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자동차 전동화 시대다. 거의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전기차’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대중 브랜드, 고급차 브랜드 너나 할 것 없다. 전기차의 득세 앞에 고급차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 S클래스의 족보는 언제가 끝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
벤츠는 ‘EQ’ 브랜드로 미래를 준비한다. 전기차 및 관련 기술 하위 브랜드로 모든 전기차 전략을 EQ 이름 아래 구현한다. AMG, 마이바흐 보다 중요한 존재이며, 벤츠 내 모든 브랜드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13일) 국내 등장한 ’비전 EQS’는 EQ의 두번째 모델 EQS를 미리보는 컨셉트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수도권 최대 규모로 새로 지은 고양 전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모터쇼 한 구석을 차지하다 잊혀질 평범한 컨셉트카가 아니다. EQ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 ‘진보적 럭셔리(Progressive Luxury)’를 한 차원 끌어올린 중요한 모델이다.
비전 EQS의 실루엣은 세단이다. 보닛과 트렁크가 튀어나온 전통적인 3박스 형태에 뿌리를 둔다. 단,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깔고, 전기모터를 앞뒤 차축 가운데에 하나씩 둬 공간 활용이 보다 자유롭다. 덕분에 보닛과 트렁크를 아주 짧게 만들면서도 실내공간이 마이바흐 못지 않게 넉넉하다. 차체 길이는 E클래스 쯤 돼 보이는데 폭은 미니버스 만큼 넓은 것이 특징.
핵심은 얼굴이다. 헤드램프와 그릴을 매끈한 하나의 패널로 만들고 그 뒤에 수많은 LED를 집어 넣었다. 삼각별과 LED 4개가 한 팀으로 이뤄진 조명세트가 무려 188개다. LED 총 갯수는 940개. 투명한 그릴 속을 입체적으로 채우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쪽 헤드램프는 홀로그램 기능을 품는다. 2,000rpm으로 회전하는 홀로그램 렌즈는 직경 1mm 이하 LED 500개가 부유하는 듯 알쏭달쏭한 신세계를 눈앞에 펼친다. 여기에 차체를 조명으로 한 바퀴 두르는 라이트벨트가 가세한다. 그릴, 헤드램프와 함께 작동하면서 주변환경과 소통하는 ‘협력 자동차(Cooperative car)’로 만들어 준다.
요트에서 영감을 얻은 실내는 탑승자를 둥글게 감싼다. 대시보드에 깔린 세로 패턴을 보니 최고급 요트의 나무 갑판이 떠오른다. 비행기 조종간을 닮은 스티어링 휠은 운전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벤츠가 미래에도 운전자가 제어권을 갖는 차를 적극적으로 만들 거라는 메시지다.
센터콘솔과 암레스트가 패널 하나로 구성된 디자인은 추후 등장할 벤츠에서도 만날 수 있는 복선이다. 대형 디스플레이를 심어 차의 모든 것을 이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 각지에서 담금질 중인 새 S클래스 역시 이와 비슷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손 닿는 곳곳은 재생 플라스틱 소재로 마감했다. 각종 패널을 인조가죽과 페트병을 재활용한 다이나미카(DYNAMICA) 극세 섬유로 꼼꼼히 마무리 했다. 천정은 해양 폐기 플라스틱으로 감싸 친황경성을 높였다
이들은 고급 소재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한 첫 사례로 꼽힌다. 미래의 럭셔리는 지금과 달라야 한다는 벤츠의 새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디자인 총괄 고든 바그너는 “비전 EQS를 두고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며, “책임감 있고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이 우리의 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모든 것은 새로 개발한 가변형 배터리 기반 전기 주행 플랫폼 위에서 구현될 예정이다. 벤츠는 전동화 모델을 만들 때, 전기모터, 배터리, 엔진, 변속기를 모델 특성에 맞게 조합하는 모듈형 시스템을 활용하는데, 새 플랫폼 역시 배터리 모듈화에 근간을 둔다. 휠베이스, 트랙을 비롯한 다양한 구성 요소를 각기 다른 컨셉트에 맞게 가변 적용할 수 있는 게 특징.
비전 EQS는 100kWh 대용량 배터리를 얹었다. EQC 주행 거리의 두 배가 넘는 700km((WLTP기준) 이상을 바라본다. 숱한 전기차를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350kW 충전기로 배터리 방전 상태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점도 놀랍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함께 만든 전기차 충전 플랫폼 아이오니티는 지난 해부터 유럽 내 350kW 충전기 도입 작업을 시작했다.
운동 성능 역시 이름에 걸맞다. 앞뒤 차축에 하나씩 배치된 전기모터가 최고출력 469마력, 최대토크 77.5kg.m를 뿜어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4.5초. 토크를 전후방으로 자유롭게 분배하는 전자식 사륜구동을 집어 넣어 모터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벤츠는 내년 EQS 출시를 목표로 세계 각지에서 주행 테스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양산형은 앞뒤 오버행이 좀 더 길어지고, 비전 EQS의 거대한 24인치 휠이 빠지는 등 디자인 변화가 눈에 띄지만, 미래지향적 실루엣은 그대로다. 성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비전 EQS의 압도적인 성능까지 이어 받게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날 벤츠는 지난 해 발표한 앰비션 2039를 재차 강조했다. 자동차의 제품 주기가 세 번 바뀌는 20년 안에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생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현 단계에서는 전기 배터리 활용에 집중하고, 장기적으로는 연료 전지나 합성 연료 등 다른 솔루션도 함께 연구한다.
자동차 생산 단계에서도 탄소중립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중립을 목표로 설계된 공장 팩토리56을 독일 진델핑겐에 세웠으며, 2022년까지 벤츠의 모든 공장에 탄소 중립 계획이 반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