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남에게 존중 받으려면 나의 직업은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코미디언. 하지만 방송 쪽 일을 준비할 때 꿈꾸었던 내 모습과 막상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된 후 모습은 너무 다른 것이 많았다.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든 반겨주고 웃어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악성 댓글이었다. 주로 본 악성 댓글은 방송에서 진행하는 “코너가 재미없다. 그것도 개그냐” 식이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그런 말들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돌아봤다. 혹시 악성 댓글을 달았던 적이 있었나. 방송 이모저모에 관심 갖고 참여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실제로 악성 댓글을 써 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말을 써 본 적도 없다.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 방송에서 작은 코너를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평가받는 입장이니 악성 댓글을 달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 어느 곳, 어느 사람의 직업이든 모두 다른 이를 위해 존재한다. 본인이 만든 제품을 입거나 먹거나 사용한 후에 “맛있다. 좋았다. 즐거웠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 일에 엄청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전에 옷을 만드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에 그분은 나를 알아보며 반가워해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그분이 먼저 물었다. “그렇게 코너를 만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려요?” “일주일 동안 짜요. 그러고 나서 방송에는 3분 나가요.” “고생이 많아요. 근데 요즘 하는 코너는 재미없더라. 좀더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반대로 내가 그분에게 물었다. “옷은 직접 만드세요?” “그럼요. 예쁘죠?” “예쁜데 제 스타일은 아녜요.” 그렇게 잠시 서로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어색해 했다. 볼일을 마치고 나가는데 그분이 말했다.
“앞으로 잘 볼게요. 많이 웃겨주세요.” “사실 몇 개 예쁜 옷을 찍어놨어요. 나중에 사러 올게요.”
나오자마자 후회했다. 왜 웃어넘기지 못했을까. 나를 알고, 내 코너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나에 관해 관심 있었고, 그 말은 나를 위해서 하는 충고였다.
그분은 나를 존중하기 때문에 더 잘되라는 뜻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창피했다. 그분을 존중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나도 그렇게 나가겠다”는 식의 생각이었다. 사춘기 청소년처럼 마음이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방송 쪽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좋았을 때도 있었고 나빴을 때도 있었다. 때로 나쁜 경험들은 누군가 나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볼 때 내면에 날카로운 무언가를 꺼내 들게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남에게 존중 받으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 된다는 점이다. 개그맨 지망생 후배 중에 오랫동안 방송사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대학로극장에서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다른 개그맨들은 그 후배에게 “이제 포기해라! 다른 것을 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리라고 그 친구와 그의 꿈을 응원했다. 결국 그 친구는 나보다 더 잘나가는 방송인이 됐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언제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선배님”이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나보다 잘나가는 친구가 나를 존중한다.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하면 된다.
이문재 요셉(개그맨) 평화신문; 2015. 08. 30발행 [13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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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하면 된다" 라는 필자의 경험에서 나오는 느낌을 함께 공유해 봅니다.
좋은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늘 주위의 모든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이웃에게 큰 상처는 주지 않을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