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거문고는 미래지향적 악기, 세계무대 나가도 경쟁력 있어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89호(2018. 12.15)

허윤정 (국악86-90, 51세) 서울대 국악과 교수 / 거문고 명인
국악그룹 ‘블랙스트링’ 유럽서 호평 - 젊은 국악인 위한 무대 마련 앞장서
“거문고를 만질 때마다 과거의 악기가 아니라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악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허윤정(국악86-90) 서울대 국악과 교수는 현재 가장 전방위적인 거문고 연주자로 꼽힌다. 거문고를 든 그는 전통과 창작, 국내와 해외 무대를 넘나드는 연주가이자 창작가, 기획자다. 거문고의 음에 미디어아트를 결합해 ‘거문고 타임머신’ 콘셉트로 공연했고, 2011년엔 거문고를 뜻하는 ‘블랙스트링’이라는 이름의 퓨전 국악그룹을 만들었다. 국악그룹 최초로 독일 유명 재즈음반사에서 발매한 음반이 지난 5월 영국의 월드뮤직 매거진 ‘송라인즈’ 뮤직어워즈 ‘아시아 앤 퍼시픽’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시아 월드뮤직 강자인 일본과 인도 등을 제치고 이룬 쾌거다.
예로부터 모든 악기의 으뜸인 ‘백악지장(白樂之長)’이자 ‘고집불통’으로 불린 거문고다. 국악기의 특성이 강해 악기 개량이 빈번한 북한에서도 쉽게 손을 못 댔다. 국악의 세계화와 대중화 열풍이 불고, 화려한 음색의 가야금이 캐논 변주곡을 소화하는 동안 거문고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마치 그 장중한 소리처럼, 우직하게. 그런 거문고로 ‘국악 한류’에 앞장섰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1월8일 모교 ‘서여리강(서울대 여성 동문 리더십 강연)’에서 연사로 나선 허 동문은 “국악을 가지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발걸음을 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본업은 연주가예요.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이수했습니다. 전통을 올곧게 지키는 건 숙명과 같은 것이고 가장 마음이 편한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시대의 요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죠. 거문고와 국악을 좀 더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양한 작업을 해왔습니다.”
대학 시절 국악실내악단 ‘소리사위’를 만들어 활동했고 졸업 후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부수석을 지냈다. 관객과의 만남이 중요함을 깨달은 시간이다. 해외로 향한 것도 무대가 고파서였다. 당시만 해도 젊은 국악 연주자가 설 수 있는 무대, 특히 ‘근엄한’ 이미지의 거문고를 연주할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
“2007년 뉴욕 레지던시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가한 게 전환점이 됐어요. 국악이 지역성을 넘어선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막상 가서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해 보니 통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수많은 민족 음악들이 세계에 진출해 있는 것도 자극이 됐고요. 제가 그들의 음악에 맞추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장단과 거문고 음정에 맞춰 서양 악기를 연주하게 했어요. 함께한 연주가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서 한국 음악을 테마로 음악을 만드는 걸 보며 보람을 느꼈죠.”
그는 “거문고는 전 세계의 비슷한 악기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다”고 했다. 울림통과 지판이 분리되지 않은 원시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지더류 악기들의 현 배열이 점차 가늘어지는 형태인 것과 달리 거문고의 여섯 줄은 굵었다 가늘었다를 반복해 다른 어떤 악기도 낼 수 없는 소리가 난다는 것. 대금, 장구 등 국악 타악기와 일렉트릭 기타로 구성된 블랙스트링도 “거문고의 다양한 음색과 음향을 확장시킨다”는 목표를 지키고 있다. 처용무에서 모티프를 얻은 ‘mask dance’를 비롯해 대부분의 곡이 허 동문의 자작곡.
“서양음악은 작곡가의 역사인 반면 동양음악은 연주가의 음악이에요. 연주자와 창작자가 분리되지 않는 것도 우리 음악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길이죠.”
허 동문의 활동엔 부친 고 허 규(임학54입) 전 국립극장장의 영향이 컸다. 서울대 연극부 출신인 허 규 동문은 마당극과 창극 등 한국 전통연극의 선구자. 드라마 ‘수사반장’ 초대 PD 등 방송연출도 했지만 연극의 길에 종착했다. ‘왜 우리가 서양 사람을 흉내내며 셰익스피어만 해야 하나’란 문제의식으로 우리나라 전통예술과 전통연희를 파고들던 아버지였다.
“레코더와 마이크를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전통 예술을 채집하셨어요. 우리 연희가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다같이 즐기는 ‘판’이란 걸 깨닫고 마당극을 시작하셨죠.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극단 연습실에 가면 항상 명인들이 탈춤과 무용,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 ‘조기 교육’ 덕분에 서양음악이 아닌 국악을 모국어 삼을 수 있었던 게 지금도 감사해요.”
기획자의 면모 또한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허 규 동문이 세운 ‘북촌 창우극장’을 재단장해 젊은 국악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무대에 서고 싶었던 2, 30대 시절을 떠올렸어요. ‘홍대에 인디밴드가 있다면, 북촌엔 인디 국악이 있다’고 주창했죠.” 잠비나이, 고래야, 불세출, 바라지 등 지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악 베이스의 월드뮤직 밴드들이 북촌 창우극장의 대표 프로그램 ‘천차만별 콘서트’ 출신이다.
3년차 교수인 그는 이제 “교육과 현장의 맞물림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후배들이 더 많은 공연 기회를 갖고, 공연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목표. 서울대의 부름을 받은 것도 그가 적임자이기 때문일 터다. 그는 내년에 60주년을 맞는 국악과 행사를 기대해달라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박수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