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보케리니, 살리에르, 클레멘티, 모짜르트(음악의 신동),
베토벤(음악의악성)
서양 문화사에서 1750년부터 1825년까지는 고전주의 시대로 분류된다. 고전주의 시대는 18세기 후반의 독특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은 구체제(프랑스 혁명 이전의 유럽 사회 체제)의 몰락과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의 확립으로 특정지워지는 시기였으며 특히 귀족으로부터 중산층으로의 힘의 전환이 이루어졌던 때였다. 이 시기의 지적 생활 양식의 향상과 과학의 진보는 특히 눈부신 것이었다.
7년 전쟁(1756-63)과 미국의 독립선언(1775), 프랑스 혁명(1789-99), 노불전쟁(1812) 등은 유럽 여러 나라의 급격한 사회 정치적 변화를 촉구하였고, 칸트철학, 볼테르, 루소, 스미스 등의 문학 작품들, 고야, 레이놀즈 등의 예술 작품들은 사람들의 지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종두의 개발(1796)과 산소 및 수소의 발견(1774), 자외선 및 자기 유도의 발견 등을 과학을 크게 발달시켰다.
그 밖에도 증기 기관의 발명과 방적기, 전동기, 씨아 발전기 등의 발명이 산업 혁명을 유도하였다. 고전주의 시대는 이러한 개혁과 계몽, 합리, 과학, 산업의 시대와 함께 그 문을 열었다. 라틴어의 "Classicus"는 원래 "납세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 후에 "모범적"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전주의"라는 말이 사용된 이래 그것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가장 우수한 상태를 일컫는 일반적인 의미와 고대 그리스 및 고대 로마의 문화와 관련된 상태를 일컫는 특정한 의미가 그것이다. 그래서 고전주의라는 말 속에는 우수한 것의 극치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욕을 담고 있고, 그와 동시에 그 우수한 것의 극치는 과거에 이미 성립되어 계속 존재해 왔으며, 그것은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다시 도달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자신이 외부와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고전주의자들은 타인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개성이나 개인적인 경험을 예술 작품의 자아를 확대하고 구현하는 작업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당위로 인하여 존재한다고 여겼으며, 예술 작품에 관련된 사고의 명료성과 형식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쏟았다. 결과적으로 고전주의자들은 매우 객관적인 태도로 예술 작품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고전주의는 예술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의 적절한 통제 및 자제, 논리적 표현과 정교한 기교의 가능성,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력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견해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작품 속에서 정연한 질서와 안정성, 화성적 조화를 추구하도록 고무하였다. 그래서 고전주의 예술은 "단순 명료하고 법칙에 따른 외적 상태"와 "자연적이고 유기적이며 긴장에 찬 내적 체험"을 결합함으써 "형식과 내용의 이상적인 결합"과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그리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영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고전주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1770년부터 1825년까지의 음악을 말한다. 그것은 위대한 음악적 실험 정신이 성취한 인류사적인 업적이었다.
당시의 음악가들은 장.단음계 체계의 가능성을 폭 넓게 탐색하였고, 절대 음악적인 기악 작품을 위한 대규모 형식을 확립 발전시켰으며, 반복 형태의 이상적인 소나타 형식을 발견하는 한편, 독주 및 2중주 소나타, 3중주와 4중주, 여러 가지 실내 악곡, 협주곡, 교향곡 등의 갖가지 연주 형태를 확립하였다. 만약 고전주의라는 말을 "당시의 전통적인 형태의 고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말은 비엔나 악파의 작곡가들(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데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 형태를 찾아내기 위해 대담한 시도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들은 후기의 그것들과 크게 달라졌고 그러한 경향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들이 18세기 중엽의 시인들과 미술가들처럼 정서적 표현에는 무관심한 채 형식적 규칙에만 열중하였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고전주의 음악가들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깊고도 고귀한 정서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을 서서히 채워가고 있었고, 베토벤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깊은 감동과 열정으로까지 진전되어 있었다.
요컨데 그들은 각기 자신의 고귀한 음악적인 상념의 표현에 가장 적합한 음악 형태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전주의라는 말은 그들의 음악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문학과 미술의 경우 고전주의 시대는 18세기 중엽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으나, 음악에서의 고전주의는 몇 십년 후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고전주의 음악이 계속되고 있던 19세기 초기에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낭만주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 속에는 이미 낭만주의적인 특성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음악에 있어서 고전주의라는 말은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상태"를 지칭하는 의미로서 이들 비엔나 악파에 적용된다. 그들이 남긴 작품들, 특히 교향곡과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2중주곡, 3중주곡, 4중주곡 등은 그 후의 작곡가들이 능가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였으며 그들이 기악 작품들에서 사용했던 역동적인 작곡 기법은 주제의 전개 과정과 완전하게 일치하였다. 그들이 완성한 광대한 악곡 구조들은 논리적이고 타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충분할 만큼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음악적 사고와 음향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