 단군 왕검이 대홍수로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제위 51년 무오년(BCE2283)년에 단군 왕검께서 마리산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이 바로 그것이다.(단군세기)
참성단은 상방하원(上方下圓)의 모습이다. 주역의 지천태(地天泰)의 모습이다.
동북아의 신관, 우주관의 원형을 보여주는 제천문화, 천원지방天圓地方이 중국의 명(明), 청나라의 자금성 주변에 천지일월의 단을 세웠다. 북경 천단공원에 가보면 기년전 안에 모셔진 황천상제(皇天上帝)의 위패다.
6,000여년 전, 단군 조선 이전에 배달국 환웅천황의 나라 경영의 풍백, 우사, 운사를 기년전 옆 전각안에 모시고 있다. 천단의 제단 구조를 보면 중앙에 천심석(天心石)이 있다. 이 천심석은 바로 하나님, 상제님의 마음을 뜻한다.
과거 우리민족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 삼신상제님이다. 지금의 하나님, 하느님, 천주님의 본래 호칭이다. 줄여서 상제님, 천상옥경에 계시니까 옥황상제님이다.
상(上)은 천상의 지존무상, 제(帝)는 하나님, 상제가 하나님의 호칭이다. 우리는 임금님 제(帝)로 알지만 본래 하나님 帝이다.
하늘에는 천상의 통치자 상제님이 계시고, 땅에는 대행자인 황제가 있다.
하느님을 대행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천자(天子)의 통치권, 신권을 상징하는 영물이 용(龍)과 봉(鳳)이다.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용봉의 옥기들 C자형 옥룡, 옥장신구, 옥웅룡, 옥봉황등이 한국 사람의 조상들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뺏기면 동북아 역사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해서 강택민 이후 중국 통치자들이 서둘러서 중국의 운명을 걸고 수천억을 투입해서 중국역사로 마무리 지었다.
홍산문화는 역사학계에서는 제 5의 문명이다. 동서양의 인더스문명, 황하문명,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의 근원이 되는 진정한 인류 창세 문화 유적지가 나왔다. 문화정신이 우주의 근본 이치에 대한 확고한 깨달음을 가지고 나라를 열고, 다스렸다.
왜 천제문화가 인류문화의 원형이고 근원인가?
온나라 백성들이 임금과 더불어 하느님께 감사와 보은(報恩)의 제사를 올리고 임금과 백성이 함께 음주(飮酒)와 가무(歌舞)를 즐겼다. 음악, 무용등 예술의 온갖 영역이 총동원되어 천제(天祭)에 어울어진다. 통치자로부터 계급질서가 정연하지만 모두가 하나가 되어 민족의 대동축제가 이루어졌다.
고대 한국의 제천행사 명칭이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제 하나님 문화의 실체를 너무 모르고 있다. 핵심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제천문화를 지구촌 차원에서 보면 이집트 오벨리스크도 솟대의 일종이다. 한국의 솟대처럼 신을 모시는 기둥이다. 신을 받드는 기둥이다. 파라오들이 영원한 신의 생명을 받기 위해 세웠다.
피라밋 문화의 원형으로 알고 있는 서양 문화의 근원인 이라크 남부의 수메르문명은 5,500~6,000년 전에 동방 천산(天山)을 넘어 갔다는 수메르의 제천단인 지구라트는 하나님의 산, 하늘 언덕이라고 한다.
4,700년 전 수메르 사람 임호테프가 초빙을 받아서 세운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다. 원래는 천정이 평면으로 되어서 거기서 제를 올렸다. 마야문명을 보면 세계 제1의 피라미드 국가 멕시코는 지금까지 2,400여개 발굴되었다.
달피라미드를 보면 천문과 지리를 동시에 공부한 사람들이다. 주산을 등지고 달피라미드를 세웠고 왼쪽에 태양피라밋이 있고 아래 부분에 사각형(방형)제단이 있다. 세계 10대 불가사의인 멕시코 치첸이사의 마야 피라미드는 사면의 계단과 맨위 제단을 합하면 모두 365개의 돌계단으로 1년 365일을 상징한다. 하단이 정사각형이다.
거기에 세노태라는 고대 마야인들이 신성시 했던 우물이 있고 피라미드를 둘러싼 돌담은 동방의 천원 지방 사상을 보여 준다. 지구촌 현장에서 환단고기의 9천년 역사의 진실을 확인할 때 마음이 깊어지고 충격을 받는 결정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피라미드원형은 홍산 문화에서 일부가 나왔는데 고구려시대 피라미드식 고부군이 길림성 집안현에 즐비하다. 피라미드, 거석문화는 5천년 전에 강력한 권력의 국가 조직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서양 실존 사학에서 청동기 사용을 고대국가 성립조건으로 삼는 것은 서양학자들이 주장한 일부 학설일 뿐이다.
거석문화를 보면 영국의 스톤핸지등 환상열석(고리모양으로 늘여 세운 거석)이 서유럽에만 5만개가 분포되어 있다. 프랑스 까르낙 열석등 고인돌이 있다. 강화도 북방식(탁자식) 고인돌이 있는데 피라미드, 환상열석, 고인돌의 거석 문화는 제사, 천문관측, 종교예식등에 성지로 사용되었다.
결론이 인류 창세문화의 우주광명사상을 밝힌 문화원전이 환단고기다. 오직 환단고기만이 인류 태고의 거석문화, 피라미드문화, 제천단문화의 실체를 밝힐 수 있다.
오직 환단고기만이 인류 태고의 거석문화, 피라미드문화, 제천단문화의 실체를 밝힐 수 있다.
인간과 우주의 관계, 인간과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의 관계속에서 인간 역사의 전체 발전상을 알 수 있다.
서양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대문화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유대인의 묘지에서는 그릇, 단지, 물병 등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들이 발견된다. 또한 유대의 히브리어로 '기도하다'라는 뜻의 단어는 '아타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제물을 바치다'라는 뜻이다. 바로 제사문화에서 유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제사문화의 원형이 인류문화의 뿌리인 '제천문화'이다. 춤과 노래, 그림, 스포츠 이런 문화들이 제천문화에서 비롯되었고 대형 건축문화 역시 대형제단을 만들면서 발전했다.
인류 4대문명권의 모태문명으로 홍산문명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이룩한 문화이며 약 5천5백년 전에 우화량 유적에서는 우주의 최고신인 상제님께 제사 지내던 원형제단과 민족신, 조상신께 제사지내던 신전이다.
인류문화의 뿌리문화가 바로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던 제천문화인 것이다.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인간과 신명이 소통하였고, 수행을 통해 인간을 완성시키는 가르침을 역사상 처음 열었던 것이다. 제사는 유교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행해왔던 신교 문화의 예식인 것이다.
사기 권28. 봉선서(封禪書)
自古受命帝王, 曷嘗不封禪? 蓋有無其應而用事者矣, 未有睹符瑞見而不臻乎泰山者也. 雖受命而功不至, 至梁父矣而德不洽, 洽矣而日有不暇給, 是以卽事用希. 傳曰:「三年不爲禮, 禮必廢;三年不爲樂, 樂必壞.」每世之隆, 則封禪答焉, 及衰而息. 厥曠遠者千有餘載, 近者數百載, 故其儀闕然堙滅, 其詳不可得而記聞云.
자고로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된 자가 어찌 봉선(封禪)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의 감응과 길조가 없으면 서둘러 봉선대전을 행했으며, 하늘의 감응과 길조가 나타났음을 보고도 태산(泰山)에 가지 않은 천자는 여지껏 없었다. 그러나 어떤 자는 비록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되었으나 치세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고,
어떤 자는 몸은 비록 양보산(梁父山)에 갔으나 도덕과 봉선의 성대한 제례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어떤 자는 도덕은 갖추어졌으되 봉선을 행할 틈이 없었다. 이 때문에 봉선대전이 극히 드물게 되었다.
「전(傳)」에 “3년간 예를 행치 아니하면, 반드시 사라지며, 3년간 음악을 행치 아니하면, 그 교화는 반드시 부서진다.”라고 쓰여 있다. 매번 성세(盛世)를 맞이하면 봉선으로 보답하고, 성세가 쇠퇴하면 봉선은 사라진다. 멀리는 천여 년, 가까이는 수백 년이 되나, 그 봉선대전의 양식이 모두 매몰되어 그 상세한 내용을 얻을 수는 없으나, 다행히 기재되어 전해온다.
尙書曰, 舜在璇璣玉衡, 以齊七政. 遂類于上帝, 禋于六宗, 望山川, 遍群神.
『상서(尙書)』에 “순(舜)은 선기옥형(璇璣玉衡)으로써 천체를 관찰해, 칠정(七政)을 살폈다. 나아가 상제님에게 제사 지내고, 육종(六宗)에게 연기를 피워 제사 지내고, 명산대천을 돌며 여러 신령들에게 두루 제사 지냈다.
周公旣相成王, 郊祀后稷以配天,14) 宗祀文王於明堂以配上帝.15) 自禹興而修社祀, 后稷稼穡, 故有稷祠, 郊社所從來尙矣.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좌하게 되자, 교외제사 때에는 후직(后稷)을 하늘의 신과 배향(配享)하게 하고, 종묘제사 때에는 명당에서 문왕(文王)을 상제(上帝)와 배향하게 했다.
하(夏)나라가 흥기하자 토신(土神)의 제사가 제정되었고, 후직이 농사를 일으킨 이후부터 곡신(穀神)의 제사가 생기게 되었다. 이처럼 천신제사와 토신제사는 모두 유구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自未作鄜畤也, 而雍旁故有吳陽武畤,8) 雍東有好畤, 皆廢無祠. 或曰:「自古以雍州積高, 神明之隩, 故立畤郊上帝, 諸神祠皆聚云. 蓋黃帝時嘗用事, 雖晩周亦郊焉.」其語不經見, 縉紳者9)不道.
아직 부치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옹읍(雍邑) 근처에 오양(吳陽)의 무치(武畤)가 있었으며, 옹읍 동쪽에는 호치(好畤)가 있었으나, 모두 황폐해 제사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혹자는 “자고로 옹주(雍州)는 지세가 높아 신명(神明)의 거처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제단을 세워 상제(上帝)에게 제사 지냈으며, 기타 여러 신령의 사당도 모두 이곳에 모아놓았었다. 대략 황제(黃帝) 때부터 이곳에서 제사를 거행했으니, 주나라 말엽에 이르기까지도 제사를 거행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경전에도 보이지 않으며, 대신들도 말한 바 없다.
其後十四年, 秦繆公立, 病臥五日不寤;寤, 乃言夢見上帝, 上帝命繆公平晉亂. 史書而記藏之府. 而後世皆曰秦繆公上天.
그 14년 뒤에 진 목공(秦繆公)이 재위에 올랐는데 병이 들어 5일 동안 혼미하다가 깨어나서 말하기를, 꿈속에서 상제를 보았는데 목공에게 ‘진(晉)나라의 난리를 평정하라.’고 명했다고 했다. 사관은 이 말을 기록해 내부(內府)에 수장했으며, 후세 사람들은 모두 ‘진 목공이 하늘로 올랐다.’고 말한다.
秦繆公卽位九年, 齊桓公旣霸, 會諸侯於葵丘,17) 而欲封禪. 管仲曰:18)「古者封泰山禪梁父者19)七十二家,20) 而夷吾所記者十有二焉. 昔無懷氏21)封泰山, 禪云云;22)虙羲封泰山, 禪云云;神農封泰山, 禪云云;炎帝23)封泰山, 禪云云;黃帝封泰山, 禪亭亭;24)顓頊封泰山, 禪云云;帝嚳封泰山, 禪云云;堯封泰山, 禪云云;舜封泰山, 禪云云;禹封泰山, 禪會稽;25)湯封泰山, 禪云云;周成王封泰山, 禪社首:26)皆受命然後得封禪.」桓公曰:「寡人北伐山戎,27) 過孤竹;28)西伐大夏, 涉流沙, 束馬懸車, 上卑耳之山;29)南伐至召陵,30) 登熊耳山31)以望江漢. 兵車之會三,32) 而乘車之會六,33) 九合諸侯, 一匡天下, 諸侯莫違我. 昔三代受命, 亦何以異乎?」於是管仲睹桓公不可窮以辭, 因設之以事, 曰:「古之封禪, 鄗上之黍, 北里之禾,34) 所以爲盛;江淮之閒, 一茅三脊,35) 所以爲藉也. 東海致比目之魚,36) 西海致比翼之鳥,37) 然后物有不召而自至者十有五焉. 今鳳皇麒麟不來, 嘉谷不生, 而蓬蒿藜莠茂, 鴟梟數至, 而欲封禪, 毋乃不可乎?」於是桓公乃止. 是歲, 秦繆公內晉君夷吾. 其後三置晉國之君,38) 平其亂. 繆公立三十九年而卒.
진 목공 9년, 제 환공(齊桓公)은 패주가 되어 규구(葵丘)에 제후들을 모아놓고 봉선의 일을 의논했다.
관중(管仲)이 “고대에 태산(泰山)과 양보산(梁父山)에서 봉선하던 제후는 72명이나 되나, 신이 기억하는 사람은 12명뿐이옵니다.
옛날 무회씨(無懷氏)가 태산과 운운산(云云山)에서 봉선했으며, 복희씨(伏羲氏)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신농(神農)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염제(炎帝)는 태산과 정정산(亭亭山) 봉선했으며, 황제(黃帝)는 태산과 정정산에서 봉선했으며, 전욱(顓頊)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제곡(帝嚳)도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요(堯)도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우(虞)의 순(舜)도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하(夏)나라의 우(禹)는 태산과 회계산(會稽山)에서 봉선했으며, 상(商)나라의 탕(湯)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주(周)나라의 성왕(成王)은 태산과 두수산(杜首山)에서 봉선했는데, 이들은 모두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된 후에서야 비로소 봉선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환공이 “과인은 북쪽으로는 산융(山戎)을 정벌해 고죽(孤竹)을 통과했고, 서쪽으로는 대하(大夏)를 정벌해 유사(流沙)를 건넜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비이산(卑耳山)을 올랐으며, 남쪽으로는 소릉(召陵)까지 정벌해 웅이산(熊耳山)에 올라 장강(長江)과 한강(漢江)을 바라볼 수 있었소.
세 번의 군사회의와 여섯 번의 평화회의 등 모두 아홉 차례나 제후들을 소집해, 천하를 구제했소. 이때 제후들은 나를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소. 이것이 3대가 천명을 받았다는 것과 어찌 다를 바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관중은 말로써는 환공을 설복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제단을 설치하려 함을 구체적 사실로써 간언했다.
“옛날에 봉선할 때는 호상(鄗上)의 기장과 북리(北里)의 벼로써 제품(祭品)으로 삼았으며, 장강과 회수 유역의 세 모서리 띠[茅]로써 신령의 자리로 삼았습니다.
서해에서 바쳐온 넙치, 동해에서 바쳐온 비익조(比翼鳥)가 있었으며, 또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바쳐온 희귀한 물건이 15가지나 되었습니다. 지금은 봉황과 기린(麒麟)이 오지 않으며, 좋은 곡식도 생산되지 않고 들녘에는 쑥과 명아주만이 무성하며, 올빼미들만이 수차례 날아들 뿐입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봉선하시려는 것은 부적합한 줄로 압니다.”
이에 환공은 봉선을 그만두었다. 이해에 진 목공(秦繆公)은 진 혜공(晉惠公)을 돌려보내 진(晉)나라의 군주로 세웠으며, 그 후 세 차례 진(晉)나라의 군주를 안배하며 진나라의 난리를 평정했다. 목공은 즉위한 지 39년 후에 죽었다.
첫댓글
국사편찬위원회는 일본 역사를 설명하면서 ‘국왕 중심의 새로운 정부’라고 기술한 교과서 출판사에게 관련 대목을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로 수정하라고 권고했다.
김태년 의원은 이를 두고 "국사편찬위가 근현대사 영역에서 일본 편향적 교과서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태년 의원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서울대 교수시절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이야기하고, 을사조약보다는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소신있는 학자였다"며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런 학자의 소신도
그런 학자의 소신도 무너뜨리고 반역사적 용어로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것은 통탄할 수준”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출처: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0914095253368&nvr=Y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0914095253368
@굴렁쇠7
매국노짓을 일삼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 명단
출처: http://amn.kr/sub_read.html?uid=6871§ion=sc7
출처: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138§ion=sc9§ion2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090300045&code=940401
@굴렁쇠7
교육부 주최 행사에서 '일본해' 지구본 배부
기자] 2016년 9월 22일부터 부산에서 교육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지구본을 나눠준 겁니다.
지구본을 자세히 보면 동해를 일본해, Sea of Japan으로 표시하고 괄호로 East Sea라고 적어놨습니다.
교육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지구본을 나눠준 겁니다.
학부모)
아이가 '이거 일본 바다야?' 묻는데 '아니야 잘못된 거야' 이렇게 넘어간 거에요.
이거 봐 왜 일본해라고 적힌 것을 줬지??….]
문제의 지구본을 배부한 곳은 방과후 학교 체험장에서였습니다.
YTN 최아영[cay24@ytn.co.kr]입니다.(2016년 9월 25일 YTN뉴스에서)
@굴렁쇠7 교육부 재외 한국교육기관 홈페이지, ‘일본해·다케시마’ 표기 지도 사용<2015년 10월 20일 뉴스>
교육부가 운영하는 일부 재외 한국교육원과 한국학교가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지도를 홈페이지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KBS 취재 결과 재외 한국교육원 40곳 가운데 15곳이, 한국학교는 32곳 가운데 9곳이 일본해나 다케시마 또는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된 지도를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교육부는 이들 기관 홈페이지에 구글 지도를 연동하면서 생긴 문제 같다며 수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167689
@굴렁쇠7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역사교과서를 이모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016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들이 배우게 될 국정 사회 교과서 실험본에서 무려 350개가 넘는 오류들이 발견됐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에 성공했다', '의병을 토벌했다'는 등 도대체 어느 나라의 역사 교과서인지, 황당한 표현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출처: http://www.ytn.co.kr/_ln/0103_201412102203573684
제사 문화 알게되어 고맙습니다
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