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개역개정판)
2004년 KBS 드라마 부모님 전 상서에서
당시 아역이었던 탤런트 유승호는 박준이라는 발달 장애아 역할을 맡았다.
그 드라마는
2020년대의 흐름으로 놓고 보면 말도 안되게 느려터진(?) 속도감과
1950년대를 대놓고 지향하는 세계관으로 똘똘 뭉쳐 있었는데 (더 정확히는 김수현 작가의 세계관..)
2000년대초 IMF를 조금씩 극복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잔잔하지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부모 역할은 당시 허준호와 김희애가 맡았는데
이 드라마의 주연급 배우들이었지만
(사실 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아이의 할아버지 역할이자 한 초등학교의 교감 역할인 故 송재호 장로다.)
이 드라마는 누구 한 명에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가족을 중심축으로 하여
각자 자기네 입장에서 살아가는 풍경을 보여준 것이 특징이다.
공평하고 균등한 무게감..
삶은 그렇게 문학적이지도 수학적이지도 않지만
장애인으로서 누구보다 훌륭한 시를 많이 남긴 송명희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드라마 속 박준의 할아버지인 안교감은
돌아가신 부모에게 늘 편지를 쓰는 지극한 효자다.
하루는
자기를 가장 닮은 큰 딸, 준의 엄마가
이사간 집이 낯설어서 울부짖는 아들 준이를 껴안고
"엄마 죽고 싶어. 엄마 정말 죽고 싶어!! 준아." 통곡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고
집에 돌아와 애끓는 심정으로 부모에게 편지를 쓴다.
"아버님, 어머님, 이 시련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아들의 아픈 모습을 보고 죽을만큼 아파하는 엄마
그 아픈 엄마(딸)의 모습을 보고 "나도 아플게."하며 같이 속으로 울어주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그 아픈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 돌아가신 부모에게 편지를 쓰는...
그런 딱한 모습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은 울었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더욱 힘들고 어렵게 사는 장애우들을 위해 우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준이가 조금씩 좋아지는 설정이었지만
또 어쩌다가 길에서 준이를 잃어버리게 되고...
준이 아빠와 엄마는 아이를 찾느라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상태에서
거리에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아이 아빠 역할의 허준호는 지극히 터프하게(?) "애 좀 밖으로 데리고 나오지 마라!"고 소리치는데
엄마 역할을 맡았던 김희애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든 세상 속으로 데려 나와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게 우리 할 일이야!"
답을 얻지는 못했어도
힌트는 얻었다.
뭘 해야하는지는 대충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게을러서 행하지 않을 뿐이다.
세상 속으로 데려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 곁으로 인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장애인들에 대한 태도와 주변 인프라는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무엇보다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의 태도와 마인드다.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부산대학생 자매와 오늘 잠시 만나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혼자 임용시험을 준비하느라 힘든 그 자매가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 오늘 장애인의 날이예요."
그 자매가 꼭 좋은 선생님이 되어서
그 사람들,
그러니까
저마다의 힘든 삶을 사느라 바쁜 우리 비장애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울
우리 장애인들이 가는 걸음에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무리하게 부탁하는 건 예수님 당시 로마군인들 뿐만은 아닐 것이다.
오리만 같이 가주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는 간절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돕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돕지 못해도
기도할 수는 있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는다고 했으니
그 힘겨운 걸음 같이 가준다고 손해날까봐, 피곤할까봐 두려워하지 않겠다.
주변에 힘든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보다 더 힘든 장애우들이 있으니
그들이 가는 걸음, 그 길을 외면하지 않겠다. 아니, 그러지 말아야겠다.
"어떻게든 세상 속으로 데려 나와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게 우리 할 일이야!"
욥의 고난에도
나의 고난에도
주님께서는
이제는 무슨 학교 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 뒷페이지 해답지처럼
이제는 TV에서 볼 수 없는 김수현 작가 드라마의 국어책 같은 대사처럼
명쾌한 설명과 정답을 명시적으로 밝혀 주시지도 않지만
잠언을 묵상하면서도
옛 드라마를 추억하면서도
매년 돌아오는 이런 기념일들을 통해서도
기억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
그 IMF 시대에도
이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시고
함께 걸어가야할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