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조병하 시인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라는 시를 쓴 적 있다. 이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이란 시를 마침 장맛비가 전국적으로 내린 며칠 전 어느 여류 시인에게 카톡으로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선생님도 비를 좋아하시죠. 가을비 내리면 우산 없이 그냥 걷고 싶답니다'. 고은 시인은 대중음악평론가 최경식이 그의 동생 최양숙을 위해 노랫말을 써달라고 요청했을 때 즉석에서 <가을 편지>를 써주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김민기가 작곡한 이 노래는 최양숙의 음반에 수록되었지만,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답다고 하질 않는가.
9월이 오면 귀뚜라미가 운다. 아침저녁 풀숲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릴 들으면, 지난여름 향기로운 장미가 생각나고, 이를 모를 호숫가 맴돌다 사라진 흰구름 생각난다. 나는 가을비 내리면 그분에게 낙엽 쌓이는 산책길에서 한번 만나자는 제의를 하고 싶다.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답다고 하질 않던가. 쓸쓸한 귀뚜라미 소릴 그분과 제대로 듣고 싶다. 옛날에 벤쳐스 악단의 <Come september>란 곡이 있었다. '9월이 오면'이란 그 곡은 뭔가 안타까운 여운을 남겨주곤 했다. 이젠 귀뚜라미들이 벤쳐스 악단이다. 같이 귀뚜라미 연주를 듣고 싶다. 노년이란 모든 게 시간 속에 묻히는 시기이다. 조병화 시인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 했고, 고은 시인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라고 하질 않았던가. 남자가 더 가을을 탄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9월이 오면 조병화 시인 고은 시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