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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5: 13 - 14 만물의 찬양
계 5: 13 만물의 찬양 -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
천지의 만물들, 즉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사람들이나 기타 모든 만물들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찬송과 영광을 돌렸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올리는 만물의 영광스러운 합창이었다.
여기에 한 번 더 성자(聖子) 예수께서 성부(聖父)와 동등한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다는 삼위일체 교리가 증거된다.
13) 만물의 찬양 :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내가 또 들으니는 요한의 상태가 계속적으로 온전함을 의미한다.
본 절은 앞 절의 찬송에 대한 모든 피조물들의 화답송으로 만물이 속한 전우주의 구속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이다(Swete, Caird).
(1) 만물의 범위 -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 대상 29: 11 -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 빌 2: 10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① 하늘 위
천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 시 148: 3 -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② 땅 위
현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 시 66: 4 -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셀라).
③ 땅 아래
땅 속의 세계를 의미한다.
* 전 3: 21 -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④ 바다 위
수중 세계를 의미한다.
* 사 24: 14 -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⑤ 그 가운데 모든 만물
여기서 '만물이 가로되'는 창조주와 창조물이 구분되지 않는 범신론적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적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우주에 속한 만물의 반응을 나타낸다.
* 롬 8: 19-25 –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 찬양의 대상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3) 찬양의 내용 -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① 찬송
② 존귀
③ 영광
* 마 6: 13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눅 2: 14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 벧전 4: 11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④ 능력
(4) 찬양의 기한 -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 시 72: 18-19 – 18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 롬 9: 5 -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계 5: 14 아멘과 경배 -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
만물들의 찬송에 대하여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경배하였다.
14) 화답 :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피조물의 찬송에 호응하여 네 생물과 장로들이 아멘과 경배로 하늘의 찬송을 끝맺는다.
'가로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레곤'(*)은 네 생물이 12절의 일곱 가지 찬송과 13절의 네 가지 찬송에 모두 아멘이라고 화답하였음을 시사한다(Mounce).
(1) 화답하는 자
① 네 생물.
② 24 장로.
(2) 화답의 내용 - 아멘.
(3) 경배 - 구원이 은혜이므로. 예수님의 책을 취하심에 찬양함(계 5:12-14)
① 어린양
예수님에게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이 돌아가야 한다.
② 네 생물
하나님 편이 승리하였으므로
③ 이십사 장로
모든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므로
④ 천사
자기의 사명을 다하게 되므로
⑤ 만물
저주 가운데서 회복을 받게 되므로
묵상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세세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본 장의 교훈을 정리해 보자.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종말 사건들을 계시해 주셨다.
신적 구주이신 그는 대속 사역을 이루심으로 자격자가 되셨다.
우리는 주께서 주신 계시를 가감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믿고 그의 속죄 사역을 감사하자.
사람이신 예수께서는 본래 다윗의 뿌리이시며 능력과 지혜가 완전하시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친히 그의 피로 온 세상의 택자들을 구속(救贖)하셨고 왕들과 제사장들을 삼으셨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찬송해야 한다.
네 생물들과 24장로들과 천천 만만의 천사들과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영원한 찬송을 돌렸다.
우리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구원의 은혜를 진심으로, 그리고 영원토록 매일 매일 찬송해야 한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 ( 박 조준 목사)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 보좌의 놀라운 광경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5장을 시작하면서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본문 1절에 “그리고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생각한 4장의 말씀과 내용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사건 자체도 그러하려니와 시간적으로도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를 본 후에 그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에 두었습니다. 그것은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에는 책이라고 해야 양피나 파피루스로 된 두루마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은 신령한 눈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두루마리를 본 것입니다.
이 두루마리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습니다.
(2) 이 두루마리는 안과 밖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3)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 기록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들린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은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쓰고 있으며 계시록 전체를 여는 열쇠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힘있는 천사의 음성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본문 2~3절에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그 뒤에 무서운 침묵의 순간이 이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요한이 슬피 울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왜 울었습니까? 상상해 보세요.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권능과 비밀의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조물주 하나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신앙을 가진 모든 성도들의 꿈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말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새로운 뉴스 특보를 만드신 바로 그 순간 그것을 읽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울었습니다.
그 두루마리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우리에게 읽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줄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입니까? 그 내용이 인간에게 관계된 것임에는 분명한데, 천사들은 그 두루마리를 읽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천사는 인간을 찾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늘 위에나 땅 아래나 이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두루마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요한이 울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하여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고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들이 70년 간 포로 생활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돌아오게 될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상한 일을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촌인 하나멜이 땅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그 땅의 값이 떨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획하려고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멜로 하여금 예레미야에게로 가서 그것을 직접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예레미야서 32장 9~12절에 “은 십칠 세겔을 달아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그의 비서였던 바룩에게 전달되어 그 인봉한 두루마리를 토기에 담아 여러 날 동안 보존하게 됩니다. 그것을 그 재산들의 법적인 소유자임을 증거해 주는 다른 증서들과 같이 두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일은 근본적으로 하늘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이 일곱 인을 쳐서 봉한 두루마리의 의미와 목적은 이 땅 위에 내리는 명령서입니다. 이 명령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담에게 전하여졌으며, 아담은 범죄함으로 그것을 사단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이후로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사단이 이 땅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이 운 것은 이 두루마리가 이 땅에 보내는 명령서이며 그것이 봉한 상태로 있는 한 사단이 이 땅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십사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울고 있는 요한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獅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요한은 얼른 그 장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는 무엇을 보려고 기대했을까요? 물론 사자(獅子)입니다. 그것은 그의 백성을 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오실 정복의 메시야를 의미하는 유대인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본문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했습니다. 또다시 요한은 비밀을 바라보았습니다. 보좌에 서 있는 어린양은 과연 누구입니까? 수년 전에 요한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썼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그 어린양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십니다. 요한이 눈을 들어 보니 어린양은 벌써 죽임을 당한 것같이 보였으며, 일곱 불과 일곱 눈과 일곱 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다섯 가지 특징을 말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지파의 사자입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은 그저 되는 대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속성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사자는 짐승 중의 왕입니다. 따라서 유대 지파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파이기 때문에 이 이름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정사를 통치하실 왕으로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처음에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 것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 중 장자로 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나시게 될 것을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십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다른 이름보다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 깊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에 제물이 된 어린양은 흠이 없어야 했고 완전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흠이 없으신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소크라테스와 그리스도를 비교하여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사람처럼 죽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처럼 죽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루난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순전히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아「예수전」을 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그 인격에 찬탄하기를 “아무리 보아도 그는 사람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양은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이사야서 53장 7절에 예수님께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내촌감삼씨는 “양이란 그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도 갖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과연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를 위하여 복을 비셨습니다. 정말 그는 원수 갚으려는 생각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어린양은 희생의 동물입니다. 고기는 사람들의 식량으로, 털은 옷감으로, 가죽은 여러 가지 제품으로, 심지어 뼈나 그의 분토까지도 사람에게 공헌하는 것입니다. 그의 일생은 완전히 희생의 생애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대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하였으니 주님은 그대로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천사들은 우리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모습을 사자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능력과 권능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주님을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은 나중에 주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러 오실 때 주님을 사자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뿔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힘이 없고 약한 분이 아님을 말씀해 줍니다. 뿔은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 28: 18). 우리 주님께서 맨 처음 어린양으로 오셨을 때에도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 다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때에는 사자로 오시어 그분의 전지 전능하심과 모든 것을 불사르는 능력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눈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했습니다. 이 눈은 우리 주님의 심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한량없이 그에게 내려주신 성령의 일곱 가지 특징을 가리킵니다. 일곱은 완전을 뜻하는데,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인간의 모든 생각과 인간이 한 일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주님은 모르심이 없으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분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대 지파의 사자인 그리스도께서 환난이 끝난 후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때, 그것은 전능하시고 인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는 모르고 잘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양 어느 법정 앞에는 법관의 동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법관이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이것은 법관은 모든 일에 공정을 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법관의 눈을 수건으로 가리워 놓았다고 합니다. 법관의 이상은 공정을 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법관은 눈이 가려져서 보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공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르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심판은 공정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양이시지만 인간들이 그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자기를 심판하실 분이 바로 자기가 그때 구주로 모시기를 거부함으로써 마음 문을 닫아 버린 그분, 그리스도 예수이심을 알 리가 없습니다.
지금 요한은 완전한 대속물, “보좌의 한 가운데” 서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환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요한은 이상하면서도 논리가 정연한 꿈의 한 장면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이 앞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감히 아무도 펼칠 엄두도 못 내는 책을 받았습니다(7절). 그러자 장로들과 천사들이 모두 그 어린양 앞에 절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하늘의 음악을 상징하는 수금과 성도들의 기도로 가득 찬 금대접이 있었습니다(8절). 이 기도에 대해서는 독단적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 때에야 응답될, 아직까지 응답되지 않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처럼 많은 성도들이 눈을 감기 전에 드린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기도도 그날에 응답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당장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더디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1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5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수십 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당대가 아니고 자손 대에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야 이루어지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그런데 그 방법과 시기는 주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를 드려 왔습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천년왕국을 다스리기까지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 생전에 응답되지 못한 기도라 하더라도 모든 기도가 반드시 응답될 것을 믿습니다.
사도 요한이 보니 우주에 새 노래가 메아리쳐 울려 퍼졌습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계 5: 9~10). 이십사 장로에 대하여 말씀드릴 때 본 것처럼 이십사 장로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인간들을 대속하신 분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광경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이 책을 보고 그것이 이 땅에 내리는 명령서임을 알고서, 그 책을 열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서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이 세상의 죄를 씻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인간을 위하여 드리신 희생으로 인해서 그분만이 그 책을 펴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의 노래를 통해서 주님께서 그 책을 펴시기에 합당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일찍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갈보리산 위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 인간을 화해시킨 사건을 가리킵니다.
둘째로, 그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떤 족속이든 어떤 민족이든 어떤 말을 쓰는 이든 간에 구속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자기 나랏말로 성경을 갖지 못한 27억의 사람들도 그의 구속하심과 그의 사랑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의 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며 이 세대에 복음을 전하는 주님께 제사장인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 우리 믿는 사람은 그와 함께 땅에서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깨를 펴게 될 것입니다.
그 노래와 더불어 요한은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인 천사들이 보좌를 둘러싸고 하나님과 그 피조물 사이의 침묵의 간격에 다리를 놓은 어린양에게 찬양의 노래를 함께 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12절).
환상의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노래 소리가 더욱 커졌습니다. 요한은 놀라움에 가득 차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13절). 또 다시 장로들은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고 네 생물들은 목소리를 더욱 높여 엄숙하게 ‘아멘’하였습니다(5: 14).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책을 펴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읽어 주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만이 그 책에 나타난 미래를 우리에게 알려 줄 능력이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어린양 예수님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땅 위에 있는 생물과 땅 위나 땅 아래나 그리고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모두가 심판 날을 기다리면서 어느 날엔가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 돌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이 세상에 있을 때 주님을 배척했던 사람들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심판을 기다리며 땅 아래 있는 자들과 바다 아래 있는 자들도 부활과 함께 불못에 던지기 전에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슬픈 자리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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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