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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1일 월요일
[(백)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알폰소 성인은 1696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두터웠던 그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1726년 사제품을 받은 알폰소는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를 설립하고, 올바른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설교와 저술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나폴리 근처에 있는 고티의 교구장 주교로 사목하다가 다시 수도회로 돌아가 1787년에 선종하였다. 1839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윤리 신학의 대가로 존경받던 알폰소 주교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을 사형에 처하려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아히캄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한다(제1독서). 헤로데 영주는 생일에 아내 헤로디아의 딸이 청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하여 선물로 준다(복음).
제1독서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26,11-16.24
그 무렵 11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귀로 들으신 것처럼 이 사람은 이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였으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12 이에 예레미야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13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14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15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24 예레미야는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백성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릴 때는 “잘못하였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어른이 되면 이 말이 잘 나오지 않을까요? 어릴 때는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 체면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이유와 핑계가 점점 늘어나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어른이 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이미지가 깎이는 것이 두렵고, 잘못을 인정하기에 앞서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손님들 앞이어서”(마태 14,9), 곧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요청에 괴로워하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헤로디아의 딸 또한 그저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만 합니다. 곧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베어 달라고 하고 베어 온 머리를 헤로디아에게 가져갑니다. 초대받은 손님들 가운데서도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고, 잘못을 숨기고만 싶은 인간들을 주님께서는 가엾이 여기시고 배불리 먹이시며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마태 14,13-21 참조).
알폰소 성인은 고해소에서 늘 부드러운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였다고 합니다. 고해성사 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리는 성인은 선종할 때까지 사죄경 바치기를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과 이웃과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를 용서하시고자 오십니다. “잘못하였습니다.”라는 고백이 하느님의 자비를 느끼는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이 시대 또 다른 순교자, 노인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구약과 신약을 잇는 대 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죽음, 인간적으로 바라보면 너무나 안타깝고 허탈하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메시아의 선구자답게 장엄하게 혹은 황홀하게 마지막을 장식해야 하는데, 깊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악인들의 간계와 실수로 참수당하니,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살아생전 우리에게 보여준, 그 찬란하고 강직한 삶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비참하고 초라한 죽음 앞에, 하느님의 뜻이 대체 어디 있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위대한 마지막 대 예언자가 교활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악한 남녀 헤로데와 헤로디아, 그녀 딸의 노리갯감이 되어 참수당하다니,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모든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처구니가 없고 이해가 안되는 순교자들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순교자들의 시선은 이미 이 지상을 넘어 또 다른 세상 하느님 나라를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상의 삶도 의미가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천상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살아남는 것도 좋지만, 주님 나라로 건너가는 것은 더 큰 기쁨이었습니다. 따라서 억울한 죽음조차도 주님 때문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흩뿌려진 순교자들의 땀과 피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공평하신 주님께서 그들의 희생과 죽음을 나몰라라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백배 천배의 상급과 영예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피를 흘리는 박해가 없는 이 시대, 교회는 백색 순교, 녹색 순교, 땀의 순교를 강조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던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삶과 땀과 수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증언하는 행위를 이 시대 순교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축일을 기념하는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님의 생애가 참으로 돋보입니다. 그는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장수하였습니다. 1696년에 출생하셔서 1787년 돌아가셨으니 만 91년을 사셨습니다.
건강하게 장수하셨으면 좋으련만 만년에 이런저런 병고로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알폰소의 자취가 남아있는 성화들을 보면 성인의 고개가 똑바로 서있지 않고 약간 삐딱합니다. 대체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그분의 한평생은 참으로 혹독했더군요.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71세 되던 해 당시로서는 불치병인 류머티즘에 걸려 목이 심하게 굽어버렸습니다. 후에 각도가 조금 완화가 되기는 했지만,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굽은 목 때문에 턱이 가슴을 눌러 항상 상처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한평생은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끊이지 않았던 힘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도회 설립자로서 이런저런 고민거리가 많았던 그는 만성 두통에 시달렸는데, 그럼에도 집필을 계속했습니다. 얼마나 두통이 심했으면 왼손으로는 차가운 대리석 조각으로 두통 부위를 마사지하며 오른손으로 글을 쓸 정도였습니다.
대성인이자 교회 박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알폰소도 우리가 겪는 이상의 고통과 시련을 겪으셨다는 것, 수시로 와 닿는 깊은 상처에 속수무책이었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너무 클 때는 만사 제쳐놓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때만을 기다렸습니다. 시련이 크면 클수록 더욱 성모님께 매달리면서 그분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탁월한 성모 신심의 소유자였던 그에게 성모님께서도 많은 중재와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그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수했습니다. 그는 자주 성모님과 깊이 통교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성모님의 각별한 보살핌에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일어난 모든 좋은 일들, 저의 회개와 성소 여정,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은총들은 모두 당신이 하신 일입니다. 당신은 제가 모든 것 위에 어머니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시고 또 원하십니다. 제가 항상 언제 어디서나 당신에 대해 가르치며 당신의 아름답고 은혜로운 신심을 모든 영혼 안에 심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북미주 서울대교구 사제 모임이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있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선교사로 지내는 신부님이 정성껏 준비해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임 장소는 ‘셀람(CELAM)’이었습니다. 남미 주교회의 건물입니다. 숙소와 성당, 식당과 회의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주교회의 사무총장 주교님께서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달라스 성당 교우들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다섯 명의 봉사자가 콜롬비아까지 와서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주교회의 식당을 사용하며 신부님들의 입맛에 맞게 한식을 정성껏 차려 주었습니다. 육개장, 삼겹살, 김치찌개, 부대찌개가 식탁에 올랐습니다. 보고타의 교우분들도 함께해 주었습니다. 김치도 담가 주었고, 차량 봉사도 해 주었습니다. 낯선 땅이었지만 낯설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한 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같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성령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들은 영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고 각자의 소임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처럼, 동굴 속에서 보는 희미한 빛은 진리의 여명일 뿐입니다. 동굴 밖에는 더 넓고 놀라운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진리를 향한 여정이 됩니다. 시련과 아픔, 좌절과 고통도 그 여정 안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화와 종교와 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분명한 법칙과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생각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보다는 눈에 보이고 측정할 수 있는 세계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수학, 과학, 경제는 이런 사고의 틀에서 발전했습니다. 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법칙과 질서를 알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은 때로 위험합니다. 자본주의와 디지털 문명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는 인격과 도덕, 사랑과 우정이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이윤의 창출 앞에서 환경 파괴도, 전쟁도, 폭력도 쉽게 용인됩니다. 숫자는 커지지만, 마음은 작아지고, 기술은 발전하지만, 양심은 무뎌질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성숙한 인간의 나이테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입니다. 학문을 배우고, 뜻을 세우고, 의혹이 없으며, 하늘의 뜻을 알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마침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그르침이 없는 삶입니다. 제 나이가 예순이 넘었지만, 아직도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혹이라는 바람 앞에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는 지팡이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흐려진 양심을 비추어 주는 등불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는 권력을 가졌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체면과 욕망과 권력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세례자 요한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헤로데는 왕이었지만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권력을 가졌지만, 진리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양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반면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권력도 없었고, 재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는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한 여명의 눈동자였습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삶은 인류의 역사에 깊은 나이테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도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는 백성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했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예언자를 죽이려 했고, 누군가는 예언자를 살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헤로데처럼 체면과 욕망 때문에 진리를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히캄처럼 하느님의 사람을 살리는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진리를 위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 길이 참된 자유의 길입니다.
신앙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숫자와 이익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양심의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진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보고타에서 만난 사제들과 교우들의 아름다운 봉사는 이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앙은 우리를 낯선 사람으로 두지 않습니다. 신앙은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 줍니다. 신앙은 우리를 이익의 계산이 아니라 사랑의 계산으로 살게 합니다. 우리의 삶이 헤로데의 길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의 길을 따르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아히캄처럼 하느님의 뜻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북미주 서울 대교구 사제 모임이 은총 가운데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콜롬비아까지 와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신 달라스 성당 봉사자들, 김치를 담가 주고 차량 봉사와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은 보고타 교우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죽어갑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죽이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과
벗하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을
막지 않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에게
침묵하는 사람이 있기에
죽이는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있기에
사람이 죽어갑니다
오늘의 성인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phonsus Mary de Liguori)
신분 : 설립자, 주교, 교회학자
활동연도 : 1696-1787년
같은이름 : 알폰수스, 알퐁소, 알퐁수스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us Maria de Liguori, 또는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1696년 9월 27일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교 마리아넬라(Marianella)에서 주세페(Giuseppe de Liguori)와 안나 카발리에리(Anna Cavalieri) 사이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나폴리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아버지 주세페는 나폴리 공국의 해군이었으며 어머니는 트로야(Troja)의 카발리에리 주교의 동생으로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던 성 알폰수스는 불과 16세 나이로 나폴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결코 패소하지 않는 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다. 1723년 토스카나(Toscana) 대공과 어떤 공작 사이에 큰 돈일 걸린 소송이 벌어졌는데, 이 소송에 참여했던 성 알폰수스는 어떤 중요한 문서를 잘못 해석하고 서명한 사실로 패소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변호사로서의 자격이 상실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며 기도하던 중 1723년 8월 28일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찾아갔다가 신비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성 알폰수스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1726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2년 정도 나폴리 근방을 돌며 선교사로 봉직하였고, 1729년에는 나폴리의 중국 신학원에서 활동했다.
1730년 친구인 토마스 팔코이아(Thomas Falcoia)가 스칼라(Scala) 지방에 있는 카스텔라마레 교구의 주교가 되자, 성 알폰수스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스칼라에서 수녀들의 피정을 지도할 때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를 만났고, 새로운 수도회에 대한 그녀의 환시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팔코이아 주교가 로마(Roma)에서 경험한 환시와 일치하였다. 그래서 1731년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환시에서 받은 규칙을 따라 여자 구속주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스칼라로 이주하여 팔코이아 주교, 파가노 신부와 다른 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구속주회(Redemptoris)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주님의 말씀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성직 수도회였다. 본부는 스칼라 수녀회의 숙박소를 이용하였으며 명예원장으로 팔코이아 주교를 모셨다. 그런데 초창기에 중대한 알력이 일어나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떠나가서 포치아에 따로 수도원을 설립하고, 또 1733년에는 쿠르시오(Curtius)라는 수도자 한 명만 남고 모든 회원들이 다른 회를 설립하여 떠났다.
하지만 성 알폰수스는 흔들리지 않고 회를 지키면서 다른 회원들을 맞아 1734년에 빌라 데글리 스키아비에서 두 번째 창립을 맞이하였다. 그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수도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마침내 구속주회는 1749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같은 해에 열린 총회에서 수도회 종신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다음 해에 여자 구속주회도 교황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왕권주의를 내세워 수도회들을 적대시하던 왕과 타누치(Tanucci) 후작 때문에 나폴리 왕국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1752년 왕은 교황령과 시칠리아(Sicilia)만을 사목 활동 영역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으로 인가를 해주었다.
이 기간 동안 성 알폰수스는 인근 지역을 다니면서 설교 사도직을 열렬히 수행하였으며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는 1762년 6월 20일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Santa Agata dei Goti)라는 나폴리의 한 작은 교구장 주교로 알폰수스를 임명하였다. 그는 이 교구를 돌보는 13년 동안 성직자, 수도원 그리고 전 교구의 혁신을 계획하였으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열정적 활동으로 중병을 얻었고, 또 죽을 때까지 괴롭혀온 류머티즘으로 마비될 때도 많았기 때문에 1776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의 허락을 받고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주교직을 사임한 후에도 그는 구속주회의 정립과 운영을 위해 주력하였다. 하지만 나폴리 왕국의 당국자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예수회가 박해를 받은 이후 구속주회도 위험에 처하자, 성 알폰수스는 중개자를 내세워 당국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왕이 승인한 규칙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가 수도회를 인가한 교서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므로 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교회와 나폴리 왕국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교황령 외의 지역에 있던 공동체들이 성 알폰수스의 관할권을 벗어나게 됨으로써 회는 두 계열로 분열되었다. 성 알폰수스는 둘로 분열된 수도회가 다시 합쳐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787년 8월 1일 살레르노(Salerno)에서 선종하였다.
구속주회는 성 알폰수스가 선종한 직후 다시 하나로 재건되어 발전하였다. 성 알폰수스는 윤리, 신학, 수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Jansenism)과 반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신심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책은 “마리아의 영광”이다. 그는 1816년 9월 15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87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 후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0년 4월 2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고해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성녀 스페스 (Spes)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스뻬스, 쓰뻬쓰
성녀 카리타스 (Charity)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까리따스, 카리따스
성녀 피데스 (Fides)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피데쓰
하느님의 지혜인 피데스(Fides), 스페스 그리고 카리타스(Caritas) 공경을 설명하는 동방의 한 은유에 따르면, 이들은 로마(Roma)의 과부 성녀 소피아(Sophia, 9월 30일)의 세 딸의 실제 이름이라고 한다. 이 딸들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하였다는 것이다(로마의 순교록). 순교 당시 피데스(신덕)는 12세로서 매를 심히 맞았으나 큰 상처를 입지 않자, 끓는 물을 부었고 그래도 별 효과가 없자 참수하였다. 그리고 스페스(망덕)는 10세였고, 카리타스(애덕)는 9세였는데, 용광로에 집어넣어도 죽지를 않아서 목을 베었다. 또 그들의 어머니 성녀 소피아(지혜)는 그들의 무덤에서 기도하다가 3일 후에 운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