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 칼럼]
얼마나 오래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 반올림 하나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인 구글에서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는 지난 4월 9일, 그들의 한국 사이트에 ‘한국 국가설정시 업로드 기능을 자발적으로 제한합니다’라는 공고문을 올렸다. 한국의 네티즌들이 한국 국가를 설정하면 영상물이나 댓글을 올릴 수 없도록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차단한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저희는 평소 저희가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우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이 4월 1일부터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 사이트를 하루 평균 방문자수 30만 명에서 10만 명 이상으로 확대 시행한 데 대한 그들의 불가분의 조치라고 한다.
이 조치를 두고 국내의 의견은 분분하다. 민주당은 “실명제 도입은 전 세계 누리꾼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정권으로 비판받을 일”이라며 “(구글이 본인확인제를 거부한 것은)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 이명박 정권의 자승자박”이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반면 조선일보나 정부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구글이 실정법(실명제)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유리한 것만 챙기겠다는 얕은 속임수”라고 하며, “수년 전 중국 진출을 위해 검색결과를 자체검열까지 했던 전력이 있는 구글이 중국 등 다른 국가와 다르게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동향은 다음과 네이버 등 150여개 인터넷 업체들이 9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통해 정부·여당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 반대한다고 밝힌 시점, 다음 아고라의 누리꾼들이 '세계 아고라 정의 포럼(cafe.daum.net/naneoneonaism)'이라는 카페를 개설하여 자신들의 사이버 망명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시점에 일어났기에 많은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반올림 둘
마치 한편의 영화와 같은 난투전이 거듭되고 있는 한국 정치문화를 보다보면 느껴지는 역설이 하나 있다. 정쟁이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면서, 그 동네는 언제 좀 변화할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한 3년이나 5년씩 주기로 바라보면 그래도 정치문화가 성큼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맨 날 멱살 잡고 있는 듯 해도 무언가 절박하게 노력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재미난 변화가 발견되었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제2롯데월드 신축공사 승인에 대한 보수파들의 움직임, 노무현 전 대통령과 386정치인들의 스캔들 등을 볼 때, 이제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보수나 진보는 없어진게 사실이다. 이제 더 이상 좌파니 우파니 하는 고상한 용어가 불필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오직 트로피를 든 기득권자와 트로피를 빼앗고 싶어하는 비기득권자 두 측만 존재하는 식이 되어 버렸다. 모든 정치인을 싸잡아서 이기적이거나 유치하다고 지적한 파레토(Vilfredo Pareto)는 정치 엘리트를 사자형과 여우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정치권력의 쟁취와 수성에 대한 그의 동물 비유는 진보시켜 가야할 좌표가 없어지고, 지켜서 보전해야 할 가치가 사라져버린 이 땅에서 다시 기억을 되돌리게 하는 이론인 것은 틀림없다.
지구상에 가장 오랫동안 이념 대립구도가 남아있는 한반도에서 그 이념이 가장 이념답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큰 역설이다. 이 큰 역설의 피해자는 당연히 국민이다. 이념을 넘어 국민의 봉사자가 아니라, 이념을 넘어 권력의 몸통이 되고 싶어 하는, 아니 하다못해 깃털이라도 되고 싶어 하는 저열성의 끝은 어디인가? 그것은 정치의 비인기종목화와 국민의 비난이다. 축구가 비인기종목이 되면 운동장에 물을 채워 제2의 김연아와 박태환이라도 지원할 수 있는데, 정치종목은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까. 국민 이목을 집중시켜 쇼를 하는 것은 정치 엘리트들의 특권일 수 있지만 좀 그럴듯하게 해야 한다. 볼테르(Francois-Marie Arouet)는 한 사회의 질서가 존속하려면 국민들은 종교를 가져야 하고, 통치자들은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종교는 이미 많은데 지혜는 어디 있나?
# 반올림 셋
강의실에서 교수가 질문에 막히면 인터넷 검색을 해보라고 하고, 학술대회에서도 발표자가 토론자의 질의에 막히면 인터넷에 검색해보자고 한다. 자신이 검색중독자인 것 같다고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도 있으니, 우리사회의 포털 검색은 그 자체가 일상이다. 검색은 심지어 지식의 성격마저 바꾸었다. 그러다보니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권력 위계까지 바꾸고 있다. 지식을 권력이라고 설명할 때 굳이 멀리있는 사상가 푸코(M. Foucault)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현대사회에서 지식이 권력인 것은 항상 체감할 수 있다. 당연히 지식검색의 구조도 권력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의 사슬에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그리고 누리꾼의 권력이 개입하고 있다.
누리꾼의 권력 개입은 기존의 정치구조에서 볼 때 충격이고 혼란이다. 캠코더, 휴대전화로 무장한 누리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저마다 방송국을 하나씩 가진 것과 같은 활동을 하면, 기성권력은 이를 혼란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많다. 더구나 상호 양보하기 힘든 의제로 갈등을 빚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터넷에 의한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보편화되는 네트워크 정치구조에서는 소수의 정치인이 정보와 지식, 권력을 독점하는 이전시대의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 오히려 먼저 개방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하고, 배제보다는 포용과 대화의 정치를 해야 한다. 소수의 정치인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가 부패하는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
이제 정치는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만의 것도 아니고, 제도권 정치체계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정 권력을 지닌 소수 정치인이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설정하여 “돌격 앞으로!” 와 같은 시대는 아닌 것이다. 앞으로는 다양한 정치집단들이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경쟁적으로 이슈를 제안하고 설득하여 여론을 주도하는 정치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혜로운 집단이 시대정신을 읽거나 창안하고, 정책을 구상하거나 편집하여 주도하게 된다. 이른바 신유목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보수든 진보든 실재로는 기득권만 다투는 집단들이, 시대와 소통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강박증이 없지 않겠지만, 아직, 아닌 것 같다. 밥 딜런(Robert Allen Zimmerman)의 ‘바람만이 알고 있지(Blowin' In The Wind)’를 인용하여 물어보자.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고영삼 열린사용자위원회 위원(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장)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they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How many years must a mountain exist Before it's washed to the sea?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And pretending he just doesn't see?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can see the sky?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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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봐야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 봐야
백사장에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요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요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높은 산이 씻겨 내려 바다로 흘러갈까요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요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달을까요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Blowin In The Wind - Joan Baez
첫댓글 이 노래 가사 참 절절합니다.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다는 가사가 참 절망적이기도 하고요... 그냥 우리는 이렇게 바람에다만 우리가 해야 할 대답을 미루어 두고 노래만 하고 있으면 되는 건지... 이것도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겠지요? ^^
그렇지요. 밥딜런의 노래로 우리의 귀에 익숙한 노래죠.바람만이 알 수 있는......사람의 일인데 왜 사람이 모르죠?그게 가슴 아프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