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다니는 체육관에 가면 벽 전체가 거울인 곳이 있다. 그 거울 앞에는 운동하며 자세를 확인하고 교정하려는 사람들이 늘 두어 명은 있다. 나도 오늘은 거기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걸으며 열심히 거울을 보았다. 자세 교정을 위해 그랬던 것도 아니고, 내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확인하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다. 쌍지팡이로 걸어 보고, 지팡이 하나로 걸어 보고, 지팡이 없이 걸어 보며 내가 걷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걷든 생각보다 절뚝거리는 정도가 심해서 둘째 딸 결혼식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그렇게 걸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둘째 딸의 결혼식이 11월 16일로 결정되었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만 초청한다니 기껏해야 30명 정도의 하객만 모시고 그리 멀지 않은 외국(도미니카)에서 치르는 단출한 결혼식이다. 하객 모두 바닷가에 어울리는 편한 복장으로 참석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결혼식이 될 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결혼식의 순서는 따르지 않을까? 신랑 신부가 다 알아서 잘 준비하겠지만, 나는 신부의 아버지로서 신부와 함께 입장하는 게 많이 걱정되었다. 신부의 팔을 잡고 걸으면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지만, 절뚝거리며 입장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오늘 체육관 거울 앞에서 내 걸음걸이를 이모저모 뜯어 본 것이다.
그런데 나처럼 지팡이를 짚고 걷는 고등학교 동창 인섭이가 몇 달 전에 딸을 시집보냈다던데 그 친구는 신부 입장을 어떻게 했을까? 고등학교 때 한 반이었던 인섭이는 교내 육체미 대회에서 3등을 한 몸짱이었다. 적당히 큰 키에 알통이 보기 좋은 팔뚝, 게다가 인상 좋고 성격마저 서글서글하여 다들 그를 좋아했다. 3학년이던 어느 날 수위 아저씨가 교문에서 지각한 그를 회초리로 때리려고 했다고 유도 실력을 발휘해서 메다꽂기도 했을 만큼 성깔마저 있어서 갈비씨에다가 꽁생원이던 나는 남자다운 그의 그런 모습이 참 부러웠다.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해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고, 말하는 게 어눌했고, 살도 많이 쪄서 아무리 보고 또 봐도 40년 전 어릴 적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체육관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동창생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인섭이 딸 결혼식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그가 점잖게 앉아 있는 사진은 있어도 걷는 사진은 없었다. 신부와 인섭이가 함께 입장하는 사진도 없고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하는 사진만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도 마음을 정했다. 신부를 절뚝거리는 아비 말고 건장한 신랑과 함께 입장시키는 걸로. 인생을 새로 출발하는 중요한 순간인데 그게 훨씬 더 나을 듯싶었다. 그렇게 결심했어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권한 것도 아닌데 괜히 속상하고 생각할수록 우울했다.
그런 서운한 마음이야 결혼식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겠지만, 장애인으로 지내며 늘 속상한 건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남은 다리 하나도 온전치 않으니 운전은 꿈도 못 꾼다. 아내가 운전을 해주기는 하지만, 아내도 환갑이 코앞에 다가온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인데도 벌써 늙어가는 티를 내느라고 두 시간 이상 운전은 힘에 겨워한다. 그러니 은퇴하면 자동차를 몰고 이 넓은 미국 땅 곳곳을 누비며 즐겁게 살겠다는 젊었을 때는 꿈은 벌~써 멀~리멀~리 사라졌다. 사라진 그 꿈을 생각할 때마다 참 속상하지만, 혼자 노는 재미를 알게되어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도 즐겁게 지낼 수 있으니 그만해도 다행이다.
(2013년 7월 28일)
첫댓글 형기는 아는것도 많고 생각도 너무깊고 글도 잘쓰고 거기다 혼자노는 법도 아니 얼마나 좋으냐
나는 혼자있으면 심심하여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게 좋은데
이국땅에서 결혼하는 따님과 형기부부 멀리서나마 축하하네
예쁘게 봐주니 고맙긴 한데...나, 사실은 참 모르는 게 많아. 돈 버는 방법도 모르고, 여자 유혹하는 법도 모르고, 노래도 못 하고, 춤도 못 추고, 운동도 할 줄 어는 게 없었고, 어디 가서 재미나게 놀 줄도 모르고. 술 먹는 건 그래도 남들이 알아 주었는데 이제는 주량도 엄청 줄었어. 에이, 사는 재미가 없어. 오해할까봐 한마디. 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만 둘째 사위도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야. 외국에서 결혼하는 건 그저 form 생 form 사 인 셈이지.
우리 고등학교 동기 중에 지팡이 짚고 다니는 친구가 더 있네. 유석종이를 말하네. 멋진 큰 키에 매너도 참 종다네. 그 석종이도 딸을 시집보내는 결혼식장에 지팡이를 짚은 채로 딸과 함께 행진했었다네. 그런데 그 모습이 다른 그 어떤 아버지보다 멋이 있었던지, 무슨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도 아니었다네. 정말로 더욱 축하해주게 되고 더욱 행복해질 것이란 믿음이 가더군 . 그런 불편한 몸으로 딸을 키우고 시집 보내며 함께 걷은 아빠! 얼마나 멋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