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누스의 신성론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스티누스는 로고스가 예수의 몸, 마음, 영혼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를 통해 무지한 사람들도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적 진리를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과거에는 철학자들이 교육을 통해 로고스를 가르쳤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소수만이 로고스를 이해할 수 있었고 대부분은 계속해서 무지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명료하게 로고스를 직접 계시해 주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로고스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 그는 예수를 가리켜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철학자라고 했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비난하면서 이것들은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살해하도록 부추긴 악마의 작품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예수 또한 신에 대한 불경죄로 처형당한 것이기 때문에 로고스의 산물인 철학자와 그리스도인은 악마의 종교와 투쟁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예수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여 구원의 새 역사를 열고, 도덕적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구원한 일을 통해 모세의 율법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했다고 하며 예수를 제2의 모세에 비유했다.
『트리포와 대화』에서 유스티누스는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이는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해 논란이 격심했다.
1세기에 유대인-그리스도인은 에비온주의(Ebionitism)을 주장하고 있었다.
유대인-그리스도인이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교적 분파를 일컫는 말로 66년경 유대교의 탄압이 심할 때 요단강 동쪽으로 축출되었다.
이들의 독특한 사상을 에비온주의라고 하는데 바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요소를 자신들의 사상에 혼합시킨 것이다.
에비온주의는 ‘가난한 자’라는 뜻의 에비오님(evionim)에서 비롯한 말로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가난함에서 연유한 명칭이다.
신학자들은 근래 발견된 사해사본(Dead Sea Scroll)을 근거로 에세네파(Essene)와 에비온파가 동화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에비온파는 모세 율법의 유효함을 신봉했으며 개종자에게 율법을 강요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펼쳐질 ‘메시야 왕국’을 고대했는데 유대교의 시온주의(Zionism)와 유사한 데가 있다.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인식하기는 이스라엘 밖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율법에 대한 엄격한 적용은 달랐다.
바울이 율법의 무효를 주장한 일로 인해 에비온파는 이스라엘 밖의 그리스도인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다.
에비온파는 예수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수를 “단순히 사람에 지나지 않는 자”로 부르면서 그리스도의 선재(preexistence)를 부인했고 따라서 성육신(incarnation)과 동정녀 탄생도 부인했다.
그들은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받을 때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택함을 받았다고 했으며 세례 받을 때와 부활할 때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사망과 부활과 관련이 없으며 천 년 왕국이 시작되는 예수가 재림할 때에 구원이 가시적인 실재로 나타난다고 했다.
에비온파는 약 350년 동안 존속하다가 사라져 그리스도 신학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모하멧(Mohammedanism)에는 영향을 주었다.
모하멧교는 참선지자(true prophet)의 개념과 모세와 예수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사상으로 예수를 모세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선지자라로 취급한다.
에비온주의에 비교되는 것이 도세티즘(Docetism)인데 주로 2세기 영지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창되었다.
도세티즘을 환영설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에비온주의자들과는 달리 예수에게서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세티즘을 주장한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성을 지닌 성년의 모습으로 갑자기 나사렛에서 출현했다고 했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당시의 신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을 때 비로소 예수는 신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같은 인식은 다음의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21-22)
2. 처녀 마리아의 자궁에 수태될 때 신성이 이미 예수에게 내재해 있었다.
이 같은 인식은 다음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 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복음 1:18)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누가복음 1:35)
3. 예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된 모습이며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신성을 지녔다.
이 같은 해석은 다음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하나님의 외아들 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유스티누스의 신성론에는 2와 3의 요소가 포함된다.
그는 성령에 의한 수태를 신성이 마리아의 자궁에 수태된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단지 그리스도가 성육신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이 혼동했듯이 그도 그리스도와 성령을 혼동했던 것이다.
그는 마리아에게 수태된 것이 성령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