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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렇게 도로 가까운 곳에 있을 게 뭡니까? 아찔하게 솟은 그 산이 자꾸 눈에 밟혀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죠.”
월출산 남쪽 끄트머리에 솟은 월각산(月角山·456m)을 보고 이 동네 산꾼들이 하는 이야기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에서 목포 방면으로 가다보면 도로 오른쪽으로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바위능선이 하나
나타난다. 바로 월각산 줄기다. 차창 밖으로 보고 있노라면, 코앞에 솟은 이 산의 강렬함에 멀리 하늘금을
그리는 월출산 능선이 평범해 보일 정도다.
[월각산과 멀리 뒤편의 월출산]규모면에서 따지만 월각산은 월출산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 높이도 천황봉의 반 정도인 데다 암릉 구간도
그다지 길지 않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앞에 마을이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워 평범한 시골 야산의 어
수선함까지 느껴진다. 교통이 불편한 탓에 산행기점까지 접근도 쉽지 않다. 단점을 찾자니 하나 둘이 아니다.하지만 월각산은 거부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울창한 숲과 까다로운 바윗길이 이루어
내는 조화가 대단히 자연스럽다. 아직은 제대로 된 시설물이 없고 산길도 뚜렷치 않으나, 오히려 그런 다듬
어지지 않은 거칠음이 산꾼들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월각산에서 바라본 문필봉과 주지봉]특히 월각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조망은 과연 최고라 할 만하다.
천왕봉부터 구정봉, 도갑산, 문필봉, 주지봉으로 이어진 긴 능선이 더함도 덜함도 없이 한눈에 가득 찬다.
기암괴석들의 위압스런 풍광과는 거리가 멀다. 조용하면서도 큰 기복이 없는 평온한 월출산이 그곳에 있다.월각산은 월출산 남쪽 끝 ‘막내 능선’ 상의 한 봉우리로 월출산 속에서 월출산 전체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전망대인 것이다. 지형도에 표기된 정상도 국립공원 구역의 경계에 걸쳐 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등산로가 잘 정비된 월출산이 버티고 있는 데다, 제반 시설과 여건이 좋지 않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전인미답이었던 이 산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땅끝기맥 종주산행이 유행하면서부터다.땅끝기맥에서 약간 벗어난 암릉지대
땅끝기맥은 호남정맥 깃대봉과 삼계봉 사이의 능선에서 갈려나와 영산강 남쪽 울을 이루다가 해남의 땅끝
(토말)까지 뻗은 산줄기다. 월출산과 벌매산(일명 벌뫼산), 두륜산, 달마산 등을 두루 섭렵하며 이어지는 도상
거리 약 123km에 달한다. 월각산은 이 산줄기가 월출산에서 밤재로 연결되기 직전 약간 북쪽으로 벗어나 솟
아 있다.기맥에서 약간 떨어져 있으나 중요한 지표가 되는 봉우리였기에 자연스레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
했다. 특히 기맥에서 조금 벗어난 월각산 남쪽 암릉이 산꾼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이 구간은 험준한 데다
길도 없어 접근이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땅끝기맥의 산길도 아직 어지러운 현실이니, 월각산 등산
코스가 전무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그런데 최근 광주 K2산악회 회원들이 월각산 산행의 백미인 암릉구간을 정비해 하나의 코스로 단장했다. 초보
자도 쉽게 갈 수 있도록 벼랑 진 곳에 밧줄을 설치했고, 곳곳에 표지리본을 달았다. 월출산의 고속도로급 등산
로에 비교하면 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간신히 찾아갈 수는 있을 정도다. 취재팀은 암릉
산행의 계절 가을을 앞두고 이 코스를 단장한 K2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월각산을 찾았다.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4일 오전 10시.
월각산 산행기점인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웠다.
문을 여는 순간, 찌는 듯한 더위가 온몸을 엄습한다. 오늘 산행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배낭 속에 챙겨 넣은 여러 통의 얼음물이 우리의 마지막 보루였다.월각산 코스는 상당부분 땅끝기맥과 겹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월각산 단독으로 등산로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기맥 코스를 응용해야하는 것이 접근에 편리하기 때문. 그래서 우리는 월출산 도갑산(375.8m)과 월각산 중간의
고갯마루인 묵동치를 능선 진입지점으로 삼기로 했다.성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광주 K2산악회 백계남 고문이 앞장서서 답사팀을 이끌었다. 그 뒤를 이대운
(청솔레포츠 대표·49), 심창섭씨(총무·45)가 따랐고, 오늘 산행팀의 홍일점인 김광숙씨(46)가 후미를 맡았다.
산줄기 종주에 단련된 분들이라 그런지 이 더운 날씨에도 걷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민가 밀집지역을 벗어나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갔다. 북쪽 멀리 땅끝기맥이 지
나는 산릉 상에 잘록한 묵동치 고갯마루가 보였다. 오늘 산행의 첫 단추는 일단 그곳까지 무사히 오르는 것.
하지만 무더운 날씨가 문제였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부지런히 걸었다.마을회관에서 마을길과 농로를 따라 20분쯤 오르니 국립공원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월출산 국립공원 구역은
묵동치 능선부터인데 한참 떨어진 이 계곡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의외였다. 하지만 정식 등산로가 있는
곳은 아니기에 형식적인 안내에 불과했다.
[월각산에서 멀리 바라본 가학산과 흑석산]더위 속에 가시덤불과 악전고투
농로가 끝나자 가시덤불이 빽빽하게 들어찬 수풀이 앞을 가로막는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반소매, 반바지
차림을 한 우리들은 이 난관을 어찌 헤쳐 나가야할지 막막했다. 온몸으로 긁히고 찔리며 정글을 뚫고 나가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숲길로 들어서니 고통이 수반된 자그마한 비명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15분 가량 수풀을 헤치자 숲속의 둥그스름한 고갯마루가 눈앞에 나타났다. 숲이 워낙 짙어 서너 명도 앉아 쉴
만한 공간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오른쪽 능선길을 따라 계속해 고도를 높였다.묵동치 자체가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능선길은 제법 경사가 급했다. 게다가 잡목까지 가득해 산길의
상황은 엉망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 것은 한여름 더위였다. 더구나 산길이 숲속으로 나
있는지라 바람도 거의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심호흡을 해봤지만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다.1km 남짓한 오름길을 1시간 가량 쉬엄쉬엄 올랐다. 고도 400m쯤 될 즈음에야 서서히 평지가 나타나기 시작
한다. 월각산 정상은 진행방향 약간 왼쪽에 솟아 있으나 땅끝기맥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지형도 상의
월각산 정상은 피해 가는 것이다. 사실 숲이 짙은 정상은 조망처로 적합치 않아 큰 의미는 없었다.남쪽으로 방향을 튼 산줄기는 이내 시원스런 조망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남동쪽으로 성전면 일대의 너른 평
지가 새파란 초록색으로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황금물결로 변신할 그 아
름다운 대지에 생명력이 가득했다.벼랑 위로 나서니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잠깐이나마 더위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계속해 남쪽의 바위능선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한동안 고도를 떨어뜨린 산길은 다
시 383m봉을 향해 치솟았다. 낮은 산들이지만 월출산의 침봉들을 빼닮아 오르내림이 심했다. 하지만 이런 재
미마저 없다면 무슨 맛으로 이 낮은 산줄기를 타겠는가.383m봉을 넘어 멀리 보이는 하얀 바위를 향해 전진하다보니, 안부 한 곳을 거쳐 다시 자그마한 봉우리에 올랐
는데 이곳에서 길이 갈렸다. 계속해 남쪽의 굵은 능선을 타면 월각산 암릉지대로 이어지고, 땅끝기맥은 오른쪽
비탈길을 통해 밤재를 거쳐 벌매산으로 연결된다. 본격적인 월각산 산행은 이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본격적인 암릉 구간은 약 2시간 소요
411m봉을 넘어선 뒤 왼쪽으로 갈림길이 나 있는 안부를 지나면 정면에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이 암봉을 오르는 것이 월각산 암릉코스의 첫번째 관문이다. 기둥같이 솟은 바위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왼쪽으로 약간 방향을 틀면 굵은 로프가 드리운 커다란 계단바위가 보인다. 이곳을 넘어 오르면 420m봉 정상
이다.좁지만 평평한 화강암 봉우리 정상은 그늘 한 점 찾을 수 없는 드러난 곳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한여름의 불볕더위를 거짓말처럼 잊을 수 있었다. 땀이 식으며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바로
이런 유쾌 통쾌함이 암릉등반의 참맛이 아니겠는가.북쪽으로 펼쳐진 월출산 주능선의 장쾌한 모습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벅찰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오른쪽
끝에 솟은 천황봉을 기준으로 구정봉, 향로봉, 도갑산으로 이어지는 바위봉우리들의 아기자기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 산줄기 어딘가에 이상향 무릉도원이 있을 것만 같은 환상적인 풍광이었다.첫번째 암봉을 지나면서 이따금 나타나는 절벽지대에는 굵은 로프가 매여 있었다. 광주 K2산악회 백계남
고문이 설치한 것으로, 보조로프 없이도 충분히 산행이 가능했다. 산길은 비교적 뚜렷했으나 한여름이라 가시
넝쿨이 많아 쉽게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등산로는 거의가 암봉을 우회해 안전에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다. 그래도 줄지어선 기둥바위들
을 넘지 못하고 그냥 보고만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헷갈리기 쉬운 곳에는 백계남씨의 노란색
표지리본이 달려 있어 길 찾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월각산의 암릉구간은 도상으로는 1.5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였지만 2시간 이상 소요되는 난코스였다. 50m
남짓한 고도 차이를 보이는 암봉들이 불규칙하게 솟아 있어 오르내리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직은 산길이 거칠고 좁지만, 주작산~덕룡산처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 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마지막 암봉에서 여유 있게 휴식을 즐기다 내려서니 심산유곡 같던 풍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위들은 감쪽
같이 없어지고, 키 작은 소나무들이 가득한 야산으로 변했다. 하산 코스는 능선 남쪽 끝의 242m봉을 거쳐 풍양
조씨 묘역쪽으로 잡았다.하늘을 가리는 대나무밭을 통과해 급사면을 내려서니 바로 앞에 새로 뚫린 2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깊은
산중 같던 암릉을 벗어난 지 30분만에 도시문명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월각산 암릉은
보기보다 화려하며, 예상보다 의외성이 큰, 예측불허의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행 길잡이
월각산 산행은 남쪽지방 특유의 식생인 가시덤불을 각오해야한다. 초봄이나 늦가을이면 조금 낫겠지만,
9월은 아직 잡목들의 기세가 등등할 때다. 가능하면 긴소매, 긴 바지, 장갑을 착용할 것을 권한다.산행들목인 묵동리는 승용차를 가지고 갈 경우 찾아가기가 조금 애매하다. 눈에 띄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이다.
2번 국도 밤재 정상에서 묵동리 초입까지는 약 1.4km 거리. 곧게 뻗은 내리막이라 속도를 많이 내기 때문에 지
나치기 쉽다. 횡단보도가 하나 있으니 신호등을 이정표 삼아 꺾어 들어간다.묵동리에서 묵동치까지는 비교적 완만하며 길은 뚜렷한 편. 이후 동쪽의 월각산 방향으로 올려치는 오르막이
조금 가팔라 힘이 든다. 월각산 직전에서 땅끝기맥을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튼 뒤 계속해 굵은 능선을 따르면
암릉 구간이 시작된다. 땅끝기맥은 411m봉 직전에서 오른쪽 지능선을 따라 밤재로 연결된다.411m봉 남쪽 안부에서 만나는 동쪽 방향의 갈림길은 송월제 인근의 독립가옥 뒤편의 계곡에서 능선으로 접근
하는 코스다. 암릉 구간만 등반하기 원하는 이들은 이 길을 이용하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다(산행만 3시
간 소요). 이 코스 들목은 성전에서 영암 방면으로 가다 서쪽의 송월목장으로 진입한다. 이후 목장을 거쳐 끝
까지 들어가면 왼쪽에 산행들머리인 독립가옥이 보인다. 이 집 뒤편 길을 따라 묘 3기를 거쳐 오르면 이 안부
로 이어진다.암릉지대의 위험구간에는 로프가 매여 있어 보조로프 없이도 산행이 가능하며, 길은 뚜렷한 편이다. 곳곳에
조망처가 있어 쉬어가며 주변 풍광을 즐기기 좋은 코스다. 능선에는 샘이 없으니 사전에 충분히 식수를 준비
하는 것이 좋다. 묵동리에서 출발해 묵동치~월각산 갈림길~암릉 구간~풍양조씨 무덤까지 약 9km 구간을
답사하는 데 5시간 가량 소요된다.◈ 교통
월각산 산행을 위해서는 강진군 성전면 소재지까지 이동한다. 서울, 부산 등지에서는 일단 광주까지 열차나
고속버스편으로 간 뒤 성전행 버스를 이용한다. 광주 종합터미널(ARS 062-360-8114)에서 10~15분 간격
(04:30~22:00)으로 운행하는 강진, 해남행 직행버스를 이용해 성전에서 하차. 요금 5,600원.산행 들머리인 묵동리 마을회관까지는 성전택시(061-432-5858)를 이용한다. 요금 6,000원. 하산지점인 2번
국도와 13번 국도의 교차로에서 성전까지 택시를 부르면 4,000원을 받는다.♨ 숙식
월각산 산행기점인 강진군 성전면과 영암군 학산면 일대는 농촌지역으로 숙박시설은 물론 민박집도 찾기
힘들다. 가까운 월출산 천황사지구의 민박집이나 영암, 강진 일대의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가까운 월출산
경포대지구의 야영장을 이용해 막영해도 좋다. 성전면 소재지 중심부에 대중식당이 밀집해 있어 산행 후
식사를 위해 먼 곳으로 이동할 이유가 없다. 남도 특유의 푸짐한 한정식을 취급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 글 김기환 기자 [월간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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