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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보는 임신하는 큰 고통과 수고하는 해산
창3:16 >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오늘의 구절은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어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저주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유명한 말씀으로 논쟁이 많은 구절입니다
논쟁의 가장 큰 이유는 여자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이 여자를 다스리라고 했으니 여자는 남편을 하늘처럼 모시고 남편 말에 무조건 복종하며 다스림을 받고 살아야 된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 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임신은 축복 받을 일이니 저주가 아니다 하면 한쪽에서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크게 하신다고 하셔서 지금까지도 여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저주라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입니다
즉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하와라는 여자 한 사람 때문에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당하지 않을 고통을 크게 받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라면 시대와 상황이 바뀌고 달라도 여자에게 뿐만 아니라 남녀 노소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며 변함이 없어야 진리라 할 것입니다
때문에 그 때나 지금 시대에도 진리의 말씀이 동일하게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요즈음의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진리의 말씀이 맞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성경 말씀으로만 보면 분명히 여자가 남편을 사모하고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라고 나오는데 지금은 거꾸로 남성이 여자를 사모하고 여자가 남자를 다스리는 여성 상위시대를 맞앗습니다
오늘날은 집안이 잘 되고 평안하게 남자가 제 명대로 살려면 하나님을 사모하기 보다는 여자를 사모하고 하나님 말씀 듣기 보다는 아내 말을 잘 들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여자들이 임신하고 해산할 때 큰 고통을 맛보게 된다고 하시는데 이 말씀이 진리가 될려면 모든 여자에게 적용이 되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태어난 모든 여자들은 공통적으로 임신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수고를 당해야 하는데 요즘은 무통 분만을 하고 제왕 절개를 하여 큰 고통 없이 해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즘은 결혼을 하지 않아 나홀로 족 ,비혼 족으로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여도 아기를 낳지 않는 여자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오로지 예수님을 남편으로 삼아 결혼을 않는 수많은 수녀들은 어떻게 되는 것 입니까
만약에 창3:16절을 진리의 복음으로 보지 않고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결혼하지 않는 수녀들이나 비혼 족으로 독신주의자, 애기를 낳지 못하는 불임녀들에게는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말씀이니 무시하고 귓등으로 넘겨야 할 것 입니다
세상에서의 결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식 농사 짓는 것이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결혼하는 것도 하나님이 농부가 되셔서 자식 농사 짓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남녀가 만나 쾌락을 짓지 자식농사 짓기를 싫어 합니다
한번 물어 봅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구원이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말하고 ,한편으로는 여자가 해산하므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우리의 구원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인가 ,여자가 해산하므로 구원받는 것인가 아니면 믿고 해산의 수고를 하여야 받는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해산하러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의 비아돌로르사 언덕길을 오르셨는데 ....
창세기에 보면 처음에는 남편인 아담이 여자를 사모하여 내 뼈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며 여자를 사모하여 하와의 마음을 흔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하와의 비위를 맞추다 보니 하나님께서 선악과로 먹지 말라고 명령 햇는데도 불구하고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라고 개짓는 소리를 하여도 먹지 않으면 하와가 삐질까봐 여자의 기분을 맞춰줄려고 먹기 싫은 선악과를 웃으며 같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갈1:10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때문에 우리 피조물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사람의 말을 듣는데 있기 때문에 옛 남편이었던 아담들은 십자가에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전에는 남자인 아담이 하와를 연모하고 하와 기분을 맞춰 주고 하와가 남편을 먹어라 먹지 마라 다스렸는데 이제는 선악과 먹은 죄로 말미암아 정 반대로 여자인 하와가 남편을 사모하며 비위를 맞추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을 번역 성경 마다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표현 된 것을 봅니다
천주교 공동번역 “”너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현대어 성경 “너는 남편을 네 마음대로 하고 싶겠지만 오히려 남편이 너를 지배하게 될것이다
새 번역 성경 “네가 남편을 지배한다고 해도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킹제임스 흠정역은 “” 또 너의 열망이 네 남편에게 있으리니 남편이 너를 주관할 것이다
어쨌든 말씀을 보니 번역 성경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론은 “”여자 네 맘대로 안될 것이다 그러니 여자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이런 말씀들이 하나님께서 여자 맘대로 안될 것이니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다스림에 무조건 복종하고 따르라는 말씀일까요
제가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남편 된 자가 말씀대로 순종하여 곳이 곳대로 자기 아내를 다스린다고 개 잡듯 실력 행사 했다가는 법정에 서서 이혼하기 딱 좋은 말씀임을 봅니다
요즘 어떻습니까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여 비위 맞춰야 하고 여자들이 남자를 잘 다스려야 그 가정이 잡음이 없고 남자들이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그러지 않앗다가는 간 큰 남자로 여겨 밥도 못 얻어 먹고 쫒겨나고 이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살들보다 더 이혼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보통 여자들이 임신 할 때도 고통이 따르지만 임신할 때 보다 해산 할 때가 더 큰 죽음의 고통이 따르게 되는데 성경은 거꾸로 해산 할 때보다 임신 할 때가 더 큰 고통이 따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다시피 임신 할 때보다 해산 할 때 죽음을 무릎 쓰고 해산을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도 해산하다가 에브랏 길에서 죽어 갔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여자 하와 죄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모든 여자들이 임신할 때 입덧으로 고생하고 해산 할 때 고통 속에서 출산하게 되었다는 그런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 창3:15 >은 신학자나 목회자들도 대부분 원시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바로 뒤 따르는 <창3:16>절은 복음이 아니고 세상 말이라고 하면 소가 웃을 일로 이것은 앞 뒤 문맥으로도 일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식적인 면에서도 15절이 복음이면 14절도 복음이 되야 할 것이고 16절도 육적 임신과 해산으로 세상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속에 감춰진 영적 임신과 해산으로 당연히 복음으로 해석이 되어야 옳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상징과 비유로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의도하신 복음적인 뜻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
그 이유들을 찾아 영적으로 살펴 봅니다
1)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한다는 영적 의미에 대하여
2) 수고하고 자식을 낳은 다는 영적 의미에 대하여
3) 여자가 남편을 원한다는 영적 의미에 대하여
4) 남편은 여자를 다스린다는 영적 의미에 대하여
첫째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한다는 잉태는 육적 잉태와 영적 잉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눈에 보이는 육적 잉태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말씀으로 잉태하는 영적 잉태의 모습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13장에 씨 뿌리는 비유에서 예수님은 남자는 씨를 주고 여자는 씨를 받는 사람으로 씨를 예수님 자신으로 눅8장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고 엡5장은 여자를 몸된 교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씨는 생명으로 남자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며 여자는 생명의 말씀을 받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복음을 전하는 자를 남자 복음을 받는 자는 모두 여자라는 말씀입니다
보통 여자들이 임신하면 육적으로 체중이 불어 체형이 변하고 입덧으로 입맛이 바뀌고 손 발의 부종이 생기게 되어 임신 중독증이라고 하며 해산의 후유증으로는 산후통으로 뼈 마디가 쑤시고 산후우울증 조울증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한마디로 의식주가 바뀌게 됩니다
예전 옷은 맞지 않아 입지 못한다 새로운 펑퍼짐한 임신복이 필요하다 예전에 즐기던 기호 식품이 먹고 싶지 않고 새로운 안 먹어본 음식이 땡긴다 예전에 낡은 집이 맞지 않다 아기를 낳을려면 새 집이 필요하다 물론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다면 의식주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임신 출산하는데 육체적 고통이 따른 다는 것으로 이것은 영적으로도 잉태하는 데는 영적 고통이 그만큼 따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각적 말씀입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듯이 죄로 오는 영의 고통은 상상을 초래합니다 영의 고통이 훨씬 크기 때문에 더 크다고 하신 것입니다
고통“ 헬라어< 잇차본= 수고하다, 근심하다,>로 아차브”(마음이 찢어지다, 큰 상처를 입다 , )에서 유래 하였습니다
따라서 네 고통과 네 잉태를 크게 더한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이 찢어져 큰 상처를 입는 고통을 뜻 합니다
그렇다면 왜 육체의 고통보다도 마음이 찢어져 마음의 큰 상처를 입는 고통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원시복음이라고 하여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단지 뱀의 머리만 생각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고 사탄의 말을 들으면 사탄의 백성이 되듯 여자인 하와는 뱀의 말을 들어 뱀의 사상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뱀의 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여자가 원수가 되엇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중계시로 뱀을 들어 여자인 하와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약4:4 >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때문에 성경은 영적으로 잉태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잉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늙은 할머니가 임신하였던 사라 이야기고 신약은 젊은 처녀가 임신하였던 마리아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처인 할머니 사라가 경수가 끊어져 애기를 낳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의 모형인 이삭을 낳았고 요셉의 처인 처녀 마리아도 은혜로 예수를 낳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잉태하는 것은 예수를 잉태하는 것임을 알겠는데 고통을 크게 더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구약의 모세와 , 말씀의 씨로 오셨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예를 살펴 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을 데리고 다니며 만나로 세상 물을 빼내고 잉태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6개월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말씀의 씨를 제자들에게 뿌려 잉태시켰습니다
세상 여자들은 잉태기간은 10개월이지만 예수님은 3년이 넘게 걸렷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한결 같이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자로 살려고 자신을 따른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데리고 성질이 불 같았던 요한에게 말씀의 씨를 뿌렸고 베드로에게는 사탄이라고 하면서도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씨로 세상 바다에서 잔뼈가 굳은 거칠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삼년 육개월 동안 그들의 세상 물을 빼내고 잉태시켰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년 육개월을 걸렷다면 우리들도 최소 삼년 육개월은 걸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성경학교로, 제자 양육이다, 알파 코스다, 사역리로 잉태를 시킬려고 하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데 거꾸로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로 아예 교회에 나가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쨌든 여자들은 잉태하면 유산이 안되고 온전하게 해산하기 위하여 잉태하고 임신중에도 몸조심 마음 조심으로 태교에 힘을 솟습니다
그리고 잉태하면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것이 싫어지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앗던 것들이 먹고 싶기 때문에 두 마음이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잉태의 고통을 회개의 고통으로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해산의 수고를 십자가의 죽음의 수고로 나타난 예수의 성령세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복음으로 잉태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처럼 본톤 친척을 떠나야 하고 이 말은 세상에서 돌아서는 큰 결단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것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뒤로하고 광야로 나오는 것 같과 같은 이치 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고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눈에 보이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기도한 열매들을 바라보고 취하길 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유브라데 강을 건너 하나님의 지시하는 땅으로 올라 가다가 나중에는 점점 남방으로 가다가 마침내 애굽으로 갔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세상 것을 향한 갈망 동경으로 점점 빠져드는 것을 저부터 봅니다
어쨌든 이 고통은 리브가 잉태된 배 안에서 에서와 야곱이 싸웠듯 세상적이고 마귀적이고 정욕적인 나의 옳다함의 육적인 죄의 생각들을 끊어 내고 오직 하나님만이 옳다는 영적인 생각으로 오는 고통입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말씀의 씨로 잉태한 것을 보고 자기 육신적인 생각의 고통으로 가만히 끊고자 했고 마리아는 두려워하였던 것을 봅니다
이렇게 내 안에 복음의 씨 말씀의 씨가 잉태하기까지는 그렇게 처절한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을 미리보신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롬7:22-24 >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잉태하는 순간부터 고통 속에 새 생명이 자라면서 육의 생각인 옛 사람, 예 생명은 점점 멸하여 지고 영의 생각인 새 생명은 점점 그리스도 형상까지 자라 해산을 맞게 될 것입니다.......이어서
첫댓글 고전 1:30 >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
골1:6 >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