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미(美)의 창조
한용운
이별은 미(美)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황금과 밤의 올[絲]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임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美)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님의 침묵>(1926)-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산문적, 역설적, 긍정적, 불교적, 명상적
◆ 표현 : 산문적 율격과 역설적 표현, 은유에 의한 시각적 심상
이별에 관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여성적 어조로 노래함.
가상의 청자를 설정하여 경어체를 통해 경건한 어조로 노래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 이별에 본질적 의미를 부여함. 역설적 은유
이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근원적 바탕이 된다는 뜻임.
* 2행
→ '아침, 밤, 죽음, 시듦'은 '황금, 검은 비단, 생명, 푸른 꽃'을 더욱 가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존재
황금은 아침 햇살을 받을 때 그 빛을 발하고, 검은 비단은 어둠 속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생명은 죽음이 있기에 더욱 가치 있고, 꽃은 시들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 이별은 '다시 만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별은 또 다른 미의 창조인 것이다.
*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 미와 이별을 동일시함으로써, 이별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수미상관식 구성
◆ 제재 : 이별
◆ 화자 : 이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다시 만남'이라는 미의 창조를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인식함
◆ 주제 : 재회의 원천이 되는 이별에 대한 예찬 또는 역설적 인식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이별은 미의 창조(역설적 인식)
◆ 2행 : 이별의 미를 인식하는 계기
◆ 3행 : 이별의 의미
◆ 4행 : 미는 이별의 창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이별의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더 나은 만남을 위해 이별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화자의 태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특히, 이별은 임과의 단절이 아닌 미의 창조라고 인식함으로써 역설적 미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짧은 길이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용운 특유의 '역설의 미학'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는 영원한 생명',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 등의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에의 길을 준비하는 이러한 불교적 역설은 만해 시의 근간을 이루며,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단조로움을 극복하여 무한한 역동감을 느끼게 해 준다. 이별은 재생(再生)을 가져오는 반전의 출발점이자 님과의 합일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자 이별의 계절이라고 한다. 이른 봄부터 수없이 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며 피어나는 꽃이 가을꽃이며, 그 꽃잎을 떨구며 한 해를 보내는 것도 가을이다. 책상 앞에 있는 달력이 이제 두 장밖에 남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오늘날에, 아버지의 사랑이 넘쳤던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며, '아날로그가 숨쉬는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나는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운동장 모퉁이에서 60년을 버텨 온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내려가 노오란 은행잎을 주웠다. (시인 신배섭)
■ 감상을 위해 더 읽을거리(퍼온 글)
임에 대한 이별의 아픔과 비극을 불교적 상상력에 의해 승화시킨 한용운의 시다. 1926년에 발표한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된 작품이다. 제목부터 시 전체가 관념적이지만, 주제는 <님의 침묵>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즉, 연시(戀詩)가 아닌 관념시로서의 <님의 침묵>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첫 행과 끝 행은 이별이 미(美) 자체라는 등식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만해의 기본적 사상과 시 자체의 형식성에 완결미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시행에는 이별의 미적 요소를 지니지 못한 대립 심상이 제시되어 있다.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는 영원한 생명', '시들지 않는 푸른 꽃'에 존재하지 않는 이별의 미는 무엇일까? 이 구절에는 밝음이 어둠의 전제에서 그 의미가 있듯이, 긍정적 가치는 부정적 가치의 존재에서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역설이 자리잡고 있다.
아침의 영롱한 빛의 바탕 없이 광휘(光輝)로움을 빛낼 수 없는 황금, 어둠의 근본 바탕이 없이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이 가치를 얻을 수 없는 생명, 시듦 없이 아름다움을 인정받을 수 없는 꽃이기에, '다시 만남'이라는 미의 창조를 위한 이별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이별을 통해 제3행에서와 같이 역설적으로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다. 그러니 이별은 미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별'과 '미'의 등식 관계를 통해 이별에 형이상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로 시작해서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로 끝나는 구조는 이 시가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을 준비하는, 이른바 정 · 반 · 합의 변증법적 철학 원리에 기초해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별의 미는,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는 것처럼 긍정적 가치는 반드시 부정적 가치의 존재에서만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역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황금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탕으로 빛을 발하고, 검은 비단은 어둠 속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며, 생명은 죽음 없이는 가치를 얻을 수 없고, 시들지 않는 꽃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과의 '다시 만남'을 전제로 한 이별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 되며, 또한 그 이별은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있는 이별이므로 새로운 미의 창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용운은 암울한 식민지 상황 속에서 '백조'파의 낭만과 감상을 타파하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노래하였다. 한용운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구도정신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시문학의 전통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1920년대의 우리 시단에서 소박한 낭만주의와 퇴폐주의, 목적주의를 극복하고 형이상학의 깊이를 획득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시 역시 그러한 형이상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그의 시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불교적 변증법과 역설의 미학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한용운의 모든 시 작품은 단 한 개의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님'이다. 그리고 '님'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는 님과의 '이별'이다. 이별은 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계기요, 님은 이별을 속성으로 가진다. <님의 침묵>에서의 이별이 만남을 전제한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세계가 이 시에 투영되어 있다. 님은 떠났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에 이르는 불교적 변증법을 발견하게 된다.
3음보의 율격과 산문적 구조를 띤 자유시이다. 임에 대한 이별의 아픔을 불교적 상상력에 의해 형이상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별은 만남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이별 없는 만남은 아침 햇빛의 바탕이 없는 황금이며 밤과 죽음 없는 아름다움과 영원한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고통과 절망 후에야 아름다움은 꽃으로 피어난다. 그러므로 '이별은 미의 창조이며, 미는 이별의 창조인 것'이라는 역설 구조가 생겨난다. 이 역설이야말로 한용운의 문학을 성립시키는 근본적 구조요 활력의 원천이다.
[작가소개]
한용운[ 韓龍雲 ]
<요약>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 일제강점기 때 시집《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 등이 있다.
출생-사망 : 1879.8.29 ~ 1944.6.29
본관 : 청주
호 : 만해
별칭 : 속명 유천, 자 정옥, 계명 봉완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충남 홍성
주요수상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주요저서 : 《조선불교유신론》《님의 침묵》
본관 청주(淸州),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이다.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 1)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광무 9)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융희 2)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惟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이듬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城北洞)에서 중풍으로 별세하였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 1973년 《한용운전집》(6권)이 간행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용운 [韓龍雲]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첫댓글 있음으로 인해서 없는 것이니
없음으로 있음을 만들어낸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우기에 더욱 건강에 유의하시고,
안전사고 또한 관심가지사 온전한
생활 이어 가시길 소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