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Z세대 “꿈 이뤄가는 K팝 스타들에 감동”… 엄마-동생도 팬으로
‘케이콘 2022 LA’ 현장 르포
3년만의 대면 행사… 9만명 운집
미주 등 전세계서 모인 관객 ‘떼창’
19∼21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케이콘 2022 LA’에 모두 9만 명의 팬이 몰렸다. 20일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팬들이 무대에 올라 가수와 함께 춤을 추는 ‘드림 스테이지’가 진행되고 있다. CJ ENM 제공
20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와 크립토닷컴아레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한류 축제 ‘케이콘 2022 LA’ 현장은 미국 전역에서 몰린 인파로 아침 일찍부터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3년 만에 열린 K팝 오프라인 행사에 미국, 캐나다, 남미는 물론이고 홍콩, 호주 등 해외에서 온 팬들도 모여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시시 씨(25)와 비 씨(30)는 오징어게임에 등장했던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고 있었다. 시시 씨는 “열다섯 살 때 2012년 1회 케이콘에서 친구 비를 만나 매년 케이콘에 함께 오는 것이 연례행사였다”며 “팬데믹으로 3년간 못 열던 케이콘이 열리고, 친구도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둘의 집은 각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지니아주다. 미국 서쪽과 동쪽 끝에 있지만 10년째 K팝으로 ‘절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LA에 도착한 비 씨는 “10년 전만 해도 K팝 얘기를 하면 우리를 특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이제는 동네 마트에서 K팝 잡지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K팝은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 “美 Z세대, 또래 소년 소녀 음악에 감동”
케이콘은 세계 최대 미국 음악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CJ ENM이 주관해 K팝 콘서트 공연과 체험형 컨벤션 행사를 한데 묶어 만든 한류 축제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시 개최를 시작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19∼21일 LA 컨벤센센터에서 열린 전시 행사와 20, 21일 LA 크립토닷컴아레나에서 열린 콘서트를 찾은 팬이 총 9만 명에 달했다. 유튜브 등 온라인 참여 팬을 합치면 이번 행사를 본 팬들은 708만 명으로 집계됐다.
LA컨벤션센터에 마련된 K팝 전시장에서 무작위로 트는 K팝에 맞춰 팬들이 일제히 같은 동작을 하고 있다. CJ ENM 제공
20일 찾은 크립토닷컴아레나에서 열린 콘서트는 K팝 대중화를 실감케 했다. 미국 Z세대(1996∼2012년 출생)들이 함께한 축제의 장이었다. 걸그룹 ‘있지’가 노래를 부를 때 공연장의 1만5000명이 넘는 팬들이 “달라 달라∼” 부분을 한국어로 따라 불렀다. ‘엔하이픈’이 BTS의 ‘퍼미션투댄스’를 재현해 무대에서 공연하자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떼창’을 했다.
공연 중 팬들이 ‘케플러’와 함께 직접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있는 ‘드림 스테이지’에서 눈물을 흘리는 팬도 있었다. 드림 스테이지에 오른 20여 명의 팬은 이날 아침부터 현장에서 오디션을 통해 뽑힌 이들이다. 미 애리조나주에서 왔다는 오드리 씨(20)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에 서는 꿈을 이루는 게 뭔가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10년 전 첫 케이콘 행사를 기획한 김현수 CJ ENM 음악콘텐츠본부장은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아시아로 만족하라는 말도 들었지만 10년 새 K팝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특히 미국 어린 소녀들은 기성세대 중심의 미국 음악과 다른, 바다 건너 자기 또래 한국 소년 소녀들의 음악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래 친구들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K팝에 빠지게 됐다는 의미다. CJ ENM이 2019년 미국 케이콘 관람객을 분석한 결과 18∼24세 Z세대가 전체 59%로 K팝 팬덤의 중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17세 이하 팬도 15%에 달했다.
○ 美 알파세대 초등생도, 엄마도 K팝 팬으로
전시장 한편에는 팬들이 K팝 가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들이 붙었다. CJ ENM 제공
“저는 ‘있지’를 좋아해요. 유튜브를 보다 음악과 춤에 반했어요.”
LA에 사는 맥스 양(10)은 ‘베스트프렌드’ 조이 양(10)과 함께 이날 행사를 찾았다. 아이들의 성화로 전시장에 왔다는 맥스의 엄마 제니퍼 씨(43)는 “K팝을 잘 알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오고 싶다고 했다. 나도 전시장에 있는 한국 화장품을 체험해 보려 한다”며 웃었다.
이번 케이콘 행사에는 특히 부모와 함께 온 초등생 K팝 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Z세대의 K팝 팬덤이 2010년 초반에 태어난 알파세대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언니와 새벽부터 새크라멘토에서 7시간 이상 차를 타고 LA로 왔다는 대니얼리 양(11)은 “25세 첫째 언니가 20세 둘째 언니에게 K팝을 알려줬고 나도 덩달아 좋아졌다”고 말했다.
자녀들의 성화에 K팝 콘서트를 따라다니다 팬이 된 부모들도 적지 않다. 10대 두 딸과 함께 콘서트장을 찾은 ‘아빠 팬’ 테일러 씨(45)는 “한국 가수들은 예의바르고, 가사 내용도 희망적인 느낌이라 처음부터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듣도록 했다”며 “같이 듣다 보니 나도 어느새 팬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폭스뉴스, 버라이어티 등 미국 현지 언론들은 케이콘 2022 LA를 계기로 ‘K컬처’를 집중 조명했다. 폭스뉴스는 케이콘에 참석하려 호주 멜버른에서 온 케일라 씨 인터뷰를 통해 “‘K’와 관련된 열정을 나누는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라고 전했다.
앤절라 킬로렌 CJ ENM 아메리카 대표는 “K팝이 미국 내 주류 음악으로 자리 잡으면서 Z세대와 초등학생(알파세대), 그들의 엄마 아빠들로 확산되고 있다”며 “K팝이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김현수 특파원
“K팝 성공, 美 Z세대엔 ‘아메리칸 드림’ 같아”
美서 K팝 연구 김숙영 UCLA 교수
“꿈 잃은 세대에 희망의 상징 돼
한국의 음악-영화-드라마에 열광
K팝 강의, 20명 정원 100명 몰려”
“미국 Z세대(1996∼2012년 출생)에게 K팝 성공기는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20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만난 김숙영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극학과 교수(사진)는 “미국 어린 세대에게 K팝 가수는 약자의 성공을 응원하는 ‘언더도그 효과’와 더불어 노력 끝에 꿈을 이루는 희망의 상징이 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UCLA에서 K팝을 연구하는 김 교수는 미국 Z세대가 특히 한국 음악과 영화,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가 Z세대의 경험과 연관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Z세대는 어린 시절 2001년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불안한 국제 정세와 경제적 양극화를 체험하며 자랐다”며 “‘열심히 일하면 집과 차를 살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잃어버린 세대로 공정성, 사회적 가치에 민감한 세대”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2017년 미국 문화계에서 터져 나온 ‘미투’, 2020년 ‘블랙라이브매터(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은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이때 마침 BTS가 등장하며 ‘선한 영향력’이 미국 Z세대를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은 다른 주요 선진국과 달리 다른 나라를 지배한 제국주의 경험이 없다. Z세대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나쁜 과거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끌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그는 Z세대 제자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에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올해 봄 학기부터 처음 연극학과 학부에 ‘K팝의 세계화’라는 과목을 개설했더니 20명 정원의 소규모 강의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렸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도 K팝 인기에 놀라 내년부터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개방해 대형 강의로 만들기로 했다”며 “예전에는 아시아계 여성 미국인이 팬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은 주류 백인 남성들의 인지도와 관심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음악뿐 아니라 한국 영화, 드라마까지 미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섬세한 미 Z세대와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Z세대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계급의식에 눈을 뜬 세대”라며 “오징어게임 등 한국 문화가 계급 문제를 건드리는 동시에 이를 아기자기한 디자인, 아기자기한 콘텐츠로 전달해 Z세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생까지 K컬처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어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최근 일부 가수들의 흑인 문화 비하 논란 등을 들며 “이제 K컬처가 주류가 된 만큼 우리도 ‘문화적 감수성’에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김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