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심수봉 씨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난 1979년 10월 26일의 2주일 전에 꿈에서 육영수 여사를 보았다. 육여사는 생전의 자상한 그런 얼굴이 아니고 화가 나고 경직된 표정으로 여러 젊은 여자들이 줄 서듯이 도열해 있는 속을 걸어 다니면서 마치 사람들을 간택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두 사람의 여자를 어떤 행사에 참석하도록 간택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다른 여자들은 다들 안 가겠다고 뒤로 뺐는데 두 사람만이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10.26 궁정동의 안가에서 만난 당일 날 저녁, 두 사람의 여자는 심수봉과 신재순이었다. 심수봉은 아무래도 태종임금에게 죽임을 당한 세종의 장인 심온의 집안과 핏줄이 통하고, 또한 신재순은 후백제의 견훤군에게 왕건 대신 목을 바쳐 순절한 능산 신숭겸의 집안이다.
10.26 당일날, 평소에 김재규 자신에 대한 심한 불화와 견제로 한이 맺혀서 결국 총을 들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은 경호실장 차지철이다. 차씨는 고려조에 왕씨로부터 왕족에 버금가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김재규는 바로 김문기의 직계 후손인 김녕김씨이다. 김문기는 세조임금 연간에 사육신들과 같이 죽임을 당했으며 역사추적에 의한 나의 결론은 그들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후대에 와서 노량진에 사육신묘를 조성할 때, 사육신에 김문기를 추가해 달라고 했던 김녕김 집안의 요구가 극심해서 정부에서는 역사편찬위원회의 자문을 받아서 김문기의 가묘를 추가했다.
김문기의 부인은 육씨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도 육씨였다.
세종임금과 세조임금은 (수양대군) 흉노가 한반도에 들어와 왕국을 세웠다는 역사의 비밀을 없애 버리려고 수많은 역사책들을 태워 없앴다. 세종과 동년배이면서 친구였던 김문기는 세종의 밀명으로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보고 대륙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 그리고 왜의 역사를 다 확인하고 돌아왔다. 따라서, 김문기는 역사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정권 찬탈을 꿈꾸던 수양대군으로서는 안평대군을 미는 김종서와 또한 전시대의 유물인 역사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김문기가 제거 대상 영순위였다.
김문기의 부인은 육씨, 그리고 세조임금이 죽인 김문기의 약 이십 대 후에 나온 김재규가 죽인 박정희대통령의 부인도 육씨,
박정희 대통령의 가는 길에 배석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차씨와 신씨 등 고려왕조의 왕씨들과 밀접한 관계였던 사람들,,,그리고 세종의 장인과 핏줄을 같이 하는 심수봉,,,
왕씨들은 조선이 들어서서 역성혁명이 일어나자 추산 사만 여명이 몰살을 당했다.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서 경주 지방의 거주자들 수십만을, 반란을 예방하다는 차원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 그들이 많이 간 곳 중의 하나가 지금의 전라도 광주이다. 나주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전라도 지방의 도시에 무주라는 거대 신도시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전두환은 왕건의 핏줄이다.
전두환이 왜 광주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으며
광주사람들은 왜 처음부터 전두환장군을 싫어했을까?
왕씨들의 몰살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왕건의 강제집행으로 경주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이주를 당했던 사람들이 아무래도
많았을 것이다.
위의 사실들과 추정을 종합해보면, 그리고 추가로 어느 영능력자가 말한 것처럼
태종임금은 부인 민씨와 말년에 처남과 그 지지자들을 많이 죽여서 원수처럼 되었다가 조선 말기에 대원군과 명성황후라는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다시 환생하여 외교정책을 두고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조선의 전주 이씨 왕가의 핏줄이 연결되어 있다는 혹자의 설과 함께, 내 생각으로는 그는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죽인 세조대왕의 환생이고 또한 태종임금의 기도 섞여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대통령과 민관식씨와의 아주 특별한 친분도 어찌 보면 전생에 세조였을 때의 외할머니 (태종임금의 부인) 쪽 성과의 친분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부인을 육씨로 만나서 또한 의혹 속에 먼저 보냈는데
위의 정황들로 보아서 박대통령은 전생에서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죽인 태종대왕과 세조대왕을 포함한 많은 전주 이씨 들의 업보를 몸에 타고 났다고 본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애매하게 혹은 억울하게 죽이고 죽은 원한들이 서로 얽혀 있다. 그러나 이제는 화해와 상생을 추구하기 위해 용서하고 잊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령박씨이며 전주이씨와의 연결성은 좀 더 추적이 필요함)
첫댓글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왕건이 신라 사람들을 광주로 이주 시켰다는 기록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광주는매우특별하게의미있는도시거든요. 신라와도 특별한 관계가 보입니다. 신라의 수도를 금성이었다고하는데 나주의 엤이름이 금성이구요. 신라의국명이 계림이라고하였는데 광주에는 매우오래된 계림동이있고 그곳에 별을상징하는 오거리가 두개나있거든요.
나주의 옛이름이 '금성'이었나요? 나주에 금성산이란 곳이 있었던 것이 아니구요? 옛기록을 보면 나주에 금성산신이 나오는데, 그 금성산신은 뱀신입니다. hidol님! 혹시 금성과 뱀의 연관성에 관한 신화나 설화 알고 계신것 있나요? 있으시면 좀 알려주세요.
나주에 금성산이 있고 영암에있는월출산을 마주보고 있답니다. 신화에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광주에 있는 어등산은 가야인 물고기와 연관되구요. 또한 광주는 백제와도 연관되고 가야와도 연관되며 고구려하고도연관되지요. 후삼국시기에 왕건이 후백제를 칠때 먼저 나주지역과 연통하여 후백제를점령하는데 나주의세력은 고구려유민이 살고있었기 때문이지요. 암튼 신라유민이 광주로옮겨왔다는 기록 자세히알고싶습니다. 왜냐면 저자신의 성씨도 원래 가야계이지만나중에 신라계에 편입되었고 나중에 고구려 지역인 평강에 있다가 다시 광주지역으로 옮기게되거든요.
제가 우연히 역사추적을 하게 된 연유는, 사육신의 성씨들과 특별히 좋은 인연을 맺어서입니다. 그러다가 사육신의 방계들과 저의 방계 조상들이 좋은 인연을 많이 맺은 것을 알게 되었고 안동장과 인동장 두 가문의 뿌리의 연관성도 추적 ,,, 장씨와 노루라는 동물과 연관이 있는 쪽은 인동장은 은혜 갚은 노루 이야기로 순천박(박팽년)과 연관이 있고 안동장은 목천장씨들이 한 때 노루장을 썼었죠 (궁예지지로 왕씨들에게 견제 받음)
인터넷에서 김문기 정도령으로 찾아보면 김문기로부터 20대 손이 영적인 채널링을 통하여 받았다는 메시지에 보면 역대 왕조들이 엄청난 역사왜곡을 하였답니다. 역사왜곡의 업보가 아주 무섭고 크다고 합니다. 김녕김도 결국은 훈족의 직계 후손이 아닌가 하구요 한족이라는 실체는 없고 대륙에서는 북방계와 남방계가 여러 갈래가 얽히고 설켜 지내온 역사지요 이런 여러 역사의 비밀은 그 채널링을 통해서 밝혀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저런 조각들을 퍼즐처럼 모아서 역사추리 혹은 옴니버스 역사추적 문학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나주 나씨의 30몇대 손인데 영조와 정조 두 임금이 탕평책을 썼지요 그래서 정조임금이 수원에 화성을 잘 꾸며 놓고 팔도의 부자들을 수원에 옮겨 모아 살계 했다는데 전라도 남부를 대표하는 집안으로 나주나씨 가 뽑혀서 수원에 9대 정도 살았는데 그 집안들을 팔부잣집이라고 했답니다.
그 김문기 후손의 증언에 의하면 왕건은 경주시민들을 이주 시키고 또한 신라 임금들 무덤의 주인 이름도 죄다 바꿔치기 했답니다.
김해 지방에 사시던 어떤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역사책에 아주 오래 전 (대충 6000 내지 만년 전의 어느 시점 )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대륙 전체가 북부의 대쥬신 연방과 남부의 대가야 연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그 역사책은 추적에 실패하였습니다 제도권은 재야서적은 무조건 무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반도의 남부에 있던 육가야의 흔적은 아마도 대륙에서 세력이 약화되어서 들어 온 이들의 후예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자료가 궁금하네요..소설로 역사를 쓰는 미친사람은 없을테고 실존하는책인지 의문이네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주신이란 주신主神으로 황제헌원을 주신으로 불렀다고 <<산해경>>에 기록되어있고 치우인 아사달이 바로 인어로서 가야세력 임을 말합니다. 즉 가야세력과 주신세력이 합해져서 조선朝鮮이 되지요. 즉 유목민족은 양으로 해양민족은 물고기로 표현되구요.그것이 합해진 이름이 조선이지요. 김해지방 할아버지의 책 꼭 보고싶네요.
재야 서적을 제도권 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것은 ,그들이 이병도의 역사왜곡에 길들여지고 친일파기 때문임. 재야 서적을 인정함은 바로 제도권 사학의 허구가 드러나기에 , 인정을 못하고 있음 . 친일파 이완용-이병도-재도권 사학자로 이어지는 계보임.
너무 ㅋㅋ 그럼 자신의 전생은 알고계십니까 미래에 대해 알고꼐십니까? 저는 알고있습니다 나의 미래와 과거를 말이죠
진왕영정님의 전생에관하여 꼭듣고싶습니다. 진시왕은 동이족 사람이 맞거든요. 진시황은 영정인데 조나라출신이라서 조정이라고도 불렀고 원래 이름은 한韓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여수였다고 하는데 전라도 여수출신이 맞지요?
광주시에 계림동이 있는 것도 참 이상하지요 서라벌을 계림이라고 했던가요?
신라의 별칭이 계림이었구요. 신라의 수도는 금성이었는데 주석으로 만든 성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주석은 청동기시대에 매우 중요한광물이었습니다. 주석과 구리가 합해져야 청동이 되는데 주석은 매우 귀했는데 한반도는 주석이매우많이생산되어 최근까지 수출했지요. 전라도지방은 한때 왜라고도 불렀거든요. 일본의 신화에보면 삼도라는 곳에서 일본으로 이주해가는데 광주와나주사이에 삼도라는 지명이 아직도 있거든요.
나주羅州는 라의 중심도시인 수도라는 뜻인데 즉 레무리아제국의 수도였지요. 인도네시아를 포함하여 30여개의 라국이있었지요. 쇠(주석)으로된성이라서 금성이라했고 금성(쇠울)이 변하여 서울이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레아무리아 제국은 어느나라인지.....
레무리아는 무라고도 불렀고 아시아 전 대륙과 한반도근처의 바다를 포함하는 대국이었습니다. 그수도가무였는데 무는 광주와 라주가 합해진 거대도시였습니다. 아틀란티스의공격으로 멸망하였다가 다시 아틀란티시가 딸제국으로 세웁니다.
언제적 이야기인지..........궁금하네요........우리 역사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닌듯 싶고...1만전이나 2만년전 이야기인지?
약 1만 5천년전부터 BC 2333까지 입니다. 즉 단군조선이전까지 신시시대와한국시대의이야기입니다.
대전 인근의 여러 곳 선사유적지에서 구석기와 청동기 등 선사시대 유적지가 많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서 바이칼 기원설 이전 수만년 전에도 한반도에 문명이 있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지요
대륙의 왜가 번성했을 적에 한반도의 남부를 지배했다 (이것은 임나일본부설과도 조금 통하고 제도권사학자들은 부정하는 부분)
왜倭라는 나라는 한韓에서 위衛나라로 조나라 또는 왜나라로 변합니다. 한과 위는모두 보위한다라는 뜻이고 위는 큰나라 왜는작은나라라는 뜻이랍니다. 전라도는 나주평야와 호남평야가있는 한반도 최고의 곡창지대이며 해안의벌이발달해서 필수품인 소금과 조개 등을 구할수있어서 요지중 요지였지요. 특히우리민족인묘족은 벼농사를지은민족인데 기후가따뜻하여 벼농사가잘되었지요. 왜倭에도 벼화가들어가서 벼농사를 짓는민족임을 알수가있지요.
소금과 조개가 만나면 조개젓이 되지요. 옜날에는 조개젓은 거의 필수적인 밑반찬이었지요.
나주에서는 아주 독특한 옹(기)관 매장문화가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