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영화 벌새
작년은 우리나라 영화의 해인 것 같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칸 영화제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등을 휩쓸었단다.
기생충이 그렇게 메인 영화제 최고의 상을 휩쓰는 동안
독립 영화 <벌새> 각종 독립영화제 등
많은 상을 받았단다.
검색을 해보니 46개의 상을 받았대.
와우, 대단하구나.
하지만 독립 영화의 한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았지.
개봉관도 그리 많지 않았고 말이야.
아빠도 그런 영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벌새라는 책도 있더구나.
아빠는 책 소개를 자세히 보지 않고,
영화 <벌새>가 <벌새>라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줄 알았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있잖아.
그런 관계인줄 알았어.
워낙 평이 좋다 보니 아빠도 이 책을 구입했단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런데 이 책은 영화 시나리오였단다.
아빠가 책 소개를 안 보고 당연히 원작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음, 아빠가 영화 시나리오를 읽어본 적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더구나.
한번 읽어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
재미있더구나.
아무래도 영화 시나리오다 보니까
아빠가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읽게 되더라구.
이 부분은 카메라 움직임을 이렇게 하고,
배우들은 모습은 이렇게 하고…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색다른 재미였어.
1. 1994년
이 책의 부제는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이란다.
1994년.
벌써 26년전의 일이구나.
어떤 해는 아무런 의미도 없던 한해일 수 있지만,
어떤 해는 머릿속에 박혀 잊을 수 없는 한해일 수도 있어.
1994년이 바로 그런 해란다.
특히 아빠는 군대를 간 해이기도 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는 한 해란다.
1994년의 많은 날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구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저런 많은 일이 일어났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수대교 붕괴였단다.
멀쩡하던 커다란 다리가 어느날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이 사건은,
그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를 주었단다.
아빠도 군대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그 뉴스를 보면서
황당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벌새>의
배경에 성수대교 근처 동네가 나와 설마 했는데….
그리고 1994년에 큰 사건으로 아빠는 김일성의 사망이 떠오르는구나.
몇 십 년 동안 북한의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던 김일성의 죽음.
군대에 있던 아빠는 비상이 걸려서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이런 1994년…
주인공 은희는 중학생이었단다.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둘째 딸.
언니 김수희는 고등학생이고, 오빠 대훈은 중3이었어.
은희의 아버지는 권위주의자에 똘똘 뭉친 사람이라고 보면 되고,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서슴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어.
그렇다고 남편으로서는 훌륭하냐?
그렇지 않단다.
떡집은 대부분 엄마가 도맡아 하고,
은희 아버지는 춤바람도 났어.
오빠 대훈도 은희를 가끔 때리고 그랬어.
참 나쁜 오빠구나.
언니 수희는 그렇지는 않지만,
언니는 언니 나름대로 연애를 하느라, 은희와 많이 친하지는 않았어.
식구는 많았지만 은희는 집에서 늘 외로움을 느꼈어.
그런 은희에게 기댈 곳에 생겼어.
새로운 한문학원 강사 김영지.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학생운동으로 지금은 휴학생…
차분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무엇보다 다른 학원 선생과 달리 학생들을 사람으로 대했어.
이애 은희는 김영지에게 깊은 ‘정’이라는 것을 느꼈을
거야.
힘든 일이 있을 때 영지를 찾아왔어.
그리고 영지의 품에 안기기도 했어.
얼마나 원했던 것일까.
가족에서 얻지 못한 포근함.
은희가 귀에 혹이 생겨서 큰 수술을 한다고
잠시 학원을 그만둘 때 은희는 자신의 집에 있는 책을 영지에게 선물했고,
영지는 예상밖에 병문안을 해서 은희에게 큰 힘을 주었어.
그렇게 은희와 영희의 정은 깊어져 갔어.
그들의 그런 정은 어느날 갑자기 학원을 그만 둔 영지로 인해 끊겼어.
하지만 영지로부터 온 편지와 소포로
그 인연의 끈은 다시 이어지는 듯 했지.
소포에 써 있는 주소를 찾아 영지를 만나러 가는 은희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지.
하지만, 은희를 기다리는 것은 영지의 죽음이었어.
성수대교의 희생자 중에 한 명이 바로 영지였던 거야..
꼭 이렇게 영화를 슬프게 만들었어야 했나.
부제에 1994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성수대교 이야기가 나온다는 뜻이었지만…
은희의 언니 수희가 극적으로 그 사건을 모면했다는 이야기로
성수대교 이야기는 끝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지를 죽음으로 만들다니…
은희를 너무 불쌍하게 만들었어….
감독 나빠.
은희는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영지를 그리워했어.
어쩌면 영지를 가슴에 묻고 새 출발을 기약했을 수도…
2. 책을 덮고 영화를 보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영화 <벌새>도
보았단다.
배우들이 모두 낯설었지만,
다들 연기들을 잘 하더구나.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대로 그대로 그려졌어.
비록 아빠가 생각했던 영상과는 달랐지만 말이야.
이 책은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은 대본도 약 40분 분량이 있다고 했어.
영화를 보니 그 내용들을 굳이 화면이 옮기지 않아도
앞뒤 내막을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이 영화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김보라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했고,
후기에서 자신은 가족들과 화해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래, 가족은 그런 거지..
김보라 감독의 이름을 잘 기억했다가
그의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한번 봐야겠구나.
기대되는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딩동.
책의 끝 문장 : 너무너무 고맙다
책제목 : 벌새
지은이 : 김보라
펴낸곳 : 아르테
페이지 : 312 page
책무게 : 421 g
펴낸날 : 2019년 08월 29일
책정가 : 17,000원
읽은날 : 2020.04.04~2020.04.05
글쓴날 : 2020.04.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