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NBA Virtual Draft with NBA Legends 를 할 기회가 있어서 임의로 몇 명의 위대한 선수들을 NBA Live VD 에 포함시켜야 했습니다. 그 때 GM 들에게 이 선수들에 대해 알리고자 뿌린 자료인데, 선수를 40명 정도로 제한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소개되지 않은 '전설' 들도 꽤 많을 겁니다. 그래도 심심풀이 땅콩 식으로 함 읽어보시길.
제 목:[SAY-MAS] About The Legends - C 관련자료:없음 [9700]
보낸이:박부남 (스톤콜드) 2000-10-26 02:18 조회:116
["박세운"<==제 본명]
1. 윌트 챔벌린 (7-1, 1959-73)
* Records & Awards
NBA Championship (2)
NBA ROA (1960)
NBA All-Star (13)
NBA MVP (4)
All-Defensive First Team (2)
* Comments:
'멈출 수 없는 득점 기계' 챔벌린은 농구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힘을 갖춘
선수였다. 7-1, 275 lbs 의 챔벌린은 수많은 깰 수 없는 기록들을 양산해
낸 선수이기도 하다.
118 차례의 50득점 이상 기록, 필드골 성공률 리그 1위 횟수(1), 61-62
시즌에 기록했던 정규 시즌 평균 50.4 득점, 한 경기 100득점까지..
비록 같은 시대의 라이벌 빌 러셀의 리그 8연패에 빛을 바래는 바람에
총 두 차례의 우승 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그는 통산 평균 30.1 Ppg,
22.9 Rpg 를 기록했던 농구계의 전설 그 자체이다.
2. 빌 러셀 (6-10, 1956-69)
* Records & Awards
All-Defensive First Team (1)
NBA MVP (5)
NBA All-Star (12)
NBA Championship (11)
Olympic Gold Medal (1956)
* Comments
농구 역사상 그 누구도 빌 러셀만큼 위력적인 수비의 힘을 발휘했던 선
수는 없었을 것이다. "Mr.Defense" 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블락샷의 대가
빌 러셀.
샌프란시스코 대학 시절 두 번의 내셔널 타이틀을 획득했고, 60연승을
기록했던 6-10, 220 lbs 의 러셀은 1956년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셀틱스에 입단한다.
러셀이 셀틱스에 당도하기 전, 단 한 차례도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
했던 셀틱스. 그들은 효과적인 공격 농구의 팀이었으며, 트랜지션 경기
를 추구했다. 하지만, 수비의 중심이 없어서 득점만큼을 실점하는 그러
한 팀이었다.
하지만, 러셀의 당도와 함께 상황은 급변했다. 올림픽 참가 후 시즌 중
반에나 셀틱스에 합류했던 러셀은 팀 수비의 핵을 이루며 13번의 시즌
동안 11번의 우승을 일궈낸다. (물론, 3 시즌은 플레잉 코치로서) 특히
셀틱스가 달성한 리그 8연패의 기록은 프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21C 가장 위대한 농구 선수로 선정되기
도 했다.
러셀은 통산 15.1 Ppg, 22.5 Rpg, 4.3 Apg 를 기록했다.
3. 카림 압둘 자바 (7-2, 1969-89)
* Records & Awards
NBA ROA (1970)
NBA Championships (6)
NBA MVP (6)
NBA All-Star (19)
NBA All-Defensive First Team (10)
* Comments
뛰어난 기록과 그 지속성, 그 두 가지 면에서 카림 압둘 자바보다 위대했
던 NBA 선수는 없다. 수비수를 무안하게 만드는 스카이 훅이라는 무기로
20년동안 NBA 무대에서 총 44,149 (PO, Final 포함) 득점을 기록했던 압
둘 자바. 그는 정규 시즌 역대 최고 득점자 1위로 아직까지 남아 있으며
이는 챔벌린의 몇 몇 기록들과 함께 가장 깨지기 힘든 기록 중 하나로 여
겨지고 있다.
대학 시절, 루 알신더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했던 압둘 자바는 UCLA
대학 시절 2학년 때부터 정규 선수로 출전하여(당시 룰은 1학년은 정규
선수에 포함될 수 없었으며, 압둘 자바의 "1학년 시기는 새 장에 갇혀 있
었던 새가 된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라는 발언 이후 이 룰은 폐지되었다.)
대학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처음에 밀워키 벅스 소속 선수로 NBA 에 입성했던 압둘 자바는 2년차
였던 70-71 시즌에 처음으로 우승을 달성했으며, 이후 레이커스로 자리
를 옮긴 후에 5번 더 우승하며 80년대 레이커스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4. 윌리스 리드 (6-10, 1964-74)
* Records & Awards
NBA ROA (1965)
NBA MVP (1970) -> the firrst Triple Crowns
NBA All-Stars (7)
NBA All-Defensive First Team (1)
NBA Championships (2)
* Comments
리그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던 리드는 뉴욕 닉스의 전성
기였던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 뉴욕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리드는 그저 단순히 뛰어났던 빅 맨으로 기억될 수도 있었지만, 1970년
도 레이커스와의 파이널을 통해 그는 진정한 레전드가 되었다. 리드의
상대는 최강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윌트 채임벌린. 리드는 5차전 때 치명
적인 부상을 당하며 6차전 챔벌린이 27개의 필드골 중 20개를 성공시키
며 닉스의 골밑을 유린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의 오른쪽 엉덩이
부상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뉴욕 언론들은 리드의 7차전 출
전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7차전이 벌어지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
다. 오른쪽 엉덩이 부상으로 인해 한 쪽 다리를 마음 먹은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리드가 코트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의 함성은 메디슨 스퀘어 가든
사상 최고의 함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리드는 스타팅 센터로 출전,
챔벌린을 상대로 초반 두 개의 필드골을 성공시켰으며 수비에서도 챔벌
린을 압도했다. 그는 1쿼터 3분여를 남기고 벤치로 돌아갔지만, 정신적
지주의 투혼에 감명받은 닉스 선수들은 레이커스를 세차게 몰아치며
결국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리드는 통산 18.7 Ppg, 12.9 Rpg, 를 기록했다.
5. 모제스 말론 (6-10, 1974-76[ABA], 1976-95[NBA])
* Records & Awards
ABA All-Star (1)
NBA All-Star (12)
NBA MVP (3)
NBA Championship (1983)
NBA All-Defensive First Team (1)
* Comments
NBA 최초의 고졸 출신 선수, 그리고 NBA 무대에서 뛴 마지막 ABA 출신
선수, 모제스 말론. 공격 리바운드 기계이자 거친 빅 맨이었던 그는 1983
년 줄리어스 어빙, 바비 존스 등과 함께 NBA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를 4승
무패로 완파하며 챔피온쉽의 영광을 차지했다.
역대 최다 공격 리바운드 1위 기록(6,731개)를 갖고 있는 말론은 단일
경기 최다 공격 리바운드 기록(21개)도 갖고 있다. 공격 리바운드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자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미래의 확실한 Hall of Famer 인 말론은 NBA 통산 20.6 Ppg, 12.2 Rpg,
1.4 Apg 를 기록했다.
6. 로버트 패리쉬 (7-1, 1976-1998)
* Records & Awards
NBA All-Stars (9)
NBA Championships (3)
* Comments
1980년대, 래리 버드, 케빈 멕헤일, 데니스 존슨 등과 함께 보스턴 명가
를 이끌었던 '추장' 로버트 패리쉬. 그는 셀틱스가 필요로 하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줬던 성실했던 선수였다.
지난 1984년 NBA 파이널에서 셀틱스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레이
커스를 꺽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리즈에서 패리쉬는 압둘 자바에게
26.6 Ppg 를 허용하며 자신은 15.4 Ppg 에 그쳤지만, 7경기동안 총 80개
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57개를 잡아낸 압둘 자바를 압도했으며, 그가
기록한 30개의 공격 리바운드는 압둘 자바의 그 것보다 7개가 많은 것이
었다.
그는 워리어스 소속이었던 77-78 시즌부터 셀틱스에서의 마지막 시즌
이었던 93-94 시즌 때까지 무려 17시즌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꾸준함을 보였다.
7. 조지 마이칸 (6-10, 1946-48[NBL], 1948-49[BAA], 1949-54, 1955-56[NBA])
* Records & Awards
NBL All-Star (2)
NBL MVP (1)
NBL Championship (2)
BAA All-Star (1)
BAA Championship (1)
NBA All-Star (4)
NBA Championship (4)
All-NBA First Team (5)
* Comments
AP 에서 선정한 'Greatest Player of the First Half a Century" 조지 마이
칸은 농구 사상, 아니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Big Man' 이라 불리웠던 선
수였다. 드폴 대학 시절, 너무도 많은 슛을 림 위에서 걷어내버린 마이칸
때문에 NCAA 리그에서 골텐딩이라는 룰을 개정했을 정도로 그는 영향
력이 높은 빅맨이었다.
NBL 이라는 리그에서 NBA 의 전신인 BAA 로 마이칸이 소속되었던 미
네아폴리스 레이커스가 이적한 첫 해, 마이칸이 주축이 된 레이커스는
BAA 타이틀을 따내게 된다. 그 후 NBA 로 리그를 개정한 후 마이칸의
레이커스는 처음 5년동안 4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역사상 첫 번째
로 'Dynasty' 칭호를 받는 팀이 되었다.
마이칸은 정규 시즌 평균 22.6 Ppg 를 기록했으며, 91경기의 플레이오
프에서는 23.5 Ppg 를 기록했다.
8. 빌 월튼 (6-11, 1974-88)
* Records & Awards
NBA MVP (1978)
NBA All-Defensive First Team (2)
NBA Sixth Man Award (1986)
NBA All-Star (2)
NBA Championship (2)
* Comments
수비, 리바운드, 패스. 모든 것이 표준 그 자체였던 센터 빌 월튼은 수
많은 부상때문에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 불운한 케이스였다.
72-73년 UCLA 에게 내셔널 타이틀을 안기고 74년 전체 드래프트 1순
위로 블레이저스에게 지명되었던 월튼, 하지만 그는 무릎 수술 때문에
루키 시즌동안 단 35게임에만 출전하는 불운을 맞이한다. 월튼은 그럼
에도 불구하고 12.8 Ppg, 12.6Rpg, 4.8 Apg 를 기록한다.
월튼의 생애 최고의 시즌은 76-77 시즌. 블레이저스 선수로서 그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월튼은 이 해 건강을 회복하며 65 경기에 출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게다가 파이널 MVP 를 차지했으며 정규 시
즌에서 기록했던 14.4 Rpg 와 3.25 Bpg 는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 후 샌디에고-LA 클리퍼스로 소속을 옮긴 월튼은 잦은 부상 때문에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던 중 카림 압둘 자바를 경계하는 차원에
서 장신 식스맨을 구하고 있었던 셀틱스의 바램 덕분에 월튼은 셀틱스
로 소속팀을 옮기게 된다.
85-86 시즌, 캐리어 하이인 80경기에 출전했던 월튼은 팀이 요구했
던 식스맨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 해 셀틱스가 로케츠
를 꺽고 우승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게다가 월튼은 그 해 NBA 식스
맨 어워드를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월튼은 14시즌동안 총 468 경기에 출전하여 13.3 Ppg, 10.5 Rpg,
3.4 Apg 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