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대지의 이방인이다. 그는 여기에 있지만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인간은 집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모든 것은 실패한다. 자기 내면을 바라보지 않으면 부랑자로 머물고 있다. 자신의 내면이 바로 진짜 자기 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면은 대지를 초월한다. 내면은 대지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것은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있지 않다.
우리가 내면세계에서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이방인이 된다는 느낌은 사라진다. 그대는 자신의 집, 자신의 우주를 발견하고 신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모든 노력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모든 연애 관계도 예외 없이 실패한다. 예외가 될 거라는 건 단지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모든 권력은 실패한다. 사람은 세상의 모든 부를 가질 수는 있어도 여전히 가난한 채로 살아간다. 온 세상을 가져도 깊은 내면에서는 자신이 공허하며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안다.
자신의 내면과 조율하지 않는다면, 이런 무의미한 느낌을 떨쳐버리고 외부세계에 조율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대가 내면에 조율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외부는 더 이상 외부가 아니고 내면의 외적인 확장이 될 뿐이다.
그대가 자신의 중심을 보게 되면 그대의 가장자리는 그 일부분이 된다. 그때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게 된다. 세상 속에 살아가더라도 그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 오쇼의 <아침에 오쇼> 중에서
첫댓글 오쇼뿐 아나리 많은 영성가들이 우리들에게 내면에 집중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내면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중요하다는 내면에 왜 집중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내면이 외면처럼 우리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순간 순간 많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눈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문명이 발달할 수록 외면의 영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중 많은 사람들은 그 영향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쇼 덕분에 내면의 소중함을 실생활화 하는 지혜로움이 행복하게 잘 사는 길임을 다시 한번 인지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