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3-8절)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13장 10절에서『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마가복음 4장 33-34절에서『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헬라어로 비유는 파라볼레(παραβολῆ)이다. 옆에 두다 놓다 라는 의미다. 비유는 원래의 것을 두고, 보조를 옆에 두어서 설명하므로 원래의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원래의 것(하나님 나라)을 설명하기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우므로, 비유(씨뿌리는 것)를 통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 11절에서『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미스테리온 μυστήριον)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외인은 비유인 것이다. 외인은 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하나님 나라가 비밀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 라는 비밀을 너희(제자들)가 넘겨받았다 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비밀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비밀인 것이다. 인본주의로 성경을 읽으면 그리스도가 비밀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예수님의 말씀이 비유로 다가오면 심판이 되고, 하나님 나라로 받아드려지면 구원이 되는 것이다. 비유를 깨달으면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계시가 되는 것이다. 계시가 되지 못하면 비밀이 된다.
요한복음 12장 47-48절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그 말이 비유의 말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는『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가복음 4장 14절에서 씨뿌리는 비유에서 뿌리는 것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예수님이 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가 하는 비유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장차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 나라(천국)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않고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그런데,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표현한 것이다. 천국은 하늘 나라인 것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이런 씨가 세상에 떨어질 때 다양한 반응이 있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왔는데,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다시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주신다.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받아드리지 못하고, 어떤 이들은 받아드렸다가 버리는 자들도 있었고, 극히 적은 수이지만 잘 받아드린 자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천국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말씀이 어떤 경우는 고난으로 나타난다. 고난의 메시야 라는 것은 열매맺지 않는 땅을 통해서 나타낸다.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지만, 사람들은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천국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네가지의 메시지인 것이다.
네가지는 동서남북 모든 방향의 말씀에 대한 메시지이다. 천국은 말씀에 대한 것이다.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사탄은 유대 지도자들이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은 예수를 믿었지만 부인한 자들이 포함된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가시떨기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해당될 수 있다.
『더러는 좋은(칼로스:선한)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좋은 땅은 말씀을 받아드리는 자의 모습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백배, 육십배, 삼십배로 반대로 표현 되어있다. 누가복음에는 백배만 등장한다. 누가복음 8장 15절에서『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천국의 열매는 바로 성도인데,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다는 내용이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열매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열매로 귀결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되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자가 바로 성도라는 천국의 열매인 것이다.
그런데, 이 네가지의 반응이 신도의 한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신도에게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밭으로 전환되는 모양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되도록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장래 유토피아적인 그런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런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선한 땅과 악한 땅이 공존하고,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 다음에 바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하시는 것이다. 천국 비유는 알곡과 가라지가 다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를 삼십에서 육십으로 백으로 만들어 간다. 그래서 인내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비유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마가복음에는 말씀을 들어라 라고 13번이나 반복한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는『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듣고 깨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