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두 함께 7일간의 관음정진[觀音七]에 참가하여 경건하게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이라며 관세음보살의 성스러운 명호를 염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정진하는 것은 얻기 어려운 기회이므로 헛되이 보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약 진실한 마음으로 염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며, 마치 보배로 가득 찬 산에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용맹하게 염하기 바랍니다. 그렇게하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관음정진 법회에 온 목적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관음기도를 할 때 대부분 일정시간 동안 염불한 다음 30분 정도 쉬고 이어서 정진을 합니다. 홍콩이나 대만이나 이런 방식은 비슷한데, 우리 만불성성 (萬佛聖城)의 타칠(打七:7일 용맹정진)은 새벽에 시작하여 밤에 잠잘 때까지 쉬지않고 계속하며, 중간에 휴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우리가 쉬지않고 하는 것이 옳다거나, 남들이 쉬면서 하는 것이 옳지않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도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이전에 우리는 정진수행을 하지않았기때문에 지금 더욱 분발해서 용맹정진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진한지 오래되어 이미 길에 들어서서, 관세음보살을 염하거나 염하지않거나 모두 마찬가지로 망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쉬면서 하는 것이 우리처럼 정진하는 것보다 더욱 진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남들이 쉬면서 정진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령 우리가 아만의 마음을 내어 '아, 우리 만불성성은 용맹정진하고 저들은 게으름을 피우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공덕은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자만심이고 오만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남들은 무량겁이래로 수행정진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남들이 쉬면서 정진하는 것은 우리가 뒤에서 좇아올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하면 공부에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정진하는 과정에서 장애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됩니다. 자만과 아만이 바로 장애입니다. 자만과 아만이 보리(깨달음)의 종자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오는 것을 장애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아만심을 내거나 사리사욕의 마음을 내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是法平等 無有高下]."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수행자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정진을 시작하면서 마음가짐이 정당하여야합니다. 만약 마음가짐이 정당하지 못하면 무슨 공부를 하든지 마(魔)에 미혹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정당하면 어떤 공부를 하든 지간에 모두 성불할 수 있습니다. 부처와 마는 단지 한 생각의 차이이니, 이러한 점에 특별히 주의해야합니다.
우리는 무엇때문에 '나무관세음보살'을 염해야합니까? 왜냐햐면 관세음보살은 사바세계의 중생과 큰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소리를 찾아서 고난을 구제하시는 보살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되지, 고난도 없는데 우리가 왜 관세음보살을 염해야하는가?'
당신은 괴로움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오탁 (오탁: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의 악세(惡世)가운데에 있는 중생은 누구나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윤회하는 과정에서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는데, 이것이 고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루종일 멈추지않고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 고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언제나 무언가 얻으려고 생각하며,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있기를 바랍니다.얻지못하면 잠도 자지 못하고, 구하지 못하면 밥도 먹지 못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것이 고통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누구도 자기에게 고통이 없다고 확언하지 못합니다. 이런 고통이 없으면 저런 고통이 있습니다. 어쨌든 고통은 우리의 몸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약 만가지의 생각을 놓아버리고, 하나도 구하는 것이 없으면, 그때 비로소 고통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관세음보살'을 염할 때 먼저 그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무(南無)'는 범어를 옮긴 것으로 '귀의한다'는 뜻이고, '관(觀)'은 '관찰하다'는 뜻으로 묘관찰지(妙觀察智)로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묘관찰지가 있는가하면, 관세음보살에게 있습니다. 그 분은 이러한 지혜가 있기때문에 세간의 모든 소리를 다 아시니, 누구도 그 분을 속일 수 없습니다. '세(世)'는 '세간(世間)' 이며 '음(音)'은 '음성(音聲)'이라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소리를 돌아켜 자성의 소리를 듣는[反聞聞自性]' 법문을 닦았기 때문에 마음으로 세간의 중생이 구제를 원하는 소리를 관찰하시는 것입니다. 보살께서는 그러한 소리를 듣고 즉시 분신(分身)으로 그곳으로 가서 고해에서 구출하여 중생들이 ' 고통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게하십니다[離苦得樂].'
그래서, "천 곳에서 구제를 기도하면 천 곳에서 응하고,고해에서 항상 사람을 건너는 배가 되네 [千處祈求千處應 苦海常作度人舟]."라고 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자상한 어머니처럼 구하면 반드시 감응하며, 자녀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런 까닭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 구고구난 (救苦救難), 광대영감(廣大靈感)의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합니다.
보살(菩薩)은 범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사한 '보리살타(菩提薩埵)'를 간단히 줄인 말입니다. 그 뜻을 옮기면, '깨달은 유정[覺有情]' 혹은 '유정으로서 깨달은 분[有情覺]'인데 두 가지 모두 비슷한 의미입니다. 보살은 자신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하는 성인(聖人)으로서 사사로운 마음이 없고 이기적인 마음도 없으며, 모든 것을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바로 무아(無我)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며 보호를 받거나 도움을 받으려면, 반드시 진심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염해야합니다.그러면 마음의 에너지가 감응하는 작용을 일으킵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구제를 원하는 소리를 듣고, 반드시 오셔서 고해에서 구제해 주십니다. 하지만 만약 성실한 마음으로 염하지않고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섞이면, 감응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무 관세음보살'을 염하는데, 그 마음을 순수하고 청정하게하여 간절하고 지극하게 염해야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염하지 않고, 오탁악세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염해야합니다. 관세음 보살의 자비로 전 세계 인류의 재난을 소멸하며, 죄업을 멸하고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이러한 종지를 가슴에 품고, '나무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감응도교(感應道交)하는 힘이 불가사의할 것입니다. 여러분!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공덕을 법계의 중생에게 모두 회향합시다.
이 공덕이 모든 중생에게 널리 미치도록하며,
우리와 중생이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빕니다
-선화상인- |