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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찰나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한달전 이미 지난 해와 작별인사를 하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오늘 설날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새해 벽두를 맞이할 때 마다 드는 한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야속하게도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른지, 돌아보니 그야말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빠르게 건너온 세월입니다. 다들 한분 한분 먼저 떠나가시니, 이제 곧 내차례겠지, 하는 생각에 인생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그래서 설날 때 마다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꽃같이 좋은 시절 만끽했으니, 미련이나 아쉬움 내려 놓고 이제 남은 날들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그런 마음.
그래서 길고 긴 황금연휴지만, 어디 멀리 휴가라도 가고 깊은 생각을 멀리 떨치고 한 송이 어여쁜 꽃 같은 아이들 위해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짜장 소스를 만들고 탕수육을 튀깁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인 야고보 서간은 우리 인간 존재의 실체요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아주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특별히 설날 아침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분들, 제삿상 건너편에 앉아계신 분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들, 나라며 가문, 공동체나 가정 전체를 쥐락펴락, 좌지우지했던 사람들...
그 권세, 그 위세가 백 년, 천 년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30년, 50년 지나가니, 그 모든 분들, 마치도 한 줄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우리네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 역시 불과 10년, 30년, 50년 후면 어쩔 수 없이 그분들 뒤를 따라나서겠지요.
생각할수록 참으로 아름다운 명문장입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어찌 보면 야고보 서간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장입니다.
이 세상 일에만 목숨 거는 사람들, 영혼이나 상위 가치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 순식간에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지위나 명예, 권력이나 재산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장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 세상 안에서, 인간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일들은 다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확실하십니다. 세상 모든 확실성은 오직 하느님께만 기인합니다.
뭐 엄청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네 인생 참으로 덧없습니다. ‘한 줄기 연기!’ 참으로 적절하고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번 뿐인 우리네 인생,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전투적으로도 살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팍팍하게 살아서도 않되겠습니다.
찰나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해만 뜨면 사라지는 새벽 안개 같은 우리네 삶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시계로 보면 너무나 짧아 아쉬운, 수학여행 같은 우리네 지상 여정입니다. 최대한 기쁘고 신나게,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흥미진진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 친지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겠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이 세상 소풍의 둘도 없는 동반자들입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때 까지 서로 배려하고 서로 도와주라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오랜 만에 가족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설 명절은 서로를 향한 더 많은 배려와 지지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내 목소리는 좀 많이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경청해야겠습니다. 공동체가 좀 더 살아나기 위해, 내가 좀 더 작아지고 겸손해지며, 좀 더 부드러워지고 온유해져야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는 방법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언제 오든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은 ‘꾸준하여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 집의 주인이 당신임을 명확히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의 집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명령하는 주인을 모십니다. 처음에는 자아인 뱀을 모시고 삽니다. 그러니 뱀의 소굴이 됩니다. 그다음엔 주님을 모십니다. 성전이 됩니다. 내가 나의 주인인 것 같지만, 실제로 나는 집입니다. 집이 주인을 정하는 방법은 그 주인을 위해 꾸준히 하는 일을 정하는 것입니다.
가리옷 유다는 사탄을 위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주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영화 ‘옥토버 스카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호머 히컴은 1943년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작은 탄광 마을 콜우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는 거의 모든 젊은이가, 호머의 형을 포함해, 아버지를 따라 탄광에서 일하게 되리라 기대되었습니다. 호머의 아버지 존 히컴은 광산의 감독관이자 지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지요.
1957년 10월, 소련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광경을 본 호머는 우주 탐험의 가능성에 강렬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줄곧 “탄광에서 일하는 게 뭐가 나쁘냐, 호머. 훌륭한 직업이야.”라고 말했지만, 호머는 로켓에 대한 열정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호머의 재능을 꿰뚫어 본 과학 교사 프리다 라일리 선생님이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호지킨병으로 건강이 악화하고 있었음에도, 라일리 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한 열정과 헌신을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호머를 바라보며 “때로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말고,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현실적이고 단호한 태도를 지녔던 존 히컴의 말, 곧 “계속 로켓 장난만 하다간 결국 탄광에서 일하게 될 거다.”라는 경고와 선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호머의 초기 로켓 실험들은 실수투성이였습니다. 한 번은 실험 로켓이 산에 불을 내는 바람에 마을 전체와 아버지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호머는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로켓을 아예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갱도로 내려가면서, 과연 이 길이 자신의 운명일지 모른다고 체념했지만, 라일리 교사의 말과 스푸트니크를 보았을 때 불타오른 우주에 대한 열망은 절대로 잊히지 않았습니다.
한편 라일리 선생님은 자신의 건강 문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어떤 가능성이 숨어 있었는지 영영 알 수 없잖니.”라는 말로 호머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호머와 친구들은 로켓 제작을 재개했고, 수많은 실패와 연구 끝에 마침내 성공적인 발사에 이르렀습니다.
전국 과학 경진대회에 참가해 호머는 큰 주목을 받았고, 장학금 기회가 열리면서 탄광 밖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호머 히컴은 끊임없는 노력과 라일리 선생님의 변함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콜우드의 탄광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는 로켓을 만드는 NASA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가 과연 그들의 꿈을 살리는지, 아니면 억누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적절한 스승의 응원과 끈질긴 열정이 만나면, 불가능해 보이던 꿈이라도 현실로 바뀐다는 것을 호머의 삶이 여실히 보여 주지요. 또한 누군가의 인정을 당장 받지 못하더라도, 매일 깨어 있으면서 자신의 가능성에 충실할 때 진정한 성공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매일 준비하고 일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준비하고 있음은 매일 멈추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매일 멈추지 않고 강론을 써서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사실 깨어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 시작인 오늘 교회를 위해 무언가 매일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할 일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역 앞에는 하치코 동상이 있습니다. 하치코는 주인이 매일 기차를 타고 출근할 때마다 역까지 배웅하고,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주인을 맞이하던 개였지요. 어느 날 주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하치코는 무려 10년 가까이 매일 같은 시각에 역에 나와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하치코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세웠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충성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새해 하루 다만 1분이라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 매일 할 무언가를 정한다면 그것이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2,35-40: “준비하고 있어라!”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이다. 우리가 설을 맞이하여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생명을 전해주시고 이 땅에 살게 하신 우리 선조들에게 감사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이 날, 복음은 우리 순간순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한 해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님은 매 순간 우리에게 오시고 계시다. 그러기에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기다란 옷을 무릎까지 올려 전대를 묶는 튼튼한 가죽 띠로 묶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기에서 여행은 캄캄한 밤에 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밝은 등불을 밝힐 필요가 있다(35절). 그런데 그 여행은 바로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주인이 와서 문을 두드리고 그에게 즉시 문을 열어 주기를 원한다(36절). 그때 오시는 주님은 행복하다고 하시는 깨어있는 종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즉시 잔칫상을 차리고 거기서 그들에게 시중을 들어줄 것이다(37절). 종들이 깨어있다면, 주께서는 밤중의 어느 때에라도 오실 수 있다. 깨어있는 중에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오실 수도 있다. 어떻든 깨어있는 종들을 만나면 영원한 행복의 종말론적인 명칭인 행복한 자들이라고 해 주실 것이다(38절).
예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확실히 깨어있을 것을 함께 말씀하신다. 가정의 훌륭한 아버지는 확실히 깨어 강도의 침입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하여 강도가 오는 때를 알고 싶을 수 있다(39절).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오시는 사람의 아들이 언제까지 늦어지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어떻든 오실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각에, 도둑처럼 오실 것이다(40절).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은 언제나 오신다. 그분은 나의 아내를 통해, 나의 남편을 통해, 나의 자녀들을 통해, 부모님을 통하여, 내가 만나는 이웃을 통해서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오신다. 쉽게 말하면, 이웃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이웃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고, 우리와 친교를 나누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웃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 때문에도 그 이웃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이 사랑이 바로 주님께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이웃이라는 이정표를 잘못 읽을 때, 우리는 엉뚱한 길로 갈 수 있다.
주님이 오시는 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 항상 오시고 계시지만 우리가 깨어있지 못하면 그분을 만날 수 없다. 깨어있을 때만이 우리는 그분을 뵙고 함께 살 수 있다.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자신이 모두 항상 깨어있는 삶을 통하여 언제나 주님을 만나 그분과 함께 살며 그분을 닮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자기 자리에서 무기를 들고 있었던 남태평양 제도의 일본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들은 종전 후에도 수십 년이나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무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전쟁 끝났다는 말을 들어도 믿지 않았고, 그들은 모두 속임수이고 가짜 뉴스이니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서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남의 나라에서 무기를 들고 힘들게 사는 그 일본군이 자유를 얻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자기들의 힘을 더해서 그 지역을 점령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루빨리 백기를 들어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으며, 지금의 삶을 보다 더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삶에서 백기를 들어야 현명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무기를 들고 그 자리를 지키려고만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불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은 무기를 들고 전쟁을 벌이는 사람입니다. 전쟁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불쌍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즉, 그 상대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특히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에 집중하는 사람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백기를 든 것 같고, 그래서 상대에게 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 전쟁터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해의 첫날인 설날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고, 새롭게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정하면서 힘찬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거에 계속 매여 있다면 어떨까요? 과거의 일에 연연하면, 현재에 충실할 수 없으며 동시에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차원에서 버려야 할 과거의 일은 무엇입니까? 백기를 들고서 떠나야 할 과거의 일들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삶이 아닌,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를 이야기합니다. 바로 주님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올해는 세속의 시간에 머무르기보다 거룩한 하느님의 시간에 더 많이 머무르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진정한 평화 안에서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공자).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사랑을 받는 사람은
기쁨과 행복한 표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도
어떤 형태로든 어떤 모습으로든 티가 납니다.
표정을 숨길 수 없고 사랑받는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좋은 기운을 뿜어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발산하며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생각하고 경험한 것보다
하느님의 사랑은 깊고도 넓어서 측량할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사랑의 원천이고 마르지 않은 사랑의 샘물이신 분이
우리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올 한해도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기다리다
주인이 와서 문을 두드리면
바로 열어 줄 수 있는 종이 되어야겠습니다.
올 한해도 항상 준비하고 깨어 있으면서
당황하고 당혹스러워하며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우둔한 종은 되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1.29.수.설."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 40)
설날에
눈사람을
봅니다.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을
기억하는
우리의
설명절입니다.
소중한
길 위의
시간 안에
우리의
설명절이
있습니다.
설명절은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
서로를 기억하는
소중한 마음임을
깨닫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것은
마음입니다.
소중한
마음과 마음이
만나
서로를 맞잡는
것이 사람의
길입니다.
사람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준비가
되어 있고
깨어있는
사람만이
마음의 길을
따라갑니다.
준비가 된
사람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것은
마음입니다.
사나운 시간들을
지나
깨닫게 되는
반듯한
마음입니다.
반듯한 마음이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불행의 시간을
이제 접고
다시
행복해지는
설명절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설날의
새 아침으로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기쁜
새날들을
맞이하시길
또한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현실을
위로하며
우리의 삶에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2025년의
새해
설명절입니다.
"새해엔
더 좋은 일들로
가득하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4,13-15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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