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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일(화)
* 시작 기도
(계 22:2-3)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주님...
창조 때에 만들어진 에덴동산에는 분명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 창조인 새 하늘과 새 땅 곧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나무는 있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3절에서 ‘다시 저주가 없으며’라는 말씀을 봅니다.
여기의 ‘저주’가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임을 확인합니다.
율법과 자기 의로 대변되던 선악과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만 존재하여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의 빛으로 세세토록 왕노릇 할 것임을 믿습니다.
그 영원한 나라를 소망 중에 바라며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어제는 우리 대한민국에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이 닥쳤습니다.
유가족들을 주님의 크신 품으로 안아 위로하여 주소서.
오늘 아내와 몇몇 교회 식구들이 이곳 베트남을 방문합니다.
좋은 여행이 되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22:10-21
제목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나의 묵상
천사가 요한에게 말하기를 이 두루마리 책을 인봉하지 말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비밀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여기에 적힌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다니엘 12:4절과 9절의 말씀과 관련이 있다.
(단 12:4, 9)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다니엘서의 경우, 예언의 말씀들은 마지막 때까지 봉함하고 감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웠으므로 더 이상 봉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1절)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이 말씀은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을 회개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 당시 로마의 박해와 함께 팍스로마나가 가져다주는 사치와 향락 쾌락에 미혹을 받으나 이를 목숨 걸고 이겨내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 속에서 이 말씀은 넉넉히 위로와 격려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언의 영으로 증거되는 복음 앞에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반응한다.
택함을 받은 자들은 회개하며 더욱 의를 행하여 거룩하여 지지만, 버림받은 자들은 더욱 더 악을 행하며 더욱 더 더러운 죄악에 빠지게 된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신다(12-15).
보라 내가 속히 오겠다.
그런데 나는 그 행위대로 갚기 위해서 상을 가지고 올 것이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
따라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을 터인데, 그들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며, 성문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들과 점술가들,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기 위하여 상을 가지고 속히 오실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였으며 또한 심판주로 오실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오셔서 상을 주시는데,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
그 상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과 함께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상이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에 참여하여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를 말한다.
여기서 세례란 의식으로 행하는 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속사건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은 자는 이제 생명으로 살아야 하는데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성령을 공급받아 새 생명의 삶을 누리는 자들이 바로 생명나무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어떤 경우라도 자기의 공로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아들의 보혈을 힘입어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다.
(히 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지만 행악자들은 다 성 밖에 있을 것인데 이들은 개들과 점술가들, 음행하는 자들, 살인자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다.
여기서 개들은 타락한 자들, 불신앙의 사람들 그리고 거짓교사들을 모두 지칭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계시하시며 그 계시의 권위도 부여하신다.
주님의 모든 계시는 교회들 곧 모든 교회에 증거되며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셨다.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이며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게다가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 별이시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롬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민 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땅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새벽 별인 예수 그리스도는 야곱에게서 나온 별로서 메시야이시다.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재림 선언에 대한 성령과 교회의 화답이다.
여기서 성령은 헬라어 ‘토 프뉴마’인 단수형으로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성령이 주는 영감을 교회가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성령을 힘입은 교회가 말하는 내용은 다름 아닌 ‘오라’는 것이다.
여기서 성령과 교회가 예수님께서 속히 오시겠다는 말씀에 대한 화답으로 예수님을 향하여 ‘오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예수님께서 속히 오시마고 하신 말씀에 대하여 세상을 향한 구령의 열정 곧 이제 주님이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희들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속히 영생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에 목마름이 전혀 없는 자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영혼의 기갈에 몸서리치는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17절의 목마른 자이며, 또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 샘물을 원하는 자는 속히 와서 값없이 받으라는 것이다.
20절에서 주님이,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실 때 천상교회를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지상교회, 곧 지상에서 박해와 바벨론 큰 음녀의 미혹을 날마다 받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는 지상교회 영생의 공동체의 화답은 ‘마라나타’ 곧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령에 힘입어 가감 없이 전해야 한다.
교회의 생명이 바로 거기에 있는 이유이다.
교회는 결코 스스로의 내적 자원이나 사람의 뜻에 의해 움직이는 어떤 기관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다.
따라서 교회의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존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요 사명이다.
이 사명과 함께 성령을 힘입은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러할 때 영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 바벨론 큰 음녀가 미혹하는 시대, 팍스로마나가 가져다주는 온갖 사치와 향락 그리고 번영신앙의 미혹에서 능히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나의 신앙 없음을 고백한다.
나의 신앙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바벨론 큰 음녀의 미혹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팍스로마나가 주는 번영과 사치 그리고 향락에 마음을 빼앗겨 목회를 해도 큰 교회, 재정이 차고 넘치는 교회, 교인 숫자가 많은 교회, 교인들 중에 의사 변호사 판사 석박사 등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은 교회, 목사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교회, 좋은 차타고 다니는 목사가 목회에 성공한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금도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며 투혼하고 있다.
그러다 발각이 되면 처참한 죽음의 형장으로 끌려가 끔찍하게 죽어간다.
그런 북한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불과 한 걸음 앞에 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이 그들의 인생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순교가 삶이 되어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순교는 패배가 결코 아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과 함께하는 진정한 승리이다.
이 땅에서 목숨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만 그 순간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 나라를 사는 자 곧 영생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두 팔 들어 그들을 맞이할 주님의 품에 거하기 때문에 그들은 패배자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인 것이다.
그런데 남한의 경우 그와는 반대로 맘몬이라는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다.
나 또한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목회성공에 매몰되어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려는 나는 바벨론 큰 음녀가 주는 번영신앙을 나의 양식 삼아서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던 자였다.
이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그러나 참되고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수렁에서 건져내셨다.
나를 바벨론 큰 음녀의 불구덩이에서 건져내셔서 보낸 곳이 바로 심판의 자리였다.
그 심판의 자리는 바벨론 큰 음녀가 주는 그런 달콤함과 향락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주리고 목이 말라 그 목마름을 해갈하여야 했다.
수가성 여인이 마셨던 그런 야곱의 우물, 곧 단층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한 바가지 물이 아니라 깊은 층의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샘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물은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다(요 4:14).
나는 그 물을 마시며 이제 야곱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던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생의 공동체로 들어오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이 시대 교회의 사명이요 또한 존재 목적이다.
그 일은 나와 같은 목사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다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신부는 머리되신 신랑인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
그래서 죽음을 향하여 내달리는 영혼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여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일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골 1:13).
오늘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신 말씀에 대하여 화답한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늘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저 땅의 것에 심취해서 그것을 많이 얻고 높이 쌓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양 살아왔던 나에게 임한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 땅에서 바벨론 큰 음녀의 미혹은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끊을 수 없으나 주님의 인자와 도우심으로만 가능하오니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넉넉히 유혹을 벗어나 날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음녀가 주는 쾌락의 잔에 취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에 취하여 주의 복음을 전함으로 영생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맘몬 앞에서 나는 죽고 오직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 내 삶의 현 주소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속히 오실 주님을 대망하며 영원을 현재로 사는 자임을 확증하게 하소서.
영육간에 연약한 주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사 육신의 질고를 넘어 넉넉히 거룩한 성의 시민이요 아버지의 자녀들로 살게 하소서.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